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최초의 명궁, 김주선 5단(글/백소애-편집기자)

호흡이 고정되고 활이 고정되고 과녁이 고정된 삼고(三固)의 상태. 활을 쏘기 전 고요한 극치의 상태를 말한다. 이 고요함이 극에 달하려면 그만큼 호흡이 중요하다. 심신단련에 제격인 우리전통의 무예 국궁. 이처럼 엄숙함마저 느껴지는 국궁의 명궁인 김주선 5단을 만나서 처음 한 질문은 “아니, 국궁에도 바둑처럼 5단이니 하는 승단이 있는 건가요?”였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럼에도 처음 접한 이들에게 수없이 들었을 그 물음에 김주선씨가 대답한다. “네. 있습니다. 승단심사를 거칩니다. 그리고 5단 이상에게는 명궁이란 칭호가 붙지요.”
지난 6월, 5단에 승단이 되어 ‘명궁’칭호를 받은 대한궁도협회 안동 영락정 소속 김주선(51)씨. 입문 4년 만에, 안동 최초의 명궁이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매서운 눈매가 인상적인 김주선씨를, 그가 대표로 있는 옥야동에 위치한 도기타일회사 사무실에서 만나보았다.



안동 영락정이 배출한 최초의 명궁
대한궁도협회 안동 영락정은 안동 유일의 ‘국궁’단체이다. 꾸준한 활동에도 그동안 ‘명궁’을 배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 김주선 씨의 5단 명궁은 그야말로 영락정의 경사다. 처음 입문을 하면 각 정에서 5발, 5시 5중을 하게 된다. 5발을 다 맞추는 일명 ‘몰기’인데 성공하면 접장 칭호를 준다. 접장이 되는데만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처음엔 3급으로 시작해 2급, 1급의 단계를 밟아 1급이 인정이 되면 3개월 이후부터 승단에 응시가 가능하다. 1단부터 차례로 올라가 5단부터는 명장, 9단이 되면 신궁으로 불린다. 1단이 되기까지 빠른 사람은 6개월 만에, 혹은 5년~10년 만에 되는 사람 등 다양하다. 더러는 승단에 연연하지 않고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도 있다. 바른 자세와 몸 세우기는 물론 온몸의 신경과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심신단련에도 효과가 있어 굳이 기록에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김주선씨는 윗대 어른들이 활솜씨가 있으셨던 분들이라 어렸을 때부터 그 모습을 보고 자라, 마음속으로는 내내 활시위를 당기고 싶었다고 한다. 사는데 바빠 이리저리 미루다 안 되겠다 싶어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4년 전이다. 대한궁도협회 산하에 전국적으로 350여개의 활터가 있는데 안동 영락정처럼 대부분 공식 회원으로 등록해서 활시위를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양궁과 달리 국궁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는 아직은 양궁에 못미치는 듯하다. 그러나 드라마‘주몽’ 등의 사극열풍으로 그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양궁과 국궁의 차이점을 묻자, 그가 사무실 한켠에 고이 보관한 활을 꺼내든다. 그가 쓰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 때 많이 쓰던 ‘각궁’인데 온도에 민감한 만큼, 35℃에 보관해야할 정도로 소중히 다루고 있다.
“양궁은 영점을 조정하는 게 있고 국궁은 기구와 본인이 일심동체가 되어 집중력을 요하는 점이 있어요. 거기다 우리민족 전통무예라는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양궁과 국궁은 장비부터 경기진행방식 등 여러모로 다르다. 그리고 과녁에 활이 꽂히는 양궁과 달리 국궁은 끝이 뭉툭하여 과녁을 맞고 튕겨 나온다. 거기다 양궁은 과녁에 따라 채점하지만 국궁은 일정한 원 안에 들어가면 명중으로 본다. 또 양궁은 70m 정도의 거리지만, 국궁은 전국 어딜 가도 145m 거리이다.  양궁은 말 그대로 서양에서 사용하던 활쏘기고, 국궁은 우리 고유의 활쏘기이다. 전국적으로 350개 정도의 정에서 명궁 칭호 받은 사람은 3백 명 정도이고 9단인 신궁 취득자는 17~18명 정도이다. 승급 보는 과정은 5발을 차고 9순(1순=5발)을 낸다. 그러니까 총 45발을 쏴서 25발이 과녁에 맞으면 초단에 합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45발 중 31발 이상을 과녁에 적중시키면 ‘명장’이 된다. 거리가 145m이니 만만치 않음이다.
요즘은 기계로 개량궁을 많이 만들어내는데 카본재질이 많다고 한다. 각궁은 물소뿔, 뽕나무, 소힘줄 등 7가지 성분을 혼합해 만들어낸다. 양궁은 아무 때나 가서 외부에서 현을 걸어서 쏠 수가 있으나 국궁은 사실 활을 얹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초보자는 보통 개량궁으로 시작하기에 무리가 없다고 한다.


