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문화의 파수꾼 안동문화지킴이(글/이희수-프리랜서 작가)
특별함 보다 익숙함을 지키는 사람들
얼마 전 친구가 안동을 방문했다. 사실 안동에 정착한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나에게 친구의 방문은 살짝 부담스러웠다. 이제 겨우 3년차 안동사람인 나는 서울 토박이인 친구에게 안동을 ‘잘’ 보여줘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이 생긴 탓에 어디를 데리고 가야하나, 뭘 보여주지, 맛있는 게 뭐가 있을까 등 상당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서울에서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맞이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나에게 생긴 막연한 의무감은 아마도 알 수 없는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안동이라는 곳의 지역색 탓인 것 같다. 왠지 시 전체가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되어 있을 것만 같은 환상, 아직도 머리에 갓을 쓴 고고한 양반들이 살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조상들이 가졌던 민심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소박함까지, 바로 내가 안동에 오게 된 해 가졌던 막연한 기대감이기도 했다.
참 다행스럽게도 안동에는 다른 지방을 다니며 겪어보지 못한 고택 체험이 가능했다. 그것도 몇 안 되는 희귀한 것이 아닌, 입맛 따라 골라 체험할 수 있다는 수적인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농암종택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친구는 차 시간 탓에 여기 저기 둘러보지 못하고 사진으로도 남겨두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면서 다시 한 번 꼭 와보고 싶다고 했다. 예상치 못했던 친구의 만족감에 어깨가 으쓱했다.
한 편으론 수십, 수백 년간 손때를 잃지 않고 오래된 집을 보존하고 가꿔 온 안동사람들의 인내심(?)이 마냥 신기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터를 떠날 수도 없는 그 일을 설마,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비단 고택뿐만이 아니라 안동엔 특별함 보다 익숙함이 더 큰 문화와 문화재가 무척 많다. 바로 그 뒤에는 고택의 주인들처럼 내 것이 아닌데도 지키고 가꿔 나가는 ‘안동문화지킴이’란 사람들이 있었다. 며칠 전 우연찮게도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유쾌한 봉사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던 시간이기에 안동에 대해 나는 또 하나의 새로움을 접할 수 있었다.
유쾌한 문화봉사
안동문화지킴이도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적은 사람들만으로 직접 발로 뛰어 현장을 답사하고 활동지에 대한 기획과 회의 준비도 해야 하고 책도 발간하는 등 모든 살림을 꾸리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창단 멤버에서 지금의 안동문화지킴이 대표로 자리하고 있는 김호태 대표의 얼굴에서 근심이나 힘들다는 표정보다 나를 압도하는 어떤 포스가 느껴졌다. 안동문화지킴이의 대표지킴이 이전에 안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선생님으로 몸담고 있는 김호태 대표에게서 사실 깐깐한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의 이미지가 풍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한 짧은 시간 동안 안동문화지킴이에 대한 그의 신념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깐깐할 거라 생각했던 나의 건방진(?) 고정관념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손수 구워준 맛있는 삼겹살 때문이라고는 꼭 집어 말 못하겠지만 사람 좋아하는 김 대표의 인정 속에서 문화라는 거대한 재산을 감당하는 안동문화지킴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안동의 문화와 문화재라는, 딱딱한 틀 속에 있을 것만 같은 무형과 유형의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것 또한 안동문화지킴이가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많은 활동들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안동문화지킴이는 650여명의 회원, 지킴이 식구와 사무국장, 간사, 그리고 현장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문화유산 교육 강사 등의 실무 지킴이까지 어림잡아 700명은 족히 되는 대 식구로 이뤄져 있다. 한 달에 한번 문화재 지킴이 정규 활동에 격주로 진행되는 연 150시간의 시민문화해설사 교육, 문화재 순찰활동 그리고 각 지역 단체의 문화재 교육 등 어떻게 다들 생업을 갖고도 그런 활동들을 해 나가는 지 봉사정신이 아니고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을 진행하는 사람은 몇 안 되는 것 같지만 초창기부터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실무지킴이와 창단 멤버들의 희생과 노력 없이는 지금의 안동문화지킴이로 만들어 질 수 없었다는 게 김 대표의 말이다.
