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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익 선생의 고향, 봉화 구천리를 찾아서(글/한경희-안동대 국문과 강사)

1.
봉화 구천리를 찾아 길을 나선다. 도심 복판을 통과하지 않고 외곽을 끼면서 거리를 단축시킨 댐길을 달린다. 마침 소나기가 한차례 내려 보조댐은 물안개가 피어올라 구중심처 계곡에라도 닿은 느낌이다. 안동댐 물을 담은 나지막한 산의 능선과 물안개가 옛 그림에 나올법한 우아한 풍경이다. 이곳 어디쯤에 멈춰 하염없이, 혹은 고즈넉이 피어오르는 물안개나 보고 섰으면 좋겠다. 그늘 짙은 벚나무에 기대 그저 물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안동의 풍경으로 넣으면 어떨까. 스멀스멀, 아주 가벼운 바람을 따라 안개의 몸놀림도 예사롭지 않다. 보조댐 수문이 쏟아내는 붉은 황토물이 저 북쪽에서 세차게 내렸을 빗물의 흔적을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있다.

옹천을 지나자 영주시 이정표가 큼지막하게 나타난다. 이곳이 안동과 영주의 경계구나, 이제 곧 영주 땅 일부를 지나 봉화로 접어들겠구나 하고 가다보니 안동시 녹전면 이정표가 보인다. 이럴 땐 행정구역을 나눈 조감도를 보고 싶어진다. 내가 아는 녹전은 와룡과 이웃하고 있는 정도니 땅에 대한 입체적인 감각이 없다. 예고개에서 봉화방면으로 접어드는데 예고개 등줄기가 제법 길다. 오르는 언덕길에서 수박 실은 트럭은 새 신 신은 사람처럼 조심스럽다. 올록볼록한 수박이 두더지 머리처럼 곧 고개를 내밀 거 같다. 경사가 크게 가파르지는 않지만 봉화 산줄기와 계곡의 큰 뼈대를 다 볼 정도로 깊고 멀리 뻗어있다. 국도변 논에는 벼가 한창 익어가느라 온몸이 짙푸르다. 밭에서 자라는 온갖 푸성귀도 꼿꼿하게 태양을 받아내고 있었다.

처음 찾아가는 봉화 구천리 길은 다행히 안동과 인접해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혹시 지나칠까봐 예고개 유장한 길을 지나 처음 보이는 동네에서 길을 물었더니 녹전 원천이다. 딱, 구멍가게 크기의 약국과 건너편 슈퍼에서 길을 더 물으니 조금만 가면 마을이 있을 거라고 일러주신다. 들은 대로 곧장 가보니 구천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을 하자 동네 입구 정자에 앉아 계신 어른들이 길을 일러주신다. 점심때가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쉬시는 중인 거 같았다. 연못이 나오는 곳까지 죽 들어가라고 하시길래, 누구집인지 몰라 대답을 미루니 ‘나무 많은 집’이라고 딱 못 박아 주신다.

마을이 산을 뒤로 두르고 앉아 있어서 전우익 선생의 집이라고 나무가 유독 두드러져 보일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더 이상 여쭤볼 말이 없다. 동네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 더구나 마을 앞으로 제법 폭이 넓은 시내가 있어서 구천리 마을은 부족할 게 없어 보였다. 물은 엄청 맑았고 물길도 차분했다. 이 시내는 모래벌도 넓게 거느리는 강 같아서 마을 아이들은 따가운 햇살을 받고도 즐거운 모습이다. 호수가 그리 많지 않은 마을이지만 넉넉하고 규모 있어 보였다.

