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겨 보는 휘저우의 전통마을들(글/사진/임세권_안동대 교수)
중국을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도처에 널려있는 작은 마을들이 모두 전통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웬만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로 접어들면 길 좌우에 보이는 마을마다 몇 백 년을 지냈는지 모를 고가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마을은 가옥의 특징이 겉에서 잘 드러나지 않아 전통 또는 역사적 켜를 금방 알아볼 수 없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근대 이전 전통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전통마을을 이야기하면 대체로 윈난(운남,雲南), 광시(광서,廣西), 신쟝(신강,新疆), 시짱(서장,西藏), 칭하이(청해,靑海), 간쑤(감숙,甘肅) 등 소수민족들이 모여사는 지역을 떠올리게 된다. 이 지역들은 중국에서는 주로 북서쪽과 서남쪽에 몰려 있는 변방지역으로 중국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도 하며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인 한족(漢族) 보다는 위구르족이나 티벳족, 좡족(장족,壯族) 등 소수민족들이 수천 년을 이어 살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지금도 각각의 다양한 문화를 유지 발전시키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특이한 민속과 함께 전통적인 마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 내륙의 한족 거주지역으로 들어가면 여기에도 오랜 동안 한족들의 전통문화를 지켜가며 각각의 지역적 특징이 살아있는 마을들이 다수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황허(황하,黃河) 유역의 혈거(穴居) 마을이나 겉을 흙으로 싸바른 투러우(토루,土樓)라고 부르는 독특한 원형건축 안에 한 마을이 몽땅 들어가 있는 으로 된 푸지엔성(복건성,福建省)의 투러우 마을, 마치 유럽의 옛 성채를 연상시키는 쟝시(강서,江西) 남부의 웨이쯔(위자,圍子)라고 부르는 마을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이처럼 한족이라 하여도 각 지방에 따라 다종다양한 모습의 마을들이 저마다 독특한 모습을 보이며 분포되어 있어서 중국이 거대한 땅덩어리만큼 삶의 모습도 여러 가지임을 실감할 수 있다.
한족의 전통을 지켜낸 전통마을들
중국의 마을 중에서도 휘저우의 마을은 전통적인 한족의 문화가 살아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한족들의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지역으로는 저장성(절강성,浙江省) 쟝쑤성(강소성,江蘇省) 샹하이(상해,上海) 부근 등에서 일부 볼 수 있다. 휘저우의 옛 지역인 안후이성 황산시 일대와 쟝시성 우위엔현(무원현,婺源縣) 일대가 수가 많을 뿐 아니라 보존상태나 문화의 수준도 높은 편이다. 휘저우 지역의 마을 중에서는 황산시의 이현에 있는 홍춘마을과 시디마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지만 그 외의 대부분 마을들도 그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반제국주의 전쟁과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모든 전통문화와 사상까지도 깡그리 없애려고 시도했던 문화대혁명 기간 10년을 포함한 사회주의 정권 60년을 거치면서도 놀라우리만큼 옛 모습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옛 풍습까지 되살려내고 있는 휘저우 사람들을 보면 가히 존경심이 생길 정도이다.
휘저우의 마을들은 중국의 다른 지역 전통마을보다 훨씬 더 중국문화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첫째는 마을의 구조이다. 대부분의 마을들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설계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마을로 대표적인 것은 이현의 홍춘마을이다. 이 마을이 풍수의 대가에 의해 풍수이념에 입각하여 설계되고 건설되었다는 것은 이미 앞의 홍춘마을 소개에서 말한 바 있어 여기서 다시 재언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도 마을 뒤에서 흘러드는 물을 마을 중앙의 연못으로 모아서 다시 마을 전체로 방사상으로 분배한다든지 또는 물길을 여러 갈래의 좁은 골목으로 끌어들여 대문 앞으로 통과하게 하여 각 가정의 생활용수로 사용하게 한다든지 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며 이는 인위적 설계가 아니고는 불가능 한 것이다. 이러한 물길의 배치는 홍춘 뿐 아니라 이지역 어느 곳에 가더라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청칸 마을에서는 물길을 집안으로 통과시키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홍춘에서는 마을 중심의 호수에서 각 골목을 빠져나온 물이 다시 마을 남쪽의 넓은 남호라는 호수로 모여 농업용수로 활용될 뿐 아니라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시원한 하늘과 함께 수면에 반사시킴으로서 마을 전경을 넓고 탁 트인 공간속에 배치시크는 절묘한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처럼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물속에 반영시켜 시원한 경관을 만들어 주는 것은 시디마을에서도 볼 수 있고 또 연못같은 인공적인 저수시설은 아니지만 우위엔현 리컹마을이나 휘저우구 탕모마을처럼 마을로 들어가거나 마을에서 빠져나오는 물길에 보를 막아서 넓은 수면을 만들어 마을을 반영시켜주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미술관 같은 전통가옥들
휘저우 마을이 또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독특한 전통건축물이 주는 아름다움이다. 마을의 건축물은 중심에 있는 대규모의 사당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살림집들이다. 이 집들은 너무나 폐쇄적이어서 밖에서 보면 대문을 제외하면 높다랗게 막힌 담장 밖에 볼 수 없다. 또 대문조차도 두터운 목조문이거나 철문으로 되어 견고한 담장의 일부에 다름 아니다. 이는 휘주 민가의 주인들이 대부분 상인들로 외지에서 활동하므로 집안에는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만 있으며 또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의 침입을 막고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밖에서 집을 보면 창문이 없이 온통 흰 색뿐인 벽면과 검은 기와가 덮인 지붕뿐이다. 특히 지붕의 합각부분이 드러나는 측면을 흰색의 벽으로 막은 소위 마두장(馬頭墻)까지 더해 집은 완벽한 흰색의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멀리서 보는 외관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추상화와도 같다.
