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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처럼 서낭님처럼(글/임재해-안동문화지킴이 대표)

‘안동의 인물’, 마침내 별이 되다
안동의 인물이 세상을 떴다. 안동은 예전부터 인물의 고장이라 했는데, 그러한 전통과 달리 지금 안동에는 인물이라 할 만한 분들이 별로 없다. 빈곤한 인물의 시대에 안동을 지키던 마지막 인물이셨던 권정생 선생께서 오랜 병고를 혼자서 꿋꿋하게 참고 견디다가, 5.18 전날이자 남북 열차가 서로 오가던 날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로 가셨다. 안동의 인물이 지고 북녘하늘에 별 하나 새로 떴다.

선생을 잃은 안동의 상실감은 자못 크다. 이제 어떤 사람들이 우리 고장의 인물을 만나려고 안동을 찾아올까 생각하니 안동의 이름까지 빛바랜 듯하다. 그러나 비보를 듣고 달려온 수많은 조문객들의 면면을 볼 때, 선생을 안동의 인물이라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착각일 뿐이다. ‘민족문학인장’이라는 이름값에 넘칠 만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경향각지에서 찾아와 조문했다. 뜨르르 하는 언론들도 다투어 보도하고 경향신문은 사설로까지 다루었다. 퇴계 선생 이래로 ‘안동인물은 곧 전국인물’이라는 말로 착각을 변명하며, 선생의 뜻을 살펴 기리고자 한다.

