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학원의 새 터전, 풍기 금계마을을 찾아서(글/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국문학과 강사)

1.
오늘은 소설가 성학원(본명:성호운 1922-1975) 선생이 영주농업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살았다는 풍기 금계리로 길을 나선다. 그는 1922년에 평안북도 박천에서 태어났다. 북한이 고향인데 공부는 서울로 유학 와서 했다. 혜화전문(현재 동국대)을 다녔고 졸업하고는 영주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6.25전쟁 전에 가족들과 풍기로 월남한 것 같다. 오늘 길을 나서는 풍기의 금계리는 월남한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만들어 사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소설가 성학원의 경우는 월남이라고 하는 까닭이 이상하다. 아직 전쟁도 일어나지 않은 시절이니 엄밀하게 이사한 것이 아닌가.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남북으로 왕래가 자유로웠을 것이니 말이다.


물론, 전쟁 전후의 역사를 자세히 보면 사회불안과 갈등이 심하기는 했다. 일제 식민지가 끝나고 손님처럼 찾아온 해방 때문이었다. 남의 손에 의해 주권을 회복한다는 것은 코미디이다. 대가 없는 일은 대가를 뒤에 남겨 놓았고, 남의 손에 조종당하는 우스운 역사를 겪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고 세기를 바꾸고도 지속되고 있다. 그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정감록의 예언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일제 식민지로 지친 삶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궁 앞에서 자식을 키우며 미래를 살아야했던 그들에게 삶의 자리는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땅, 안전하게 삶을 누릴 땅을 찾아 금계리로 온 것인가. 더구나 평북은 정감록에서 좋은 땅이 아니라고 지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2.
늘, 말로만 듣던 <정감록>에서 최고로 꼽는다는 길지, 풍기로 나선다. 풍수지리는 사람이 죽을 때 눕는 자리 정도로 알고 지내다보니 어떤 풍경일지 궁금하다. 또, 그곳에서 과연 좋은 땅기운을 느낄 수 있을지 오리무중이다. 아마 별로 알아채지 못할 게 뻔하다. 뭘 아는 게 있어야 보는 눈이 있는 법이다. 우리의 보금자리는 너무 제한적이다. 아파트살이에서 비롯한 문화 탓이다. 대체로 지어놓은 아파트의 인테리어와 크기 그리고 교통편의를 알아보고 결정한다. 그중 아마도 인테리어가 가장 중요한 선택조건이 아닐까싶다. 하나 더 보태면 브랜드이다. 어떤 회사 제품인가가 중요하다. 가만 보면 아파트도 대량 복제품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아파트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편리함에서 시작되었나.  


날이 맑아 하늘은 더 높아 보인다. 푸른 가을하늘 아래 황금들판은 눈부시게 빛나고 몇 점 구름도 이유 없이 곱다. 하늘이 푸르러 구름은 더 깨끗하게 보인다. 추석 전 햇살에 비해 그 강도가 옅지만 그래도 덥고 따갑다. 이 햇살에 황금들녘의 벼들이 익고, 콩들이 여물어가고 있을 것이다. 들판에는 허리 굽힌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가을걷이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인 날씨다. 과수원에는 아직 건재한 허수아비가 새들을 지켜보고 섰다. 서안동IC를 접어들어 여유롭게 달리니, 다른 차들이 추월한다. 추월이 더 여유를 부르는 건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다.
풍기IC를 나와 풍기향교가 있는 마을을 지나서 금계리를 찾았다. 이곳은 주세붕 선생 시절부터 인삼농사를 지은 시발지라고 한다. 최초 사액사원으로도 유명한 이분이 민생문제를 아주 지혜롭게 푸셨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촌장은 이상적인 마을을 이끄는 지도자인데 그 해결책으로 “뭘 좀 많이 먹여야지 돼”라고 딱 정리한다. 특정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 모두를 넉넉하게 먹이는 촌장의 능력과 가치관이 아름답지 않은가. 주세붕 선생의 지혜에 풍기는 인삼이라는 특산물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마을에 들어서자 인삼 찌는 냄새가 바람결에 묻어난다. 홍삼을 가공하는 집에서 나는 냄새다. 담을 넘은 감나무에서 홍시가 빠져도 손을 볼 겨를이 없다. 감이 떨어져 터진 자욱이 군데군데 많다.


