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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인설도와 제8심학도(글/이해영-안동대 교수)

제7인설도

-인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오, 마음의 덕이자 사랑의 원리이다-

유가사상의 핵심은 인(仁)
성학십도의 제7도는 성리학의 집대성자라 일컬어지는 중국 송나라 주희(1130-1200)의 인설도(仁說圖)이다. 도 아래의 인설은 주희의 인설도 원문과 인설을 합한 것이다. 이황은 인설 뒤에 자신의 짤막한 보충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유가사상의 핵심은 인(仁)이다. 공자는 인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인간사회가 꾸려져 그 안에서 인간의 바람직한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는 인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하였다. 『중용(中庸)』에서는 인을 ‘사람〔人〕’이라 했으며, 맹자는 ‘사람의 마음〔人心〕’이라고 했다. 사람다운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람의 마음이 바로 인의 본래 뜻인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하는 것이 공자의 관심이었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생각한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길이었다.

인은 글자의 뜻으로 보자면 사람 인(人)자와 두 이(二)자를 합하여 놓은 것이므로 인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는 서로 믿고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서로’라는 상호성을 지니지만 모든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이므로 내가 남을 사랑하거나 남으로부터 사랑 받는 일 모두가 바로 나의 일이다. 나의 일이오, 내가 관계의 중심이 되므로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성실함과 경건함이 필요하다. 그것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 성실함과 경건함으로 나타난다. 사람다움의 길은 삶의 과정 속에서 개개인이 가야 할 길이며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가야 하는 길이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길이다.

그러나 공자는 ‘인이 무엇이다’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는 『논어』에서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효제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얼굴빛을 꾸미고 말을 교묘하게 하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적다.” 등등 짤막짤막한 말로서 인의 실현 모습을 다양하게 묘사하였다. 이는 현실생활 속에서 어떤 행동이 인에 맞는 행동인가, 또 어진 사람이란 어떤 인간상인가를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인이 무엇이다’가 아니라 ‘어진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사랑의 관계이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부모와 자식, 형과 아우 등의 가족 관계이다. 그래서 공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의 감정, 즉 효제를 지극히 강조하였다. 효제란 인간이 지니는 가장 근원적이고 자연스러운 정감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정감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그 사랑의 실천은 자연스럽다. 이러한 사랑의 실천이 확대되어 모든 사람에 대한 자연스러운 사랑으로 나아갈 때 인이라고 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고 바람직한 사회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사랑 실천의 확대 방법의 하나가 충(忠)과 서(恕)이다. ‘충’은 글자의 뜻으로 보면 올곧다라는 의미를 지닌 가운데 중(中)자 아래에 마음 심(心)자를 둔 것이므로 올곧은 마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올곧은 마음은 내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버려야만 이룰 수 있다. 이는 바로 나 자신에 대한 경건하고 성실한 태도이며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서’는 같을 여(如)자 아래에 마음 심(心)자를 쓴 것이다. 즉 남의 마음과 같아지는 것이다. 내가 배고픈데 저 사람은 얼마나 배고플까, 내가 힘든데 저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이처럼 내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이다. 맹자가 인을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 ‘측은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으로 풀이한 것은 사랑의 본질적 속성을 아주 잘 표현한 것이다. 애달프지 않은 만남 어디 있으며 안타깝지 않은 사랑 어디 있으랴. 사랑의 실천방안인 서는 내가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를 안아주는 마음을 갖고 있을 때에 진정한 의미가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성실히 헤아릴 때, 나와 남의 관계는 바로 서게 된다.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다움의 실천, 사랑의 실천은 충서의 실천이다. 충서의 실천이란 안으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경건하게 대하는 일이고 밖으로는 남과의 관계에서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적극적으로는 자신이 서고 싶으면 먼저 남을 세워주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으면 남의 뜻도 이루도록 해주는 것이다.

마음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담고 있는 것이 인설
맹자는 공자의 인 사상을 이어 받았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도덕 실천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마음 안에 남이 위태롭고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선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그는 이 선한 본성은 사랑〔仁〕 마땅함〔義〕 공경〔禮〕 슬기〔智〕의 덕을 그 안에 담고 있다고 보았다.

