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곱던 그 어느 날의 고치령에서 마락리까지(글/이동백_시인)
소백의 머리에 단풍이, 고치령 가는길
고치령의 가을빛은 시월을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시월의 고치령엔 가을빛이 곱다. 가을빛이 고운 시월에 나는 지금 고치령에 서 있다. 그 빛 사이로 돌배나무 그림자가 내 그림자 곁을 서성인다.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다. 사람이 그리운 것은 돌배나무 그림자뿐이 아니다. 몇 기의 장승이 그러하고, 성황당이 또한 그러하다.
고치령은 성황당 고갯마루이다. 이 당집이 언제부터 이 고개에서 사람을 그리워하며 서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인간 세상의 냄새를 짙게 맡으면서 풋풋하게 지금도 여기에 서 있다. 당집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진설된 제물 뒤편에 단종과 산신령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불조심’이라고 어설프게 쓴 종이가 영정과 나란히 붙어 있다. 1993년의 이 당집에는 분명히 ‘금연’이란 글이 붙어 있었는데, 세월이 ‘금연’을 ‘불조심’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단종과 산신령은 무심한 듯 유리 안에 갇혀 있다. 태백산은 단종의 영역이고, 소백산은 금성대군의 영역이라 했던가. 단종의 성황당은 고치령에서 태백산 쪽으로 기운 산발치에 서 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몇 기의 장승이 고치령을 지키는데, 장승의 모습이 어째 좀 꾀죄죄하다. 내 생각에 장승은 꾀죄죄한 가운데 좀 왁살스러운 모습도 지녀야 한다고 보는데, 그 왁살스러운 위엄이 좀 모자란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太白天將’, ‘小白地將’의 자격으로 이 고치령에서 길손과 어울리고 헤어진다.
고치령을 넘기 위해 우리는 단산면 금대리 삼거리에서 부석사로 가는 길을 버리고 마락리를 가리키는 길을 잡아든다. 길섶 붉은 사과엔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빛난다. 마치 예리한 칼날 같다.
“소백의 머리에 벌써 단풍이 드네요. 단풍도 이 가을빛의 조화 때문이겠지요.”
“사과에 부딪치는 가을 햇살은 어떻고. 이런 길이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는 풍광이야.”
“길은 아름다움, 뭐 그런 걸 배달하는 우체부인가 봅니다.”
“그렇지 못한 길도 있어.”
“……?”
“우체부처럼 길은 소통의 매신저이긴 하잖아. 요새 훤하게 뚫린 길을 보면, 물리적인 소통이 잘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연결성이 좀 좋아. 그러다 보니 작은 도시나 마을들이 죽어 버려. 향토성 짙은 문화와 삶은 사라지고, 마을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있단 말일세.”
“소통은 될는지 몰라도 진정한 통섭(通涉)이 안 된다는 말이지요.”
“문제야, 그 단절이.”
차는 어느덧 고치령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들어서고 있다.
“길이 좁아 차를 조심해야겠습니다.”
“좁다니, 넓은 게야. 이런 길에선 차를 버리고 걸어야 해. 이맘때쯤이면 쑥부쟁이나 구절초와 이야기라도 나누면서 걸어야 해. 걷다보면 깊은 골도, 짙은 숲도, 더러는 산 짐승도 만나고……. 숲의 냄새도 기막히지. 걷고 싶제? 인생길에 이런 멋진 길도 있어야지. 뻥뻥 뚫린 신작로는 이런 길에 견줄 게 아니야.”
“말하자면 젊은 길보다 늙은 길이, 격(格)이 높다는 말쯤이죠?”
“맞네, 언젠가는 이 길을 꼭 걸어볼 참일세, 자네도 함께 나설라는가?”
“그러지요?”
폐가를 지키고 선 무덤
산 그림자에 깊숙이 파묻힌 계곡을 끼고 울울(鬱鬱)한 수림을 뚫고 해발 780m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바로 고치령이다. 고치령 이정표엔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표지판이 붙어 있다. 남으론 좌석리, 북으론 마락리, 동으론 마구령, 서론 국망봉이다. 고치령은 경상과 충청과 강원을 이어주는 혈맥과 같은 길이다. 그리고 태백과 소백을 이어주면서도 태백과 소백을 엄격하게 갈라놓는 백두대간의 한 지점이다. 걸어서 등성이를 서(西)로 아득히 걸으면 소백을 만나고, 걸어서 준령을 동(東)으로 허위허위 넘어 가면 태백이 나서리라.
