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발령 그 후, 10년차 교사 된 박명희 선생님(글/백소애_편집기자)

서부초등학교의 히메나, 박명희 선생님
문득 옛날에 봤던 외국 드라마가 기억난다. ‘맥가이버’ ‘전격Z작전’ ‘브이’ 등등. 그중 내가 제일 좋아했었던 드라마는 ‘캐빈은 열두 살’과 ‘천사들의 합창’이었다. ‘천사들의 합창’에 나왔던, 긴 머리의 다정다감했던 히메나 선생님은 늘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사랑으로 다독여주었다. 이 멕시코 드라마 속 선생님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이 등장하기 전까지 시청자들이 바라는 전형적인 선생님 상이 되었었다.


서부초등학교 별관 건물 4학년 교실로 들어서다 교실에 남아 있던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크고 또랑한 눈빛은 10년 동안 아이들에게 ‘데인’ 모습이 아닌 에너지가 충만한 눈빛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내내 천사들의 합창을 할 수 있게 해주었던 히메나 선생님처럼 초임발령 당시의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서부초등학교의 히메나, 박명희 선생님을 10년 만에 만나보았다. 그니는 세기말을 막 보낸 밀레니엄 시대인 2000년 봄 영남초등학교에 갓 부임한 새내기 교사였다. 당시 사랑방은 새내기 대학생, 새내기 교사, 새내기 부부 등을 이웃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선정해 그들의 젊고 활기찬 기운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때였다. 20대였던 그녀는 어느덧 세 살배기 아들을 둔 서른넷의 엄마가 되어 사랑방을 반겼다.


“제가 어떻게 인연이 되어서 사랑방에 나오게 됐잖아요? 그때 그 잡지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지인들에게 가끔 자랑도 하거든요? 저 같은 평범한 사람도 나왔다구요. 벌써 10년이 흘렀다고 하니, 기분이 정말 이상해요.”


 


첫 제자가 대학교 2학년
영남초등학교에서 꼬박 5년을 근무하고 지금의 서부초등학교가 두 번째로 부임한 곳이다. 영남초등학교 근무 시 첫 제자가 지금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가끔 군대 간 제자에게도 연락이 오고 반창회를 할 때도 선생님을 부르는 기특한 아이들도 있다.
“저는 그대론데 애들은 이만큼 성장해 있으니까 놀랍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요.” 


박명희 선생님은 2006년에 결혼을 하고 1년 뒤 아들 시윤이를 낳았다. 서울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남편 조지용 씨와는 현재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세 살 박이 아들 시윤이는 친정엄마가 돌봐주고 있다. 온혜초등학교 동창인 남편과는 몇 해 전 크게 유행했던 동창 찾기 사이트인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만나 5년간 연애한뒤 결혼을 했다. 어렸을 때 서울로 간 남편 지용 씨는 서울 토박이나 다름없다. 그녀가 남편에게 호감을 갖게 된 데에는 안동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이 없고 다정한 서울내기인 것도 한몫을 했다. 주말이면 서울로 초대해서 지방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각종 문화를 즐기게 해주어 감동시켰다며, 안동 촌사람이 서울내기의 세련됨에 아무래도 넘어간 것 같다며 웃는다. 회사 일에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어서 주말에 내려오면 피곤한 남편 대신 얼마 전 갱신한 장롱면허 10년 딱지를 빨리 떼버리고 능숙하게 운전을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언젠간 살림이 합쳐지겠지만 아직은 시윤이가 어려서 신중히 생각 중이다.
“육아문제가 제일 신경 쓰이는데, 아무래도 전 나쁜 엄만 거 같아요. 가까이 살면서 아이를 봐주는 친정엄마한테도 늘 미안하고 일에 바빠 아이한테도 미안해요.”


아이들과 함께 한 10년 동안 내성적이고 차분했던 성격이 변했다며 웃는다.
“아이들을 대하는 제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어요.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인데, 가끔은 저도 고함도 지르고 야단도 치곤 해요.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제가 내성적으로 앉아 있게 놔두질 않거든요.”


영남초등학교 시절 건물이 하나인 학교에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지내다가 별관까지 건물이 3개인 서부초등학교에 오니 그 규모면에서나 여러 가지 적응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었다. 초임 때 송두리째 영남초등학교에 애정을 바쳤다면 두 번째인 서부초등학교에서는 이제 업무에서도 아이들과의 관계에도 능숙한 교사가 되었고 내년이면 또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 한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일기장 대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하고 있는 일 중 하나는 일기장 쓰기이다. 하루에 30~40명의 일기를 읽고 답글을 달아주면 최소한 2시간은 걸린다. 아이들 하나하나와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일기장을 통해서라도 교감을 나누려 한다.
한때는 인권침해라는 말까지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사랑의 대화장’이다. 하루에 30~40권은 사실 무리여서 나름의 노하우를 익혔다. 남학생은 왕자님으로 여학생은 공주님으로 호칭해, 왕자님은 월수금 공주님은 화목토에 일기장 검사를 한다.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 습관적으로 답글을 쓸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마저 소중히 간직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도 반성하게 되고 아이들과 좀더 진솔하게 소통하려고 해요.”
때에 따라서 부모님도 보게 되니 생활지도도 자연히 된다고. 1년 뒤에는 아이들에게 책으로 묶어줄 수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추억이 될 것이라 믿는다. 가끔은 아이들이 일기장 앞에 ‘추억의 저장고’ ‘선생님과 나를 이어주는 끈’ 등 제목을 달기도 한다.