사람의 착한 행위, 사랑의 행위는 그 사람의 속내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온 것이 아니면 참된 뜻의 선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맹자의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라는 주장은 인간의 착한 행위 사랑의 행위의 근거를 인간의 마음 안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 후 당나라 때의 유명한 문인 한유는 인을 보편적 사랑〔博愛〕으로 이해하였다.
송대의 성리학자들은 맹자의 성선설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인간론의 밑바탕을 삼았다. 아울러 공자의 인을 단순히 도덕 실천의 덕목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태극이 천지만물의 생장과 소멸, 질서와 운행의 원리이듯 인은 인간이 고유하게 지닌 사랑의 원리요, 마음의 덕으로서 인간다움과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근거라고 보았다. 주희의 인설도와 인설은 공자와 맹자가 말한 인의 의미를 이어 받고 나아가 성리학적 세계관에 맞추어 인을 천지가 물을 낳는 마음, 인간의 도덕의 마음으로 설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마음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담고 있는 것이 인설도이고 인설이다. 이황이 인설도를 성학십도의 하나로 배치한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인설도와 인설 안에는 인간의 마음과 본질, 마음의 작용에 관한 성리학의 핵심내용이 담겨 있으나 매우 복잡한데다가 다양한 논쟁거리도 들어있다. 그것을 일일이 분석하고 설명하는 일은 필자의 능력 밖이다. 그러므로 우선 인설도와 인설의 내용을 한글로 풀이해 놓고 그 뜻을 필자 나름대로 새김질 할 수밖에 없다.

인설(仁說)

주자가 말하였습니다.

인(仁)이란 것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요, 사람이 그것을 얻어서 마음으로 삼은 것이다. 〔마음이〕 아직 발하기 전에 〔仁義禮智〕의 사덕(四德)이 갖추어져 있는데, 오직 인만은 네 가지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인은 마음을〕 온전하게 함양하고 길러 통섭(通攝)하지 않음이 없게 하니, 〔이것은〕이른바 생명의 본질〔生之性〕이오, 사랑의 이치〔愛之理〕로서 인의 본체〔仁之體〕이다. 마음이 이미 발한 즈음에는 사단(四端)이 드러나는데, 오직 측은(惻隱)만이 사단을 관통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측은의 정〕은 두루 흘러 관철하여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은〕이른바 성의 정〔性之情〕이오, 사랑의 발로〔愛之發〕로서 인의 작용이다. 틀로서 보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은 체(體)이고, 이미 발한 것은 용(用)이다. 내용으로 말한다면 인은 체(體)이고, 측은은 용(用)이다. 공(公)이라는 것은 인을 체득하는 것이니 ‘자기의 사사로움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라는 말과 같다. 대체로 공정하면 인을 하게 되고, 인을 하면 사랑하게 된다. 효제(孝悌)는 그 작용이고, 서(恕)는 (仁을) 베푸는 것이며, 그것을 지각하는 것은 곧 지(知)의 일이다.

또 말하였습니다.