회비를 내고 활동을 하는 일반 지킴이와 달리, 실무지킴이들은 더 많은 회비를 내고 시간을 내어서 사전준비와 월간 발행하는 ‘사람과 문화’ 의 편집활동을 하는 한편, 현장 활동을 해야 한다. 그들에게 대가가 있다면 땀으로 맺어진 결실이 묻어나는 유쾌한 현장, 그들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봉사의 노고가 녹녹히 녹아있는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그들만의 유대감이 아닌가 싶다.
상금은 상금일 뿐 오해하지 말자
사실 거느린 식구가 많을수록 돈 들어가는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닌 법. 후원과 회원들의 회비로 어떻게 그 많은 활동을 다 꾸려나갈까 하는 질문에 역시나 많은 상복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안동문화지킴이는 2004년 12월 문화재청장상을 시작으로 최근 안동MBC향토문화상의 문화부분까지 수차례의 굵직한 상들을 받은 경력 단체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이름들을 굳이 나열할 필요는 없겠다. 상이란 그들이 만들고 이뤄온 업적에 대한 사회의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들의 많은 노고와 과정들을 상이란 이름 하나로 덮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의 사람들의 관심은 거창한 이름표가 달려야 생기는 법이지만 그런 것으로 그들의 10여 년간의 역사를 포장하고 싶지 않다. 날 것의 있는 그대로, 깨지고 부딪혀온 그들의 사람다움이 결국은 안동문화지킴이를 만든 것이기 때문일 게다.
많은 상복에 드문드문 상금 덕을 보지 않았겠냐는 나의 무지한 질문에 김 대표는 고개를 젓는다. 상금은 상금일 뿐 매일 들어가는 곳이 일정한 데다 때 아닌 행사를 기획해야 하는 일이 잦은 단체의 큰살림 보태기에 상금은 보너스일 뿐 일정 지출에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안동문화지킴이는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후원과 가족 같은 회원들의 작은 보탬, 그리고 실무지킴이들의 자발적 희생(?), 무엇보다 안동시와 문화재청에서 받고 있는 꾸준한 지원금으로 꾸려가고 있었다.
집 안의 가계부 하나에도 머리가 지끈지끈, 단위 절사하고도 계산이 자꾸 틀리거나 예산을 초과한 결산 영수증들은 가슴을 답답하게 해 온다. 하물며 식구가 어림잡아 700명은 족히 될 안동문화지킴이를 꾸리는 데에 총무(현재는 사무국장이 이 일을 역임하고 있다)의 속 시끄러운 사연을 말로 해 무엇하랴. 그러나 창단 때 맡았던 총무직을 시작으로 이후 어려울 때마다 사비를 털어야 하는 실무지킴이들의 사연을 털어놓는 그에게서 총무라는 집안 살림꾼으로서의 고달픔 보다 현재까지 알뜰히 꾸려오면서 커가는 안동문화지킴이를 마치 자식처럼 흐믓해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첫 발을 내딛다
무엇이든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았던가. 중앙행정부처에 있는 정영준 사무관, 탈춤사무국의 권두현 사무처장, 문경시청의 엄원식, 서동석, 조재경 씨 등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시작을 함께한 이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김 대표는 안동문화지킴이의 시작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회상했다. 사랑방 안동 편집위원인 안동대 임재해 교수가 주축이 되어 뜻이 맞는 지인들과 함께 하게 된 자리에서 그들은 1999년 4월, 마음을 굳히게 된다.
