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정리 환상의 짝꿍, 류점희 임후남 할머니(글/이미홍-객원기자)

 

어느 날인가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가 나도 모르게 한 장면에 눈이 멈추어졌었다. 빼빼마른 쪽진 머리의, 허리가 조금 꾸부정한 할머니가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어여 와, 어여.” 하면서 손짓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 뒤로 순진한 웃음을 머금고 할머니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순박한 얼굴의 또 한 할머니. 가만히 보니 눈이 불편해 보였다. 안심이 안 된다는 듯 앞의 할머니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재촉을 하며 앞장서 걸어가고, 그 뒤를 눈이 불편한 할머니가 연신 웃으며 따라가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장면이었던 듯 곧 화면이 바뀌었고 나도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었다. 그랬다. 잠시 아련하게 눈 안에 들어왔던, 순간적으로 가슴이 따뜻했던 장면이었지만 돌아서자 잊어버렸던 일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장면이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왔던 건 결과적으론 우연이 아니었다. 이웃이야기의 주인공이 할머니 두 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취재를 나서면서 ‘어쩌면’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읍사무소에서 만난 사회복지사를 따라 찾아간 괴정리 마을에서 만난 사람은 바로  임후남(81), 류점희(59) 바로 그 두 할머니였다.




보슬비 내리는 괴정리,  친모녀 같은 할머니들


그 날은 오전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오후에 괴정리 마을에 들어섰을 때는 보슬비가 간간이 뿌리고 있었다. 마을 초입, 큰 길에서 조금 걸어 들어간 곳에 적갈색 벽돌로 지어진 류점희 할머니네 집이 있었다. 마당에는 무언가 곡식을 심어놓은 듯 호미질 자욱이 선명했다. 마당 한 쪽으로는 땅콩이며 푸성귀가 심어져 있었다. 잡초 하나 없이 깔끔하게 김이 매어져 흙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기척을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자 같이 간 복지사가 문을 열고 들어서며 할머니를 불렀다. 그제서야 할머니가 나오며 누구냐고 물었다. 빨래 삶은 걸 헹구고 있었다며 나오는 류점희 할머니는 언뜻 보면 눈이 보이지 않는 걸 모를 정도로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몇 십 년을 산 집안이었기 때문인 듯 했다. 집 안은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 혼자 산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집도 류 할머니도 단정한 게, 아마도 집이 사람을 닮은 거지 싶었다. 그리고 얘기를 나눠본 류 할머니는 짐작이 크게 틀리지 않아 웬만하면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거나 불편하게 하는 걸 원치 않아 했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단 한 사람 임후남 할머니한테 만은 예외였다.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류점희 할머니에게 임후남 할머니는 그렇게 무조건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그건 조금 뒤에 오신 임후남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임 할머니가 류 할머니를 챙기는 데에는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고 챙겨주는 것이 밥을 먹고 잠을 자듯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버린 세월이었다.






 

그 옛날,   눈 불편한 새댁이 안쓰러웠던 임 할머니


류점희 할머니는 1974년 스물넷에 이 마을로 시집을 왔다. 점희 할머니는 6․25 전쟁 통 피난 중에 뒷간에서 태어났는데, 막내인 점희 할머니를 피난 중에 낳고 산후 조리도 못한 친정 엄마는 점희 할머니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 친정은 하회마을인데 양반마을에서 드물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님을 따라 점희 할머니도 어릴 때부터 신앙이 돈독했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색소망막염으로 시력이 0.3이었지만 초등학교를 다녀 읽고 쓸 줄은 알았다. 결혼할 당시만 해도 가까운 물체나 사람을 알아볼 정도는 되었었다고 했다. 신랑 집이 믿는 집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회 사람의 중매로 이곳 괴정리로 시집을 왔다.