맑은 물을 옆 눈으로 보다 마주친 고목은 한창 꽃을 떨어내고 있었다. 봄날의 낙화를 보는 것과 다른 묘한 기분이다. 대체로 꽃나무들은 몸이 자그마하니 꽃이 땅으로 내려앉는 일이 웅장할 수 없다. 늘 이미 땅바닥에 누운 꽃송이를 보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고목은 몸이 워낙 크다보니 그에게서 피어난 꽃들이 하강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나무 밑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몇 송이 떨어지는 꽃들과 만났다. 유유히 떨어져 내리는 꽃들에게는 속도가 없다. 가속도도 붙지 않을 만큼 가벼운 몸들의 낙화에 숨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사물을 지긋이 바라볼 때 다가오는 그것의 실체라고 할 놀라운 발견을 꽃들에게서도 똑같이 느낀다. 이미 떨어진 꽃들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고 살포시 내려앉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한참 쌓인 꽃들은 다시 봄날이 온 듯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덮고 있었다.

2.
집은 주인과 닮는다. 아파트를 두고 할 말은 아니다. 땅에 집을 짓고 마당을 밟으며 집을 직접 돌보며 사는 사람들에게 붙일 수사다. 여러 생명체가 동시에 기거하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 이 시대에 집을 두고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자면 이야기 할 사람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젠 집이 자본이 된 세상이라 돈 이야기로 끝나기 때문일까. 선생의 집은 □자형인데 그 본체가 큰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그 문을 열어본다면 먼지를 일으키며 선생의 흔적이 벌떡 일어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과연 ‘나무 많은 집’답게 오래된 고목이 속을 다 드러낸 채 잎을 무성하게 피워내고 있었다. 집 앞면은 무성한 나무로 덮여 보이지 않았다. 숲 속의 집이라고 해도 괜찮을 만큼 나무가 많았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고목이라 부를 나무들이 굵은 종아리를 드러내고 섰다. 아마도 선생이 살아계셨을 때 마당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길쭉하게 뻗은 마당 가장자리에 장작을 쌓아둔 걸로 봐도 그렇다. 가지런하게 쌓아 올려둔 나무더미들이 많았는데 마당의 나무를 제법 베어낸 것 같았다. 마당에는 이끼도 많고 땅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풀들이 곱게 자라고 있었다. 잔디 씨를 뿌려 가꾸고 다듬어둔 정원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여유로움이 좋았다.

마당가에 있는 꽃들도 종류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여름 들녘에 서면 어디서든 쉽게 만나는 들꽃들이 전부이다. 봉숭아, 채송화, 나리, 해바라기가 풀과 함께 자란다. 꽃보다 풀이 더 무성하고 우거진 마당가를 꽃밭이라 불러도 좋을까. 꽃이 주는 아름다움에도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았을 선생의 미감을 한 대목 구경한 셈이다. 꽃만 그랬을까 싶다. 사람의 정서란 게 건조하지도 않아야 하고, 또 감정에 푹 젖어 물들지도 않아야 한다면 꼭, 전우익 선생이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집 앞 연못에는 이미 연꽃은 다 지고 연잎이 수면 하나 남기지 않고 덮어버렸다. 연못 표면에는 물이 없고 연잎 세상이다. 녹색 연밭이 따로 없다. 그 중간쯤에 세워둔 큰 돌 하나와 작은 돌 두개가 세상과 단절하고 살았던 전우익 선생처럼 섬으로 섰다. 집 입구부터 숲이다. 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나무가 섰다. 가까이 가보면 집 밖 나무보다 마당에 서 있는 나무의 무성함에 놀라게 된다. 산에 사는 나무보다 집안에 있는 나무의 몸통이 곱절이나 더 굵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숲에 울타리 두르고 집이거니 살았을 자연과의 삶이 전우익 선생댁에서도 묻어나고 있었다.