고개를 넘은 북사면의 길은 상당히 가팔라서 차는 속도를 늦추어 몸뚱이를 땅에 밀착시키고 앞으로 나아간다. 차는 사람을 생각하여 길을 더듬어 나아가는데, 사람은 주책이 없어 산 빛에 취하여 마음의 끈을 놓아 버린다. 시월 초입의 산은 가을빛을 어렴풋이 내보이고 있어 화려하진 아니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범상치 않은 격을 지녀서 사람 눈을 앗아간다. 그 어렴풋한 가을빛 틈서리에서 촘촘하게 꽃봉오리를 달고 피어난 보랏빛 꽃향유로 말미암아 골짜기가 화사하다.
자연이 주는 성찬에 마음이 한창 풍요로운데, 차는 허물어진 집 앞에 멈춰 선다. ‘새목’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엔 허물어진 가옥의 잔해가 잡초 속에 묻혀 있다. 우사가 딸린 외딴집인데 우사는 형해(形骸)만 남고 가옥은, 바람벽 한 쪽이 무너지다 만 슬레이트 지붕을 겨우 받치고 선 폐가였다. 폐가 후면에는 잘 다듬어진 무덤 한 기가 잔디를 깔고 앉았고, 전면에는 수세가 좋은 느티나 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느티나무 바투 다가든 곳엔 소백산 어느 어름에서 발원한 물줄기 하나가 동북 방향으로 깊숙하게 내닫는다. 폐가에서 물줄기를 건너면 바로 삼거리, 길 하나는 개울을 따라 소백산 골짜기로 들어간다. 우리는 마락리로 빠지는 길을 잡아서 길을 간다. 한 굽이 돌아 내려가는 곳에 또 다른 삼거리가 나선다. 지금은 묘목 재배를 위해 한 가구가 들어와 터를 잡고 사는 ‘큰터’이다.
나그네를 반기는 마주바위마을 진봉선 할머니
‘큰터’에서 평탄한 길을 좀 달리니, 마락의 중심인 ‘마주바위’ 마을이 그 모습을 들러낸다. 우선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마락 분교장이다. 운동장이랄 것도 없는 작은 공간을 거느린 교실 세 칸짜리 학교이지만 지금은 마락 청소년 야영장으로 그 이름이 바뀌어 있다. 1993년 기록에는 심신 수련장이니, 그 사이에 용도 변경 과정을 거친 모양이다. ‘옥대 초등학교 마락 분교장 : 1964년 11월 29일 개교하여 졸업생 147명을 배출하고 1991년 3월1일 폐교되었음.’이란 명문(銘文)이 새겨진 교적비가 이 학교의 역사를 간략히 전해 준다.
운동장 느티나무 밑 작은 의자에 몸을 맡긴 채 나그네를 반기는 진봉선(83) 할머니는 이 마을 주민인 김진철(70) 씨가 야영장을 관리한다고 귀띔해 준다. 그는 마침 출타 중이라 오늘은 만날 순 없으리란다.
“지끔은 하루에 팔만 원씩 받고 손님을 받고 있어요. 거기서 나오는 수입금은 마을 기금으로 써.”
마을이 위탁 경영을 하는 셈이지만, 당국의 간섭은 별로 받는 일이 없는 시설이다. 16년 전엔 폐허와 다름없던 학교가 지금은 말쑥하게 단장되어 있다.
커피 한 잔 낼 것이라며 할머니는 야영장에 바투 붙은 점방 집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시방도 점방 문을 열어 두지만 사 가는 이가 없다면서 할머니는 시큰둥해 한다. 할머니는 오히려 마당엔 널린 꿀밤에 관심이 더 가는 모양이다.
“꿀밤에 참밤을 넣어 묵을 쒀 먹으면 빛이 놀노름한게 그리 좋을 수 없고, 나긋나긋한 맛이 희한해”
입맛을 다셔가며 꿀밤묵을 시원하게 칭찬하다 말고 할머니는 어두컴컴한 부엌에 들어가더니, 커피 석 잔을 금세 타서 건넨다. 커피 타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할머니의 커피가 속에 들어가자, 시장기를 느끼던 가슴이 울렁거린다.
