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15주년, 젊은 광대들 풍물굿패 참넋(글/이희수_프리랜서 작가)
너는 내 운명
학창시절 책상에 앉아 공부가 잘 되지 않는 날이면 저절로 빈 노트 위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날이 많았다. 유치한 시구도 몇 자 적어보고 남녀 간의 사랑을 담은 로맨스를 생각하며 그럴싸한 소설을 흉내내 보기도 했다. 그렇게 그저 습관처럼 책상에서의 작은 일탈을 꿈꾸던 게 이제는 내 직업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나에게 글 쓰는 걸로 먹고 살만 하나요 라고 묻는 다면 슬프게도 대답은 아니요가 되겠다. 물론 드라마대본으로 연간 수천에서 억대를 벌 수도, 스펙타클한 스토리의 시나리오로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다들 알다시피 현재가 아니라 someday 이기 때문에 ‘네’ 라고 기약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때문에 초심에 불사르던 열정도 ‘밥 굶으면서 할 수는 없는’ 현실과 적절한 타협이 필요한 법이다. 이런 동지애(?)를 알기에 예술과 밥술을 15년 동안 해오고 있는 놀이패, 참넋을 만나러 가는 길이 낯설지가 않았다.
악에 장단을 맞추는 어깨까지 흐드러진 머리를 하고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놀이의 끼에 매일 매일을 던지는 사람들.
풍물굿패 참넋, 네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열정은 나의 힘
1993년, 고교와 대학의 선후배 사이로 만난 젊은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남사당패가 된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단다. 그저 좋아서, 하고 싶어서. 사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동기는 충분하지 않을까.
참넋은 대학시절 풍물 동아리를 시작으로 알게 된 몇몇의 인맥을 시작으로 만들어 졌다. 현재의 단원은 모두 4명인데 창단에서 지금의 단장까지 15년간 자리를 지켜온 탁상현 단장이 있고 그 옆에 15년을 함께한 김창수 사무국장이 있다. 그리고 김청익, 최성규 단원이 참넋의 일원이다. 지금의 단원으로 꾸려진지는 4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 만큼 한 멤버로 꾸준히 오래 가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오는 사람 안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다는 탁상현 씨는,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했지만 풍물을 연주하는 예술인으로서 회의도 없잖아 보였다.
예술을 업으로 삼자니 배부르지 않아 떠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늘 한 자리에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봐야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참넋의 막내인 최성규 씨는 집이 서울인데, 풍물이 좋아서 풍물로 먹고 살고자 부모님의 반대를 뒤로하고 안동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무거운 짐이다. 하지만 그런 짐을 지고도 풍물굿패 참넋에서 북을 울리고 장구를 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최성규 씨의 열정이 15년 전 탁상현 씨의, 김창수 씨의 마음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남자, 넷
사실 참넋은 창단 이래 공백기간이 무려 2년이나 있었다. 남자들로만 구성된 단체라면 이유는 하나. 바로 군대다. 풍물에 대한 열정이었는지 젊은 마음에 똘똘 뭉친 남자들끼리의 의리였는지 묻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자에 가까운 이유에서 그들은 한꺼번에 군대를 갔을 것이다. 동시에 군대를 가고 동시에 제대를 하여 말 그대로 참넋은 2년간 휴업을 한 셈이다. 2년이란 시간이 지나고도 참넋을 재개하자는 서로간의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게다.
풍물동아리 활동 1년하고 94년에 군대를 간데다 2년이란 시간을 더 쉬이 보내고 왔으니 풍물 실력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때문에 집권(?) 선배의 호된 합숙훈련이 보름, 한달씩 지속되는 일이 잦았단다. 그것도 빈집이나 폐가를 빌려 독하게 맹연습을 하다 보니 도망가는 단원도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당연히 싸움도 있다. 의견 충돌도 나오고 선후배 지간이지만 불만도 있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네 남자 모두 술을 좋아해, 문제는 술로 많이 푼단다. 어쩌면 술이라는 녀석으로 풀어 질 수 있을 만큼 절친한 사이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니저러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참넋은 여전히 네 명의 남자가 주둔하고 있다.
풍물과 연애하고 풍물과 결혼하고
그들은 덥수룩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덥수룩하고, 아무렇게나 기른 게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아무렇게 기르고 있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무대 위의 흥이고 멋이라고나 할까.
참넋을 만나기전 가장 궁금한 것이 생업으로 삼는 일이 따로 있는지와 아내 혹은 애인이 있는지였다. 이들은 풍물굿패 참넋의 단원인 것이 생업인 ‘프로’풍물꾼이었다. 결혼을 못했거나 애인이 없는 게 당연할 거란(?) 생각이 있었던 탓일까 가정을 이루고 자녀까지 두고 있다는 탁상현 단장의 말에 내심 놀랐다. 자유분방함을 자처하고 남들 눈에 들기를 애당초 거부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이 생활’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배필이어야 하기에 사실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탁상현 단장 역시 서로 품앗이 공연을 해오던 서울의 한 풍물패 여자단원과 연애를 한 끝에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단원은? 근간의 실연 후 싱글인 누구를 포함, 셋 모두 미혼이다. 몸과 마음이 건실한 남자들이므로 많은 미혼 여성들, 공연장에서 참넋을 만나거든 꽁지머리의 탁상현 단장만 빼고 지긋한 관심을 가져주어도 될 성 싶다.
참넋에게 풍물이란?
탁상현에게 풍물이란? 15년 전 탁상현 단장에게 풍물이란 재미와 새로움, 그에 대한 도전이었다. 15년이 흐른 지금 풍물은 이제 생활이 되었다.
솔직히 탁상현 씨나 김창수 씨를 보면 아직도 20대처럼 긴장감이 충만한 어떤 뜨거움 같은 열정보다는 평상심을 가지고 풍물을 고집해 나가는 연륜이 느껴진다. 예술을 업으로 삼아야 하기에 동전의 양면처럼 그들은 늘 두 무대를 살아가야 한다. 15년 전 초심 가득한 열정의 무대 뒤에는 행사에 맞춰 스케줄을 짜고 공연료를 협상하고 때로는 슬픔이 있어도 흥을 돋워야 하는 생업으로서의 이면이 있는 법이다.
경제적인 이유든 악기를 다루는 실력에서든 15년간 한 길을 걸어오며 슬럼프가 오면 어떻게 극복해가냐는 나의 질문에 탁상현 씨는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무엇보다 처음의 그 마음이 있으니까 슬럼프라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한다는 데에 매력이 있지요.”
풍물을 통해 소통을 하는 네 청년은 마을굿을 현대적 감각으로 살리고 싶은 바람과 함께 변화된 세상에 역동적인 난장 한판을 지속적으로 벌리고 싶은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