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봉황사 가는 길(글/장완수_한국사진작가협회 안동지부 회원)

어느 날 갑자기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멈추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느새 성큼 온 가을을 맞이할 틈이 없던 차
전부터 별러 온 봉황사로 향한다.
수곡교 아래 펼쳐진 큰 못은 물을 가득 실어 넉넉하다.
그 높은 다리를 넘나드는 고추잠자리를 보니 분명 가을인가 보다.
드넓은 들판이 저 물속에 잠겼으니
옛사람들이 지은 수곡水谷이란 지명이 현세에 이르러 맞아떨어진 격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두개의 안내판이 나란히 자리하고
우측으로 지나 당산목과 정자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다.
화살나무는 어느덧 곱게 단풍에 물들어가고
지나가는 사람들 그림자조차 없어 적적한 봉황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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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수애 류진걸이 지었다는 수애당 담장너머엔
고개 내민 나팔꽃과
가지가 휘도록 열매를 실은 대추나무가 햇살을 즐기고 있다.
조선중기 이후 이곳에 터전을 잡은 전주 류문은
숱한 인재를 배출하였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과 실력,
그리고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천한 명문이었으니
이 또한 안동의 자랑거리가 아니겠는가.
다만 임하호 건설로
각종 문화재와 문중 대부분이 해평으로 옮겨 갔으니
이러한 사실들을 후대에 누가 기억이나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봉황사 주차장 코스모스가 나를 반긴다.




우백호가 좌청룡을 감싸안은 곳에 위치한 봉황사鳳凰寺는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영가지에 신라시대 고찰이라는 기록 외에 고증할 길이 없었다.
다행히도 1980년 사찰 옆 개울에서 아기산 봉황사 사적비가 발견되어 예전의 사찰 규모를 알 수 있는데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승당, 만월재, 범종각, 만세루, 천왕문 등 여러 채의 건물과
부속암자로 낙서암, 정수암이 있었다 하니 대찰이었음이 분명하다.
대웅전 추녀 아래 서있는 사적비와
최근에 뜻있는 신도들이 중건불사 시주비를 세운 것과 저절로 비교가 되니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의 때를 벗어보려 고승의 보음을 듣고자 하였으나 출타 중이다.
뭇 중생들의 몸부림을 잊은 듯 장독대 위 모과는 큼직하게 자라 봉황사의 가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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