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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령장 없는 선생님(글/이인우 - 의성 안평중학교 교사)

인사이동이 있는 2월, 학년말 휴가를 하자 인사이동이 단행되었다. 떠나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이 어수선하게 책상을 정리했다. 떠나는 사람은 새로운 학교에 가기 위해 짐을 싸고 남은 사람은 다음 학기를 준비하느라 서류를 정리하는 것이다. 공무원은 발령장 한 장에 울고 웃는다. 발령장을 받고 나면 지금까지 수년간 정이 들었던 학교와 학생 그리고 동료도 뒤로 하고 떠나야 한다. 심하면 전 가족이 이주해야하는 일이 생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인사이동은 이루어졌고 가는 아쉬움과 보내는 안타까움으로 학년말 휴가를 하는 날이 뒤죽박죽이었다. 가는 사람은 그렇게 보내고 오는 사람들과 이제는 한솥밥을 먹으며 학생들을 위하여 울고 웃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무분장도 해야 하고 담임도 정해야 한다. 새로 오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이 새로운 새 학년을 맞이하려는 준비를 해야 한다. 모두가 만족해하는 업무분장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날짜를 22일로 정하였다. 이날은 새로 부임하는 선생님들을 맞이하는 날이기도 했다.

정해진 날, 새로 부임하는 선생님들은 발령장을 들고 새색시 시집오듯 산 설고 물 선 학교의 현관에 들어섰다. 아침 일찍부터 오는 사람도 있고 늦게 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특히 신임교사들은 발령장을 받고 신임교사 오리엔테이션까지 하고 와야 하기 때문에 가장 늦게 도착한다. 안 그래도 신임이라 정신이 없는데 모두가 모여 있는 교무실을 들어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선생님들이 올 때 마다 발령장을 받고 서로 소개를 하며 신학년도에 무슨 사무를 희망하는지 희망서를 받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현관에 2명의 여선생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한 분만 오시면 발령 받은 사람은 다 오는데 2명이 똑같이 1호 봉투를 들고 각자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한분은 미술 선생님으로 공문상에 발령이 났음으로 알겠으나 한분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술 선생님부터 교무실로 안내하고 조금 뒤에 따라 오는 분 앞에 가서 여쭈어 보았다.
“무슨 과목입니까?”
“보건과목인데요”
“우리 학교는 소규모 학교라 보건교사가 없습니다. 발령장을 보여 주시지요”
작은 안경을 쓰고 계절에 맞는 정장을 한 그 여자분은 가늘게 눈을 뜨더니 공손하게 말을 이어갔다.
“교육청에 가서 발령장을 달라고 했는데 발령장이 없다고 하여 도교육청에 갔는데 거기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냥 왔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또 새겨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겉모습으로 봐서는 선생님이 분명한데 정원에도 없는 보건교사라니 내 30년 교직 생활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무실 소파로 안내하여 앉혔다. 다소곳이 앉아서 하는 말이 더욱 나를 놀라게 했다. 교감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장실로 가겠다며 일어섰다. 발령장을 받아서 오기 전에는 교장실로 갈 수 없다고 하자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한참 보더니 바로 일어서서 교무실 문을 나가버렸다. 잠시 후 교장 선생님이 인터폰으로 불렀다. 교장실에 가보니 조금 전 그분이 다소곳이 앉아서 교장선생님을 설득하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들어도 논리적이기는 하나 이상하다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었다.

다시 교무실로 와서 새로 부임하시는 선생님들과 업무를 상의하는 회의를 마쳤는데 정보부장이 한마디 했다. 저 여자분 지난해는 이웃학교에 와서 거의 3개월간 출근을 했는데 경찰이 오고 학부형이 오고 난리를 피웠다고 했다. 그제서야 정상인이 아니구나!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구나! 하고 교장실로 가니 교장선생님은 나를 보자 구세주를 만난 듯 얼굴에 화기를 가득 담고 구원을 요청했다. 나는 귓속말로 대강 들은 이야기를 했다. 그제서야 웃으며 적당히 보내라고 했다.

