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축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과 안동(글/손상락-안동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우리는 흔히 지역 문화 또는 우리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관용어를 즐겨 사용하면서도 “가장 지역적인 것이 무엇인가?” 라는 반문에는 선뜻 답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 까닭은 향토사와 지역문화에 대한 인식이 낮고 지역마다 지니고 있는 독특한 문화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997년부터 시작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개최하게 된 동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개최는 안동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아우르고 있는 역동적인 하회탈놀이를 통한 세계적인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안동을 다른 지방과 차별화하고 발전시킬 하나의 성장 축으로 삼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하회탈과 탈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통해 안동의 문화적 역량을 드러내고 관광자원화 함으로써 지역민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탈춤축제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도 적잖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며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일부에서는 그러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우리의 탈과 탈춤은 그 내용에 있어서 너무 속되고 상것들의 놀이였다는 이미지가 안동사람들이 지켜온 수준 높은 학문과 정신문화에 부합하지 않고 안동의 지역 상징으로 대표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하회탈과 탈춤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의미와 가치, 나아가서는 우리 민족의 높은 정신문화와 정서까지도 놀이 속에 갈무리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회탈과 탈춤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새겨보지 않고 그저 상것들이나 했던 탈과 탈춤으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전통을 생산하고 지켜나가는 것은 그 지역의 축적된 모든 역량이 결집되어야만 창조될 수 있다. 하회별신굿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비록 그 연행은 상민들이 주도했지만 마을사람들의 삶과 역사, 전통을 바탕으로 한 생태환경까지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완벽하게 틀 잡고 우리의 생각과 감정, 느낌까지 놀이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학문이 높은 지식인들에 의해 창조되고 생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탈춤 속에는 소통과 어울림을 통해 지연공동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힘이 담겨져 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간답게 살고 싶은 행복 추구의 권리와 자유를 갈망하고 평등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
한바탕 신명으로 풀어내는 놀이판은 민초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신분사회 속에서 꽉 막혀 있는 숨구멍을 터주는 통풍구이기도 했으며, 더 나은 세상을 염원하는 희망을 노래하는 난장이기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별신굿이 열리는 기간 동안만이라도 사회적 제약에서 해방되고 신분차별에서 오는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남녀노소․반상의 구별 없는 대동세상을 꿈꾸고 지향하고자 했다. 따라서 별신굿이라는 문화장치를 통해 인간존엄의 정신을 구현하고 탈놀이를 통해 이를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다. 별신굿은 신과 인간이 하나 되고 인간과 인간이 하나 되어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생각과 바람이 탈놀이를 통해 대동축제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별신굿이 열리는 보름동안 마을공동체는 사회적 모순을 탈잡아 비판하고 비판을 통해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창조해냈다. 인간과 인간이 동등한 인격체로써 하나 되는 평등사회와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 그것은 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간다. 혼돈과 갈등의 극복, 그리고 새로운 질서 창조 이것이야말로 축제가 가지는 가치이자 의의라 할 수 있다.
안동국제탈춤축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의의도 전통사회 속에서 연행되었던 별신굿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를 가장 올곧게 갈무리하고 있는 하회마을에서 800여 년 전부터 만들어져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하회탈놀이가 가지고 있는 전승력은 바로 공동체의 건강성에 있다. 공동체 내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을 드러내어 탈잡고 구성원 상호간의 갈등을 탈춤을 통해 해소함으로써 공동체의 안녕과 공동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하나로 힘을 모울 수 있었던 힘이 오늘날까지 전승하게 한 동력이었다. 비록 민초들에 의해서 전승된 하회별신굿탈놀이이지만 놀이 속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의미와 추구했던 목표는 바로 영남학맥을 이어온 안동선비들의 절제된 삶을 그대로 함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퇴계 선생께서는 인간답게 사는 길, 즉 선비정신을 실천하는 것에 대해 “알인욕(遏人慾)하고 존천리(存天理)”하라고 했다. 인간의 사특한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순리를 따를 때 인간존엄과 선비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 가르쳤다. 또 보백당 김계행선생은 “우리 집에는 보물이 없다. 오직 있다면 청백이 보물이다.(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이라고 자제들에게 가르쳤으며, 서애 류성룡 선생도 자제들에게 “우리 집에서 대를 이어가며 삼가고 지켜가야 할 것이 있다면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뿐이다.(勉爾子孫須愼施 忠孝之外無事業)”라고 충효를 강조한 것처럼 안동선비들이 지켜가고자 했던 모든 덕목들은 별신굿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와 일치한다. 이러한 의미를 알고 하회탈과 탈춤을 이해하고 안동국제탈춤축제에 접근한다면 비록 상민들에 의해서 연행되었던 탈놀이였지만 놀이 속에는 안동사람들의 수준 높은 정신문화와 시대를 이끌어갔던 학문적 깊이까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어찌 가벼이 할 수 있으며 안동을 대표하는 것으로 손색이 있다 할 것인가!
