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구 만들기 30년, 미광공예사 최화섭씨(글/이미홍_객원기자)

전통 목공예가구 만들기 30년

안동에서 전통 목공예가구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최화섭’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통 수공예가구 만드는 걸 고집해 그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전문가라는 것이었다. 최화섭씨를 만나려면 미광공예사 작업실로 가라는 말에 태화동에 있는 가구공장으로 찾아갔다. MBC방송국에서 좌회전을 해서 안동공고에서 시내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골목 안 산 밑에 공장이 있었다. 


미광공예사는 공장 간판이기도 하면서 가게 간판이기도 하다. 화섭씨가 만든 가구를 전시해 파는 가구점은 태화삼거리 지나서 KBS방송국으로 올라가는 길목 입구에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업하는 공장이 가구 판매하는 가게하고 붙어 있었는데 세를 올려 달라고 해서 공장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공장에는 화섭씨와 같이 오전 작업을 마치고, 가구를 전시해 놓고 파는 가게에 나갈 준비를 한 부인 조분이(집 이름은 민이)씨가 나란히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릴 때 앓았던 소아마비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앉아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은 화섭씨는 작업대 옆 둥근 탁자가 있는 바닥에 앉아 자그마한 체구에 담배를 태우고 있었는데, 연장을 만져서인 듯 굳은살이 베긴 손이 인상적이었다. 화섭씨의 자그마한 체구와 반대로 분이씨는 그 나이 또래의 여자치고는 키도 크고 목소리도 시원시원했다. 조용하니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을 하는 화섭씨에게는 아닌 듯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분이씨였다.




열아홉에 독립, 믿은 건 손재주 하나

화섭씨는 살아오면서 스스로 참으로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을 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는 장애가 있다고 부모나 형제들에게 기대어 살려는 생각이 없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고. 나이가 들자 스스로 자신이 살 길을 찾아 나섰다. 열아홉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형님 형수님 밑에서 있다가 화섭씨는 독립을 했다.


화섭씨는 어릴 때부터 나무를 만지며 놀았다. 나뭇가지를 깎고 다듬으며 놀다가 지게며 쟁기를 만들었다. 솜씨가 야무져서 동네 어른들도 보고 마음에 들어 좋아했다. 어머니는 ‘저 놈은 손재주가 있어서 어디에 갖다 놓아도 밥 벌어 먹고 살 거라’고 하셨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있어서 나무를 가지고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스물여섯 살 때 안동재활원에 관해 듣고 목공기술을 배우려고 직접 찾아가서 입소를 신청했다. 재활원에 있으면서 장애인 판정을 받아서 의료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목공에 관한 기본적인 기술들도 배웠다.




펜팔로 맺어진 부부 인연

당시 안동재활원에서는 장애인들에게 목공기술을 비롯한 기술교육과 더불어 원생들에게 재활의지를 북돋워주고 재활원에서 배운 기술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서 정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었는데, 원생들에게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당시 ‘내일은 푸른 하늘’이라는 장애인을 위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장애인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최화섭씨도 그 코너에 소개가 되었다. 그 방송을 전라도에 사는 순진한 처녀 분이씨가 듣고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편지를 한 두 차례 주고받은 뒤 분이씨는 안동으로 오는 시외버스를 탔다. 오랜 시간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별별 생각을 다했다고 한다.


그리고 화섭씨를 처음 봤을 때 분이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라디오에서는 그냥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열심히 기술을 배워 익힌 마음씨 착한 청년이라고 했고, 편지에서도 자세한 말이 없었기에 분이씨는 화섭씨가 그렇게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일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탓이었다. 그냥 이대로 돌아서야 되나 어쩌나 망설이다가 다방엘 따라 들어갔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마음이 약해져 어쩌다 보니까 어느새 재활원에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재활원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면서 분이씨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분이씨는 차마 매정하게 화섭씨를 외면하고 돌아서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깜깜해지는 거야. 이대로 돌아서서 가버릴까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럼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벌 받을 것 같은 거야. 장애인인걸 알고 내가 편지에 썼던 내용들이며 다짐들을 믿고 있을 이 사람에 대한 신의랄까, 이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랄까 그런 걸 생각하니까 차마 발길을 돌릴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이 사람을 따라 간 거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러브레터 작문솜씨

