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탈을 원주인 안동에 돌려달라(글/류희걸)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치러진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안동시가지는 온통 하회탈로 뒤덮히고 각국의 탈춤패들이 속속 들어와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에 고조돼 야단법석들이다.



안동에서 국제탈춤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것은 오로지 세계적인 걸작품 하회탈과 하회별신굿이 연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품 하회탈은 정작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망향(望鄕)의 한을 안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비슷한 모조탈로 축제를 즐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것과 다를바 없다.



하회탈은 1964년에 국보 제121호로 지정됨과 동시에 당국이 임의대로 가져가 지금은 국립박물관에서 36년이란 긴 세월동안 수장(收藏)고에서 잠자고 있다. 그것도 아무   나 볼 수 조차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밀실(密室)에서 말이다.
차제(此際)에 이를 고(告)하여 그 사연(辭緣)과 경과(經過)를 알림으로써 안동시민들의 공감(共感)대를 형성하고 따라서 범시민운동을 벌여서라도 반드시 하회탈을 찾아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감히 이 글을 쓴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문화유산(文化遺産)이란 오늘에 사는 우리가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귀중한 민족적 자산(資産)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화란 인지(人智)가 깨고 세상이 열리어 밝게 되는 것이다. 또 문화는 권력이나 형벌보다 문덕(文德)으로 백성을 가르쳐 이끄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이상(生活理想)을 현실하려는 활동의 과정이자 그 과정에서 이룩해 낸 물질적 정신적 총칭(總稱)이다. 특히 학문, 예술, 종교, 도덕 등 인간의 내적(內的) 정신활동에서 생겨난 소산(所産)이 바로 문화이다라고 설명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소산에서 남겨진 모든 유형물(有形物)들을 문화유산(文化遺産)이란 개념으로 오늘날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관리(管理)하기 위하여 문화재 보호법을 제정하고 중요한 것은 국보(國寶)나 보물(寶物)로 또는 유형에 따라 여러 형태의 문화재(文化財)로 지정하여 까다로운 절차와 규제(規制)까지를 정해두고 있다.


    문화재는 원형을 변경할 수 없다  문화재는 새로 만들 수 없다  문화재는 연고지 밖으로 반출할 수 없다  문화재는 전문가만이 보수할 수 있다. 이는 문화재 보호법에서 가장 근간(根幹)을 이루는 대목이다. 그렇다. 문화재는 형태(形態)를 바꾸어도 안되지만 연고지 밖으로 옮겨서는 더더욱 안된다.


그런데 안동의 하회탈은 국보로 지정되던 1964년에 하회(河回)에는 완벽한 보관(保管)시설(施設)이 없다는 이유로 문화재관리국이 임의로 국립박물관에 가져가 버렸다. 자고(自古)로 만물은 각기 제자리가 있는 법이다. 농산물에도 특별한 산지가 있듯이 문화유산 또한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석굴암(石窟庵)은 경주에 있고 경복궁(景福宮)은 서울에 있어야 하며, 또 촉석루(矗石樓)는 진주, 광한루(廣寒樓)는 남원(南原)에 있어야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서울에다 석굴암을 이전하고 경주에 경복궁을 옮겨 놓는다면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화유산이란 갈 곳 못 갈 곳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안전하게 보존만 하면 된다는 발상은 잘못된 사고(思考)라 하겠다.



이러한 맥락(脈絡)에서 볼 때 올바른 문화유산의 보존이란 바로 그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회탈이 서울에 보관되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문화유산 보존책의 단면이라고 지적할 수 밖에 없다.


하회탈은 우리나라 현존 목조(木造)가면(假面)으로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의 것으로 안동 하회마을에서 매년 정월보름 성황당(城隍堂) 동신제를 올린 뒤 하동들이 놀았던 별신굿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당초에는 12개였으나 3개는 분실되고 나머지 9개와 병산탈 2개를 합쳐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신의 계시(啓示)로 허도령이 만들었다는 전설만큼이나 그 제작 수법이 독특하여 연기자가 의도하는 대로 희·노·애·락의 표정이 잘 나타나 세계적(世界的)인 걸작(傑作)으로 그 예술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하회별신굿탈놀이는 1980년 중요무형 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국내공연은 물론이고 영국 버킹검 궁전에서 또 미국 대통령 취임 행사장에서까지 공연하며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획기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안동시에 유치되어 국가의 5대 중요문화행사 중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하회탈춤을 일러 놀이에는 오락기능이 있고, 제의(祭儀)에서 주술(呪術)성을 강조하며, 연극으론 예술성을 나타낸다고 학술적인 표현을 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하동들이 양반을 욕(辱)보이는 놀이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양반을 모독하는 놀이가 어찌해 하회마을에서 전승되었고 또 지체높은 하회 양반들은 그것을 어떻게 수용(收容)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 점을 중시(重視)하면서 놀이가 주는 의미(意味)를 음미(吟味)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엄격한 조선조 계급사회 아래서 양반들은 호랭이 담배만 피울 줄 알았지 하동들의 설움을 좀처럼 이해하려고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회의 양반들은 그렇지를 않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놀이에는 일정한 대사가 있지만 연기자가 즉흥적으로 상전에 모독(冒瀆)하는 언행을 하더라도 이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자아(自我)반성(反省)의 계기로 삼았다. 평소 나는 저들에게 무엇을 잘못 대하였는가를 반성하고 관용(寬容)을 베풀어 그들로 하여금 탈춤 추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게 해줌으로써 후일 보다 더 강한 복종심을 자아내게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동들은 탈춤에 의한 불만의 허구적(虛構的) 해소(解消)로 사회의 갈등(葛藤)과 저항(抵抗)을 억제했고 양반들은 하동들의 고달픈 삶을 폭넓게 이해함으로써 상하간 조화있는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동성(帶同性)의 획득은 오늘날 우리들이 익히 본받아야 할 하회 사람들의 지혜(知慧)라고 하겠다.