마을회관을 찾아 어르신들을 뵙고 동네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가 성학원의 한 때를 상상해보려는 시도가 오늘 발걸음의 목적이다. 그런데 마을회관이 자물쇠로 잠겨 있다. 한창 인삼 수확으로 바쁘다는 것이다. 인삼축제가 이틀 뒤에 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연로하신 어른들의 일손이 필요할 정도로 바쁠 줄은 몰랐다. 이장님 말씀에 따르면 칠팔십 대 노인분들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일을 하신다고 한다. 마침 인삼밭에서 삼을 손으로 캐는 할배, 할매들이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보인다. 그 밭으로 가서 소설가 성학원 이름을 꺼내니 아시는 분은 아무도 없다. 성씨 성을 가진 분이 오래전에 영주로 이사를 갔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거의 칠십대 이상 어른이면 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이 마을은 특정 성씨의 집성촌이 아니어서 들고 난 관계를 알기에는 좀 곤란하다.


인삼밭에서 만난 할배의 소개로 강씨 할배를 찾기로 했다. 금계리 동네에선 시인으로 통하고 마을 역사도 잘 안다는 것이다. 더구나 윗대 어른이 북한에서 월남하셨으니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란 귀띔도 해주셨다. 그런데 인삼밭에 앉아 계시는 여러 어르신들이 한결 같이 피부가 곱다. 분이라도 다들 바른 것 같다. 도저히 뙤약볕에서 논일, 밭일 하신 어른들의 얼굴이 아니다. 인삼의 효능인가. 강씨 할배를 찾아 동네를 돌다가 우연히 골목에서 여든 넘은 할배와 만났다. 마침 그분도 당신의 조부대에 월남을 하셨다면서 금계에는 월남한 사람이 많다고 하시면서 특정 집을 알려주셨다.


반갑게 그 집을 찾아가니 마침 대문도 열려 있고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 한 대도 있다. 잔뜩 기대를 걸고 인기척을 하고 소리도 크게 냈지만 빈집이다. 강씨 할배 역시 집을 비우셨다. 다들 들에 계시는 거다. 한 두 집이 아니었다. 가을걷이로 얼마나 바쁜지 실감났다. 동네가 거의 비어 있는 거 같았다. 더러 집을 잠그지 않고 다니시는 분도 계셨다. 시골인심이 읽히는 대목이었다. 사과를 고르고 있는 중년 아저씨가 보여서 그리로 가서 동네역사를 물으니 전혀 모른다고 하신다. 다만, 낮에는 다들 들에 계실 거라면서 해가 져야 돌아온다고 알려주셨다. 이곳은 귀농하신 분도 많이 사시는 거 같다. 이장님 말씀에 따르면 금계리에는 빈 집이 한 집도 없다고 하신다. 요새 어느 시골을 가든 빈집과 묵밭이 있는 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인데, 길지라서 그럴까.


소백산 산자락 밑으로는 과수원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논이 펼쳐진 포근하고 조용한 동네, 아직 정감록의 세계를 믿으며 도사로 사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여든 넘은 할배 한 분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며 딱 잘라 말씀하신다. 혹시 삼가동 쪽에서는 있지 않을지 괜한 상상을 보태본다. 소백산 봉우리들을 뒤로 하고 금선계곡을 따라 마을을 이루고 앉은 폼을 마을 이장님이 일러주셨다.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의 금계바위가 마을 뒤에서 받치고 노인봉, 담뱃등, 도솔봉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다고 설명하신다. 동양대가 들어선 자리는 담뱃등인데 노인이 담뱃대를 들고 독수리를 쫒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 봉우리 아래로 동양대, 초, 중, 고 학교들이 나란히 병아리 마냥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마을 앞으로 600마지기가 넘는 들이 있고 소백산 봉우리 덕분에 태풍피해도 없고 큰 바람은 다 피해간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풍수지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좋은 동네라는 생각하게 된다.