그러니까 화섭씨가 편지에 쓴 구구절절한 말들에 마음이 움직여 안동으로 오는 버스를 탔던 분이씨는 자신이 편지에 쓴 말 때문에 발목이 스스로 잡혀 화섭씨 옆을 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순수했던 분이씨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살면서 화섭씨의 작문 실력을 살짝 의심하게 된 분이씨는 혹시 그때 그 편지를 같은 방을 썼던 두 친구 중에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화섭씨를 추궁했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절대 아니라고 부인을 하고 있다. 글씨도 다르다는 분이씨의 추궁에,


“아니라니까! 내가 작업하다 기계에 손가락을 다쳐서 글씨를 잘 못쓰지 그 편지는 내가 직접 쓴 거라니까. 그때만 해도 내가 어디 가서 말이나 글로 안 졌다니까.”


라며 끝까지 억울하다는 화섭씨다. 그러자 분이  씨가 한 마디를 더 한다.


“그래도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어. 그것 때문에 신뢰감이 약간 떨어졌지만, 그런들 어떡해?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까 됐지 뭐. 술만 덜 먹으면 되는데……”


분이씨가 가게로 나간 후 화섭씨에게 분이씨를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물었다. 펜팔이 여러 군데서 왔고 그 중 몇 사람은 안동까지 와서 만나기도 했다고 했다. 그중에는 화섭씨 맘에 들어 얼마동안 연애를 건 아가씨도 있었다. 그렇지만 부부의 연은 정말 따로 있는 게 맞는지 양쪽 집안에서 다 안 좋아했지만 결국 끝까지 자신의 옆에 남아 있어 준 분이씨가 고마워 분이씨와 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화섭씨가 서른하나, 분이씨가 스물여섯 살 적 일이었다. 이쪽에서는 전라도 아가씨라서 반대하고, 저쪽에서는 장애가 있다고 반대했다. 분이씨 부모님의 반대가 더 심했을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 그래서 두 사람은 간단하게 식을 올리고 살림부터 차리고 살다가 나중에 찾아가서 용서를 받았다고 했다. 마음고생, 몸 고생 많이 시켜 두고두고 아내에게 미안했다고 했다.




목공예 명장 김완배 선생에게 배운 목공기술

화섭씨가 재활원에서 목공부장을 맡고 있을 무렵 김완배 선생이 재활원에서 원생들에게 목공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화섭씨가 목공 일을 하는 것을 지켜본 김완배 선생이 그의 손재주를 인정한 것이 인연이 되어 화섭씨는 재활원에서 나와 김완배 선생의 공방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재활원에 들어가서 목공예 반에 들어갔는데 그때 재활원에서는 하회탈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서 다들 탈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남들이 다 만드는 탈 보다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재활원에서 나와서 김완배 선생님 밑에서 일을 하게 됐을 때, 선생님한테 말을 해서 본격적으로 가구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지요.”


김완배 선생 작업실에서 일을 하면서 화섭씨는 전통 목조 가구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를 하며 가구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데 힘을 쏟았다. 선생이 지시한 일을 하는 틈틈이 어깨너머로 나무 다루는 법이며 작업 공구들을 쓰는 법들을 익혀 혼자서 연습을 하며 직접 소품 가구들을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가구들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 둘 사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밤낮으로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전까지는 남의 공방에서 시키는 대로 작업을 하다가 그때부터 제 작품을 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제 작품을 사 주는 게 좋아서 오전에는 공방 일을 하고 오후 늦게부터 밤 12시까지는 내 일을 했어요. 주문 받은 가구도 만들고 여러 가지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을 만들었어요.”


날밤을 꼬박 새우고도 힘든 줄 모르고 신이 나던 시절이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그 즈음의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내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알아주고 사 준다는 기쁨에 정신없이 일을 했다.


