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어느 날의 보마골은 너무 쓸쓸하였네(글/이동백_시인)

옅은 화장을 한 여인은 어딘지 모르게 청초해서 아름답다. 가는 비를 뿌리던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버린 산기슭엔 어렴풋한 물안개가 끼었다. 산은 마치 옅은 화장을 한 여인처럼 맑고 아름답다. 박무(薄霧)는 이렇듯 세상을 소담스럽게 꾸밀 줄도 알고, 사람을 취하게 할 줄도 안다.

박무의 산을 굽이돌아 나아가는 길섶엔 찔레꽃이 하얗게 흐드러지도록 피었다. 오월 하순, 이맘때가 바로 찔레꽃 계절이다. 흰 꽃잎에 자신을 내맡긴 찔레꽃은 야단스럽지 않아서 좋다. 어쩌면 흰빛이 주는 처연함이 사람의 마음을 삼가게 한다. 그 향기도 달뜨지 않는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 또한 이 계절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일진대, 인간은 마음의 눈이 어두워 육안으로만 이를 즐기는 척하고 지나치고 만다.




베티마을 지나 보마골 가는 길


베티마을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보마골로 가는 길을 물었다.


“보마골은 머 하로 가노?”


할머니는 박무를 머금은 산을 가리켰다.


베티마을에서 보마골로 들어가는 길은 14년 전의 길이 아니었다. 그 옛날의 마른 호숫길은 지금도 마른 채, 그대로였다. 그 길은 흔적으로 남은 듯했으나, 사람의 통행은 이미 멎어 있었다. 보마골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베티마을 뒤로 난 산길이었다. 자동차 한 대 겨우 다닐 정도의 좁은 길은 고갯마루까지 포장이 되어 있었다. 가파른 길은 차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차도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기운차게 길을 밀고 올라갔다. 안개에 젖은 나뭇가지가 차창을 후려친다.


고개를 넘어서자 며칠 전 내린 비로 길은 몹시 헐었다. 비가 내리는 게 반가워 길은 자신의 몸을 여러 갈래로 뜯어내어 비에게 흔쾌히 내어주었을까? 길은 온통 파이고 고랑이 졌다. 고랑이 진 길 위의 차는 뒤뚱거렸다. 차는 고통을 이겨내느라 한창 흔들거리는데, 사람은 파인 땅의 금을 바라보기를 즐겼다. 그렇다. 저 금은 분명 산의 혈관이고 길의 혈관이다. 길의 혈관은 간단없이 내 몸의 혈관을 흔들어 놓았다. 산의 혈관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 몸의 생존을 깊게 느꼈다. 나는 이 파이고 갈래진 고랑을 자연의 핏줄로 치부(置簿)하며 보마골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건너편 산발치에는 집들이 몇 채 섰고, 그 앞으로는 비닐하우스 몇 동과 담배 밭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의 오른편 골짜기 다락논에선 이앙기 한 대가 사람 하나를 매단 채 꼬물꼬물 맴을 돌고 있었다.


14년 전에 스쳐 지나간 마을이라 얼른 눈에 들어오진 않았으나, 마을 중간에 자리 잡은 정자는 눈에 익었다.


주검이 되어서야 밟아본 고갯길


‘경안농기계’에서 제작한 콩 탈곡기 옆에 차를 세우니, 풀냄새가 싱그럽게 온몸을 감고 돈다. 풀들도 천운(비[雨])을 얻어 그 냄새로 부활하는 걸까. 부활의 냄새가 살아서 향기롭다. 풀들의 냄새로 축복을 받으며(?) 마을로 들어갔으나, 사람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집들을 기웃거리는데, 노인네 한 분이 삽짝으로 나와서고 있었다. 권오봉(85세) 할아버지였다.


“다 떠나고 없어. 겨우 셋 집이 남았지마는 오 씨라고, 그는 농사철에만 여 들어와 살아.”


그는 길손을 시답잖게 맞이했다.


“한때는 사월에서 우리 권가가 날리고 살았지. 이백여 호가 되었거든. 땜이 막히면서 일가들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어. 토지 보상 안 찾아간다고 난리치드이 정작 수몰 안 된 데는 내몰라라 하고 보상도 주지 않았어. 그 와중에 이 골로 올라온 게제.”


수몰 당시에 가슴에 남은 응어리가 아직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안동지 38호에 실린 권중수 옹의 사진을 보여주자, 할아버지는


“이 어른은 몇 해 전에 작고하셨네.”