그녀는 교장실에 앉아 있다가 교무실로 와서 선생님들이 하는 일을 일일이 수첩을 들고 다니며 간섭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보다 못해 행정실장이 파출소에 연락을 했다. 그러자 건장한 순경 2분이 즉시 달려왔다. 순경들은 전후 사정을 듣더니 공무방해죄라며 파출소로 갈 것을 권유했다. 그 여자는 순경들에게 대들면서 너들이 뭘 아느냐고 도리어 큰 소리로 따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순경이 다시 나가자고 하자 물건을 찾는 시늉을 하며 대들었다. 급기야 순경들은 양팔을 한명씩 잡고 현관을 나가려고 했다. 그 여자는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말 그대로 질질 끌려 나가 경찰차에 태워졌다. 정말 안타까웠다. 정신이 이상하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여자가 저렇게 끌려가다니 저 사람이 진짜 교사라면, 얼마나 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면, 너무 측은했다.
그녀가 끌려가고 순경들이 그의 차와 가방을 가져가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으려 하는데 이상한 전화라며 나에게 바꾸어 주었다.
“저 아까 학교에 갔던 교감인데요. 3월 2일은 8시까지 시간 늦지 않도록 출근할게요.”
3월 2일이 새 학기 업무 시작하는 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발령장도 없이 보건교사로 부임한다고 하다가 교감으로 부임한다하고, 시간 늦지 않게 출근한다니 정말 황당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들은 바가 있어서 진짜 설마 오겠나 하며, 모두 웃어버렸다.

3월 2일이 되었다. 시업식을 하느라 분주했다. 업무별 사무를 인계하고 책상을 바꾸고 교무실은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10시가 가까워 오는데 작은 차가 멈추더니 그 여자가 교무실로 들어왔다. 태연히 인사를 하며 빈자리를 찾아 앉는 것이 아닌가. 윗도리를 벗어 의자 뒤에 걸고, 가지고 온 가방을 책상위에 놓았다. 수첩을 꺼내 가지런히 놓고, 손수건은 볼펜과 함께 놓았다. 한참 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옮기느라 전선이 엉키고 먼지투성이가 된 교무실을 헤집고 다니며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교장실로 갔는지 한참 보이지 않았다. 교장실에 볼일이 있어서 가니 또 교장선생님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발령장을 받기 위해 교육청에 다녀오느라 늦었다며 정중히 고개를 숙이더라고 했다. 이제는 할 수 없다 싶어 행정실장이 또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경찰이 오고 연행을 하려고 하자 쓰레기통을 힘껏 들어 책상위에 내리쳤다. 쓰레기통은 박살이 나서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며 안가겠다고 버티었다. 순경들이 억지로 파출소로 데려갔다. 참 딱한 일이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선생님을 하지 못해 한이 맺혔는지 정말 궁금했다.

다음 날 그 여자는 또 정상 출근을 했다. 소리를 지르며 우격다짐을 하는 분도 있고, 못 본체 하는 분도 있고, 빨리 파출소에 신고하라는 분도 있었다. 나는 방관하라고 했다. 그러다 지치면 오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그녀가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또 왔다. 나는 그의 말을 모두 인정하기로 하고 대화를 진지하게 해 보려고 시도했다. 반시간 이상 대화를 하니 모두 맞는 말만 했다. 그런데 발령장 말이 나오자 태연하게 교육청이 문제라는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대구의 유명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뜻한바 있어 간호학과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 후에는 간호사 생활도 십년 가까이 했다고 했다. 교사가 되고 싶어 공부를 했다는 말도 했다. 집도 부유했으며 형제자매들도 모두 회사원과 공무원으로 각지에 흩어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집도 어디라며 전화번호도 가르쳐 주었는데, 모두가 맞는 말로 정상이었다.

그 후에도 매일 학교에 와서 행패를 부렸다. 파출소에서는 가족을 만나야겠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그녀의 집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오늘까지 이틀째 오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안 오니까 보고 싶은지 은근히 기다리며 즐기는 사람도 있었는데 측은해 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