천지의 마음에는 그 덕이 네 가지가 있는데, 원(元)․형(亨)․이(利)․정(貞)이라 하며, 원(元)은 이것들에 통하지 않는 바가 없다. 그것이 운행을 하면 봄․여름․가을․겨울의 차례가 되는데, 봄의 생동하는 기운이 통하지 않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에도 그 덕이 또한 네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의․예․지인데, 인은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것이 발하여 작용하면 사랑(愛)․공경(恭)․ 마땅함(宜)․ 분별(別)의 정이 되는데,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그것들을 꿰뚫지 않는 바가 없다. 대체로 인의 도는 바로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만물에 갖추어져 있다. 정이 아직 발하기 전에 이 본체가 이미 갖추어져 있고, 정이 이미 발한 뒤에는 그 작용이 다함이 없다. 진실로 이것을 체득하여 보존할 수만 있다면 뭇 선의 근원과 온갖 행위의 근본이 여기에 있지 아니함이 없다. 이것이 공문(孔門)의 가르침이 반드시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인을 구하는데 급급하게 하는 까닭이다. 그 가르침의 말 가운데 “자기의 사사로움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면 인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여 천리(天理)를 회복하면 이 마음의 본체가 있지 않음이 없고, 이 마음의 작용이 행하여지지 아니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또 “집에 있을 때는 공손하고, 일을 할 때는 공경스런 마음으로 하며, 남과 교유를 맺을 때는 진심으로 대하여야 한다.”는 말이 있으니 이 또한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다. 또 말하기를 “어버이를 섬길 때는 효성스럽게 하고 형을 섬길 때는 공손하게 하며 남과 관계를 맺을 때는 너그러움(恕)으로써 한다.”라 한 것 역시 이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천지에 있으면 한없이 넓게 만물을 낳는 마음이요, 사람에 있어서는 따뜻하게 남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 사덕(四德)을 포괄하고 사단(四端)을 꿰뚫는 그런 마음인 것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은 태극의 움직임이 만물을 낳는 마음이오, 건곤이 부모로서 뭇 생명을 낳는 마음이다.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경외감이오,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그 마음은 만물이 비롯하고〔元〕 무성하게 자라고〔亨〕 열매 맺어 거두고〔利〕 완성되어 저장되는〔貞〕 법칙을 지니는데, 만물이 비롯하는〔元〕 법칙은 다른 법칙에 두루 통한다. 이 법칙에 따라 기운이 운행되어 봄 · 여름 · 가을 · 겨울의 순서로 계절이 바뀐다. 이는 바로 경이로운 우주적 생명의 움직임이오, 생명의 질서이다.

사람은 그 생명에 대한 사랑을 하늘로부터 받아 태어나면서부터 마음의 덕으로 지니게 된다. 생명에 대한 사랑과 경외감은 사랑의 원리이다. 이 사랑의 원리는 사람의 본질로서 부모 형제와 같이 가까운 관계로부터 멀리 멀리 천지만물과 우주에까지 펼쳐져 나간다. 사랑의 원리와 천지만물 우주의 존재 원리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원리가 펼쳐진 만남은 늘 서로 따뜻하다. 윤기가 돌며 편안하다. 이 마음의 덕이자 사랑의 원리인 인은 사랑 · 마땅함 · 공경 · 슬기의 4가지 덕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인은 모든 덕이 널리 퍼지고 자라날 수 있는 생명의 본질이오, 사랑의 원리이다. 이것이 인의 본체이다.

송대의 성리학자인 정이(1033-1107)는 인의 이러한 성격을 다음과 같이 비유하였다. “의서(醫書)에서 기(氣)가 통하지 않아 사람의 수족이 마비되어 불편한 것을 불인(不仁)하다고 하는데 이 말은 참으로 적당하다.” 생명의 움직임으로서 기운이 온 몸을 자연스레 두루 잘 통하는 몸의 완전한 상태는 인이고, 그렇지 못한 것이 불인이다. 인은 완전한 덕으로 생명의 본질이오, 사랑의 원리로서 모든 덕을 아우르며 널리 두루 펼쳐져야 한다는 뜻이다. 어찌 몸이 불편한 것만이 불인이랴. 마음의 덕이 온전하지 못한 것도 불인이다. 그래서 안타까워하고 측은히 여길 줄 모르는 모진 인간을 불인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완전한 덕은 마치 씨앗과 같다. 씨앗은 그 속에 잎도 줄기도 꽃도 열매도 담고 있다. 그래서 씨앗을 인이라 한다. 한약재나 화장품의 원료로 쓰는 살구 씨는 행인(杏仁)이오, 복숭아 씨앗은 도인(桃仁)이다.

마음이 지니고 있는 덕이자 순수한 선으로서 사랑의 원리는 바깥 사물에 감응하여 4가지 도덕 감정을 담아 그 마음의 실마리를 드러낸다. 사랑의 원리는 안타깝고 측은히 여기는 감정, 마땅함의 원리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이 여기고 남의 잘못에 의리로써 분노하는 감정, 공경의 원리는 서로 배려하고 사양하는 감정, 슬기로움의 원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감정으로 드러나는데 안타깝고 측은히 여기는 감정은 다른 도덕 감정을 두루 꿰뚫어 통한다. 이는 사람의 본성에서 드러나는 감정이오, 사랑의 원리가 발동한 것으로서 인의 작용이다.