김주선 씨가 소속된 영락정의 역사는 194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40년경 당시 안동읍 천리동에서 활터을 마련하여 8명의 회원이 모여 국궁을 시작하였다. 6.25 이후 안동시 남편에서 흐르는 낙동강가로 활터를 이전하였다가 1965년 다시 활터를 낙동강 건너편 백사장으로 이전했다. 1971년에 영락정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안동시장 외 80여명이 기금을 모아 그해 9월에 영호루와 충혼탑 사이에 영락정을 건립했다고 한다.
현재는 탈춤축제장 앞 강변둔치에 활터를 마련했으나 올해 땅 부지를 확보해서 영락정을 곧 건립할 예정이다. 그래서 내년쯤엔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마음껏 활시위를 당기길 기대해본다. 집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야 가족이 자주 모일 수 있는 것처럼 영락정이 건립되면 회원들도 자주 모일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김주선 씨는 갖고 있다. 계획한대로 올해 정 부지를 확보해서 영락정을 건립하는 것이 대외적으로 가장 큰 바람이다.
현재 활동 중인 회원은 모두 49명이다. 18살 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심폐기능이나 정신적인 영향이 큰 만큼 영락정에 나오는 80세 노인도 척추가 휜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장비는 개인적으로 구비하지만, 입문 시에는 영락정에 구비해놓은 연습궁으로 시작할 수가 있다. 영락정을 지으면 장비를 지금보다는 보관하기가 용이할 것으로 본다. 각궁을 35℃에 보관하는 이유도 열과 습기에 민감하여 더우면 물러지고 추우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김주선 씨가 그동안 연습에 사용한 궁은 1년에 2자루 정도였다. 승단에 관계없이 명궁이라도 궁도대회가 있으면 참가할 수 있다. 대부분 일반부와 유단부가 구분 없이 운영되고 있다. 김주선 씨는 올해 강원도 양구대회에서 개인부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궁을 접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김주선 씨는 문경이 고향이다. 71년도에 안동에 나왔으니 안동사람이나 다름없다. 가족으로는 부인 권영숙(47)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매일 새벽 활터에 부지런히 나가다보니 건강도 좋아져 가족들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예전에는 아침에 일어나 숟가락을 못들 정도로 통증이 심했는데 꾸준히 활을 쏘다보니 어깨와 허리통증이 가시고 생활이 활기차졌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도 어른들의 활 쏘는 모습이, 그 적막을 가르고 바람의 소리로 날아가는 활의 움직임이 남다르게 기억되는 김주선 씨에게 이제 국궁은 취미를 넘어 매일 아침 일어나 처음 맞는 중요한 하루일과이다.
전국 규모의 대회도 꽤나 있는데 대회에 나갈 때면 꼭 흰 상의, 흰 하의, 흰색 운동화를 갖춰야 한다. 백의민족이라는 전통일수도 있고, 마음을 정갈하게 위함일 수도 있는데, 옛날부터 흰색 옷을 입도록 규정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마음가짐이 흐트러짐 없는 것이 절로 되는 듯하다.


영락정은 매월 셋째 일요일에 월례회를 갖는다. 기량도 점검하고 회원들 안부도 주고받는 자리가 된다. 그는 영락정 지도사범으로 임명되어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전부터 지도활동을 꾸준해 해오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정식으로 지도사범으로 임명되었다. 회원 중 여자는 8명 정도 되고 가족단위로 나오는 회원들도 있다.


김주선 씨가 ‘명궁’이 된 데에는 개인적인 목표의식도 있었지만 국궁이 대중적으로 알려지는데 일조하고픈 마음도 있어서였다고. 주위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하는데, 누구나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전통무예의 긍지도 느낄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한다. 호기심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는데 보통은 그렇게 찾아와 활을 쏘는 분들이 더 적극적이라고 한다.
지역적으로 환경적인 부분이나 전통적인 성향으로 봐서는 접하기가 좀 더 수월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보면 의외로 경북이 제일 낙후됐다고 한다. 강원도 쪽으로는 면단위별로 ‘정’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 포항의 경우에는 4개 정. 상주에도 정이 2개 정이 있는데 안동은 아쉽게도 영락정 1개 뿐이다.




김주선 명궁의 습사(習射)일기
각 정의 회장을 ‘사두’라 칭한다. 현재 영락정은 권오현씨가 사두이고 김주선씨는 총무를 맡고 있다. 명궁 취득 후, 사두를 비롯 영락정 회원들이 명궁잔치를 열어줬다. 그는 북부지역 명궁, 사두 등을 초대해 성대히 잔치를 열어준 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명궁이 처음 배출되니 특별히 신경써준 영락정 회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한없이 느낀 자리였다. 또 대한궁도협회장과 안동시장의 축하카드를 받아들고도 뿌듯함을 느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목표를 이뤄냈다는 것이 기쁘다. 5년 안에 5단을 딴다는 목표를 세웠었고 그걸 4년 안에 이뤄냈다. 어느 때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2차 목표인 신궁을 향해 또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나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듯 김주선 씨는 궁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2차 목표를 위해 활시위를 얹지만 과욕을 부리지 않겠다는 그의 얼굴엔 여유로움마저 묻어난다. 그건 마치 오장육부가 잘 가동하는 우리 전통의 무예 국궁으로 단련된 ‘고수’의 기운과 같았다.


사석위호(射石爲虎:). 즉 돌을 범인줄 알고 쏘았더니 화살이 꽂혔다는 얘기처럼 어떤 일이든 성심을 다하면 이루어질 것이다.
영락정 사우이자 절친한 친구인 권오상(51)씨. 김주선 씨의 권유로 활시위를 잡았다는 그 또한 1단의 실력을 지녔는데, 매일 아침 새벽의 활시위를 함께 거는 절친한 사우이기도 하다. 그는 김주선 씨의 명궁 타이틀 획득 이후 국궁에 대한 지역 내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친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주선 씨가 9단인 ‘신궁’이 되건 그렇지 않건 오늘도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고 집중하는 마음으로 활시위를 얹었다 부렸다할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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