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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촛불 밝히는 시민운동가 김영록(글/백소애-편집기자)

안동거리에서 촛불문화제를 지키는 사람 김영록
몇 해 전 친구가 신청해준 ‘고도원의 아침편지’ 덕에, 나는 매일 아침 좋은 글귀 하나씩 만난다. 얼마 전에는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으니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은 바로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했던 젊음에서 유래된 것이다.’고 하악하악 외치는 작가 이외수의 글을 읽고 고개 끄덕여 공감했더랬다.
연일 시끄럽다. 새 정부가 굵직굵직한 사안을 두고 계속 무리수를 두고 있다. 이에 국민들의 불만이 어느 때보다 높다. 안동 신한은행 앞 문화광장에서는 최근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청년이 있다. 요즘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하는 청년’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안동지역 국민대책회의에서 활동 중인 시민운동가 김영록(34) 씨다.

“반갑습니다.” 다소 쉰 그의 목소리에 최근의 일상이 짐작됐다. 매일 저녁 7시 반이면 촛불문화제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그이기에, 그나마 이것도 좀 나아진 목소리란다. 김영록 씨는 안동초록환경연합 집행위원장으로 있다. 얼마 전까지 시청 앞에서 ‘한반도 대운하 반대, 안동운하 반대’ 1인 시위를 벌였었다. 그러던 차 ‘쇠고기 협상’문제로 전국이 뜨거워져 5월 24일부터 안동에서도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고 그는 매일 빠짐없이 촛불문화제와 함께하고 있다. 서울의 큰 울림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지역에서도 꾸준히, 고사리 손에서부터 학생, 농민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안동에서 희망을 찾을 겁니다.
김영록 씨는 집이 제천이다. 안동대 지질학과 94학번으로,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졸업 후에는 구미, 서울, 안산에서 일했고 작년 12월 말에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올 초 안동으로 내려왔다. 스피커, 모터 등 자석을 이용한 기술영업을 하는 직장에서 꽤나 수익도 올렸던 그다. 그런 그가 하던 일 다 접고 대학시절을 보냈던 안동으로 오게 된 이유는 뭘까?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도 시민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먹고 있었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나 스스로 떨어져나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을 때쯤 본격적으로 뛰어들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고 직장생활하면서 그 끈을 놓았던 건 아니에요. 이렇게 내려온 것은 내 안에 확신이 생겼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일 해봐야겠다, 더 이상 미뤄서 안 되겠다, 그런 결심을 한 거죠.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좋은 세상 위해서 일할 때가 가장 행복했거든요.”
오히려 여건이나 여러 환경은 대도시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굳이 안동으로 오게 된 연유가 궁금했다.
“거기에서는 일할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안동은 젊은 사람이 많이 부족하잖아요. 서울이나 수도권에야 일할 사람이 저 아니고도 많아요. 안동에서 있었던 시간도 길고, 아는 사람도 많고, 그리고 뭣보다 학교 다닐 때도 좋은 세상 위해서 일했던 경험도 있었고, 안동에서 한 가지 하는 게 다른 곳에서 열 가지 하는 것보다 더 능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현재 김영균열사 추모사업회 사무국장, FTA반대운동본부 사무국장, 안동초록환경연합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은 짧은 기간 이지만 그는 학창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지금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학교 다니며 사회모순과 맞섰을 때,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가는 내 삶이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었어요. 다른 사람 아픈 거 같이 아프다고 느끼고 행복하면 같이 행복을 느끼는 거, 그런 마음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된다는 것은 내가 잘해나가고 있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는 가정을 막 일구기 시작할 나이쯤 된다. 지금 이렇게 다니던 직장도 관두고 시민운동에 뛰어들게 되어 주위에서도 걱정이 많을 것이다.
“현재는 벌어놓은 돈 까먹고는 있기는 하지만, 계획하고 있는 것도 있고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회사생활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행복해요. 회사생활하면서 느꼈던 행복은 영업실적 좋게 나왔을 때 정도잖아요. 행복의 질이 다르죠. 제가 열정적으로 뛰어서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그럴 때마다 옛날 자석회사 다니면서 몇 억이 넘는 영업을 따내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죠.”

부모님은 제천에 계신다. 2남 1녀 중 둘째이고 형과 여동생은 결혼을 했다. 부모님이야 항상 자식걱정이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다만, 정치적인 얘기를 할 때면 부모님과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영록 씨에게 “너 볼 면목이 없다.”하신다.
“부모님의 걱정은 딱 두 가지예요. 밥은 먹고 다녔으면, 어디 가서 피해당하지 않았으면 하시는 거, 그것만 충족하면 만족하실 거 같은데요. 그런데 이 일 자체가 때 놓치지 일쑤라 밥도 좀 굶고 어디 가서 피해당할 수 있잖아요? 부모님 걱정은 끝이 없겠는데요? 이런 불효가 있나요. 하하!”
역사를 좋아했고, 교사가 되고 싶었던 평범한 영록 씨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그걸 실천으로 옮기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대운하 반대운동, 끝까지 할 겁니다.
시청 앞에서 대운하 반대 1인 시위를 했을 때, 푯말을 들고 있는 그에게 더러는 ‘수고한다’ 격려도 했지만 더러는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이도 있었다.
“제가 만약에 잘난 사람이라 쳐요. 아무리 잘났더라도 싫어하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을 거예요. 그런데 되게 좋았던 게, 제 의견을 지지해주는 사람은 떳떳하게 지지해주고 반대하는 사람은 궁시렁대면서 가던가, 자신 없이 이야기 하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논리도 없는 얘길 해요. 그건 다시 말해서 내가 하는 게 옳다는 거 아닌가요. 아, 딱 두 분이 당당하게 와서 저랑 의견이 다르다고 말했던 적이 있어요. 두 분 다 어르신들이었는데 이야기를 하고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한참 대화를 했어요.”
“그분들이 공감하시던가요?”
“안동에서 대운하건설 찬성하시는 분들은 지역경제 활성화 때문에 찬성하세요. 사실상 인구가 17만으로 줄었으니 약간의 끈이라도 있으면 잡으려고 하는 거죠. 하지만 경제 활성화를 위한다면서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대운하건설을 왜 하려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지역경제 활성화는 탈춤페스티벌이나 관광, 지역특산물 개발 등 안동이 지금 전국적으로도 잘하고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지, 자연생태계를 말살하고 안동시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대운하에 건설에는 반대합니다.”