“어떤 분들은 4학년도 고학년인데 자기 주관적으로 해야지 자꾸 검사하면 아이들이 보는데서만 하지 평소엔 하지 않는다고도 하더군요. 제 생각에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어른들이 습관을 잡아줘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습관화되면 생각하는 것도 글 솜씨도 정말 달라져요. 요즘 아이들 중학교 2학년 정도만 되도 엄마 잔소리가 안 먹혀요. 그때는 일일이 체크하는 게 안 되지만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체크해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일기장과 함께 또 하나 변함없이 하는 일은 월별 으뜸 모둠을 뽑아서 상을 주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한 모둠에 스티커를 주는 것. 그렇게 상을 받으면 예전에는 아이들과 떡볶이도 먹으러 우르르 가곤 했었다. 으뜸 모둠으로 뽑히려고 아이들이 경쟁적으로 착한 일, 남을 돕는 일을 많이 하기도 한다. 지금은 아이들도 학원에 바쁘고 그녀도 아이가 있으니 예전만큼 쉽지는 않다. 영남초등학교에 있을 때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비빔밥 만들어 먹기, 팥빙수 만들어먹기 등을 하면 그런 작은 일에도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했다.
“시간에 쫓겨서 과외 활동을 못하게 되서 그런 여유가 없는 점이 아쉽긴 해요. 솔직히 아이들 기억에 오래 남는 건 그러한 과외 활동이거든요.”


말썽쟁이 녀석 “그냥 지나다 한번 들렀어요”
자아가 강하고 발달이 남다른 요즘 아이들에겐 사춘기도 일찍 온다. 기억에 남는 제자도 몇 있다. 반장을 하던 애였는데 교육대 나온 후 처음 교단에 서 의욕에 넘쳐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도입해 보았는데 나중에 만나 ‘선생님의 방식이 무척 기억에 남고 도움이 됐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렇게 말한 아이가 반듯하게 성장해갔을 때는 남다른 보람을 느낀다. 또 학교에서 소위 주먹 짱이었던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수업시간에 책도 안 펴고 반항의 눈빛을 보내던 아이. 교과서 펴라고 하면 없다고 하고 연필도 없다며 필기도 안하던 아이. 시내에 나가서 필통에 연필을 가득 넣어서 사다주니 한동안 얌전해지더니 또 그러길 반복해서 언쟁을 많이 했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졸업 후 학교에 찾아온 것이다.


“말썽도 많았고 저한테 혼도 많이 났던 아이였는데 한번은 자기 혼자 학교로 찾아 왔더라구요. 말은 지나가면서 한번 들렀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너무 기특했어요.”
아웃사이더에 거칠었던 아이에게 박명희 선생님은 ‘너는 천성이 착하니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얌전히 학교 생활하면 앞으로 멋진 사람이 된다’고 조언하니 말없이 고개 끄덕이던 아이였다.




타임캡슐 속 꿈이 이루어지는 교실
“이렇게 지내면서 타성에 젖어 갈까봐 제일 두렵지요. 학교에서는 학생에게 집에서는 남편과 아이와 엄마에게 좋은 아내와 좋은 엄마, 또 좋은 딸이 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아요.”
주변에서 아이들 잘 키우고 업무도 능숙한 베테랑 선생님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패기 넘치는 신규 교사들 보면 아이들과 호흡하는 모습, 모든 분야에 걸쳐 잘하는 모습이 부럽다고 한다. 본인은 지금 중간에 끼어 어정쩡한 게 아닌가 싶은 10년차 교사의 솔직한 고민이다.


그동안 운이 좋았는지 별로 힘든 점이 없었단다. 큰 탈 없이 잘 흘러 왔고 학부모들과도 아이들과도 물 흘러가듯 잘 지내왔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고,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교육현장에서 크게 깨닫고 있고 그건 박명희 선생님을 교단에 서게 하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도 노력해서 빵점은 있을 수 있지만 노력 않는 빵점은 용납할 수 없다며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는 그이다.


얼마 전엔 졸업생들이 중학생이 되어 찾아왔는데 키가 훌쩍 큰 녀석들을 보니 어째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학원 선생님들을 더 좋아하고 선행학습 등으로 학원에 더 몰두하는 아이들도 많지만 언제나 기본은 지식과 인성을 함께 가르치는 학교교육이라고 믿고 그래서 더욱 즐거운 학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박명희 선생님. 교실 칠판 위 타임캡슐에는 해마다 학기 초에 반 아이들 모두 자신의 다짐과 자신의 손바닥을 그려 넣는다. 학기말에 손가락 길이도 비교해보고 다짐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선생님은 그 꿈에 다가설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요즘 한창 다음 달에 있을 학예회 발표로 바쁘다. 반 아이들 모두 참여하는 멋진 난타공연을 준비 중이다. 작년에 한번 무대에 올려봤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쉽지 않음에도 동영상을 한번 본 아이들이 꼭 난타공연을 하겠다고 의욕적으로 나섰다.
인터뷰 내내 조잘조잘 아이들 소리가 운동장에서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가을이 영글어가는 학교에서 서부초등학교의 히메나 박명희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온 날, ‘천사들의 합창’의 라우라처럼 말해본다. “선생님 너무 낭만적이세요.”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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