1999년 4월은 안동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던 때이다. 안동에는 하회마을 등 관광문화재로서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도 그러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문화재는 산재해 있지만 그 문화재를 가꾸고 보존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결의는 맺어졌다. 1999년 6월 26일 첫 활동지인 태사묘에서 발대식을 가졌다. 김 대표는 태사묘에서 가졌던 출범식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인 양 지금도 가슴 속에서 일고 있는 그 때의 흥분과 즐거움으로 첫 활동지를 추억했다. 당연히 지금껏 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문화재란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삼태공을 모시고 있는 재사이면서 ‘조선시대의 안동’에 굳혀져 버린 안동문화를 고려의 안동 문화와 차별화 지을 수 있는 경계의 문화재이기 때문에 김 대표는 태사묘에 대한 의미를 더 높이 사고 있었다.
안동문화지킴이가 잘 운영되는 데에는 늘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며 인복이 많다는 김 대표는 뭐든 잘 되는 이유를 주변의 덕으로 돌렸다. 초창기 수십 명의 회원들을 인솔하는 데에만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랐는데 마침 안동과학대에서 주말을 이용해 쉬는 학교 차량을 지원해 줬던 일은 지금도 잊지 않고 고마운 일이라고 한다.
출근 도장을 찍다
퇴근을 한 김 대표는 다시 출근을 한다. 다름 아닌 안동문화지킴이 사무실로 말이다. 김정희 사무국장과 엉덩이 붙일 틈 없는 실무 지킴이들 뒤에서 대표라는 직함보다 ‘여전한 지킴이’의 한 사람으로서 학교를 마치고 사무실을 들러 오늘의 동정도 살피고 책 발간에 필요한 편집도 신경써야하고 원고도 청탁하고 무엇보다 그 주에 있을 지킴이 활동과 시민문화해설사 교육을 위해 이것저것 점검도 해봐야 한다. 일주일을 그렇게 빠듯하게 보내고 나면 다시 주말에는 실무들과 활동을 나간다.
집에서 싫어하시지 않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자녀는 물론 아내와 지킴이 활동을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매번 휴가도 없이 따라나서야 하는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 말은 안 해도 내심 불만이 있을 것이라는 나의 간언(?)에 김 대표가 말하길, 아내도 애들도 좋아서 한단다. 결국 안동문화지킴이 활동은 ‘가족’ 단위가 주축이 된다는 것이다. 따로가 아닌 함께 활동 할 때 가족 구성원 간의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더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취미활동에 없던 대화도 느는 법이다. 이것은 안동문화지킴이만의 운영비법이기도 하다.
현장에서의 활동이란 손수 빗자루와 걸레를 가지고 청소하고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다.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순서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것은 자신이 흥미를 가진 문화에 대해 실감나게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의 10여명에 불과했던 회원이 700여명으로 불어난 데에는 분명 매일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숨어있는 이들의 노고가 빛을 발해서 이기 때문이다.
지키는 사람이 주인이다
안동문화지킴이는 안동 문화를 지킨다는 뜻과 안동 사람들이 문화를 지킨다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안동의 문화를 지켜가는 사람들은 안동 사람들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안동의 문화를 안동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지킨다는 의미도 된다. 곧 지키는 사람이 주인인 것이다.
하지만 지키기 위해서는 지키려는 대상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모르고서는 맛없는 요리를 단순히 배부르기 위해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안동문화지킴이에서 벌써 4기 째 진행하고 있는 시민문화해설사 교육이 바로 그러한 폐단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단순한 의무감으로 활동하는 것과 ‘무엇이 무엇이다’라고 알고 활동하는 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얼마 전 베어진 임청각의 회화나무는 안동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까지 이슈가 됐다. 그에 엇갈린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회화나무를 벤 사람만 탓할 수는 없단다. 훼손됐다고 넋 놓고 있는 게 더 무책임한 것이다. 뭔가 할 수 있을 때 지켜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안동문화를 보듬고 살아야하는 안동사람들의 숙명인 것처럼 안동문화지킴이는 10년 후 100년 후의 회화나무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양질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안동, 그런 문화를 안동사람들이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치는 김 대표의 얼굴 속에서 사람 좋아하고 삶을 좋아하고 무언가 사랑하기를 좋아하는 안동문화지킴이들이 바로 안동의 진정한 문화재임을 엿볼 수 있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