그러다가 차츰 차츰 가구 주문이 늘어나면서 화섭씨는 미광공예사라는 간판을 걸고 독립을 했다. 밀려드는 주문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었지만 내가 만든 가구를 내 가게를 내서 팔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만 했다. 그때는 가게 옆에 가구 만드는 작업장이 딸려 있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호기심에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목공이나 가구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작업장 안에까지 들어와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다 단골이 되기도 했다.


그때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박영한씨다. 법원에 다니는 박영한씨는 목공에 빠져서 집안에 작업장도 만들어두고 가끔은 지인들에게 주문을 받아서 간단한 장식장도 짜주는 반목수장인데, 미광공예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 전에 있을 때부터 알아 지금까지 20년째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작업장을 옮기면서 분이씨는 더 바빠졌다. 아주 힘든 일은 사람을 쓰기도 하지만 웬만한 힘쓰는 일이나 화섭씨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은 분이씨가 오전에 같이 작업장에 있으면서 반은 보조를 한다.


“이것저것 힘쓰는 일까지 하다보니까 내가 여잔데도 이렇게 남자처럼 살잖아. 여자의 길을 포기하고 사는 거지.”


덤덤하게 말하는 분이씨의 말 속에 화섭씨에 대한 정이 묻어난다. 


언젠가 분이씨가 외출을 하고 없을 때 화섭씨가 혼자 작업을 하다 기계에 손가락이 다 잘려나간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쓴다. 급하게 잘린 손가락을 주워들고 가 붙였지만 전처럼 자유롭지 못해서 기계를 만지는 작업을 할 때면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가 옆에서 아무리 잘 해준다고 해도 본인이 얼마나 불편하겠어. 그리고 한 번은 술 때문에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고, 참 죽을 고비 여러 번 넘겼어. 손 다치고 일 년 정도 일을 못했는데, 그때 아프기도 많이 아프고 마음고생도 많이 했어. 그런데 한 일 년 지나니까 차츰 적응을 하더니 일을 하더라고. 지금 가게에 전시해 놓은 것들 중에도 손 다친 후에 만든 것들이 많아.”


라며 말을 아꼈지만 다친 손으로도 그전처럼 꼼꼼하게 가구를 만들어내는 화섭씨를 보며 분이씨가 얼마나 감사하고 좋아했을지 짐작이 간다.    


가게에 나갔다가도 화섭씨가 호출을 하면 수시로 왔다 갔다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힘든 일을 해주던 총각이 요즘은 바쁘다고 안 와서 오늘 주문해 놓았던 오동나무가 택배로 오는데, 분이씨는 무거운 오동나무 내릴 일이 걱정이다. 택배 아저씨한테 부탁해야 하나 어쩌나 하고 있는데 빨간 승용차 한 대가 공장 앞에 선다. 마침 잘 왔다며 부부가 반색을 해서 알고 보니 화섭씨와는 형님 아우하며 지낸다는 박영한씨가 모습을 보인다. 10년 전 가게 주인이 전세금을 500만원 올려 달라고 하는데 돈이 없어 애태우는 화섭씨를 보고 영한씨가 선뜻 500만원을 융통해 주었다. 그 대신 화섭씨네 작업장에 있는 공구들이랑 기계들을 빌려 쓰기로 했다. 그 일을 계기로 서로 가깝게 지내다 보니 이제 서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분이씨가 한 걱정 던 표정으로 온 김에 기다렸다 오동나무 좀 내려주고 가라하니 두 말 없이 그러마 한다. 가게 열 시간이 지나 가게 문을 열기 위해 나서며 당장 현금이 없다고 택배비까지 부탁하는 분이씨다.


영한씨는 화섭씨한테 누가 좀 다듬어 달라고 하더라며 가지고 온 도마를 익숙하게 기계를 사용해 테두리를 다듬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가구를 만들어 보니까 가구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손이 가는지 알겠다며,


“이 전통 고가구를 만든다는 게 참 공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에요. 공들인 만큼 좋은 가구가 나와요. 이 불편한 몸으로 그 많은 공정을 일일이 손으로 해서 가구 한 점씩 만들어 내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 와서 만드는 걸 직접 지켜보면 고가구가 비싸다는 말이 안 나올 거예요.” 