전국 최고를 자랑하는 안동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들은 창의적이고 독창적이지만 매우 정적이다. 정적이라는 것은 활달함이 없고 정체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동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안동은 들을 안동은 되지만 볼 안동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영국 여왕이 다녀가고 미국의 전대통령이 다녀가고 레비스트로스를 비롯한 세계적 석학들이 다녀가는 곳이어서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해 안동을 찾았지만 막상 안동에 와보면 여느 곳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안동의 문화유산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동은 오천 년을 이어 온 우리 민족의 끈끈한 삶이 축적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 민족의 생각과 신명까지도 잘 갈무리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정신문화 속에 갈무리되어 있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다르다. 탈놀이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며, 민중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어루만져주는 어머니의 약손과 같이 따스함이 있다. 광대들의 몸짓에는 민초들의 한풀이와 신명이 넘치고, 대사에는 안동사람들의 해학과 비판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 바로 우리 민족 오천 년의 역사가 갈무리되어 있으며 우리 민족의 생각과 우리 네 삶의 궤적들이 갈무리되어 있는 것이다.
“놀랍다. 한국에 이러한 가면이 있다는 것이, 안동사람들의 얼굴인 하회탈과 안동사람들의 정신과 삶의 모습들이 잘 갈무리되어 있는 탈놀이를 가지고 있는 안동은 선조들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축복받은 곳이다.” 이 말은 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경극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북경희극대학교의 학장이 공연을 보고나서 밝힌 소감이었으며, 영국 엘리자베스대극장에서 공연을 지켜본 영국왕실의 문화참사관들의 평이기도 했다. 그동안 세계를 돌며 한국을 알리고 안동을 알리기 위한 해외공연 때마다 외국인들의 반응 또한 한결같았다. 하회탈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과 탈놀이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한마디로 놀랍다는 것이었다. 정작 가까이에 있는 우리가 그 중요성과 가치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이지만.
안동국제탈춤축제는 올해로 12년째를 맞이한다. 10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축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단일 축제로써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하는 신기원을 수립하기도 했고, 6년 연속 대한민국 최고 축제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2007년 말에는 그간의 노력과 애씀을 통해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탈춤축제에 탈을 쓰고 즐기는 관광객을 찾아 볼 수 없다면 그 축제는 정체성을 확보할 수 없다. 탈과 관련된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탈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탈과 관련된 학술대회의 개최도 탈춤축제를 한 단계 더 올라서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또 기존 탈춤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음으로 해서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이 시대의 새로운 탈춤을 창조해 내는 다변화를 통하여 새로운 탈춤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창조적 축제로 성장시켜나가야 한다.
안동탈춤축제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축제에 걸 맞는 축제가 되고 세계인들과 함께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와 이념을 정립하고 나아가 상호 부대낌을 통해 이 시대의 화두를 하나로 모으기 위한 노력도 배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축제의 내용과 다양성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무엇보다도 지역민들의 절대적인 관심과 호응,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졌을 때 대한민국 대표축제를 넘어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안동사람들부터 하회별신굿탈놀이 속에 담겨 있는 우리민족의 확고한 생각과 정서를 이해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우리 것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인식을 통해 탈과 탈춤의 도시 안동은 대한민국 대표축제를 넘어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