그러나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보면 놀랄만큼 밝고 쾌적한 분위기에 놀라게 된다. 사방이 지붕으로 막혀 있는 사각의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이 온 집안에 반사되어 방안까지 밝게 만들어주고 아래층 청당이나 윗층의 거실 마루에서는 의자나 미인고에 기대 앉아 햇볕을 즐길 수도 있다. 또 지붕에서 마당까지 온통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으로 덮여 있다시피 하여 집안 전체가 마치 미술관과 같다. 이러한 그림들은 모두 부자가 되도록 돈벌이가 잘 되게 한다든가 또는 과거시험에 급제하고 높은 관직에 오른다든가 하는 그들의 희망을 반영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고 그와 관계 있는 중국의 옛 이야기나 삼국지나 수호지, 금병매, 홍루몽 같은 고전문학의 내용들이 묘사되어 있어서 미술 작품을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휘저우는 중국 인물의 고향
마을은 이러한 외형만으로 사람을 끌지는 않는다. 휘저우 마을이 가지고 있는 인문학적 배경에 중심으로 들어 앉아 있는 것은 사람이다. 특히 휘저우에는 중국 역사상 뛰어난 인물들이 거의 마을마다 들어 앉아 있다. 주시(주희,朱熹)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물론이며 남조시기 유명한 대신이며 군사전략가인 청린션(정령선,程靈詵), 근대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타오싱즈(도행지,陶行知), 18세기 청대의 대표적 사상가 다이쩐(대진,戴震), 현대 중국의 유명한 학자이며 사회활동가인 후스(호적,胡適), 명대의 수학자 청다웨이(정대위,程大位), 중국 철도사업을 처음 시작한 짠티엔여우(첨천우,詹天佑), 청대의 저명 화가로 소위 양주팔괴(揚州八怪)로 알려진 왕스션(왕사신,汪士愼)과 루어빙(나빙,羅聘), 쉬꾸(허곡,許谷) 또 중국 현대의 대표적 산수화가이며 미술이론가인 황빈홍(黃賓虹) 등 각 분야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휘저우 출신이다. 최근에는 중국 국가주석을 지낸 쟝저민(강택민,江澤民)도 휘저우 출신으로 이곳을 찾은 바 있다.
어떤 마을은 출신 인물 하나만으로도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후스의 고향인 지시현(적계현,績溪縣) 상주앙(상장,上庄) 마을은 이미 많은 전통가옥들이 사라지고 사당도 불타 없어져 마을 자체로는 별로 볼 것이 없으나 후스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란 이유 하나로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또 우위엔현의 현성(縣城)도 주시(朱熹)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살던 곳으로 그 관련 유적이 많아 주자학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골목길 흙벽위에서 읽는 중국 현대사
이러한 역사의 껍질들이 겹겹이 쌓인채 수백년을 지내온 마을들은 수많은 역사의 격랑을 거치면서도 그 시간의 켜들을 유지하고 있다. 휘저우 지역 뿐 아니라 중국의 여러 오랜 마을들을 다녀보면 오랜 전통 가옥 이외에도 골목길에 쓰여진 혁명구호나 그림까지도 이제는 역사적 기념물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셔현의 현성 옛 골목 안에는 건국 직후인 50년대 마을의 규약으로 보이는 작은 글씨가 바둑판처럼 칸을 친 규격 속에 꽉 들어차 있는데 그 위로 문화대혁명 기간에 쓰여진 굵은 글씨의 혁명구호가 잔글씨를 덮고 있다. 또 어떤 마을에는 문화대혁명 때의 구호 위로 한 자녀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구호가 덧 씌어졌다. 이러한 구호들은 앞의 것들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그대로 덧 씌워져서 중국 현대사의 시간적 층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오랜 골목길에서는 아직도 문화대혁명 기간의 마오저뚱의 초상화나 혁명구호를 흔하게 볼 수 있어서 당시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는 것도 중국 마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요소라 할 수 있다.