‘보기 드문 보기’, 똥처럼 살았다
선생은 자기 작품처럼 살았다. 선생의 삶은 곧 시이고 동화였다. 대부분의 글쟁이들이 ‘글 쓰는 일 따로, 살아가는 일 따로’이기 일쑤이다. 교언영색은 아니더라도 그럴듯한 글을 통해서 마치 스스로 그렇게 사는 것처럼 위장한 채, 글 뒤에 숨어 딴 살림을 차린 이들이 적지 않다. 지식인들 또한 앎과 삶이 겉돌기는 마찬가지이다. 앎으로 지식권력을 누릴 뿐 알고 있는 대로 실천하지 않는다. 말과 글이 앞서고 몸과 행동은 굼뜨게 가는 게 아니라, 아예 어긋지게 딴 길로 가기 예사다.
그런데 선생은 초기작 ‘강아지똥’처럼 그렇게 한결같이 살았다. 글과 뜻, 앎과 함이 늘 가지런했던 까닭에, 선생의 살림살이는 그야말로 똥이었다. 검정고무신도 멀쩡한 구두에 견주면 똥이고, 싸구려 바지도 양복바지에 견주면 똥이며, 오두막도 번듯한 양옥에 견주어보면 똥이었다. 그것도 대단한 똥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강아지똥이었다. 그러나 영혼은 맑고 뜻은 곧았으며, 말은 향기로웠고 글은 더 빛났다. 말과 글보다 더 눈부신 것은 일상의 삶이었다. 말과 글은 재주꾼들이 그 언저리에서 흉내낼 수 있는 것이었으되, 맑고 곧은 선생의 삶은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가당찮은 것이었다. 그래서 더 빛나는 삶이자 고귀한 이름이었다.
우리시대 최고의 작가답게 필명을 누리며 거들먹거리고 살기는커녕 그야말로 똥처럼 살았다. 가장 낮고 후미져 어두운 곳에서 마치 없는 듯이 그렇게 가만가만 자기 몸을 썩히면서 뭇 생명을 살리는 거름이 되었다. 기꺼이 강아지똥이 되어 ‘맑은 불쌍한 어린이들’, ‘착한 약한 사람들’, ‘부지런한 가난한 이들’, ‘슬기로운 못 배운 젊은이들’, ‘의로운 불행한 이들’, ‘순결한 못생긴 소녀들’, ‘올바른 낮은 어른들’, ‘건강한 장애우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에 온 삶을 녹여냈다.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을 피우기 위해 온 몸을 흙 속에 녹여버린 강아지똥처럼 살았다.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기도 한다. 그 방법을 몰라서 우리 세상이 험하고 불행할까. 작가가 스스로 쓴 작품처럼 살고, 교사가 스스로 가르치는 대로 행하며, 학자가 스스로 연구한 대로 실천하고, 목사가 예수님 사신대로 따라 살고, 중이 부처님 말씀대로만 사는 세상이라면, 그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이 있을까. 선생은 스스로 쓴 작품처럼 살면서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 만들기의 보기 드문 보기 노릇을 착실히 하신 분이다.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선생의 삶과 뜻
선생은 마을을 지키는 서낭님처럼 살았다. 서낭은 마을의 모든 일을 지켜주는 공동체의 수호신이다. 마을에 좋은 일이 있어도 서낭님께 고하고 궂은 일이 있어도 서낭님께 빈다. 약하고 늙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서낭님을 믿고 의지하면 산다. 선생은 일직 조탑마을의 서낭님이자, 우리 문단을 지키는 서낭님이며, 깨어서 행동하는 온누리 민중의 서낭님이었다.
서낭은 마을을 지키는 신격이면서도 마을 가운데 자리잡지 않는다. 마을 입구나 뒷산 자락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그 형상이 당나무이든 당집이든 누석단이든 장승이든 마을 한 귀퉁이에 외롭게 서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조탑마을 뒤켠 빌뱅이 언덕 밑 오두막에서 외따로 사신 선생도 그렇게 서낭님처럼 살았다. 마치 없는 듯 숨죽이고 살았지만, 세상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와 선생을 귀찮게 하곤 했다.
서낭은 결코 자신을 위한 일은 하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풍요를 바라거나 번듯한 집을 짓지 않는다. 오직 마을의 풍요와 주민들의 안녕만 보살필 따름이다. 그래서 서낭당은 항상 초라하고 남루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서낭님 앞에 엎드려 절 올린다. 껍데기 형상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영성을 모시고 섬기며 받드는 까닭이다.
선생은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지 않으려 애썼다. 취재기자들을 멀리 하고 방송프로그램 출연도 거절하며, 작품집의 광고조차 애써 말렸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로 가면서도 자신을 위해 남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삶의 끝자리까지 아름답게 마감했다. 남긴 것은 모두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했고, 남은 오두막마저 헐어서 본디 상태로 되돌려 놓으라고 당부했다. 행여나 묘지를 쓰고 기념물을 세울까 저어, 화장한 재는 뒷산에 뿌리라고 유언했다.
이제 그 당부의 뜻과 유언의 내용이 널리 알려져 눈뜨고 귀 달린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다. 강아지똥처럼, 서낭님처럼 살아온 선생의 삶과 뜻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뜻을 마음 속으로 기리되 본받아 살지 못하는 우리들은 늘 남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이름과 관계 맺기의 추함
그런데 정작 선생을 제대로 알고 가까이서 모셨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선생의 뜻을 거스른다. 아예 제 입으로 아들이니 제자니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먼저 눈감고 귀 막는다. 평소의 당부 말씀은 물론 유언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든다. 강아지똥처럼 산 선생의 이름으로 영광을 누리려 하는 까닭일까. 그럼 왜 서낭님처럼 산 선생의 삶을 들먹이며 제 이름을 과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가. 선생을 보내기도 전인 영결식장에서부터 우리 모두 뻔뻔스러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선생을 추모하며 뜻을 기리는 글들 가운데는 제 얼굴부터 버젓이 드러내고 제 목소리부터 크게 들려주느라, 정작 고인의 모습을 가리고 고인의 목소리를 흐려버린 글이 있다. 자기와 사적인 관계를 요모조모 드러내고 자기 언행에 관한 이야기로 추모의 글을 길게 채운 까닭이다. 제자들이 워낙 우려먹은 탓에 저승에서 여윈 모습으로 지내신다는 퇴계 선생 이야기처럼, 벌써 선생을 우려먹느라 글재주를 다투는 것은 아닌지 보기에 민망스럽다. 조사의 내용과 조시의 형식을 몰라서 그렇게 보란 듯이 자기소개를 도드라지게 하고 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을까.
선생은 한 번도 누구와 관계를 통해서 자기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판적 관계를 통해서 당신만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켰다. 유명 작가와 교수, 권력자는 물론 아주 가깝게 지낸 친구와 성직자들까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전우익, 이오덕 선생, 그리고 정아무개, 유아무개 신부와 아무리 가깝게 지내도 그들의 허물까지 용납하는 일은 없었다. 이성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용서하지 않았듯이 사적인 글의 상품화를 기어코 거부했고, 개인적 원칙에 모든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고집을 비판했으며, 교수들을 여럿 해직한 일에 관해서는 모처럼 열을 올리기까지 했다. 똥으로 살기는커녕 대학선생의 기득권을 누리며 잘난 체 거들먹거리는 나 같은 인간은 더 이를 나위도 없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바로 선생의 아들이다, 제자다, 친구다, 연인이다’ 하며, 아무리 말로 내세우고 글로 박아두어도 소용없다. 선생의 뜻이나 삶과 다르게 자기를 드러내는 연출을 공공연하게 하고, 선생과 맺은 인연을 수단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미 패륜의 아들이자 배반의 제자이며, 배신의 친구이자 등돌린 연인일 따름이다. 선생은 그런 아들을 기른 적이 없고 그런 제자를 가르친 적도 없으며, 그런 친구나 연인을 사귄 적도 없는 까닭이다. 선생의 아름다운 이름을 얻으려는 관계 맺기 수작은 마치 짝짓기를 하고자 이성 앞에서 교태를 부리는 일처럼 추하고 구릴 따름이다.