안동댐, 임하댐으로 인한 안개 피해, 농민들의 고통과 하회마을 문화재 파괴, 자연재해 초래 등 조목조목 그의 의견을 듣던 어르신들이 “듣고 보니 자네 의견이 맞는 것 같으이. 수고하시게.” 하고 돌아가셨다니 보람도 느꼈다는 그다. 그는 우직한 사람이지만 우둔한 사람은 아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님에도, 지금의 사회현실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한다. 그처럼 평범한 이들이 가만있게 놔두질 않는다고 했다. 안동에 내려와서 시기적으로 대운하가 이슈에 있었고 안동초록환경연합은 운하로 다니는 배들에 의해 생기는 기름, 오폐수, 쓰레기 유출을 생각만 해도 끔찍했던 이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현재 상임대표로 박종규 씨가 있고 아직은 몇 안 되는 회원이 활동하는 단체이지만, 점점 함께하는 이가 늘어날 것이라 믿고 있고 또 알차게 활동 중이다. 강물은 원래대로 흘러가야 생태적으로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돈만 잘 벌면 최고라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국민과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게 아니겠냐고 말한다.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
촛불문화제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촛불문화제의 운영과 방향, 이 모든 부분은 철저하게 촛불문화제 안에서 결정을 하고 있다. 거기서 여론을 모으고 의견을 제시해서 결정한다. 워낙에 배후세력 운운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들은 오히려 촛불문화제 공간 내에서 오픈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때그때 의견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의 광화문에 나가서 모두가 타인이면 차라리 속 편하고 서로 어깨 걸고 그런 즐거움도 있을텐데 오히려 안동이라는 지역성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을 것도 같아요. 의견에 동의한다며, 지나가다가 그 자리에 앉아서 함께 하는 사람도 있나요? 지역에서의 촛불문화제가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나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건 아닌지 생각될 때도 있어요.”
나의 질문에, 그는 신나게 한판 벌이고 간다는 생각으로 참여해서 자유발언도 하고 노래도 하고 구호도 외치는 것이 자연스레 정착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며칠 전에는 4~500명 정도 모였어요. 아는 사람들 다 끌고 왔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예전이랑 많이 달라요.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고 자신의 의견피력에 자유로워요. 지나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가와서 서명하고 격려해주고 자리에 함께 앉아서 구호도 같이 외치고 가요.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친구를 데려오기도 하고요”
저녁마다 시내 중앙통에 있는 덕분에 사복경찰들 얼굴은 다 익힌 것 같다는 김영록 씨. 더러는 지치고 힘 빠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문화의 거리 주변상인들의 항의를 받았다. 최근 문화의 거리에 밤이면 차량이 주차되어 있기에 의아해했는데, 기어코 촛불문화제는 인근 상인들의 등쌀에 못 이겨 웅부공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유동인구가 적어 어려움은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힘든 일은 이런 일보다 좀 더 원론적인 일이라고.
“무엇을 하든지 똑같은데요. 외로울 때가 가장 힘들어요.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지만 외롭다고하는 사람, 혼자지만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있어 하는 사람, 여기서 저는 후자예요. 요즘 저한테 따뜻한 눈빛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는 외롭지 않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사람 같았다. 한때는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우리’라는 구조로 나를 알고 같이 호흡하고 활동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모습에, 근본적으로 외롭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제 개인적인 소망은 남들에게 욕 안 먹을 만큼 제 스스로 발전하는 거예요. 이 일 자체가 백번 잘하다가 한번 잘못하면 욕을 얻어먹는데, 다른 사람 상처 안 입히게 말 한마디도 조심하는 것. 공부도 많이 해서 좀 더 좋은 세상 위해 일하는 것이고, 다 같이 행복한 세상 만들어가는 게 제 목표고 최종적인 바람입니다.”
그는 오늘도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는 구호를 외치며 촛농이 손등 위를 적시는 줄도 모르는 채 안동시내 일원을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혼돈의 2008년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온 대한민국에는 밤마다 촛불이 일렁이고 이러한 국민들의 분노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따뜻이 보듬어줄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그에게 요즘은 부쩍 주변 친구들이 같이 못해서 미안해하며 격려해준다.
“너만 다친다. 왜 사서 고생이냐. 그래봤자 안 바뀐다고 얘기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서울 광화문에 나갔다가 자기의 삶이 부끄럽다고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럴 때 면 ‘아 내가 살아가는 이 길이 옳구나’ 하고 느껴요.”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