임 할머니는 동네 마당에서 치러진 점희 할머니 결혼식에서 새색시였던 점희 할머니를 처음 봤다. 얌전하고 고운 새댁이었다. 임 할머니와 새댁이었던 점희 할머니는 그때부터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임 할머니 역시도 신랑 집이 믿는 집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천에서 이 마을로 시집을 왔다. 친정 엄마가 사돈될 집에 와 보니 못 사는 데 식구는 많아서 걱정은 되면서도 예수만 잘 믿으면 다 잘 될 거라고 하며 시집을 보냈다. 그런데 이 마을서 믿는 집은 점희 할머니네 집하고 임 할머니네 집, 단 두 집뿐이라 전부터 두 집안은 뗄래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온 터였다. 그런데다가 임 할머니네 시집은 사는 형편이 어려웠던 관계로 점희 할머니네 시어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으며 가깝게 지내오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던 차에 새댁인 점희 할머니가 시집을 왔으니 자연 임 할머니가 이것저것 챙기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눈이 불편한 새댁이 모든 것이 낯선 시집살이에 적응을 하자니 쉽지가 않았다. 자연히 누구네 집 며느리가 어떻더라 하고 동네에 소문이 났다. 그때 점희 할머니가 서러운 마음을 털어놓은 사람은 어렵기만한 시부모님이 아니라 임 할머니였다.


“나야 저이가 시집올 때부터 곁에서 계속 지켜봤으니 알지. 저이도 모태신앙이고 나도 모태신앙이고 둘 집 다 믿는 집안이다 보이 더 가깝고. 그전에도 이 집에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무슨 일이 있으면 드나들면서 일 거들어주고 끼니 얻어먹고 했는데, 그러다보이 자주 드나들면서 자연 이것저것 도와주기도 하고 잘 모르는 건 손잡고 다니면서 가르쳐주기도 하고 그랬지. 그렇게 지내다보이 윗대 어른들 돌아가시고도 서로 가깝게 지내온 거지 뭐. 참 그건 그렇고, 콩은 다 심었나 보지? 고구마는?”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콩 심으라고 조언을 하고 고구마 모종을 얻어다 준 것도 임 할머니인 모양이다. 젊어서부터 몸 재바르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임 할머니는 아무 것도 없는 시집에 와서 온갖 품팔이를 해 가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서 5남매를 남부럽지 않게들 키워내고도,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집사이신 할아버지와 씩씩하게 사시는 분이다. 81세의 나이에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출퇴근차가 오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게 아까워서 30분 넘게 걸리는 닭발공장까지 걸어서 출근을 하고, 하는 만큼 돈을 주는지라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평소에는 일곱 시나 되어야 퇴근을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우리 때문에 일찍 온 거라고 알려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몸 성할 때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죽으면 썩어질 몸 아껴서 뭐 하느냐며, 우리 덕에 오후 일당이 날아간 임 할머니가 하는 말이다.






 

서로의 고생을 훤히 알아 더 애달픈 할머니들


젊었을 때는 시댁이 마을에서 꽤 잘사는 집안이라 점희 할머니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잘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신랑이 술을 많이 먹으면서부터 맘고생을 많이 했다. 술을 안 마신다는 말을 듣고 시집왔는데 신랑은 스무 살 넘어 방위생활을 하면서 늦게 밖에서 술을 배워 부모님 모르게 마시고 있었던 거였다. 처음에는 조금씩 먹던 술이 나중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심해져 식구들을 많이 힘들게 했다. 그 때 일을 말로 다 하자면 끝이 없지만 이제와 이야기 하면 뭐하느냐고 점희 할머니는 말을 아꼈다.


“한 가지만 이야기 하자면, 1년 365일 중에 집에서 맘 편히 잔 날이 65일이나 되었을까 그래요. 나머지는 술 먹은 우리 아저씨 피해서 이리 도망 다니고 저리 피해 다니고 그랬지 뭐. 임 할머니 집으로 피신 많이 했어요. 가면 좋은 말도 들려주고 잠자리도 봐 주고. 요즘 생각하면 신경을 안 쓰고 맘 편하게 지냈으면 눈도 그렇게 급격하게 나빠져서 이렇게 완전히 멀지는 않았을 건데 싶은 생각도 들어요.”