선생은 우리 속셈을 비추어주는 거울
선생의 재가 빌뱅이 언덕에 뿌려져 강아지똥처럼 땅 속에 스며들기도 전에 선생을 상품화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먼저 글쟁이들이 선생과 맺은 인연을 들어, 또는 사적 관계에서 얻어들은 말과 글들을 제멋대로 옮겨와서 그럴듯한 글을 다투어 써댈지 모르겠다. 출판사들도 그 동안의 원고들을 재주껏 끌어 모아서 그럴듯한 단행본을 서둘러 내느라 분주할 것이다. 선생의 편지글을 모아 허락도 없이 책을 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비로소 시중에 깔았던 책을 거두어들였던 출판사는 ‘이제 때는 왔다’ 하고 반기지나 않을까.

두고 볼 거리이다. 과연 누가 얼마나 빨리 글을 써내고, 누가 어떻게 선생의 뜻을 왜곡하고, 어느 업자가 먼저 상품화할 것인가. 그 정체는 곧 드러날 것이다. 그런 조짐이 벌써부터 보이는 까닭이다. 당부의 말과 유언마저 자기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왜곡하려 든다. 아예 선생의 말을 지나가는 투로 한 말이므로 따를 필요가 없다거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둥 제 속셈대로 해석을 한다. 말과 삶, 글과 함의 불일치를 예사로 알며, 실제로 어긋나게 사는 이들이 자기 수준과 가치관으로 선생님의 말과 글, 유언을 하찮게 치부하고 일거에 뒤집어 버리려 하는 것이다.

선생을 이용하려드는 이들은 장례식장에 이름 박고 얼굴 내미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현장에서 부지런히 상황을 기록하는가 하면, 사진을 찍고 찍히느라 장례의식조차 의식하지 않고 분주하게 오가며 조문객들의 시선을 불편하게 하였다. 그들에게는 조문이나 의식보다 사진과 자료 등 상품화 ‘꺼리’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제작 수준의 디지털 장비들이 두루 동원되어 바지런히 돌아가지 않았던가.
조문객 가운데에는 명사들도 많았다. 서로 만나고 싶은 반가운 얼굴들이다. 이름을 드날리는 시인과 작가, 소리꾼, 춤꾼, 화가, 신부, 출판사 대표, 평론가들끼리 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서로 소개하기 바쁘다. 의식절차와 상관없이 그럴듯한 장소에서 괜찮은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박느라 얼굴에는 웃음꽃들이 가득하다. 고인과 관계 맺는 일을 잠시 잊은 채 산 자들과 관계 맺기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차라리 거짓 울음보다 이 모습들이 더 아름다울지 모른다. 고인을 기리는 것보다 산 자들과 관계 맺는 일이 더 실속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실천하니까 말이다.

광고탑의 화환들과 자기 소개의 조사
장례식이 가려져 있던 가족관계를 드러내주듯이, 선생의 장례식도 드러나지 않았던 우리 속셈까지 고스란히 비추어주는 거울 구실을 하였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선생을 기린다고 나설수록 선생의 뜻과 멀어지는 역설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굳이 유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선생을 기리는 일을 숙고하고 삼가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생을 기린다는 명분으로 자기를 기리는 일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평소에 선생과 일면식도 없고 이름을 앞세워 조문하지 않더라도, 강아지똥처럼 하찮은 것들을 위해 몸을 바치고 서낭님처럼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선생을 제대로 기리며 사는 사람이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통일을 소망하며 가난한 이를 돕는 이라면,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 분이든 선생의 뜻을 좇아 사는 의인이 틀림없다. 영정 앞에 곡하지 않아도 평생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선생의 진정한 벗이다.
거창한 직함을 박아 장례식장 가득히 도열시켜 놓은 키 높이의 화환들, 그리고 사적 관계를 곡진하게 늘어놓은 추모 형식의 긴 글들이 고인의 죽음을 제대로 추모할까. 오히려 그 의도는 선생의 뜻과 반대 지점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닌가. 고인의 영전에 바치는 꽃이자 고인을 기리는 글이 아니라, 마치 조문객에게 바치는 꽃이자 세상을 향해 자기를 기리는 글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광고탑 같은 화환은 조문객들에게 말한다. 빈소를 등진 채 서서 ‘내 직함과 이름을 제발 기억해 달라고’. 화려한 수사로 분장한 글은 세상 사람들에게 외친다. 고인에게 등 돌리고 선 채 ‘나와 고인의 막역한 관계를 부디 알아달라고’.