   이렇듯 중요한 의미가 듬뿍 담긴 하회탈이 지금와서는 안동을 대변해주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책의 표지라든가, 상품의 선전포스터, 방송타이틀까지도 하회탈을 앞세우고 또 소형 하회탈 마스코트(mascotte)를 관광기념품으로 개발해 안동 알리기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회탈이 안동에 없으니 진품을 한번도 보지 못한 채 만든 탈을 어찌 원형에 가깝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혹자는 가짜탈이다, 아니면 모조탈이라고까지 하며 온갖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하회탈이 지닌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국립박물관 수장고에 잠자고 있는 하회탈을 살려내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화재 관리국이 말한 안동에 보관 시설이 없다는 이유가 지금은 설득력이 없어졌다. 하회마을 관리소란 공공기관이 있고 또 탈박물관도 있으며 안동 시내에는 안동시립민속박물관의 완벽한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하회는 국가중요 민속마을로 국내관광객은 물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다녀간 뒤로 주말이면 하루에도 수천명의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하회에서 진품 하회탈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 외국사람들이 우리의 문화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결과는 자명(自明)해진다. 하회탈을 중앙에서 보관하면 완벽한 보존책이 되고 마을 주민이나 지방 박물관이 보관하면 보존상의 우려가 있다는 사고방식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차제에 하회탈을 천년에 가깝도록 보존할 수 있었던 전승력은 과연 어디에 있었던가를 생각해보자.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주민들의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물이 바로 하회탈이었기 때문이다.


1936년 7월경 조선 총독부에서 하회의 동사(洞舍)는 고려시대의 건물이라하여 문화재 지정을 위해 실측(實測)한 바가 있다. 그 무렵 3일 뒤 동사에 불이 났다. 그곳에는 탈이 보관되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동사보다 탈이 불에 타는 것을 더 염려(念慮)하여 서낭님의 노여움을 어떻게 하느냐?면서 걱정을 했다. 그때 누군가가 불덩이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 들어가더니 탈이 든 궤짝을 안고 나왔다. 그래서 동사는 소실되었어도 탈만은 불덩이에서 건져낼 수 있었다. 만약 탈이 보관된 박물관에 불이 났다면 누가 그처럼 애타게 건지겠는가. 모르긴 해도 탈도 함께 타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점을 미루어보아 지식과 과학에 의한 보존보다 순수한 민간인들의 신앙에 의한 종교적 주술적(呪術的) 보존력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겨왔던 하회탈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명목하에 서울로 가져간 것이 꼭 36년. 그것도 명확한 보관증 하나 없이 말이다. 언젠가 동민들이 탈을 돌려달라고 진정서를 냈다가 완벽한 보관 시설이 없다는 이유를 적은 어설픈 회시문만 받았을 뿐이라고 한다.


   이제와서 하회마을 사람들은 그 회시문조차 분실하고 없으니 이러다가는 소유권마저 희미해져 결국은 재산권 시비로 관민간 송사(訟事)가 우려된다. 그렇지만 하회탈은 어디가도 하회탈이다. 또 누가 뭐라해도 하회탈이다. 발상지(發祥地)인 하회마을에 탈을 두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하회의 역사를 이해하고 전통문화를 배워갈 수 있도록 해야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는 하회마을 주민은 물론 안동인 모두의 임무요 권리인 것이다.


   당국은 하루 빨리 탈을 하회마을로 돌려주어야 한다. 안동시민들의 거센 반발이 있을 땐 어떻게 할 것인가 ? 민심이 천심이다. 지방화 시대를 외면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문화재를 해외로 반출(搬出)함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 연고지(緣故地)밖으로 이동 또한 심각(深刻)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제구실을 다할 수 있다. 이 길만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바르게 보존하고 가꾸는 첩경(捷徑)이라 믿는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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