라며 옆에서 지켜보는 안타까움을 이야기했다.


조금 있자 택배차가 왔다. 영한 씨는 익숙하게 택배 기사와 함께 무거운 오동나무를 몇 차례에 걸쳐 다 나르고는 택배비를 계산하고 잠깐 볼 일 보러 나온 거라 사무실에 들어가 봐야 한다며 급하게 나섰다. 지금의 이 공장부지 자리도 화섭씨네 사정을 잘 아는 박영한씨가 다리를 놓아준 거라고 한다. 화섭씨 부부한테는 정말 고마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분이씨가 질색하는 일요일의 술자리

화섭씨네가 지금 살고 있는 옥동에 아파트를 마련한 게 지금 스물일곱인 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쯤이었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세를 살면서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고생도 많았다. 사람이 살아보면 다 마찬가지겠지만 사람마다 다 천차만별이라지만 참으로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났다고 했다. 딱히 장애인이라서 차별을 받거나 무시를 받았다고는 할 수 없다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짐작 못 할 일일까? 분이씨야 질색을 하지만 일 끝나고 걸치는 한 잔 술은 그런 화섭씨의 속을 달래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집에는 시중에서 파는 가구는 하나도 없어요. 농이며 문갑이며 탁자며 책상이며 하나하나 일일이 다 내 손으로 만들었어요. 내가 이걸 만들고 있어서가 아니라 고가구는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어서 집안에 두고 쓰면 쓸수록 정이 가고 윤기가 나요. 일반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가구와는 달리 원목으로 만들다 보니까 쓰면서 틈이 갈라지거나 뒤틀림이 있거나 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가지고 오시라 해서 틈이 갈라진 건 메워주고 뒤틀림도 잡아주고 하지요. 그런데 그 뒤틀린 걸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쓰고 오래오래 물려가면서 쓰는 게 또 고가구의 매력이지요.”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서 주문이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화섭씨는 하루도 일을 쉬지 않는다. 주문이 없을 때는 잘 나가는 가구들을 미리 만들어 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공장에 나와서 작업을 하고 일요일 하루는 쉰다. 일주일 내내 공장에서 톱밥과 나무 먼지 속에서 가구와 씨름하다 일요일에 친구들 만나서 술 한 잔 하는 게 화섭씨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술 때문에 몇 차례 병원 신세를 진 그의 건강 때문에 분이씨의 잔소리가 끊일 날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화섭씨는 몸에 안 좋은 줄 알면서도, 분이씨의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일요일이면 한 잔 술을 포기하지 못한다.




물어물어 일부러 주문하니, 몸은 고되도 힘나지요

가구를 만드는 사람도 많고 전통가구를 판매하는 전문공방도 많지만, 화섭씨처럼 제대로 된 개목을 써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전 과정을 일일이 수공예로 전통가구를 만드는 이는 드물다. 값싼 중국산이나 베트남산을 들여와서 전통가구라고 팔거나 값싼 자제를 사용해서 모양만 그럴싸하게 흉내 내서 비싸게 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화섭씨가 만든 가구는 화려하지 않는 대신 소박하고 단단하다. 그래서 화섭씨가 만든 가구를 하나라도 사 가지고 간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가구가 주는 매력에 빠져 단골이 된다. 장식 겸 거실에 둘 사방탁자를 사 간 사람이 다음에는 3층 문갑장을, 또 얼마 있다가는 반닫이 함을 주문하는 식이다. 오래 두고 쓸수록 소박하고 은은한 가구에 집주인의 손길이 더해져 윤이 나고 품격이 더해지는 전통가구 때문에 집안에 있는 다른 가구들이 상대적으로 죽어 보인다고, 여유가 생기면 하나씩 하나씩 집안을 화섭씨가 만든 전통가구들로 바꾸어 가는 사람들도 있다. 