 



3.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전하는 게 없다. 아마도 제자의 추억담이 소개된 정도이다. 성학원의 소설세계를 통해 그의 생각을 짚어보자. 성학원 소설 두 편 ｢길｣, ｢목향이 타는 세월｣의 주인공은 빛난다. 국가의 위기 앞에 뒤로 숨는 개인이 아니다. 당당히 앞으로 나와 국민의 의무를 수행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사람들이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만나기 매우 힘든 낯선 인물이다. 이들은 개인체험에서 익힌 불의를 참지 않고 정의의 길을 선택한다. ｢길｣의 경수, ｢목향이 타는 세월｣의 임춘근 등이 그러하다. 임춘근은 독립운동가로 해방의 그날까지 활동했고, 경수는 한국전쟁에 학도병이 되어 목숨을 잃어버렸다. 이들은 가족과 아내의 사랑도 잠시 뒤로 하고 국가의 이름으로 개인의 삶을 살았다. 국가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또는 가문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개인의 존재감, 구체적 일상 그리고 그 사소한 행복이 없이 국가의 이름은 가능한가.


｢길｣은 196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오래되지 않은 전후소설이다. 모든 전쟁문학은 반전에 목적이 놓인다. 물론 종군작가의 경우는 다르다. 특이한 개인체험을 통해 전쟁이 어떤 식으로든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길｣은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학도병 지원상황이나 전투장면에서 친구가 죽어간 장면 등이 묘사된 정도이다. 이것으로 미뤄보면 이 소설은 반전 보다는 전투상황의 구체적 묘사와 기술에 더 초점이 놓여있다. 작가는 전쟁이 지닌 야만성에 치중하기보다 전쟁상황 안에서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 집중해서 글을 전개시키고 있다.


｢목향이 타는 세월｣의 시대는 식민지에 맞춰져 있고 일제의 잔혹한 수탈과 억압을 주요 주제로 설정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빼앗아간 일제의 식민지 권력의 부당함, 해방 이후 남북으로 나뉘어 역사가 왜곡되는 현장의 전반부를 먼 거리에서 관찰하는 정도에서 이 소설은 마무리된다. 임춘근은 평생을 독립운동가로 살았으나 남, 북 어디에서도 그 공적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없다. 그저 노구의 몸을 외롭게 달래며 살아가는 정도일 뿐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월남한 독립운동가들의 존재가 역사 속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북한이 고향이거나 북쪽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행적과 공훈은 누가 찾아주고 기념해야 하는 것일까.


｢길｣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쓴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동원과 경수는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학과 동기생으로 만났고 하숙을 같이 하면서 매우 친해진다. 특히, 경수는 평양에서 대학을 다니다 남쪽으로 내려왔다. 아직 전쟁이 일어나지 않던 시절이라 남북의 왕래가 자유로웠던 것이다. 경수는 학교 안에 세워진 김○○동상 파괴사건에 연루되면서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해방 후 이데올로기의 갈등양상을 이런 사건의 묘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경수는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생각 때문인지 전쟁을 반겨했고, 친구 동원에게 학도병 지원을 적극 권유해서 함께 자원한다. 전쟁 자체를 반길 이유는 없었을 것이고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가 전쟁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전쟁을 피해 살면서 고향으로 가기보다 적극 참여하는 쪽을 선택한다. 대구에 있는 친구 동원에게 “피난보따리가 뭐야! 창피하게시리! 모두 함께 군대 입대하세.”라고 한다.