지나간 것을 모조리 없애며 새것을 만들어 낸 것 같은 중국 공산정부 아래서 이러한 역사적 층위들을 마을 골목에서 보는 것은 매우 새롭기조차 하다.
소외의 덕을 보기 시작하는 벽촌마을들
현재 중국에서 잘 알려진 전통마을들은 교통이 불편하여 간선도로에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곳이거나 첩첩산중에 자리 잡고 있고 또 여러 줄기의 강물로 둘러싸인 곳에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자연환경의 덕으로 전쟁이나 또는 역사적인 큰 변란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 근대화 이후의 개발사업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쟝시성 우위엔현에 있는 리컹(리갱,理坑) 마을이나 윈난성 리쟝(려강,麗江)의 스터우청(석두성,石頭城) 마을 등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리컹 마을은 들어가는 길이 포장은 되어 있으나 옛 강 옆의 낭떠러지 길을 그대로 이용하여 좁은 곳은 자동차가 비켜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다. 우위엔현에서 안휘성 슈닝현(휴녕현,休寧縣)으로 넘어가는 산길도 그리 녹녹지는 않지만 그 길에서 한쪽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있는 리컹은 마을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감추어진 곳이다. 윈난의 스터우청 마을은 관광지로 유명한 리쟝에서 하룻길로 포장도 안된 산길을 꼬불꼬불 차멀미가 나도록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종착지에서 차를 내려도 마을은 멀리 산 아래 작은 봉우리 위에 있어서 3,4십분을 가파른 산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차가 못들어가니 마을에서 집을 지으려면 지금도 모든 건축자재를 달구지로 나르든지 아니면 사람 손으로 직접 날라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이러한 마을들은 지금까지 가난에 찌들여 살아야 했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사는 것을 무슨 업보처럼 생각하고 농사일에 매달려 평생 마을을 벗어날 생각도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이들 외진 마을에도 관광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해서 사람들은 돈맛을 알기 시작했고 덩달아 인심도 야박해지기 시작했다. 윈난성 스토우청 마을 농가의 민박집에서 간단한 아침식사 한 끼에 웬만한 중소도시의 호텔 아침과 맞먹는 10원을 내고 겨우 만두 두 개를 먹었는데 주인이 커피 한잔 줄까 물어서 그러라고 했더니 5원이라는 소리에 너무 놀라 그만두라고 한 적이 있다. 5원이면 당시 환율로는 650원 정도이고 지금 환율로는 1000원 정도이니 중국의 물가에 비추어보면 그것이 얼마나 비싼 값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산골짜기 자동차도 들어가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근대화에 소외되어 개발이 되지 못해 힘들게 살아온 바로 그 덕으로 그 마을들은 전통문화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게 되었고 지금은 전통마을로 이름을 내게 되었으며 덩달아 돈도 함께 묻어들어오게 되었으니 늦배운 도둑이 밤새는 줄 모른다고 왜 돈 욕심이 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돈과 함께 야박해진 인심, 도로개설로 인한 환경훼손, 숙박이나 기념품 음식물 등을 판매하기 위해 이곳저곳의 마을 모양이 바뀌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얼마 못가 마을은 이전과 달라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전통문화가 변질되게 되면 자연히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질 것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행정당국에서 조정해야 할 터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행정쪽이 훼손을 더 가속화시키기도 하니 해결책은 그리 쉽게 나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통문화를 지키고 마을을 보존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될 수는 없는가?
우리의 마을은 어떻게 할 것인가?
휘저우를 돌아보면서 또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전통마을들을 답사하면서 줄곧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사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의 전통마을들이었다. 우리 지역의 전통마을들은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되고 있는 중이다.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이 본격화 된지도 여러 해가 지나갔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뒤의 결과는 언제나 허탈하다. 전통을 살린다는 것이 진정한 전통과는 거리가 먼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만을 노린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정치적 판단으로 내려진 정책이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적 판단의 속내에는 다음 선거라는 지극히 단기적이고 현실적인 정치적 목표를 숨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또 지역의 전통문화를 개발한다는 목표로 두 번째 물결이 밀려오는 것 같다. 이 물결은 첫 번째 물결과 마찬가지로 마을이 기본단위가 될 것이다. 중국 휘저우의 전통마을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이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휘저우의 경우는 많은 마을들과 개개의 가옥들이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찾는 이들에게 말을 건다. 이같은 이야기 거리들은 오랜 기간의 기초조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우리는 이와 같은 기초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개발이 앞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개발에서 소외되었던 지역이 이제 그 덕을 찾으려면 왜 소외된 지난 날이 지금 빛을 보는가를 좀 더 긴 안목에서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안동>
-중국 휘주 고촌락 답사기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그간 집필해주신 임세권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