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글/편집실)항상 할 말이 많은 그 남자. 가까이서 귀담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말끝마다 욕이 나오고 얼핏 들리는 걸로 봐선 꽤나 정치적인 발언인 것 같다. 그 남자가 항상 서 있는 곳은 예전 시내 중심지의 한곳인 목성교 사거리다. 그곳에서 그렇게 떠들어도 주변 상인들은 말리지 않는다. 아니면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그렇게 떠들어대도 지쳐 관두질 않고 하루 온종일 그러길 여사다. 비 오는 날은 우산까지 들고 추운 날은 모자를 쓰고 내쳐 떠든다. 처음엔 ‘저 사람 뭐야?’에서 며칠간 이어지는 고성방가에 ‘미친 거 아냐’에 이르다 이제는 ‘거 참, 근래 보기 드물게 근성 있는 사람일세.’하고 만다.
남자는 자판기의 커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하루를 시작한다. 한손에 종이컵이 들려있는 걸로 봐서는 그렇다. 하지만 것도 정확하지 않다. 주변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손에 쥐고 말하는 습관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그 컵도 누군가 마시고 간 종이컵일 가능성도 있다. 아마도 그곳에 머플러가 있었다면 머플러를 두르고 풍선이 있다면 풍선을, 꽃이 있다면 꽃을 들고 연설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가 언제부터 그곳에서 연설을 시작했는지도 기억이 가물하다. 아침 9시에 출근하는 나처럼 하루의 시작은 거의 9시쯤 시작하는 것 같다. 한번쯤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궁금하지도 않다.
언젠가 시내 분식집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있는데 그가 들어왔다. 순간 ‘엇’했다. 그는 아주 멀쩡한 목소리로 “비빔밥이요”했다. 낭랑한 목소리의 그는 호기롭게 먼저 척하니 계산을 했다. 아주머니들도 잘 아는지 “어제 것까지 같이요?”한다. 가끔 외상도 하나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셨다. 그는 여느 사람들처럼 컵을 한번 헹궈내고 물을 따라 마셨다. 나는 컵을 헹궈내는 그의 모습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도 느꼈다. 정신 나간 사람쯤으로 생각했는데 멀쩡하니 할 건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외상값을 갚음으로써 자신의 멀쩡함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한 며칠 그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첫째 날은 속이 다 시원했다. 대각선 건너편에 위치한 우리 사무실에서도 그 남자의 목소리는 자동차 소음과 함께 매일 들렸었는데 것도 꽤나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두 번째 날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셋째 날부터 그가 궁금해졌다. 아픈 건 아니겠지. 며칠 후 그가 다시 왔다. 회색빛 티셔츠에 곤색 잠바에 청바지를 입은 예의 그 차림으로.
그건 마치 만화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서 처럼, 매일 같은 거리를 걷고 매일 같은 풍경을 보는 FM노신사 유 교수가 매일 퇴근길에 지나며 유리창 너머 보던 집안의 할아버지가 어느 날 보이지 않자, 거리 모퉁이에서 할아버지의 부재를 똑같이 궁금해 하던 동네 남자를 만나 할아버지가 다른 쪽 방으로 잠깐 이동해 있음을 알게 된 다음의 안도감이랄까.
나는 오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고라 광장의 소크라테스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크라테스와 다른 점이라면 그의 말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거다. 그의 외침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쳐 걸어가고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쪽 다리를 쓰레기 분리수거통에 척 하니 걸치고 세상을 향해 팔을 뻗어 훈계하고 욕을 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노래까지 한다. 도무지 들어줄 수가 없는 음정에 박자이지만 노래방 세대들의 뺀질한 노래실력보다는 낫다. 다만 그 노래는 ‘애국가’다. 그는 어쩌면 세상이 몰라주는 애국자일지도 모른다.
그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건 그 남자가 위험해보여서다. 버스정류장에서 한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불손한 태도로 천원만 달라고 했다. 이유도 구체적으로 댔다. 차비가 없으니 천원을 달라고 했다. 난 거절하고 그와 떨어져 서 있었다. 공손한 표정으로 달라고 했으면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 곧잘 태도에 의해 사람을 대하곤 한다.
목성교 아고라광장의 소크라테스에게 천원을 거절하고 돌아오는 저녁, 무언가 찜찜한 마음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만 넘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 천지다.
그는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에 뭐 그리 할 말이 많은 것일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다. 오늘 그가 안 보인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