당시 학도병 사정이 어떤지는 여러 자료를 통해서 확인해보면 되겠으나 징집과 달리 자원은 매우 개인적인 선택이다. 오랜 식민지 체험이 스스로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당위성을 만들어내고 많은 양심있는 사람들의 내면을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외부적인 영향력도 없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경수의 학도병 지원 행동과 가정의 환경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경수의 아버지 임학준 옹은 식민지 당시 중국을 누비며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다. 15세에 결혼해서 17세에 상투를 자르고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스무 살 때부터 독립운동으로 종적을 감춰버린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고 그 무렵 경수가 태어난다. 그러나 경수가 태어나고 다시 집을 나가서 해방 후에 집으로 돌아왔으니 경수의 아버지는 국가의 안보를 위해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경수는 전쟁소식을 듣고 학도병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경수의 친구 동원은 고향이 안동인데 서울의 학교에서 만나 서로 친하게 된다. 얼마나 친한 사이였는가는 두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경수가 동원에게 학도병 지원을 함께 하자고 권유하는 장면이다. 단편소설이라 그 정황을 자세하게 풀어내지 않고 있으나 경수의 권유에 동원은 별 주저하는 마음없이 곧 승낙을 했다. 이런 면모는 전쟁 상황 앞에서 국민의 애국심으로 볼 수도 있으나 친구와의 우정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전투상황에서 경수가 보여준 행동이다. 영천전투에서 둘은 겨우 2주간의 훈련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전투상황에서 병사가 부족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학도병은 대체로 총 쏘는 법을 빠르게 익혔고 크게 실수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북한군과의 사격와중에 동원이 어깨총상을 입어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그걸 응급조처한 경수는 총탄이 쏘아지는 현장을 가로질러 의무병이 있는 곳으로 동원을 옮겨가려 한다. 지혈할 수 없으면 큰일난다는 것을 알고 용기를 낸 것이다. 동원을 부축해서 참호를 나와 의무병이 있는 곳으로 옮겨가다가 경수는 가슴에 총탄을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경수의 용기는 그의 아버지를 통해 유전되기라도 한 듯이 놀랍다. 포탄이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곳에서 친구를 위해 과감히 참호를 벗어났다. 이 자체가 거의 자살행위와 다르지 않다. 무모할 정도로 놀라운 용기와 희생정신이 바로 학도병지원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떳떳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인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동원은 경수의 죽음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는 죄책감으로 경수 아버지를 찾아간다. 경수 아버지의 비범성은 서슬 푸르게 빛난다. 아들의 전사소식을 이미 감지하고 미안하고 어려워서 말을 꺼내지 못하는 동원을 향해 대신 전사이야기를 할 정도이다. 전쟁 중에 군복을 입은 아들친구에게서 들어야 하는 소식을 먼저 마무리한 것이다. 평생을 식민지 극복을 위해 살아온 투쟁가답게 아들의 죽음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그도 아들 잃은 아비의 마음이 되어 숨을 거둔다. 임학준 옹은 동원에게 아들이 되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동원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목향이 타는 세월｣에서 주인공인 평안도 영감은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고 평생 제삿날이면 목향을 피워 그리움을 달랜다. 별명 그대로 고향이 북쪽이다 보니 언제나 혼자서 제사를 지내왔으나 이곳 낚시터를 자주 찾아가는 나는 우연히 이 영감의 제사에 동참하면서 과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호숫가에서 오두막집을 지어놓고 평생을 혼자 사는 어부 평안도 영감은 외로운 세월을 단 하나의 그리움으로 버티어왔다. 전쟁 후 월남해서 혼인도 하지 않고 적적한 삶을 꾸렸던 것인데 그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평안도 영감의 본명은 임춘근으로 어릴 적부터 독립군으로 북만주에서 활동했다. 독립투쟁의 배경에는 집안사정이 있다. 그의 아버지가 독립군 군자금을 대다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총살을 당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독립군에 뛰어들었다. 열아홉밖에 안된 소년이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일본경찰의 총탄을 맞았다. 회령 경찰서를 기습하다가 역습을 받게 되어 겨우 목숨만 건졌던 것이다. 다행히 북만주의 한국인마을을 찾아 숨어들었다. 여기서 마음 좋은 홍 노인을 만나고 그의 딸 옥이는 사랑하는 아내가 되었다.


혼인한 날 밤에 일본경찰은 임춘근을 찾아 기습했고 꼼짝없이 포박당했다. 이 광경을 본 아내가 숨겨둔 총을 들고 뒤쫓아 일본경찰을 쏘아 죽이다가 자신도 총탄을 가슴에 맞고 만다. 혼인한 첫날밤에 아내는 죽는다. 아내 역시 고향이 강계로 조선이 독립을 하면 고향에 머리카락이라도 묻어달라는 말을 남긴다. 슬픔으로 이성을 잃었지만 장인인 홍 노인이 장모와 임춘근을 데리고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백두산 밀림으로 들어간다. 임춘근은 그곳에서 독립군 활동을 다시 시작해서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 사이에 홍 노인 부부는 작고를 하고 임춘근은 고향 평양으로 돌아온다. 해방된 평양의 거리는 인심이 불안하고 옛날 같지 않았다. 북쪽은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식민지 이전의 고향풍경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던 것이다. “해방은 되었으나 피난민의 떼가 물밀 듯 밀려오고 소련군대는 과거 일본경찰 이상 행패가 심하였다. 만주에서 아편장사나 하고 돌아다니던 자들이 돌아와서는 독립투사니 애국지사니 자칭하면서 소련군대를 등에 업고 공산당을 조직하여 같은 동포들의 가슴에 총을 들이대고 피를 빨아먹는” 북쪽현실을 피해 월남한다.