남편은 8남매 중 아들로 넷째였지만 고향에 남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시조모님에 시부모님, 그리고 시동생, 시누이까지 층층시하에 속 썩이는 남편에 두 아이까지 건사하느라 점희 할머니는 그 시절 발 뻗고 잔 날이 적었다. 거기에다 농사일도 많아서 고된 몸을 누일 틈도 없었다. 시어른들 다 돌아가시고 이제 몸이나마 좀 편해질까 싶던 차에 멀쩡했던 첫째 아들이 중 2때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어 정신지체장애자가 되었다. 그날부터 점희 할머니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자리하고 있는 첫째는 그때부터 풍산 노하동에 있는 요양원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다.


다행히 둘째는 공부를 잘 해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었다.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던 남편은 일을 하지 못했고, 집안 형편은 점점 나빠졌다.  집안에 돈을 버는 사람은 없고 돈 들어갈 데는 많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큰 농사는 남을 주고 불편한 몸으로 혼자서 두어 마지기 되는 논으로 밭으로 다니면서 농사를 짓느라고 지었지만 학비 대기에도 빠듯했다. 대학생이 된 둘째는 그런 어머니의 짐을 덜어준다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40여일을 누워 있다가 세상을 달리했다. 14년 전 일이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군대를 갔고, 제대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서 손자가 둘이다. 직장이 대구 쪽이다 보니 자연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같이 살자고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점희 할머니는 시집와서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임 할머니가 있는 익숙한 이 마을 내 집이 좋다.




 

남은 내 밥을 먹는 형님땜에 눈물이 핑 돌아요


14년 전 그때부터 점희 할머니는 이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혼자 살아왔다. 그러나 실상은 혼자가 아니었다. 할머니 곁에는 언제나 임 할머니가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점희 할머니를 들여다보았고 밭 갈고 씨 뿌리고 김매는 시기에 맞춰 일일이 챙기고 거들고 재촉을 해댔다. 답답한 마음에 호미를 빼앗아 대신 해주기도 다반사였다. 병원 가는 날이 언제인지, 제사가 언제인지, 친척 결혼식은 언제인지 임 할머니는 다 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이 되면 먼저 차려 입고 점희 할머니 손을 잡고 길을 재촉했다. 장에도 교회에도 함께 갔다. 몇 년 전부터는 장애인봉사차량이 있어서 병원이나 은행 볼일이나 장보기에는 신청만 하면 차가 집 앞까지 태우러 오지만, 그전에는 임 할머니가 없으면 점희 할머니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죽기로 맘만 먹으면 못하기야 할까마는 낯선 환경이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혹여 실수라도 할까 한없이 조심스러운 점희 할머니 성격에 혼자서는 아무 데도 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임 할머니 없을 때는 동네 마실도 잘 안 가는 점희 할머니다. 지난번에 교회에서 멀리 나들이를 갈 때도 임 할머니가 없었으면 점희 할머니는 아예 갈 엄두조차 안내었을 걸, 점희 할머니한테 바깥 바람을 쐬어주고 싶었던 임 할머니가 억지로 끼워서 데리고 갔다. 그런 점희 할머니가 때로 부담스럽기도 하련만 임 할머니는 한 번도 그런 마음이 든 적이 없다고 했다.


“힘들 게 뭐 있어. 그냥 내 가는 길에 같이 손잡고 가는 것뿐인데. 아침저녁 오가는 길에 한 번씩 들러 보는 게 습관이 돼서 못 들르거나 가다가 기척이 없으면 허전하고 그래.”


그래서 아들네 집, 딸네 집에 갔다가도 조금 오래 있으면 한 쪽이 지레 병이 나거나 허전해서 붙잡는 자식들 손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고 만다.