그러나 튼실한 씨앗이라도 흙과 물과 햇빛과 바람의 어울림과 농부의 성실한 가꿈이 있어야 예쁜 잎으로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알찬 열매를 맺듯, 인간이 지닌 사랑의 씨앗도 스스로 성실하게 가꾸어야만 아름답게 피어나고 알차게 열매를 맺는다. 마음 밭에 심어진 사랑의 씨앗을 성실하게 가꾸는 일은 바로 나의 일이다. 마음 밭을 잘 가꾸는 것을 공경스럽다 하고 잘 가꾸어진 마음 밭을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이라 한다. 잘 가꾸어진 마음 밭에서 사랑의 씨앗은 마음껏 자라고 꽃피우고 열매 맺는다. 생명의 능동성이 경이롭게 전개되고 생명욕구와 선을 향한 의지가 자연스레 펼쳐진다.

공자는 마음 밭을 가꾸어 사랑의 씨앗을 키우는 일을 ‘스스로의 사사로운 욕심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라 하였다. 즉 마음 밭을 거칠게 만드는 사사로운 욕심을 공경스러움으로 극복하고 공경스럽게 가꾸어진 마음 밭에서 사랑의 꽃을 널리 널리 피우고 온 천하에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공경스러운 태도를 지니는 것이며, 일을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처리하는 것이며 다른 이를 넉넉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는 것이며 만물을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하늘 이치의 공평함을 이루는 일이다. 하늘 이치의 저울로 달면 천지만물 하나하나의 무게가 같고 사랑의 원리의 자로 재면 천지만물의 크기가 같다. 내 마음이 모든 사람의 마음이며 천지의 마음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으로 아름답게 만나고, 사람과 천지만물이 사랑으로 멋진 어울림을 이루어 온 우주가 생명의 경이로움과 사랑의 질서 속에 아우러진다.

제8심학도

-공경스러움으로 마음을 가꾸다.-

심학도와 도설은 원나라 때의 성리학자 정복심(程復心 : 1279∼1368)이 성현이 논한 마음 공부에 관한 명언들을 뽑아 만든 것이다. 이황은 심학도설의 보충설명에서 ‘정복심이 벼슬하지 아니하고 은거하여 행실과 의리를 잘 갖추었으며 늙도록 경서를 탐구하여 그 의미를 깊이 얻었다’고 평하였다. 정복심의 저서로는 『사서장도(四書章圖)』 3권이 있다. 성학십도 가운데 정복심이 만든 도가 서명도, 심통성정도 상도, 심학도의 셋이고, 도설은 심통성정도설, 심학도설의 둘이다. 정복심의 도와 도설은 성학십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심학도와 심학도설은 중국 명나라 때 정황돈이 편집한 『심경부주(心經附註)』에도 실려 있다.
이황은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던 33세 때 심경부주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데 심경부주는 이황이 심학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실마리가 되었다. 그는 “내가 심경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심학의 연원과 심법의 정밀하고 은미함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평생토록 이 책을 신명처럼 믿었으며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하였다”라고 술회하였다.

심학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도의 윗부분은 마음 심(心)자를 크게 쓰고 마음이 몸을 주재하는데, 마음은 텅 비어 있으나 신령스럽고 지각능력을 지니며 신명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이어 그 둘레에 마음은 하나이지만 마음을 나타내는 말은 여러 가지라는 것을 경전에 나오는 양심(良心), 적자심(赤子心), 인심(人心), 본심(本心), 대인심(大人心), 도심(道心) 등의 용어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도의 아랫부분은 공경 경(敬)자를 크게 쓰고 경이 마음을 주재한다고 설명하였다. 경자의 위로는 마음을 가꾸는 기본 원리로서 ‘정밀하게 살펴 한결같이 함’과 ‘선을 택하여 굳게 잡음’을 위에 두고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는 공부를 오른 쪽에 배열하고 인간의 욕망을 막는 공부를 왼쪽에 배열하고 있다. 그러면 우선 심학도설을 한글로 풀이하고 이어 그 의미를 새기고자 한다.