작가는 남쪽 현실과 문제를 아예 배제하고 이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1969년에 발표된 것이니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남한의 미군정 이야기를 쓰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작가가 월남한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이 처한 현실을 고려한 소설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월남한 임춘근이 열심히 일을 해서 정착하고자 했으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자신 때문에 첫날밤에 불귀의 객이 된 아내를 평생 잊지 못해 혼자 노년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런 쓸쓸한 노인에게 나의 존재는 그 자체로 위로가 된 셈이다. 마침 내가 낚시터에 간 날이 노인의 아내 제삿날이었으니 우연의 일치였던 것이다.


평안도 노인의 생애는 우리 현대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고향인 평양의 부잣집에서 별 걱정없이 중학교를 다니다 비명에 돌아간 아버지를 보면서 독립군이 된 것인데 이때부터 평안도 노인은 우리 현대사와 마주하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온 몸으로 제국주의의 불합리, 부도덕을 극복하고자 애쓰면서 개인의 단란한 행복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면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져버린 인생이 된 것이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장가들어서는 아내를, 그리고 고향을 모두 잃은 사람이다.


일제식민지-단독정부수립-전쟁-분단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드라마는 개인의 삶도 역사의 진행과 무관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개인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전개되는 역사흐름 앞에서 의식 있는 개인의 희생은 얼마나 숭고한가. 그러나 또 그 숭고함의 깊이는 얼마나 가슴 아픈 비극인가. 역사의 아픔을 감당하는 개인의 선택이란 언제나 비장미가 넘치지만 단결된 개인들의 조직은 왜 그렇게 공고하지 못한가. 임춘근 혹은 평안도 노인이라 호명되는 이 주인공의 삶은 누가 위로해주고 격려해줄 것인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며, 한 여자를 사랑한 진정성을 어디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시간을 잃고 사람을 잃고 혼자 서성거리는 외로운 노인이 되어 있었다. 




4.
소설가 성학원과 안동의 인연은 그가 사범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안동사범학교는 1947년에 개교한 안동대학의 전신이다. 안동사범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경주여고로 전근을 가게 되면서 안동과의 인연이 다했다. 안동의 청소년 문학동아리 <맥향>은 성학원 선생의 지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의 문단생활은 거의 경주를 무대로 이어진다. 고무신 박종우 시인과 더불어 안동의 현대문학을 이끈 1세대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가 문단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작가들과의 교류 자체를 끊고 소설도 많이 발표하지 않은 점이다. 물론 당시 사범학교를 다녔던 사람의 추억에 따르면 대인관계가 원만한 편이 아니었다고 하나 이것으로 풀어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당시 병설중학교 학생으로 유명한 소설가인 성학원 선생의 뒷모습을 봤던 추억이 재미있다. 학교 운동장 탄지 주변에 있는 고목나무 껍데기를 유심히 뜯어보고 있어서 유명한 소설가는 저런 것도 자세하게 살핀다고 생각했었다는 기억을 얻어 들었다. 당신의 자존감과 자긍심은 대단했으며 괴짜, 기인의 풍모를 지녔다고 한다. 웃음도 거의 없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학생들에게는 공책정리를 제일 중요하게 가르쳐서 한번 공책검사가 괜찮으면 한 학기가 그냥 수월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공책정리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창작한 작품이 시원찮으면 집어던졌고, 마음에 들도록 잘 썼으면 “잘썼군”으로 끝났다. 선생의 안동사범 제자분들은 아동문학분야에 이름이 저명한 분들이 많다. 이분들께 일화 하나씩만 얻어 들어도 글이 넘칠 것이다. 또, 본격적인 문학활동기라고 할 수 있는 경주문단의 선, 후배와 제자들의 이야기도 남아 있다. 그래서 소설가 성학원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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