길을 따라 대문 앞에 서면 정작 대문은 없다. 곧바로 대문 한 짝이 누운 풍경과 마주한다. 기둥에 붙은 돌쩌귀도 낡고 대문 몸체도 오래되면서 떨어져나간 모양이다. 아직 기둥에 매달린 한쪽 대문 역시 이곳저곳 몸이 성치 않아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다. 모서리가 닳은 것은 물론이다. 문 구실을 하지 않고 그저 무늬만 문으로 서 있다. 아마도 이 집에 기거하는 사람은 대문을 여닫지 않고 열어둔 채로 둘 것이다. 찬찬히 살피니 대문부터 손 볼 곳이 많다. 이미 떨어져 나간 곳이 여러 군데다. 그대로 또, 오래된 것들의 쓸쓸함이 잘 묻어나는 귀한 볼거리이자 선생의 자취가 아닐까 한다.

대문간 왼쪽은 뒤주처럼 보이고 오른쪽은 여러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 같다. 뒤주는 나락을 넣어 보관하는 곳인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집안이 부농이라고 알려진 대로 농사의 정도가 대단했음을 가늠할만하다. 대체로 뒤주는 대문간에 있지는 않을 텐데. 혹시 잘못 파악했을지도 모른다. 귀한 쌀을 저장하는 곳을 문간에다 지을 리가 만무하다. 남의 손이 덜 타는 곳에다 뒤주를 두는 게 마땅하다. 그러면 그저 창고용도였을까. 생각에 그치고 만다. 그런데 농기구가 있는 곳 바깥쪽으로 **교도소라고 쓴 길쭉한 나무가 하나 보인다. 어디서 어떻게 와서 농기구 창고 벽을 장식하고 여직 붙어 있는지, 이것은 주인에게 꼭 물어볼 일이다. 흙과 돌로 이겼을 담은 거의 무너졌고 군데군데 남아 있는 담에 담쟁이가 푸르게 앉아 있다. 마치 기와를 곱게 얹은 담 같다.

돌아봐도 인적이 없다. 주인이 없는 빈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자니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든다. 가까이 있는 이웃집에도 사람 기운이 없다. 들에 나갔거나 아니면 볼 일 보러 먼 길을 간 모양이다. 사랑채와 이어지는 마루 위에는 선생이 살아생전 보던 책이 묶여 있다. 창작과 비평, 역사비평 등 잡지들을 꾸준히 받아 보셨던 모양이다. 그 옆으로 똑같은 모양을 한 나무가 여러 개 있다. 아마도 손수 깎은 물건인데, 그 소용이 등으로 보이는데 장담할 수는 없다. 크기는 좀 다르지만 모양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 직사각형 나무의 각을 둥글게 깎아내고 속을 비워 펑 뚫어 놓았다. 전통한지 고운 색을 붙이고 불을 밝히면 참 단아하고 담담한 등불이 켜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이 생전에 주로 사용했을 공간인 사랑채 툇마루는 집의 세월에 비해 나뭇결이 잘 간직되어 있다. 아직도 마루 위에는 유품으로 보이는 물건이 더러 보였다. 직접 깎고 다듬었을 것으로 보이는 나무그릇이 있다. 옹이가 나름의 장식이 되었는데 옹이가 드러나도록 나무를 깎아낸 것이 독특하다. 나무가 깎여나간 자리마다 무늬가 되었다. 한 아름은 충분했을 나무가 의자용도로 쓰이다 주인을 잃은 듯 보인다. 마루 끝에 내버려두듯이 홀로 주둥이가 깨진 술병이 하나 호젓하게 앉아있다. 둥글둥글 닳은 목침도 서너 개 보이고 ‘천지현황’(天地玄黃)이라 쓴 글씨가 나무걸개에 걸려 허전한 툇마루를 위로하는 것 같다.