안동댐이 막히면서 이 마을도 댐에 갇히게 되었다. 마을에서는 길을 내 주길 바랐으나, 그 공사비가 수월찮다는 것을 알고 이주를 희망했다. 당시 권중수 옹은 이 마을의 선비로서 관에 이주비 보상을 위한 청원서를 수십 통 넣었으나, 다 허사였다면서 ‘이 마을은 인적 부도지(人跡不到地)요, 우마 불통지(牛馬不通地)가 돼 버렸노라고.’ 한숨짓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4년 전, 10년 넘게 도로 개설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관에선 돈 타령만 하고 미루던 길이더니, 나긴 났네요? 언제 마을 앞 고개를 넘어 길이 났습니까?”


“아마 5년 전일 걸세. 이 골에 토지가 있으이, 이사 갈 도리는 없었제. 나라 형편도 나아진 것인지 도로를 내 주대.”


결국 권중수 옹은 주검이 되어서야 이 고갯길을 밟고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단다. 그는 육, 칠 년 전에 대구로 나가 살다가 세상을 떠난 지가 아직 3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죽어서나마 그가 원하던 길을 밟을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일 터이다.


사진 촬영을 부탁하니, 권오봉 할아버지는,


“벌에 쏘여 한 쪽 눈이 잘 안 나올 걸세만.”


그는 마당으로 들어서며 옷매무새를 바로 잡는다.




사람이 떠난 집은 홀로 허물어지네

권중수 옹의 7대 조인 권분선(權奮善)이 세운 금곡재(錦谷齋) 서당은 옛날에 비하여 상당히 퇴락한 모습이었다. 14년 전에도 퇴락하긴 마찬가지였어도 그땐 정갈하게 소제(掃除)가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돌보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권중수 옹의 집은 허물어지는 중이었다. 사람이 떠난 집은 홀로 외로운 날을 보내다가 지쳐 스스로 사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본채의 대들보는 무너져 내렸고, 그 당시 식구들의 사진들이 걸렸던 북쪽 바람벽은 흔적을 찾아 볼 길이 없다.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시절을 두고 담론을 나누었던 방엔 마른 쑥대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그 곁에선 남은 살림살이들이 곰팡이 냄새를 풍겨대며 썩어가고 있었다. 그마나 문설주에 주인의 문패가 남아 이 집의 내력을 전해 줄 뿐이다.


마당에는 쇠사슬에 묶인 개 두 마리가 길손을 향해 간단없이 짖어댄다. 폐허의 마당 가운데에 버려진 옹기독 둘이 마치 부모 잃은 오누이처럼 슬프고 외롭다. 그 곁에 되똑하니 선 애기똥풀 하나, 그 또한 외로움을 견뎌내느라 힘겨워 했다. 담장머리의 감나무만이 홀로 무성한 잎사귀를 하늘에 띄워놓고 오월 상큼한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그의 아래채는 본채에 비해 퇴락의 정도가 덜해 보였지만, 곧장 허물어질 듯 위태롭게 서 있다. 고샅 쪽으로 난 뒤주의 벽채만은 14년 전의 형태를 온전히 지니고 있을 뿐이다. 사람의 냄새가 집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집의 생기도 서서히 사위어지는가 보다. 사람도 이와 같아서 세상의 냄새가 싫어질 때, 생명의 끈을 놓아 버리는 건 아닐는지.




농사 지 봐야 지자리 걸음

낡은 집 마당엔 웬 보트 한 척이 정박해 있다.


“웬 보트이지요?”


당파를 뽑아들고 가던 아주머니는,


“오씨네 것이지요?”


농사철에만 안동에서 이 마을로 드나들며 농사를 짓고 있다는 그 오씨네 보트였다. 호수가 말라, 보트가 제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단다.


나는 엉거주춤 그녀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섰다. 엉거주춤 서 있는 사나이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네는 그녀의 마음이 살갑고 커피만큼이나 따뜻했다.


“아줌마네도 들락거리며 농사짓습니까?”


아니란다. 자신은 안동에서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아들을 돕고, 일철에 들어와 농사를 짓지만, 남편은 여기서 농사를 짓고 산단다.


“전지를 비워 둘 수는 없지요. 일만 평이나 넘는 땅을 어찌 놀려요.”


전지가 많아 수입이 좋겠다니까,


“농사 지 봐야 지자리 걸음이래요. 애만 먹지. 그나마 담배 농사는 괜찮지만.”


자신은 한사코 ‘뺄가’라고 소개한 최씨(58) 아주머니는 호숫가에도 땅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수몰지다. 수몰지이지만 엄연히 세금을 내고 농사를 짓는데, 물이 들면 폐농하고 말 뿐이란다.


“되든 안 되든 그 땅에 콩을 심지요. 물 들어 버리면 세금 내고도 보상은 없어요.”


“많은 농사를 두 분이 어찌 다 지으세요?”


“기계가 짓고 돈이 짓지요 뭐. 한창 밥 할 때는 여남은 명은 우습게 넘어가요. 그러자니 돈만 죽어 나가제”


세상이 뒤집어져도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뺄가’ 아주머니는 걱실걱실한 성격인 듯 풀어나가는 말솜씨가 시원스럽다. 