“작업장을 옮긴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아는 사람들은 물어물어 여기까지 찾아와요. 한 번 우리 고가구를 들여가면 대개들 단골이 되더라고요. 단골들은 주로 주문을 받아서 만드는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구미에서도 오고 대구에서도 오고 그래요. 내가 만든 가구를 좋아해 주는 그런 분들 덕분에 몸은 고되도 또 힘이 나지요.”




내 기술 하나로 밥벌이하는 자긍심, 변함 없어요

스물여섯에 재활원에 들어가 목공 기술을 배우면서 시작해 전통수공예 가구만을 고집해 온 가구장이로서의 인생이 어느새 30년이 넘었다. 서울에서 애니메이션 관련된 일을 하는 아들은 가끔 집에 오면 힘든 일이 있으면 거들기는 하지만 가구 만드는 것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고 일찌감치 선언을 했고, 자기 고집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아들이 대견해서 화섭씨도 굳이 아들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다.


오전에는 분이씨가 같이 작업을 도와주기는 하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로 요즘 재미를 붙인 기러기 같은 동물 소품을 만드는 자신만의 작업을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옮긴다든가 목재를 잡아준다든가 하는 보조적인 것들이고 가구를 만드는 일은 결국 화섭씨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다. 누가 있건 없건 그는 쉬지 않고 묵묵히 가구를 만든다. 사방탁자 하나를 만드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삼층장 같은 경우는 열흘에서 보름 정도 걸린다. 수없이 많은 시간들을 그는 이 조용한 작업장 안에서 땀을 흘리며 나무와 씨름을 하며 지냈다. 대패질을 하고, 끌을 파고, 문양을 새기고, 사포로 문지르고, 옻칠을 하며 보냈다. 조급해하지도 않지만 게으름을 부리지도 않는다. 하나의 가구가 다 만들어지면 곧바로 다음 가구를 만든다. 주문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주문이 들어오지 않으면 않은 대로 가구를 만드는 작업을 계속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만들어 두면 얼마 안 있어 가구 임자가 나타난다. 미광공예사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아니지만, 또 먹고 살만큼은 가구가 팔린다.


좋은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재료가 좋아야 한다. 좋은 나무가 우선이라는 말이다. 전통가구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원목이 아니라 개목을 쓰는데, 개목도 나무의 질이 천차만별이라 좋은 개목은 자연히 비싸기 마련이다. 비싼 재료를 써서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작품 하나를 완성하니 자연 완성된 가구의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가구가 워낙 비싸다 보니 사람들은 때로는 형편이 어렵다고, 때로는 안면을 내세워 가격을 흥정하기 마련이어서 제 값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가구 값을 터무니없이 깎아 때로는 나무 값만 주고 가는 이도 있다. 그가 만든 전통가구의 아름다움은 인정하면서도 거기에 깃들인 그의 정성과 혼을 제대로 쳐줄 줄 아는 이는 많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도 화섭씨는 그가 만든 가구를 알아봐 주고, 좋아해 주고, 사 주는 이들이 고맙다. 


내가 만난 화섭씨는 말을 꾸며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만든 가구도 화려한 꾸밈이 없이 소박하고 자연스러웠다.


“나는 살아오면서 내 스스로 장애가 있다고 주눅이 들거나 남을 원망하거나 비관을 하거나 한 적이 없어요. 늘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했고, 젊었을 때부터 뭐든지 할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도 내가 잘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면서 살았어요. 지금까지 나는 내 기술 하나로 먹고 살아왔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한테 떳떳해요.”


있는 그대로를 꾸미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 그가 우리에게 주는 말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분이씨가 지키고 있는 미광공예사에 들렀다. 화섭씨가 만든 3층장이며 문갑이며 서안이며 가구들이 단정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구석구석에 분이씨가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끼어 있었다. 그 사이에서 분이씨가 한국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라며 채색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게에 나와 있으면서 손님을 기다리는 짬짬이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는 이 시간이 좋다는 분이씨가 지키는 그 곳은, 지나다가 생각이 나거들랑 언제라도 들러 차 한 잔 하고 싶은 소박한 공간이었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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