벽에는 낙서가 많았다. 아직 손에 연필을 잡을 힘이 없는 꼬마들이 괴발개발 썼을 그런 글도 아닌 글이다. 연필로 그린 집도 보였는데 제법 솜씨가 있다. 하얀 회칠이 벗겨진 곳은 흙과 짚이 비벼진 벽이 보이기도 하고 오래된 나무들의 결은 그대로 근육을 드러내고 있었다. 벽에 걸린 파리채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아마 요즘 가게에서 구하기 힘든 디자인인걸로 봐서 선생의 생전 유품이 아닐까 싶다. 요새 보통 쓰는 파리채 보다 훨씬 크기가 작고 손잡이며 폭도 좁다. 이젠 전기 파리채까지 나온 세상이니 파리채도 귀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마당에는 사람 다니는 길에 나무를 박아 놓거나 돌을 놓아두었다. 아마도 선생이 혼자 계실 때 풀을 감당하지 못했을 터이다. 비 한번 내리면 불쑥 자라는 그 풀을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면 틈 없이 풀밭이 되었을 마당이니 충분히 짐작이 간다. 심지 않아도 매년 제자리에서 생명을 피워내는 풀들, 도대체 그들은 뿌리를 얼마나 굵고 넓게 땅 속으로 뻗고 있어서 보호 없이도 자라는가. 뽑힌 뿌리라도 더러 흙과 만나면 그만 뿌리를 내려 꼿꼿하게 몸을 세우는 풀의 힘은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사람의 근육이 표현하는 여러 형태의 힘에 익숙하다.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권장까지 한다. 그런데 풀이 지닌 힘의 놀라움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3.
선생에게 고향, 그리고 고향집은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이다. 개인적인 사연으로 낙향을 해서 고향을 벗어나지 않았던, 아니 벗어날 수 없었던 청춘의 삶, 장년의 삶이었던 탓이다. 선생의 학력과 경력은 화려하지만 자세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스스로 함구하고 사셨다고 생각한다. 당시 경성제대를 다녔다는 학력과 한국전쟁 전에 사회주의 운동을 했고 그 전후로 수감생활을 했고, 그리고 오랜 시간 보호감찰을 받으셨다는 게 알려진 선생의 개인사이다. 이 특별한 개인사가 선생을 고향땅에 묶어두었던 거 같다. 조정래 소설 <인간연습>에 보면 보호감찰을 받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또, 다큐멘터리 <송환>은 어떤가.

감시를 받은 사람은 자율의지가 약해진다. 장기수로 복역하다 석방된 노인이 일터에서 주인에게 화장실 가는 일을 허락 받는 영화장면이 있다. 조정래의 소설은 감시와 억압이 인간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를 보여준다. 감시는 또 자기규제를 낳고 이것은 자동화된다. 부도덕한 권력과 만난 이념 치고 위험하지 않은 적이 없다. 송환에 보이는 여러 장기수들의 문제는 한반도만 벗어나면 상식에 지나지 않을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우리들의 역사와 콤플렉스가 만든 끔찍한 현실, 그 안에 전우익 선생의 삶도 포함되어 있을 거 같다.

한 개인에게 신념이란 무엇일까. 랑파 아르티아라는 여교사 이야기는 어떤가. 해발 2천 미터 높이의 분교 교실에서 포로인 체 게바라에게 땅콩죽을 끓여주었다. 처음엔 거만한 대장이 반대하자 여교사는 자신이 끓인 땅콩죽을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고 말하자 대장도 승낙을 한다. 그 절망의 순간에 아르티아는 체 게바라에게 희망을 건넸다. 희망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 이어지는 것, 그래서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의지임을 생전의 선생은 강조하셨다. 이것으로 사람은 살고 또, 죽는다. 아니 죽은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을 넘어서서 더욱 푸르게 살아내 버리는 것, 그리고 죽지 못해 살지는 않는 이 신념이란 것이 <송환>에도 있고, <인간연습>에도 있고, 전우익이란 어른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강철은 단련될 때 칼이 되지만 긴장의 시간이 사라지면 녹슨 철가루가 되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부서진다. 그리고 강철이었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만다. 사실은 이념의 다른 이름 신념, 그 자체가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 신념과 인간이 어울리는 대목이 놀라운 것이다. 여기서 전우익 선생은 승화의 삶을 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비루함에서 숭고함까지 인간이라면 이 범주를 왔다갔하며 살아간다. 전우익 선생의 숭고함, 그것의 사소한 조각이 바로 베스트셀러로 불리는 산문집들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버린 분이지만 베스트북을 쓴 분이다. 언젠가 시인 황지우가 자신의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걸 기분 나쁘다고 한 적이 있다. 시집이 물건이 된 셈이니 시인은 장사꾼이 된 거나 다름 없었으므로. 품위와 격이란 건 시장 안에서도 포기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에는 자신과 다른 걸 찾는 호기심이 강하다. 자신은 도시적인 삶을 절대 포기할 수 없으면서 자연인으로 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부럽다는 건, 할 수 없는 일을 두고 느끼는 정서이다. 특히 시골살이는 간절하게 선망하는 부러움이 아니다. 적당한 낭만과 동경, 그리고 유년이 겹쳐지는 현실과의 거리두기 정도이니 더더욱 그러하다.