심학도설(心學圖說)

임은 정씨(林隱程氏) 복심(復心)이 말하였다. “갓난아이의 마음(赤子心)은 아직 인욕에 빠지지 않은 본래의 착한 마음이고, 인심(人心)은 욕망에 눈을 뜬 마음이다. 대인의 마음(大人心)은 의리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본래의 마음이고, 도심(道心)은 곧 의리를 깨우친 마음이다. 이것은 두 가지 양상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실은 형기(形氣)에서 생겨나면 누구나 인심(人心)이 없을 수 없고, 성명(性命)에 근원하면 도심(道心)이 되기 때문이다. 정밀하게 살펴 한결같이 함(惟精惟一)과 선을 택하여 굳게 잡음(擇善固執) 이하는 인욕(人欲)을 막고 천리(天理)을 보존하는 공부가 아닌 것이 없다.
홀로 자기만 아는 마음을 삼감(愼獨) 이하는 인욕을 막는 공부이니, 반드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不動心)에 이르러야, 부귀도 그 마음을 넘치게 못하고 빈천도 그 마음을 변하게 못하고 위협과 무력도 그 마음을 굴복시키지 못하게 되어 그 도가 밝아지고 덕이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경계하고 두려워함(戒懼) 이하는 천리(天理)를 보존하는 공부이니, 반드시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마음이 곧 본체이고 바람은 곧 작용이며 본체가 곧 도이고 작용이 곧 의이며 말소리가 음율이 되고 몸이 법도가 되어, 생각하지 않아도 깨닫게 되고 힘쓰지 않아도 들어맞게 됨을 알 수 있게 된다.
요컨대 공부의 요령은 어느 경우든 하나의 경(敬)에서 떠나지 않는다. 심(心)이란 한 몸의 주재요, 경(敬)은 또한 한 마음의 주재이다. 배우는 사람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主一無適〕는 설,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고 마음을 엄숙하게 한다.〔整齊嚴肅〕는 설, 마음을 거두어 모은다. [其心收斂]’는 설, ‘늘 맑게 깨어있게 한다. [常惺惺]’는 설을 익숙하게 궁구하면 그 공부는 다 이루어지고 넉넉히 성인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다. ……

인간은 거룩한 신이 아니다. 인간은 하늘의 이치와 천지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거룩하면서도 욕망을 지닌 존재이다. 좀 풀이하면 인간은 하늘의 거룩한 속성을 받아 자신의 본성으로 지니는 한편 욕망의 근거가 되는 형기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몸의 생명유지를 위해 욕망을 채우려 몸부림치면서도 동시에 도덕적 생명인 거룩한 본성을 찾고 싶어 한다. 거룩한 본성은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음 또한 이치와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은 몸의 생명과 도덕의 생명을 아우르며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은 하나이지만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갓난아이는 배부르면 방긋 웃고 새근새근 자며, 배고프거나 무언가 불편하면 울음을 터뜨리고 보챈다. 갓난아이는 마음을 순수한 감정과 욕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갓난아이의 마음은 욕망에 빠지지 않은 본래의 순수한 마음이다. 대인은 깨달은 사람이다. 성인이라고 보아도 좋다. 대인의 마음은 깨달아 어린아이 때의 마음을 잃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다. 한편 인간은 누구나 형기를 지니기 때문에 인심이 없을 수 없다. 인심은 형기에서 비롯하는 욕망에 눈을 뜬 마음이다. 물론 욕망 자체는 악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욕망에 휘둘리면 악이 된다. 도심은 도덕적 생명의 의미를 깨달은 마음이다. 마음은 도덕적 생명력을 따를 수도 있고 욕망에 휘둘릴 수도 있으므로 마음의 미묘한 작은 움직임에 따라 선과 악이 갈래지어 진다. 마음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길이 달라지는 것이다.

