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스키에서 깨달음을 얻다(글/박인수_본지 운영위원, 경희한의원 원장)

된장도 아닌 것이, 어떻게 먹는 음식인고?
추석을 보름정도 앞두고 특별한 선물 하나가 도착했다. 전주에 사는 전라북도 한의사회장님께서 보내주신 건데 파란 플라스틱 음식용기로 포장되어 있었고 꽤나 무거웠다. 뚜껑 위에는 큼직한 글씨로 ‘정성스런 음식이니 맛있게 드세요!'라고 적혀있었는데 ‘밥을 물에 말아 드실 때 그냥 드셔도 되고, 고추, 마늘, 파, 참기름, 통깨를 넣어 드시면 더 좋습니다.’ 는 간단한 설명도 곁들여져 있었다.


궁금하여 용기의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된장으로 보이는 것이 투명한 비닐에 들어 있었다. 전주라 하면 원래부터 음식으로 유명한 고장인데 이 선물이 그곳에서 온 것이고 더구나 정성스런 음식이라는 설명서까지 붙어 있으니 어떤 맛일까 잔뜩 기대 되었다. 비닐을 풀어보니 된장 같긴 한데 내가 알고 있던 된장과 달리 고운 연노란빛인데다 촉감이 꺼칠한 알갱이가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게 특이하게도 막걸리 같은 냄새가 풍겼다. 된장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이 요상하긴 했지만 원래 치즈나 김치 같은 발효음식은 삭히는 과정에서 홍어처럼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오래된 것은 발효하여 술맛이 나는 경우도 있는 터라 오히려 그런 것들이 세계적으로 더 유명한 음식인 경우도 있기에 이번 것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인가 보다 생각하였다.


일단 손으로 찍어서 맛을 볼까하였지만 잘못 취급하였다가는 상할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덮어두었다. 퇴근 후 그것을 식탁에 올려놓고 풀면서 아내에게 자랑했다. 아내는 냄새가 고약하다며 직접 만지는 것을 주저했는데, 내가 괜찮다며 맛보려하자 어떤 음식인지도 모르고서 무턱대고 먹으려한다며 말렸다. 나는 저녁식사 때 그것을 떠서 밥에 비벼먹고 싶었는데 아내는 기어이 못 먹게 했다. 마침 이틀 후에 제주도에서 회의가 있는데 그 회의에 전북회장님도 참석하실 예정이니 그때 만나서 제대로 물어보고 먹는 게 탈도 없을 것 같았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아내 말대로 원래대로 다시 싸서 곱게 모셔두기로 했다.


오이같이 생긴 참외 장아찌, 나나스키 소동
이틀 후 그분을 만나 추석선물로 좋은 음식을 보내주신 것에 대해 정중히 감사를 드렸다. 그분께서 대뜸 “맛있지요?”하고 물으시기에 실은 맛보지 못했다고 사실대로 말을 했다. 결례를 무릅쓰고 그때 보내 준 음식이 무엇이고, 어떻게 먹는 건지 여쭤보았더니 그분께서는 귀한 음식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아서 섭섭하시다는 표정으로 설명해 주셨다. 


그 음식은 ‘나나스키'라며 ‘울외'라는 오이같이 생긴 길쭉한 참외를 절인 장아찌로 전라도 지방에서 밑반찬으로 많이 먹는데 일본 말로는 ‘나라쯔께’라 한다고 했다. 선물로 보내준 플라스틱 용기에서 된장만 보았지 절여놓은 참외 같은 것은 보지 못했기에 혹시 선물이 바뀐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어 잠시 주저했다.


“참외는 못 보았고, 거기 노란 된장 같은 게 있던데 그건 어떤 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그분은 그런 내 질문에 의아한 표정으로 “꺼내보지 않으셨어요?”하고 되물었다. 된장 같이 보이는 것은 정종 술 찌게미로 나나스키를 절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니 나나스키를 먹을 때는 그걸 반드시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버려야 한다고 했다. 


아뿔싸, 나는 그때 나의 행동과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고 경망스러운지 후회했다. 그 안에 무슨 내용물이 담겨있는지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고서 정종 술 찌게미를 된장으로 알았던 것이다. 일단 맛이라도 봤다면 된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맛도 보지 않았고, 또 그 술 찌게미 안에 담겨있는 내용물을 확인이라도 해봤더라면 이런 실수도 하지 않았을 텐데 정말이지 이런 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술 찌게미를 전주에서 만든 특별한 된장으로 알고 먹으려고 했다고 솔직히 고백하자 그분은 재미있다며 큰 소리로 웃으셨다. 


전북한의사회 회장님께서 나나스키를 추석선물로 보내주신 연유는 이랬다. 그분의 가정에서는 오래전부터 나나스키를 주문하여 즐겨 먹었는데 나나스키를 만드시는 분께서 연로하신데다 건강마저 점점 나빠지고 있어 이제 얼마 후에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을 거라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차에 더 늦기 전에 지인들에게 그 특별한 맛을 보이고 싶어 추석선물로 돌렸다고 했다. 그 분의 정성과 마음에 참으로 감사했다. 내 변명을 들으신 그분은 자신의 설명이 부족한 탓에 그런 오해가 있었으니 괜찮다며 집에 가시거든 잘 손질해서 맛있게 드시라는 말까지 해주셨다.