뜻을 기리려면 ‘불편한 진실’ 받아들여야
진정으로 선생의 삶을 기리고 그 뜻을 추모하려면 똥처럼 서낭처럼 살아야 한다. 아무도 서낭인 줄 모르는 자리에서 없는 듯 지내며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티내지 않고 일해야 서낭님답다. 곰삭은 똥처럼 생명의 밥이 되어야 한다. 구린내를 풍기는 생똥이 아니라 구더기의 밥이 되고 풀꽃들의 거름이 되는 삭은 똥으로 잦아들어야 강아지똥답다.
선생은 ‘어머니 사시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계실까. 벌써 이승으로 도로 내려와, 조문할 겨를도 없이 똥처럼 서낭처럼 묵묵히 뜻을 펴고 사는 이름 모를 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손잡아 격려하고 계신다. ‘별처럼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세상의 어린이들 속에 강아지똥은 거듭 날 것이라고.’ ‘마을과 고을, 온 누리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서낭처럼 세상의 한 귀퉁이에 다시 서서 북녘 어린이들을 보살필 것이라고.’

“제가 할아버지랑 약속할게 있어요. 세상이 저지르는 나쁜 일들(과) 싸우면서 살게요. 안 좋은 건 안 좋다고 말하면서 살게요. 착하게 살게요.” “권정생 할아버지랑 한 약속 꼭 지킬게요.” 연수 어린이가 영결식장에서 읽은 편지글이다. 선생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헤아리고 가장 올바르게 기리는 빛나는 문장이다. 그런데 선생을 잘 모셨다는 어른들은 정작 어긋나간다. 벌써부터 자기 뜻을 앞세우느라 선생의 뜻은커녕 말씀조차 따르지 않는다. 선생의 뜻을 기리겠다고 하는 이들이 ‘나쁜 일과 싸우며, 안 좋은 건 안 좋다고 말하면서’ 살겠다는 약속과 다짐은커녕, 선생의 당부조차 외면하려 한다. 한 마디로 ‘선생의 뜻대로 할 것인가, 내 뜻대로 할 것인가?’ 자명한 사실인데도 벌써부터 선생의 집을 두고 티격태격이다. 이러고도 ‘권정생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언론에 이름을 버젓이 밝히고 있다.
판화가 최병수 화백은 선생의 초상을 새기면서 북두칠성과 더불어 무수한 별들을 새겨 넣느라 미쳐 제 이름을 새기지 못했다. 아니다. 칼로 새긴 수많은 자국들이 모두 제 고유의 이름이나 다름없기에 굳이 제 이름을 새길 마음조차 먹지 않았을 게다. 아니다. 거룩한 초상이기에 작가의 생명인 낙관조차 새겨 넣을 엄두를 처음부터 내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최화백의 초상판화는 선생의 모습을 온전하게 새기고 뜻을 제대로 기린 최초의 작품이자 본보기 작품으로서, 연수 어린이의 편지글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나는 이 초상판화를 보고 비로소 선생께서 별이 되어 북녘하늘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선생을 마음 깊게 새겨서 눈이 부시도록 기린 참 아름다운 작품이다. 초상판화처럼 선생의 뜻이 깊이 새겨지고 빛나게 기려지길 기대한다. 그러자면 우리 모두 선생의 뜻을 따라 강아지똥처럼 서낭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저마다 성찰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자기 삶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냐마는, 적어도 선생을 기린다는 구실로 선생의 뜻을 자기 편의대로 왜곡시키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선생이 가신 안동은 텅 빈 것 같은데 하늘은 여느 때보다 더 밝고 충만하다. 민들레꽃처럼 피어난 새 별 하나 눈에 가득하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