끊임없는 공경스러움이 부동심에 이르게 한다
형기는 내 몸을 이루는 바탕이며 욕망은 결코 없앨 수 없는 내 삶의 동력이다. 인간의 생명력은 도덕성뿐만이 아니라 욕망이기도 한 것이다. 도덕성과 욕망이 팔씨름을 한다면 주로 욕망이 이긴다. 욕망의 힘이 더 세고 늘 절실한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힘세고 거친 욕망을 어떻게 마음이 지닌 도덕적 생명력으로 다독여 적절하게 조절하고 다소곳하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마음이 한 몸을 주재한다고 한 것이다.

마음이 욕망을 보듬으려면 마음이 지닌 도덕적 생명의 힘을 잘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마음을 정밀하게 살펴 한결같이 하고 선을 택하여 굳게 잡아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마음이 지닌 도덕적 생명의 힘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이를 내 마음 안에 있는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는 방안이라 한다. 병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방법에 비유하자면, 이는 잘 먹고 잘 자고 부지런히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아 몸의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빚어지는 욕망을 막는 일이다. 이를 형기에서 비롯하는 인욕을 막는 방안이라 한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손발을 깨끗이 씻고 음식물을 깨끗이 조리하여 먹는 등의 방법으로 외부의 감염을 막는 일과 같다.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는 방안이든 인욕을 막는 방안이든 모두 마음이 지닌 도덕적 생명의 힘을 북돋아 욕망을 이끌어 가고자 함이다. 이 두 방안을 바람직하게 이루는 방법이 바로 공경스러움으로 마음을 가늠하고 가다듬는 일이다.

욕망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우리를 유혹한다. 유혹은 첫 키스처럼 날카롭게 설레고 사랑하는 이와 같이 먹는 솜사탕처럼 달콤하다. 욕망이 은밀하게 다가올 때가 바로 마음을 더욱 공경스럽게 가늠할 때이다. 이는 자신의 사사로운 욕망을 극복하는 순간이며 본마음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본마음을 회복함과 동시에 마음은 제자리를 찾는다.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마음을 놓은 것, 그것이 방심이다. 공경스러움을 놓치고 방심하는 순간 마음은 다시 욕망의 유혹에 흔들린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공경스러움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점차 마음의 긴장과 이완을 넘어서는 마음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욕망에 긴장해도 느긋하고 욕망에 맡겨두어도 넉넉하다. 이른바 부동심,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부귀도 빈천도 권력도 무력도 명예도 그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대장부의 마음이오, 천지의 마음이다.

내 마음에 있는 하늘의 이치는 나의 도덕적 생명력의 원천이다. 도덕적 생명의 힘은 욕망처럼 강렬하지도 강력하지도 않다. 그래서 늘 공경스럽게 돌보고 한결같이 조심조심 보살펴야 한다. 이는 본마음을 공경스러움으로 잘 다잡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공경스럽게 생각하면 마음이 튼실해지고 공경스러움으로 욕망을 다독이다 보면 본마음이 저절로 길러진다. 공경스러움으로 본마음을 다하면 나의 본성이 선하고 거룩함을 알게 되고 나의 본성이 선하고 거룩함을 알게 되면 그것이 하늘의 이치임을 알게 된다. 바로 나의 마음과 모든 이의 마음과 천지의 마음과 하늘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진정한 나, 거룩한 내가 된다. 욕망의 인간 사회에서 흔히 빚어지는 비난과 분노와 기쁨 슬픔 명예와 영화와 오욕 등이 엇결처럼 거슬리지 아니하고 내 마음이 지닌 도덕적 생명력의 용광로에서 녹여진다. 그것들은 새로운 의미가 된다. 나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내 길을 간다. 나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기에 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하늘의 마음이 펼져지는 것이오, 천지의 마음이 만물을 낳는 것이다. 내 마음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닫게 되고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법도에 들어맞는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법도가 되는 것이다. 내 마음의 움직임은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워 범속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온 우주를 아우르는 큰마음이, 이치가 들어 있게 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