“한 번은 교회에서 식사를 하는데, 내가 먹다 남긴 비빔밥을 임 할머니가 아무 말 없이 다 드시는 거예요. 혼자 속으로 할머니가 나를 진짜 식구처럼 편하게 생각하시는구나 싶었어요. 친정 엄마보다 더 챙겨주시니까 저는 늘 든든하지요.”


점희 할머니의 말에, 임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나는 기억도 안 나네. 그게 뭐 대수라고. 요새는 내가 닭발 공장에 돈 벌러 다니느라고 같이 많이 다녀주지도 못해. 그런데 늘 손을 잡고 다니던 버릇이 들어서 한 번은 약국에 갔다가 무심코 다른 사람 손을 잡고 나오려고 한 적도 있어. 요즘도 나도 모르게 한 팔을 뒤로 하고는 뒤에 잘 따라오나 하고 길을 가다가 돌아보면, 나 혼자 팔을 흔들고 있어. 어제도 새벽같이 손잡고 투표하고 왔지.”


한동안 점희 할머니의 몸이 많이 안 좋았었다고 한다. 갑상선약이며 신경안정제며 약을 달고 살았는데, 심할 때는 머리에서 바람 소리가 나고 귀가 울리고 해서 아프고 무서워서 밤에 잠을 잘 못 잤다고 한다. 그럴 때면 임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러면 임 할머니가 건너와 말동무를 해주었다고 한다. 미안해서 참다가 전화를 하면 두 말없이 건너와서는 아프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했던 임 할머니다. 차츰 덜해져서 이제는 밤늦게 전화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도 줄이고 조금 아픈 건 되도록이면 혼자서 이겨내 보려고 한다고 했다. 감히 입 밖에 내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점희 할머니는 혼자 있을 때 임 할머니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임 할머니 없으면 저는 안 돼요. 사람들이 임 할머니는 천국을 확보해 놓았다고 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저에 대해 임 할머니가 모르는 건 없어요. 우리 아들 며느리가 모르는 것도 임 할머니는 다 알지요. 이상하게 이 날 이때까지 맘 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 말이 진심임을 알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말이 필요 없는 두 사람이지만 그러나 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 또한 인생이기에.




 

가끔은 형님 댕기는 길목에서 기다릴 때도 있어요


임 할머니가 닭발공장에 다닌 지도 4, 5년이 다 되었다. 다 늦게 돈 버는 재미에 빠진 임 할머니 때문에 심심해진 사람이 임 할머니 낭군 되시는 할아버지와 점희 할머니다. 두 사람 다 하루 종일 집에서 임 할머니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영감이야 그만두라고 그러지. 그러다 아프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얼마나 번다고 가느냐? 그만두고 집에 있어라. 그렇지만 움직거리면 돈이 생기는데 죽을 때 죽을 값이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지. 까짓 거 이 나이에 이판사판이지 뭐. 누구 눈치 볼 것도 없고.”


하며 덤덤한 듯 말하는 그 얼굴에 정이 한 가득, 웃음이 한 가득이다. 임 할머니가 오고 나니 연신 웃음이 나고 점희 할머니도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임 할머니가 닭발 공장을 다니면서 생겨난 풍경 하나. 언제부터인가 점희 할머니는 임 할머니가 올 시간쯤 해서는 집 앞 골목 끝 길모퉁이에 나가 임 할머니를 기다리는 버릇이 생겼다. 모퉁이를 돌아오던 임 할머니가 점희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내 올 줄 어째 알고 이래 나와 있노?” 하며 임 할머니가 팔을 잡으면, “지금쯤 올 때가 되었다 싶어 나와 봤지요.” 하면서 임 할머니 손을 잡는 점희 할머니다. 


간혹 임 할머니 손에는 오다가 얻은 나물이며 주전부리며 먹을거리들이 들려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임 할머니는 꼭 점희 할머니네 들러 그걸 나누어 주고 간다.


