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신골의 추억(글/류성렬-영락서도원)
갑년이 가까워서일까? 유년의 어신골이 생각난다. 고래골의 막창에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고래골이란 고을명칭은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대여서 불려진 고라골이 변음이 된 것이고 어신골이란 지명은 어사골 곧 ‘벼슬하던 사람이 살았다’는 것으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 한가운데에 솟을대문을 갖춘 고기와집이 있다. 남쪽에는 두리봉이 있고 동쪽에는 용투재, 서쪽으로는 아기산 자락이 둘러싸고 있으며 북쪽만 조금 조금 트여서 신작로로 통하는 길이 나있다.
임동면 소재지와는 십 여리나 떨어져있어 여기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으니 여름에 장마가 지면 일여덟 개의 거랑을 건너야 하는데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여러 명을 모아 손을 잡고 건너고 겨울이면 유난히도 세찬 노루목 바람에 날려가지 않기 위해 또 여러 사람이 손을 잡고 힘을 합하여 겨우겨우 다녀야 했다. 수험공부나 운동회 연습으로 캄캄한 밤에 하교 할 때는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또 여러 명이 손을 잡고 다녔으니 학교와 멀리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 그때는 여간 원망스럽지 아니하였었다.
그러나 수 십 성상을 고향마을을 벗어나서 살다가 이제서야 어신골은 역시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남쪽 두리봉 아래의 약수터를 시원으로 하여 흐르는 앞 냇물과 동쪽의 용투재에서 흐르는 냇물이 마을을 싸고돌아 마을입구에서 만나 흐르니 이수지 합이 되어서 풍수지리상의 길지라고 하는 곳과 부합이 된다. 마을 입구 두던에는 아름드리 참나무 숲이 있고 숲 안에 역시 아름드리 엄나무 한 그루와 여신을 모시는 성황당이 있고 바닥면 길가에는 두어 아름이 넘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여기에 있는 나무는 죽은 가지 하나라도 건드리면 금방 크게 해를 입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참나무 숲은 북풍을 막기 위한 방풍림이요. 엄나무와 성황당은 마을의 수호신이며 느티나무는 급제자가 태어나라고 회나무를 대신하여 심은 것이고 당나무를 해치면 신체에 해를 입는다고 한 것은 방풍림을 보호하기위한 방편이었으니, 마을의 보존과 발전을 위한 옛 분들의 정성이 얼마나 지극하였던가를 가히 짐작 할 수 있다. 못이 있는 못골과 위쪽에 위치한 윗말, 본 마을과 윗마을 사이에 있는 샛말, 그리고 모시를 많이 재배하였다는 모싯골 등, 산재된 마을 쉰 여 가구가, 경작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전답이 있고, 세면이 산으로 잘 둘러싸여 바람 피해나 서리 피해가 없이 풍년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가히 복지라 할만하다.
앞 거랑과 옆 거랑에는 개피리, 참피리, 뚜구리, 텅골이, 미꾸라지는 물론 1급수에만 서식한다는 가재와 버들뭉치도 많아서 재미있는 고기잡이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니 고무신 두 짝 만으로도 반 주전자쯤은 금방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시절 가장 추억에 남는 것은 역시 ‘기둥잡기’와 ‘성공’놀이였다. 이 두 가지 놀이는 이 마을에서만 할 수 있는 마을고유의 놀이로 당숲의 한 가운데에 가로로 4m, 세로로 10m 정도의 놀이마당을 닦아놓고 수비자의 방은 4m폭에 세로로 40cm 그리고 공격자의 방은 세로로 160cm 정도씩 하여 5개조 정도가 수비와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하여 공격자가 수비자의 손이나 발 등 신체에 닿지 않고 맨 마지막 수비자의 방을 손으로 짚고 되돌아서 처음의 위치까지 수비를 피해 오면 “성공”이라고 소리치는데 한 사람이라도 성공하면 이기는 놀이이며 ‘기둥잡기’는 먼저 가위바위보로 편을 갈라서 놀이마당 양편에 있는 두 나무에 나누어 나무뿌리를 밟고 서게 하고 양 팀의 대표가 가위바위보로 다시 선후를 정하여 진편이 먼저 15m쯤 떨어져 있는 전방의 나무를 손으로 잡고 와야 되는데 이때 상대편이 뒤따라가서 먼저 나간사람을 잡아야한다.
어느 편이든지 자기편 나무에서 늦게 떠난 사람이 먼저 나간 사람을 잡을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전 인원이 쫓고 쫓기는 결과가 되어 당숲은 금방 생동감이 넘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는 학교 운동회가 되면 마을 출신의 달리기 선수가 많이도 배출이 되었었다. 그때 만약에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고 좋은 지도자만 만났더라면 훌륭한 선수가 될 인재도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언젠가, 쇠발이 만큼의 볏짐을 지던 이 하사도, 농사밖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줄 알았던 부뜰이도, 식전에 논 한마지기를 갈아엎을 수 있다는 권 씨도 도시로 떠났다더니, 당나무는 더욱 잘 가꾸어져 무성한 지금의 놀이마당엔 쇠붙이로 만든 놀이 기구 몇 개가 명절이 되어야만 고향이라고 찾아올 어린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언제쯤 다시 활기찬 옛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때가 그립기만 하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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