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땅이 되어버린 높은대(글/이동백_시인)
“신(神)들을 사이에 두고 이 골짜기만큼 고소, 고발이 많은 곳도 없을 거예요, 아마.”
2009년 1월 어느 따뜻한 날, 높은대에서 만난 일광해(一光海) 스님이 스쳐 지나가면서 한 말이다.
“비록 부자는 아닐지라도 땅이 있고, 무엇보다 복장이 편해 좋습니다. 사람에 치이는 도시 생활이 싫어서 여길 돌아왔는데, 혼자 너무 적적하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조용해서 좋더라고요.”
1993년 12월 14일, 당시 이 마을 주민이던 오진호 씨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십오 년의 세월이 이 골짜기 마을을 이렇게 바꾸어 놓고 있었다. 정(淨)하고 아늑하던 산골 마을이 잡신이 난무함으로써 오히려 탁(濁)하고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참말로 이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인류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것이라면 십오 년 동안 산촌을 휩쓸고 간 변화의 바람도 만만찮을 터이다. 그 변화의 추이가 어느 정도일까? 자못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이 관심의 가닥을 풀어내기 위해 떠난 곳이 높은대였다.
우선 주진 나루가 우리에게 변화를 확인시켜 주었다. 1993년 겨울, 상판이 얹히지 아니한 교각 몇이 안동호 깊은 수심에 잠겼던 이 나루에 지금은 번듯한 다리가 놓였으니 말이다. 그때 배를 타고 건너던 호수를 지금은 차를 타고 그 위를 달린다. 수심이 낮아진 호수는 얼어있다.
정산 장터에서 밥을 사 먹고 높은대 초입에 이르니, 길섶엔 ‘청량산굿당기도당, 선왕장군당, 청량도국, 약산사’, 대충 이런 내용이 쓰인 현수막들이 겨울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신들도 이렇게 현수막에 실려 춤추는 세상이 되었나 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무엇이 신들을 저리 신명나게 했을꼬?’ ㅎㅎ
“옛날엔 신과 사람이 더불어 살던 마을이 요샌 귀신만 사나? 길섶이 왜 이리 어지럽노?”
오랜 침묵 끝에 나온 방장님의 나직한 코멘트이다.
높은대로 가는 골짜기. 음지녘으로 접어드는데, 바로 당집 하나가 산자락에 붙어 있다. 바람벽과 지붕은 날아가고 없다. 허기진 신이 다 뜯어먹은 모양이다. 그때 눈길이던 것이 지금은 흙탕길 비슷하게 변해 있다. 아마 멀리서 오는 봄기운 탓일 게다.
정자골 마을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삼거리에 ‘두리봉 등산로 개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골짜기를 환히 밝혀 주고 있었다.
음지 비알의 질척이는 길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오르막길을 잡아채는데, 언덕 위에 높다란 집 한 채가 나선다. 상비산 성지 ‘청량도국’이란 표지판이 집 앞에 서 있다. ‘도의 나라’ 궁궐(?)로서는 날림으로 지은 조립식이라서 그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강도사가 도국(道國)을 꿈꾸며 도를 닦던 곳이다. 기를 받아 약을 만들어서 팔기도 하던 강도사가 작년 여름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후로 청량도국은 망국(亡國)의 길을 홀로 걷고 있는 중이다. 입국(立國)은 질풍처럼 일어나되 망국은 저렇듯 허망하게 지는 것! 지훈 선생의 시 한 절이 겨울바람에 나부끼는 듯하다. 사람이 떠난 곳에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치는 것은 정한 이치 아닌가.
굽이도는 길을 따라 등성이에 오르니, 마른 고추 대궁이 힘겹게 하늘을 받쳐 들고 섰다. 검은 산들이 아득하게 에워싸는데, 그 안에 한 점으로 멈춰 선 차(車)가 마치 지구 속에 피어난 한 떨기 작은 꽃의 수술 같다. 다시 차는 자신의 흔적을 뒤에 남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차는 그 흔적을 뒤에다 남기고 가건만 사람은 눈이 앞에 달려서 뒤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밀고 나아가는 젖은 길에 ‘건립선왕할멈’을 모신 작은 당이 눈길을 잡아끈다. 풍혈(風穴)인 곳에 모신 당이었다.
두 시 가까운 시각에 높은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을 지키던 옛집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전에 보이지 않던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덕바지를 좀 올라간 곳에 새로 지어진 조립식 집에 들어가 주인을 불렀다. 무람없이 찾아든 길손을 살갑게 맞아준 이는 박성화 씨와 최극지 씨였다. 딴은 제대로 찾아든 셈이다.
박성화 씨는 열여덟 나이에 이곳으로 시집을 와서 살아온 이 마을 지킴이었다. 산골 농사에 빚을 지고, 빚 갚으려 대처에 나가 몇 년을 살다가 다시 들어왔노라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마을을 찾아왔던 십오 년 전엔 박 씨는 빚 갚느라 대처살이에 여염이 없었던 때였다. 안동지 30호에 실린 사진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요게 우리 집일세.”
