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국적의 당찬 안동소녀 티나 안스(글/김필녀-안동주부문학회원)

성희여고 교복을 입은 독일국적의 티나 안스
나무는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다가올 겨울을 미리 준비한다고 한다. 하늘은 눈을 준비하고 땅은 얼음을 준비하듯이 우리가 새로운 계절을 살아갈 때는 아슬아슬한 살얼음을 밟아 가듯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온 몸 털어 낸 앙상한 나무도 봄을 기다리는 희망이 있기에 세찬 겨울바람 앞에서도 울지 않듯이 새해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차갑고 어려운 현실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던 수능한파가 올해는 포근하게 지나갔다. 그렇지만 입시한파는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 대한민국의 입시를 벗어나고 싶은 수험생이 있는가 하면 이번에 만난 소녀처럼 대한민국의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이름만 들어도 이국의 소녀를 생각하겠지만 직접 본 소녀는 한국의 여느 여고생과 다름없었다.


성희여고 2학년에 다니는 독일국적을 가진 티나 안스를 만나기 위해 학교를 찾은 시간은 수업이 끝나가는 어둑한 때였다. 성희여고 앞을 몇 번 지나다니면서도 교실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 보는 건 처음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깨끗하고 조용해서 발걸음조차 조심스러웠다.
교실의 전기불이 대낮처럼 환하게 켜져 조용한 운동장을 비추고 있었다. 아직 수업을 마치지 않은 터라 교무실 선생님들의 자리는 거의 비어있었고 권오경 교감선생님이 환하게 맞아 주었다. 착하고 공부도 잘 하는 학생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그는 마치는 종이 울리자마자 직접 티나 안스를 찾아 인사를 시켜 주었다.
저녁이라 조용하게 대화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학교와 기숙사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티나를 위해 안동댐으로 차를 몰았다.


디자이너가 꿈인 천상 안동소녀 티나 안스
티나 안스의 본명은 크리스티아네 아른스(Christiane Arns)이고 나이는 17세(독일나이로 16세)이다.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국적은 독일로 되어있다. 1990년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대구에 살다가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중1때 안동으로 전학을 왔다고 한다. 티나 안스의 아버지는 1985년부터 20년이 넘게 한국에서 살았으며 대학 교수로 있다가 올해 초 어머니와 함께 독일로 들어갔다고 한다. 티나의 부모님은 파독 간호사였던 티나 안스의 어머니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고 한다.
티나는 부모님이 독일로 가신 후에 성희여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왜 부모님을 따라 독일로 가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한국 정서를 다 배우고 가고 싶어서 남았는데 잘 한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안동에 혼자 남아있기를 잘했고, 스스로도 대견할 때가 많다고 했다. 또 싶고, 외롭다고 생각하면 더 외로울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살기로 해서 그런지 괜찮아요.”
티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요즘 철부지 여학생들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의젓했다. 부모님은 티나가 의사가 언어문제도 그렇고 무엇보다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과 대학교 갈 때 유리해서 잘 결정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같이 독일로 가자고 하셨는데 제가 여기 남고 싶어 한다는 이유를 듣고는 이해해주셨어요.”
티나의 설득에 부모님도 따라와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린 나이에 홀로 지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터, 부모님 품이 한창 그리울 나이가 아닌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더 보고 되기를 바라지만, 시각디자인을 공부해서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에서 수능을 보고 대학교를 들어간 다음에 독일로 편입을 하거나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독일말도 유창하게 하는 편이지만 사실 독일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한 적이 없다고 한다.
“독일에서 생활한 적은 없고 방학이나 여행을 가서 2개월 정도 있다가 와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집에서도 부모님과 독일어를 썼다고 했다.




한국사람 독일사람 장점을 두루 갖추고 싶어요
독일과 한국 생활을 비교해보면 일상생활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한국, 특히 안동은 예의바르고 전통을 중요시 여기고 사람들이 친절해요. 그게 가장 큰 장점이죠. 독일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예의가 바르지 않아요.”
예를 들어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어른을 공경하는 한국의 정서가 참 중요한 것 같다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티나의 눈에는, 독일은 빠른 발전을 이룬 반면 더 이상 발전할 것이 없고 한국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보인다고 한다. 티나는 자신에게 독일인과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다 갖출 수 있는 이점이 있다며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다. 티나의 긍정적 마인드와 조목조목 말하는 모습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초등 저학년 때는 외모가 달라서 부모님을 원망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외모 때문에 놀리는 친구를 오히려 촌놈이라고 하면서 더 당당하게 지냈어요.”
안동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는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곤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오래 지내다보니 요즘엔 외모로 인해 불쾌한 일을 겪은 적은 없다. 친구들과 우르르 시내에 나가도 티나를 외국인으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안동사투리를 쓰는 티나의 모습은 퍽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모교 성희여고에서 특별한 추억 쌓아가요.
자분자분 말하는 티나의 모습이 또래보다 어른스러워보였지만, 구 용파 앞 호떡집 아저씨와도 단골 터서 친하다고 말할 때는 주전부리를 즐기는 영락없는 여고생으로 보였다. 그런 티나가 성희여고를 택한 나름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학교가 시내와 떨어져서 주변에 유흥업소도 없고 주변 환경이 조용하고 마음에 들어서 제가 먼저 학교를 선택한 후에 부모님과 상의해서 결정했어요.” 초등학교 때 대구에 살면서 아버지를 만나러 안동에 오는 길에 늘 성희여고 앞을 지났다고 한다. 그때마다 학교가 참 조용하고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어쩌면 초등학교 때 이미 성희여고를 찍어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서인지 학교생활도 만족한다고.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옛날이고, 요즘엔 장난도 치고 친구처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선생님이 인기가 많아요”  티나 안스는 개인적으로 국어담당 이만호 선생님을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했다.
“제가 사실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학생 신분에 상업적인 잡지사 인터뷰 같은 건 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반대를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이만호 선생님께서 ‘안동’지는 여느 잡지와 다르다며 저한테 인터넷으로 보여주셨어요.”
안동지를 꼭 챙겨 본다는 이만호 선생님 덕에 티나의 오해가 풀렸다고 한다.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티나를 아무래도 특별히 신경 써 주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티나는 똑 부러지게 말한다.
“처음에는 선생님들께서 신경을 많이 써 주셨는데 제가 부담스러워서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해 달라고 한 다음부터는 그렇게 해주세요.”
티나가 선택한 일이고 기숙사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니 특별하게 신경을 써주지 않아도 혼자서도 잘해나갈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거의 매일 부모님과 통화를 한다고 하니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소한 일상은 서로 공유하는 셈이다.