한창 유행 중인 시골 이야기 안에 전우익 선생의 삶도 들어섰다. 선생의 의지와 무관하게 언론매체가 밀어붙인 위력이다. 그게 베스트셀러의 이유라면 이유겠다. 현실에서 배울 수 없는 지혜로운 말이 가득한 산문집으로 관심이 쏠린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뭘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돈이라 하겠지만. 어느 구석이 허전해서 전우익 선생의 글이 100만부나 팔리게 된 것일까. 그럼 100만인은 이제 지혜로워진 건가. 구천리 아주머니 말씀에 따르면 전 선생의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여전히. 그 중 이 글을 쓰겠다고 덤비는 나도 한몫을 한 셈이다.

아마도 빈 집 같은 그리움으로 봉화 구천리를 찾는다면 이유는 전,우,익 이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우리가 다산초당을 찾아가고 제주도 추사의 흔적을 밟는 일은 그 사람과 만나고 싶어서다. 특히 유배라는 공통항에서 더욱 그렇다. 보호감찰과는 차원이 다르고 시대도 다른 내용이지만 묶인 사람들의 견실한 마음이 세상을 향해 드러낸 생각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가를 알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편지가 준 따뜻함처럼. 그리고 유독 자기한계를 넘어서 숭고에 가닿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라는 거울을 만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내 멋대로 지혜 3부작이라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어디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옵디까>, <사람이 뭔데> 등에는 당신의 삶을 소박하게 건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난한 사람과 더불어 살고, 세상을 바르게 살고, 진실하게 정성들여 검소하게 삶을 사는 이야기들. 우리가 모르지 않으나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다. 이렇게 살아내는 사람을 만나는 당혹스러움이 충격에까지 닿을 수도 있으리라. 선생의 글을 읽어보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최고로 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어느 글에서든 자유는 아주 강하고 부드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당신의 내면에 외부 규제보다 더욱 강한 원칙을 정해두면 천하가 자유로워졌던 것이니, 선생이 보호감찰에서 아름답게 사셨던 중요한 비결인 셈이다.

전우익 선생의 진짜 지혜는 바로 이런 거다. 쌀수입 반대의 목소리를 키우는 일보다 조용히 시골로 가서 쌀농사를 직접 지으라는 것이다. 외침과 다짐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걸 강조한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지혜는 바로 사람만 있는 역사의식이 아니라 자연까지 생각하는 의식으로 확장하는 일이다. 6.25때 빨치산 찾는다고 치안벌채를 한 사례를 말하면서 사람, 자연의 평등을 지적하였다. 선생이 소개한 줄무늬 삼나무는 7,200살로 나무가 그대로 숲이다. 개인의 역사가 100년을 넘기지 못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우리의 교만이 지나치지 않은가. 대만의 편백나무 숲에는 기본 수령이 천년이 넘는 것이 허다하다니. 이러고도 인간의 역사만을 편들 것인가. 숙연해지는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