하며, ‘에구 세상에’를 연신 입에 올린다. 지금은 헐려버린 집이었다. 그녀의 말에는 회한과 아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녀가 남편을 만나 이곳으로 들어올 무렵엔 열세 가구가 터를 잡고 살았으나, 한창 많을 때는 이 골짜기 산발치를 따라 서른세 가구가 흩어져 살았단다. 자녀 교육에 눈을 뜨기 시작한 사람들이 떠나면서 이 마을 역시 여느 산골 마을처럼 쇠락의 길을 걸게 된다.
십오 년 전의 오진호 씨를 물으니, 그도 이미 마을을 떠나고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년엔 장가들어 이곳에서 일가(一家)를 이루겠다던 그 진호 씨도 그가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던 ‘문화적 욕구’ 때문에 결국 이 골짜기를 뜨고 만 것이리라.
마을에서 만나지 못한 진호 씨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십여 년 전에 마을을 떠나, 절집을 찾아 전라도 등지를 떠돌며 살다가 지금은 안동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한때 불가(佛家)에 뜻을 두고 살다가 그것에 회의를 느꼈다는 진호 씨는 무속에 매몰된 높은대 마을을 두고, 서슴없이
“마을 다 버려 놓았지요, 뭐.”
한다. 농장은 어찌하고 떠났냐니까, ‘묵는다.’고 짧게 답하고 만다. 집은 굿당 사람들에게 주어 버리고 나왔노라고 했다.
“그때 내년에 혼인한다더니, 그 약속은 지켜졌습니까?”
“이제 두 돌 지난 아이가 있으니, 혼인은 근년에 했지요.”
진호 씨는 마을 떠난 후로 부친 산소에 성묘하러 마을을 찾는 것이 고작이라서 강도사 죽음도 모른다고 했다. 그도 결국 도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오진호 씨가 떠나는 전후로 마을은 무속화되기 시작했다. 무속인들이 들어와 살면서 쇠락해 가던 마을이 다시 일어나게 된 것이다.
“붙박이로 사는 집이 다섯이지만, 여기를 주민등록지로 하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열한 집이 되지요.”
여섯 가구는 농사철에만 들어와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이곳을 떠나 산다는 이야기였다.
“이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험하여, 길에 시멘트라도 깔아달라고 관에 청을 넣기 위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마을에 열한 집이 산다는 걸 확인했지요.”
몇 년 전에 이 골짜기에 들어와 산다는 최극지 씨의 말이다. 그의 노력 때문인지 군데군데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었다. 오진호 씨 아버지가 2백만 원의 빚을 져 가며 닦아놓은 길에 최극지 씨가 나서서 포장을 한 격이 된다.
마을의 당을 묻자, 박성화 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선다.
“우리 시어머니가 신당에 치성을 드린 후에 칠 남매를 얻었지요. 시어머니께서 그 당을 지켰고, 그 뒤를 이어 내가 모셔왔는데, 나가 사는 바람에 잠시 당을 잊었지. 그러나 난 정월 초하룻날 차례를 모시는 대신에 당에 와서 제를 올렸습니다.”
60년대였던가. 산판이 한창이던 시절에 산판 길을 내기 위해 두리봉 쪽에 길을 뚫는 바람에 공민왕 신이 박 씨 남편의 꿈에 나타나 ‘왜 내 목 잘랐노?’ 해서 끊어진 길을 이어주자 뒷탈이 없어졌다는 일화를 박 씨는 무용담처럼 엮어나갔다.
“이곳은 신들이 많이 사는 곳인가 봅니다.”
“청량산 일대는 공민왕과 깊은 관련을 맺은 곳이지요. 여기 신당도 공민왕을 모신 당이잖아요. 그래서 신을 모시고자 하는 무속인들이라면 이곳을 거쳐 가야지요. 자연히 지가(地價)도 높고, 그러다 보니 문제도 많은 곳입니다. 이곳은 원래 있던 신당만 있어야 할 곳이어서 내가 다시 여길 들어왔는데, 나 들어왔다고 굿당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네요.”
십오 년 전만 해도 오진호 씨 가족만이 외롭게 살던 곳이었건만 그 동안 이렇게 변한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신을 찾는다는 것은 세상살이가 그만큼 팍팍하다는 증거일진대, 지금의 정세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유구무언!
골짜기 초입의 호화찬란(?)하게 내걸렸던 현수막의 내력이 어렴풋한 감으로 다가왔다. 현수막으로 내걸린 이름들이 이 마을에 고스란히 터를 잡고, 신들에게 의지하여 살아간다. 박 씨의 조립식 벽에도 ‘대왕사’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박 씨네 집을 나와 동신당이 있던 곳을 찾아 골짜기로 들어갔다. 골짜기도 옛날의 모습이 아니었다. 골짜기의 한 켠이 깎여 나가고 그 자리엔 부직포로 둘러싸인 가건물이 버티고 섰다. 부직포에는 ‘화선암’임을 가리키는 패찰이 붙었다.