“근나전나 길이 나서 안동 행보는 쉽겠네요?”


“5년 전에 앞산으로 길이 나긴 했지만 겨울이면 길이 막히고 말아요. 그래서 겨울이 오면 어옐꼬 합니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도 안 터지는 마을이었다. 눈이 와서 쌓이는 날엔 물길도, 산길도 막혀서 기가 막힐 노릇인데, 말 길까지 막힌다. 이런 걸 두고 설상가상이라 하는 모양이다.




마을에서 만난 잘생긴 농부 태흡씨

마을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수박 순 자르기가 한창이었다. 누구냐고 다그치는 주인에게 말을 건네자 오히려 그가 말문을 닫아버린다. 순 자르는 모습을 잠깐 살피곤 그 비닐 속을 싱겁게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최씨 댁을 들렀다. 논일을 나갔던 남편 권태흡(63)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객지 생활 30년에 외국까지 나다니면서 안 해본 일이 없다는 태흡 씨는 썩 잘 생긴 사람이었다. 14년 전에 만났던 권종우 옹의 아들인 그는 마침 베티마을 사람, 신승달(60)씨의 힘을 빌려 논을 삶고 오는 길이었다.


“내 집을 찾은 손님들인데 커피 한 잔 타오게 이 시람아.”


이미 커피를 얻어먹은 뒤라서 대신 내온 달걀을 먹으면서 공치사로,


“너무 잘 생기셨네요. 아마 아줌마가 반하신 것 같습니다.”


“두 번 잘 생겼더라면 절딴 날 뻔하겠네.”


최씨가 싫지 않은 웃음으로 말을 받아 넘긴다.


많은 농사를 감당하느라 힘들겠다니까, 태흡 씨는


“되는 대로 하지, 남 하는 대로는 나는 못해요.”


하고 겸연쩍어 한다.


“저이는 농사에는 두대바리지요 뭐.”


“농사가 손에 맞지 않은 것은 사실이제.”


그래서 그는 이앙기를 가지고도 논을 삶기 위해 재 너머 신승달씨를 부른 것이다.


“여보게, 한 마지기에 얼마로?”


“주는 대로 받지요 뭐.”


“백만 원 주면 다 받나?”


“그럼 받지요, 안 주면 안 받고”


“오냐, 그라먼 내 알아들었다.”


태흡씨는 팔만 원을 신씨에게 건넨다.


“적으면 적다고 하게.”


신씨는 말없이 그냥 받아 넣는다. 두 사람 사이의 셈은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끝이 났다. 두 사람은 담배 농사에 대하여 말들을 두런두런 이어나갔지만, 내가 끼어들 계제는 아니었다. 커피와 달걀로 포만감을 느끼며 고샅으로 나와 서는데, 예의 그 짙은 풀냄새가 후각을 풍요롭게 자극한다.






살고 죽는 건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다시 권오봉 옹을 만난 것은 정확히 동구 밖이었다. 그는 그 동구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의 흰 옷자락으로 오월의 가냘픈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만나자말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뜸,


“노 대통령이 죽었어.”


했다.


“노태우가요?”


“아니, 노무현…….”


“누가요! 노무현 대통령이요? 왜요?”


“자살했다네.”


그는 멍하니 먼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무슨 비보인가. 이 어인 청천벽력인가.


저간의 사정을 두고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다가도 내 좁은 소견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노인네가 노망을 했나 싶었다. 그러나 그는 노망 든 늙은이가 아니었다.


차는 고개를 밀고 올라가는데, 마음은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느닷없이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분노와 두려움이 폐부 깊은 곳에서 울컥 치밀어 올랐다. 지금 이 나라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깊은 숨만 쉬어질 뿐이다. 고갯마루에 피어난 보랏빛 야생화가 이토록 처연할 수가 있는가. 2009년 5월 23일을 태양의 황도(黃道)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분명히 살고 죽는 건 자연의 한 조각 사건일 뿐이다. 모든 건 운명이다. 정말 후인(後人)이 경청해서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말이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 아니던가.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이 져야할 짐이 너무 무겁다.


제발 갈리고, 찢기고, 서로 치고, 서로 박지 말자. 우리는 지금 무얼 바라 창천(蒼天)에 돌을 던지는가. 누가 누구에게 돌은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성을 지닌 인간이고, 우리는 하나의 피를 지닌 배달겨레가 아닌가.


우리 겨레는 절체절명의 위기 때마다 스스로 대동 융합을 도모해 온 민족이다. 지금 우리는 우상의 그늘에 매몰된 집착과 편견을 허물고 화쟁(和諍)의 세계로 서둘러 나아갈 때이다. 그리함으로써 혼융 일체의 힘을 만방에 힘써 보여 줄 일이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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