“점방은 잘 됩니까?”
울렁거리는 가슴을 다스려가며 물으니,
“시방은 안 돼”
“90년대 초에도 점방 문은 열어 두었지요?”
대답 대신에 진 할머니는 신산(辛酸)스러웠던 삶의 흔적을 더듬고 나선다. 할머니는 열일곱 어린 나이에 황보 진 씨에게 시집을 왔단다. 시집은 단산면에서 큰 부자였는데, 외동인 황보 씨가 한량이어서 그 많던 재산을 탕진해 버리자, 오십 년 전에 고치령을 넘어 이 마을로 들어와, 1남 6녀를 성가시켜 가며 이제까지 살아왔단다.
“여든 나이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젊어서 고생 모르고 사신 것 같은데…….”
“젊긴, 척추가 고장 나서 아들이 사는 원주 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온 지 얼마 안 됐는 걸.”
“그래, 바깥어른은 어찌 되셨어요?”
“그 한량끼로 한 세상 잘 놀다, 예순 넷에 저승 가셨어.”
할머니는 영감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하듯 한다.
“그늠의 한량끼 무세라. 사시장철 총 미고 다니며 짐승 잡고, 잡아도 집으로 가져오는 법이 없어. 자신이 술값까지 대어서 친구들에게 고기 멕이고 술 멕였지. 그러면서 노름방까지 들고 났으니, 하수분이면 머 하노. 그 좋던 살림 다 절딴내고 말았어.”
그러자니 자연히 살림살이는 물론 자식 키우는 일에도 관심이 없더란다.
“한번은 날개(이엉)을 잇는데. 그 일을 여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잖는가, 그래서 친구들이 영감에게 귀띔한 모양이야. 그래도 끔쩍 않고 한량질을 하더라네. 또 이런 일도 있었어, 쇠죽 좀 끓이라니까 아궁이에 장작 지필 생각은 서천이고, 소두배 장단을 맞추느라 여념이 없더라꼬, 그렇게 가잖은 양반이었어.”
어찌 들으면 이승에 없는 영감님에 대한 원망처럼 들리지만, 할머니의 그 이야기 속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스며 있다. ‘아들네에게서 겨울을 나기 위해 시월 금적께 마을을 떠난다.’는 할머니는 토종 벌 네 통에서 꿀 두 말을 떠서 재미를 좀 보았는데, 말벌이 설쳐대니 할 수 없다면서 파리채를 들러 메고 말벌 사냥에 나선다. 그 옛날 사냥 나서던 자신의 영감처럼 말이다.
마락리는 개울을 경계로 소백산 자락을 따라서, ‘칠목, 새목, 큰터, 마주바위, 셋밭, 법수, 도화’, 이렇게 일곱 뜸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서 고치령 가는 길을 따라 길게 펼쳐진 형상을 취한다. ‘마주바위’ 마을 앞을 흐르는 물은 가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맑고 꽤나 깊다. 이 개울은 경상도에선 유일한 한강 수계의 물줄기이다.
열세 가구가 모여 사는 동네엔 사람의 기척이 별로 없다. 1993년 스물여덟 나이에 마을 이장이던 신기원 씨도 마을을 떠나고 없다. 그 사이 사십 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지금 영월에 나가 산다. 소백산 국립공원 직원들이 쉴 참에 야영장 운동장에서 발야구를 하는 모습만이 가을빛에 그림자를 지을 뿐이다. 진 할머니 댁에 붙여 지은 민박집이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게 웅장하고(?) 산뜻하다. 돌로 벽을 만들어 지은 집에다 야외 발코니까지 갖춘 집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낌새는 느낄 수 없다. 비었나 보다. 외지 사람의 것이라 마을과 어울릴 수 없는 듯하다. 야영장과 노인정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민박을 한다니까 말이다.