‘산성골로 들어가자 이 마을의 동신(洞神)을 모신 ‘당(堂)’이 굴참나무들에 에워싸여 있었다. 곁으로는 물이 흐르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 절벽 아래 가마 크기의 슬레이트집이 서 있었다.’ 십오 년 전의 동신당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은 신당 곁의 개울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꽤나 큰 마당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절벽 아래엔 당집 둘이 어깨를 나란히 걸고 섰다. 하나는 ‘도당할머니당’, 다른 하나는 ‘공민왕당’이란 패찰을 달았다. 하나는 열렸고, 하나는 닫혔다. 도당할머니당에는 돌멩이 하나가 새끼에 얽매인 채 지전 몇 잎을 끌어안고 있는데, 그 발치엔 누군가의 발원(發願)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무심히 누워 있다. 공민왕당에는 스낵 과자 몇 봉지가 놓이고, 그 곁에 왕관과 족두리가 좌정(坐定)한 것으로 보아 이들은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상징하는 듯했다. 지금 도당할미당이 원래 있던 동신당으로 박 씨가 섬기는 당이었다. 사람은 서로 척이 져서 등을 돌리고 마음에 미움을 품고 사는데, 신들은 어깨를 걸고 정다움에 겨워한다. 신의 뜻이 이쯤에 이르러 있건만 사람은 눈이 멀어 이를 보지 못하니, 이를 어찌할거나……. 무속 하나가 신당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징을 치며 신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신당을 돌아내려와 들른 곳은 청량산 약산사였다. 허름하게 지은 집 앞에 돌로 깎아 세운 인왕상이 험상궂게 서 있으나, 남의 절집을 폄훼할 뜻은 추호도 없지만 절집다운 맛이 전혀 없다. 마당에는 일흔일곱 기의 석불이 줄을 서 있고, 조립되지 못한 석탑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일주문이 서야 할 자리엔 쇠사슬이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이 절 주지 스님이 여러 이유로 절을 떠나 있단다. 거기다가 송사(訟事)도 치르고 있는 모양이다.
약산사 골목 밖 아래쪽으로는 이 마을에서 상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신과 관련이 없는 이 씨의 우사(牛舍)가 터를 잡았다. 설을 맞아 마을을 떠난 이 씨의 우사는 적막이 감돌 뿐이다. 푸른 차일(遮日)에 덮인 우사에 소가 있는 지조차도 가늠할 수 없다.
오진호 씨의 집은 원형은 남았으나, 손을 많이 대서 언뜻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오진호 씨가 떠난 뒤엔 청량산굿당기도당 사람들이 들어와 산다. 자연히 이 집은 기도당의 부속 건물이 되고 말았다. 오진호 씨 집 바로 위에는 기도당의 본채가 넓게 터를 닦아 들어서 있다. 마을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건물이다. 이 건물 서쪽에는 무속 행위가 이루어지는 터를 마련해 두었다. 조그마한 계단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울타리를 쳐 놓았다. 꼬불꼬불 오솔길처럼 예쁘게 만들어 놓은 계단이다. 계단 길을 들어서는 순간, 인간은 신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신계(神界))와 인간계(人間界)가 이 하찮은 나무 계단에서 갈리는 것이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움푹 뚫린 바위 틈서리로 물이 흘러내리고, 그 바위 아래에다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리는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곁에는 무당이 푸닥거리하는 장소로 쓰이는 듯한 공상(空床)을 지어 두었다.
돌아가려는 길을 막은 선 것은 일광해 스님의 봉고차였다. 일광해 스님은 남자인데 화장을 엷게 하고 립스틱을 짙게 발랐다.
“약산사에 의탁해 사는 중이지요. 7년째 천기(天氣) 기도(祈禱)를 하고 있는 중인데, 이제 이 절집 주지 스님이 들어온다니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저도”
“화장요? 여장(女裝)을 하고 기도를 드릴 때도 더러 있습니다.”
그 말끝에 절과 굿당 사이에 이권 다툼으로 송사(訟事)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인간도 밥을 굶는 이가 많거늘 신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신들도 인간을 닮아 송사를 즐겨, 그것으로 밥을 구하는 세상인 것을, 嗚呼哀哉!
노을 빗긴 내리막길이 웬일인지 허전하기만 하다. 신은 무엇이고, 인간은 또 무엇인가. 신계는 어디이고, 인간계는 그 또한 어디인가. 지나온 삶의 흔적도 가늠하지 못하는 주제에 전대미문의 앞날을 더듬으며 내닫는 인간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인 까닭인가.
차창에 빈 몸을 기대고 내려오는데, 주인의 이름을 단 조그마한 우편 수취함 여럿이 골짜기 초입의 전봇대에 새집처럼 달려 있다. 집배원의 수고를 감당하는 이들의 모습이 석양에 아름답다. 허전한 마음을 이들이 어루만져 준다. 그래, 몸은 비어 꽂아 둘 수 없거니, 무거운 마음이나 편지처럼 저 우편함에 꽂아두고 가자.
몸도 비고, 마음도 남겨두고 가는 길이라 차는 가벼이 포도(鋪道)를 잘도 내닫는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