얼마 전 성희여고에서 녹화했던 ‘도전골든벨’에 티나도 출연을 했었다. 몇 번 문제까지 맞췄느냐고 물으니 깔깔거리며 웃는다.
“사실 초반에 떨어졌어요. 근데 그거 편집됐더라고요? 골든벨 문제가 쉬울 것 같지만 막상 출연을 해보면 분위기도 혼란을 주고해서 상당히 어려웠어요.”
아침 8시부터 시작해 하루종일 녹화를 해서 힘들었지만 여고생으로서 평생 추억에 남을 일이라고 했다. 특히 인터뷰를 할 때 많이 떨렸지만, 인터뷰를 하는 과정도 예선을 거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에 나갔다고 한다. 출연료는 문화상품권으로 받았다고.


아빠가 김이랑 미역 잊지 말고 챙겨 오라세요.
티나 안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볶음밥과 안동간고등어라고 했다. 특히 아버지가 한국의 전통음식과 해산물을 좋아한다. 가족들과 함께 살 때는 아버지와 함께 고등어 요리를 자주 해 먹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전통음식과 해산물이 먹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 겨울방학 때 독일에 갈 때는 미역과 김, 그리고 해산물 말린 것을 꼭 가지고 가기로 아버지와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티나 안스네 가족 모두가 우리 전통음식이 입에 배인 듯 했다.


혼자 안동에 남아 있으면 휴일이나 심심할 때는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보았다.
“친구들과 가끔 시내에 나가 노래방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며, 휴일에는 기숙사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문경새재에 있는 외가에 가요.”
티나는 빈 공간만 있으면 낙서를 하는 것이 취미이고 특기는 없다고 웃는다. 솔직담백한 티나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진로문제이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고교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진로문제예요.”
어떤 과목을 전공해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해서 모두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티나도 답답한 마음에 구시장에 있는 점집을 친구들과 함께 가본 적이 있을 정도다. 깜짝 놀라는 내게 그냥 재미로 보는 거라며 손사래를 친다.
“복비는 삼천 원을 받던걸요?”


티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교생들이 대학교 진학과 진로문제 때문에 얼마나 고민이 많은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학생들이 스스로 진로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가거나 부모님들의 뜻에 따라 전공과목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더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서 공부를 해요. 주말을 이용해서 과외를 하는 친구가 몇 몇 있는 것 같구요.”
티나는 학원이나 과외는 받지 않고 스스로 기숙사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기숙사 한방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생활한다고 한다.
“지금 기숙사 방에 6명이 지내는데 잘 지내고 있어요. 보통은 한 방에 여러명이 지내면 트러블 있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사실 힘들거든요. 다행히 우린 서로 잘 챙겨줘서 그런지 문제 없어요.”
기숙사에는 학년 별로 따로 방이 배정된다. 학년 없이 섞어놓으면 미묘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1학년과 3학년 사이에 낀 2학년 티나도 한국 고교생 특유의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친구들과 있었던 이야기들을 한참동안이나 얘기한 티나는 또래들보다 생각이 깊어서인지 학교, 친구, 진로 등 여러 문제들을 슬기롭게 잘 풀어가는 듯했다. 티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티나 부모님이 귀한 외동딸을 안동에 혼자 남겨두고 마음 놓고 독일로 갈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뚝뚝하지만 정 많은 곳, 그래서 정들었어요
그동안 티나가 본 안동사람들이 고쳐줬으면 하는 단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몇 가지 있는데요, 고집이 세고 자기가 잘못을 했으면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점과 개방적이지 못한 점이에요.”
자기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과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느꼈단다. 하지만 티나는 타지 사람들이나 외국 사람들에게 안동사람을 이렇게 소개할거란다.
“처음에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사귀다 보면 정 많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알려주고 싶어요.”
당찬 여고생 티나 안스의 안동사랑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전통을 중요시 하는 안동이지만 변화와 혁신을 하지 않으면 21세기를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안동과 한국의 정서를 배우기 위해서 부모님을 따라 독일로 따라가지 않고 성희여고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티나 안스에게 우리 안동인들은 과연 무엇을 보여줘야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먼 훗날 티나 안스가 독일에서 대학을 마치고 어른이 되어 안동을 찾아왔을 때는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지고, 변함없이 예의를 간직한 안동인의 모습을 느끼면서 다시 한 번 감동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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