어둔 마을, 찾는 이 없는 난고 문학관
비포장 길에 흔들리는 몸을 의지한 채 삼동의 삼거리로 나간다. 덜컹거리며 고추밭을 지나고, 메밀밭을 지나고, 옻나무 밭을 지나니, 삼거리의 뻥 뚫린 신작로가 나선다. 이 삼거리가 경상도와 충청도, 강원도를 갈라놓는다. 여기가 소위 한 말뚝에 묶인 소가 삼도의 풀을 모두 뜯어 먹는다는 경상도의 남대리 진때배기, 강원도의 원석리, 충청도의 의풍리 용담이 접하는 마을이다.
새 눈알처럼 반짝이는 기장을 풍구대로 부치는 일에 열중인 임병두(63) 씨는 일제가 삼도의 사찰(査察)을 위해 마락리를 경상도 땅으로 편입시켰다고 단언한다. 한 곳에서 삼도의 정보를 취합할 수 있으니, 일제로선 쾌재를 부를 만한 묘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락리와 남대리 사람들의 삶의 불편함은 어쩔 것이냐며 임 씨는 행정 구역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객지를 떠돌다 되는 게 없어 다시 들어와 가장 농사를 짓는다는데, 짙은 갈색이라서 기장이 기장 같지 않다. 기장 농사가 많다고 참견을 하고 나서니, “옛날에는 먹는 위주였지만, 지금은 돈이 위주입니다.” 한다. 그의 말씨는 강원도에 가까운 듯했지만 분명하지 않다. 그는 의풍엔 강원도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말씨도 강원도 것이란다. 기장을 건조시키는 터가 예전엔 삼도 사람들이 모여들던 장터였다는 말을 남기고는 그가 돌아선다.
그와 헤어져 잘 닦인 포도(鋪道)를 타고 난고 문학관으로 달렸다. 16년 전에 지프차조차 접근하기 쉽잖던 길이 산을 자르고 방축을 쌓아 훤하게 뚫렸다.
어둔 마을의 난고 문학관은 이 가을에 찾는 이가 별로 없다. 문학관 뜰에는 난고의 시를 새긴 돌들이 놓이고 폐포파립(弊袍破笠)의 난고 몇이 청동상(靑銅像)으로 섰다. 초가을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난고의 구릿빛 얼굴이 나그네의 마음을 저리게 한다. 한 시대를 역설적으로 살다 간 한 시인의 마음에 접근하기에는 어두운 나그네의 눈이 안타깝다. 방장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시인과 한학자와 국어 학자가 모여 난고의 한시를 바르게 번역해서 보여 주는 일이 시급하지 않는가. 여기 와서 김삿갓 시를 이해하고 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노 말이다.”
난고의 무덤은 마대산 골짜기의 언덕바짓길을 조금 올라간 산발치에 자리 잡고 있다. 무덤 앞에는 자연석이 상석으로 놓이고, 그 앞에 ‘詩仙蘭皐金炳淵之墓’를 새긴 석비(石碑) 하나가 서 있다. 묘역이 넓고 잘 다듬어져 있다. 골 안에 들어앉긴 했어도 양지녘이어서 겨울에도 햇살이 오랜 머물 자리이다.
화순 땅 어느 밭머리에서 시답잖게 식어버린 그의 주검을 기억하며 나는 절망한다. 삶은 찰나이거니와 죽음은 영원한 것을. 난고가 살아낸 육십여 년의 삶은 한갓 수유(須臾)에 불과하지만, 그가 죽어 누운 자리는 억겁일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는 결국 그의 죽음의 화두를 풀지 못한 채 돌아서는 발길이 쓸쓸하다.
내년 봄이 외로우면 걸어서 고치령으로
길을 되짚어 고치령에 이른다. 서쪽에 가 있던 그림자가 동쪽으로 기울고 있다. 당집을 찾아 사방을 향해 합장하던 이들도 떠난 고치령 성황당은 홀로 외롭다. 외로운 건 그뿐이 아니다. 우두커니 선 돌배나무도 외롭고, 고치령을 넘는 나그네도 문득 외롭다.
“봄에 여기 은방울꽃이 지천으로 피고, 돌배나무 흰 꽃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거든. 그때 고치령은 외롭지 않아. 그때 와서 오늘 짊어지고 가는 외로움을 훌흘 벗어버려.”
내년 봄이 외로우면 걸어서 고치령으로!
외로움을 희망으로 싸서 들고 고치령을 넘어 영남 땅으로 들어선다, 지금 나는.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