 




배워서 알고 먹는 맛이란!
제주도에서 돌아와 아내에게 제주도에서 겪은 일을 재미삼아 이야기하고 나나스키가 어떤 음식인지 말해주었다. 아내는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된장으로 알고 먹으려고 했던 나를 놀리고는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나서 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다음날 저녁 퇴근이 가까워올 무렵에 아내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나나스키 하나를 술 찌게미 속에서 꺼내긴 했는데 생긴 것도 이상하고 물컹한 것이 너무 징그럽다는 것이다.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 대충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긴 했는데 먹어보니 너무 짜서 반찬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아내의 설명이 다소 장황하긴 했는데 결론은 자기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나보고 알아서 어떻게든 하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전화를 끊고 나서 정말 고민이 되었다.


나나스키를 보내준 분께 충분한 설명을 들었는데 그것으로 부족하여 이제 조리하는 법까지 재차 물어보려니 특별히 신경을 써서 보내주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내가 나를 끌어 부엌으로 데려갔다.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이기에 저렇게 난리치나 싶어 소매를 걷어 올려 부치고 플라스틱 용기의 정종 찌게미를 휘적휘적 저어 그 안에 들어있는 울외 장아찌를 찾았다. 걸쭉한 정종 찌게미는 어린아이의 용변과 같아 흡사 그걸 만지는 기분인데 거기서 정종 술 냄새까지 풍기자 비위가 상했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나나스키를 꺼내긴 했는데 울외라는 것의 형태를 모르다보니 반으로 잘라놓은 모양이 징그러웠고 촉감은 소금에 절여 놓은 생선을 만지는 듯 물컹물컹했다. 손에 뭍은 술 찌게미부터 대충 걷어 떼어내고는 울외장아찌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었다. 막상 씻어 놓긴 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내가 퇴근 전에 썰어놓은 것이 작은 그릇에 담겨 있기에 맛을 보니 하도 짜서 작게 썰어놓은 울외장아찌 한 조각으로 밥 한 그릇 다 먹고도 남겠다 싶었다. 그대로 먹을 수는 없겠고 정성들여 보내준 귀한 음식을 그냥 버릴 수도 없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우리부부는 나나스키를 썰어놓고선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고심을 하다 마침 성당에 다니는 교우 중에 음식을 잘하는 전북 정읍 출신인 여자분을 떠올리고는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다. 다행히도 그 분은 음식의 대가답게 나나스키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나스키를 다 보내드릴 테니 장만해서, 우리는 맛만 보게 조금만 주면 안 되겠느냐?”고 통사정을 했더니 그 분의 말이 그럴 일 없고 만드는 방법도 정말 간단하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서 일단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가져가서 다시 부탁해보자 싶어 그 분이 가르쳐준 대로 따라해 보았다.


먼저 물로 씻어 정종 찌게미를 제거한 울외 장아찌를 행주 짜듯 볼끈 짜서 소금기를 뺐다. 아내가 작게 썰어놓은 것도 두 손에 담고서 여러 번 짜서 짠 맛을 빼냈다. 소금에 절여진 울외가 짤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걸 깜빡하고서 물에만 씻은 상태로 너무 짜니 어쩌니 했으니 짜지 않은 게 정말 이상한 것이다. 아내가 썰어놓은 것을 다시 작게 썰고 길게 반으로 자른 것은 채를 썰듯이 얇게 썰었다. 참기름, 고추가루, 다진 마늘, 잘게 썬 파를 대충 적당량 넣고서 부드럽게 버무린 다음 통깨를 뿌려 마무리하니 그럴듯한 모양새가 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때깔이 너무 좋았다. 


보기는 그럴듯한데 과연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하여 손가락으로 하나를 집어먹었는데 입에서 새콤 달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정말로 기가 막힌다. 신기한 것은 단맛이 뒷맛으로 남는데도 그것이 오히려 깔끔하고 개운하다는 사실이다. 조리방법을 알려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분께 나나스키 몇 개를 덜어서 보내드렸다. 이렇게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겨우 나나스키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 상차림 메뉴에서 나나스키가 빠지는 법이 없다. 나나스키는 어떤 음식에도 잘 어울렸고 특히 큰 애가 맛있게 잘 먹는다. 나는 나나스키를 먹을 때마다 그것을 보내주신 분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나나스키 덕에 얻은 것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나나스키 덕에 얻은 교훈
‘만약에 내가 나나스키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지레짐작만으로 그걸 된장으로 알고 먹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정종 술찌게미를 된장으로 생각하고 밥에 비벼먹는다고 해서 우리가족의 건강이 잘못되기야 하겠냐마는 혹시라도 그 된장의 독특함을 자랑거리로 알고서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했거나 그것도 지나쳐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여 맛보게 한다거나, 그것도 부족하여 가져가서 드시라고 퍼주기라도 했다면 어찌되었을까? 그렇게 되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마터면 나를 아는 주위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나는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을 것이다.  반평생 넘게 살다보니 나 자신은 이제 웬만큼 알건 다 안다고 나도 모르게 어리석은 자만심에 빠져 있지는 않았나 반성해본다. 세상사를 열린 눈으로 큰 틀에서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아는 그 작은 틀에서 해석하려했으며 내 자신의 경험으로 체득한 어중간한 길이의 잣대로 남을 재단하려 한 적이 많았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제 입맛대로 해석하여 때때로 사실을 곡해하여 합리화시켰고, 전혀 모르는 것은 누가 상세히 가르쳐주지 않으면 알려하지 않고 찾아보는 것을 귀찮아하여 새로운 것에 대해 더 이상 배운다거나 알려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깨달아야했고 매번 배운다는 자세로 살아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는 옛 성현의 말씀은 나이도 어정쩡하게 들고 아는 것도 적당히 알아서 어설픈 나 같은 사람들이 반드시 마음 깊이 새겨야 하는 것임을 알았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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