고구마 심은 게 잘 살아났느냐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틈틈이 점희 할머니네 농사를 챙기던 임 할머니가 조금 전에 임 할머니 짐을 집으로 올려주고 간 복지사한테 들었다며 묻는다.


“참, 좀 전에 읍사무소에서 온 복지사가 그러는데, 이번에 장애인생활보조금 신청해 놨다고 그러대. 서류 해 올렸는데 될 테니 너무 걱정말라 그러대. 잘 됐네.”


자신의 일처럼 기꺼워하는 임 할머니에게 점희 할머니가 뜬금없이 이러신다.


“그래요? 아까 그 분이 복지사셨어요? 난 또 어떤 아저씨가 들어와서 인사를 하나 했네.”


이러니 임 할머니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한 마디로 점희 할머니 일은 크든 작든 모두 임 할머니를 거치지 않는 게 없다는 게 맞을 것 같았다. 81세라는 나이가 무색한 초롱초롱한 총기하며 병아리 품는 어미닭마냥 점희 할머니 일이라면 하나라도 모르고 지나치면 큰 일이 날 것 같은 임 할머니는 그러니까 점희 할머니가 세상을 보는 창이요 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희 할머니의 모든 일은 임 할머니를 통하게 되어 있다. 그만큼 점희 할머니가 임 할머니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다는 이야기다. 만일 임 할머니가 한 순간이라도 다른 마음을 먹었었다면 그런 절대적인 지지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금반지를 팔아 오라고 맡기던 윗대에 이어 은행 볼일까지 부탁하는 점희 할머니의 그 대책 없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임 할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떼어 먹으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잘도 금붙이 심부름이며 돈 심부름이며 맡기더라고. 없이 살고 내 손에 돈 한 푼이 없어도 그래 믿고 맡기니 어째.”


평생을 몸 아끼지 않고 살아온 임 할머니의 흙내 나는 진짜배기 마음이다. 






 

이제는 없으면 서로가 허전한 환상의 짝꿍


임 할머니는 여건만 된다면 점희 할머니하고 손잡고 가고 싶은 곳이 많다. 전국 유람도 하고 싶고 외국 여행도 가고 싶다. 아니 점희 할머니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힘이 닿는 한 손잡고 같이 가 주고 싶다. 지금으로선 닭발 공장이 쉬는 날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점희 할머니가 큰 아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임 할머니가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눈이 불편한 점희 할머니 때문에 거기까지 가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갔다 오는데 하루가 걸렸다. 갔다 와서 점희 할머니도 임 할머니도 녹초가 됐다. 둘째 아들이 왔을 때가 아니면 좀체로 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아무리 임 할머니도 건강하다고는 해도 그 먼 거리는 쉬이 엄두가 안 나는 모양이다. 장애인 봉사차량은 그런 개인적인 일에까지 일일이 차량지원을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대신 전화로 아들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점희 할머니는 괜히 임 할머니가 마음 쓸까 하여 그 뒤로는 아들 보러 가고 싶다는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않는다. 다만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먼 길을 같이 걸어갔다 와 준 임 할머니를 점희 할머니는 잊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점희 할머니의 고개는 임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어제 딸에게서 온 손녀의 혼사 얘기며 닭발공장에서 들은 이런저런 소문들까지 일일이 점희 할머니에게 들려주던 임 할머니는 일을 하고 오던 터라 피곤한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연신 졸음기를 쫓느라 애를 쓰면서도


“집 앞을 지나가다 문이 닫혀 있거나 집이 비어 있으면, ‘집이 비었구나!’ 싶은 게 마음이 허전하고 혼자 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허전하고 그래.” 하며 속마음을 내비친다.


“하느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는 같이 이래 지내다 가면 되지.”


소리 내어 웃는 임 할머니 손을 꼬옥 잡고 서서 이러나저러나 자신한테는 임 할머니가 있어야 한다며 수줍게 미소 짓는 점희 할머니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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