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로의 진짜배기 여행(글/김종규_안동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2>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청년사, 개정판 2005
간혹 예상하지 못한 분들로부터 내 블로그의 글을 읽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이런 분을 만나면 반가우면서도 부담이 되는 면도 있다. 어느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국학진흥원의 OO박사가 블로그 글을 잘 읽고 있다면서 한 가지 섭섭한 느낌을 표현하는 것을 들었다.
“선생님,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읽으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왜 안 읽으시죠?”
“?!! 아, 그러니까…….”
싸게 책을 구할 기회가 생겨서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란 책들을 읽고 독서후기를 올린 일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 항의성 질문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책을 읽든지 그건 내 마음이지 남의 취향까지 생각해가며 책을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 질문을 하신 분이 역사학, 그것도 조선후기사를 전공한 박사님이란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의 저자 중 한 분이시라는 이야기죠 ?”
“……(씨~익 (^-^))…….”
알고 지내는 분 중에 그런 유명한 책의 저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럼 당연히 읽어야지. 꼭 읽겠다는 약속을 한 지가 1년이 넘었는데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읽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 책을 사려고 인터넷에 접속하니 1권만 있다고 되어있다. 기억으로는 2권인가 3권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상해서 보니 벌써 개정판이 나오는 중이고 2권까지 계획된 개정판 중 2005년에 1권만 출판된 것 같았다. 아쉬운 대로 1권을 사서 먼저 OO박사의 글이 있는지 찾아보니 있다. 혹시 그의 야심작은 2권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1권에 있는 글이라도 읽었으니 최소한의 약속이행은 한 셈이다.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나, 조선의 장사꾼들
OO박사의 집필 부분은 책의 중간쯤에 있는 ‘서울의 장사꾼들’ 부분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상권을 시전이라는 상인조합에서 독점하였다고 한다. 서양사를 공부할 때 ‘길드’라는 수공업자 조직이 배타적 상권을 누리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조선시대는 수공업자가 아닌 상인들이 배타적 상권을 지녔던 모양이다. 시전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도 서울에서 물건을 팔 수 있었지만 반드시 시전에서 구입한 물건을 팔아야 했다.
시전은 파는 물건의 종류에 따라 입전(비단), 싸전(쌀) 등으로 나누고 각 전은 다시 일방, 이방으로 불리는 각 점포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상점을 전방이라고 부르는 것도 시전 종류의 전자와 점포의 방자를 따서 부른 것이다.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나”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은 흥정해서 할인하는 금액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는 원가에 더 붙이는 값을 에누리라고 했다. 당시 시전에는 여리꾼이라고 불리는 호객하는 직업도 있어서 그들만의 은어로 시전 주인과 사려는 사람 사이에서 흥정을 붙이고 그 중간의 여리를 자기 몫으로 했다고 한다. 상업에 쓰이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요즘 정식 가게가 아닌 곳에서 장사를 하는 것을 난전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시전에 팔지 않고 바로 소비자에게 넘기거나 시전에서 사지 않은 물건을 파는 사람을 난전(亂廛)이라고 해서 관리에게 고발했던 모양이다. 이를 금하는 권리를 금난전권이라고 해서 시전 상인들이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이 권리를 이용해 온갖 횡포를 부렸다고 한다. 정조 때인 18세기 말이 되어서야 이 금난전권이 없어졌다고 하니 제도를 악용해 자기의 배를 불리는 무리는 요즘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양반만이 가졌던 족보
다음으로 관심이 가는 부분이 족보와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요즘 대부분의 집안에서 족보를 가지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양반만이 족보를 가질 수 있었다. 조선 후기까지 소수의 인구만이 양반임을 감안할 때 조선 후기가 될 때까지 족보를 가졌던 집안은 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16세기까지 인구의 40%는 아예 성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족보를 지금은 대부분의 집안에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 많은 경우 족보의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조선 후기 전에 양반이었던 집안에서 가지고 있던 족보는 시조 때부터 전해져 오던 것이었을까? 아니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왕실 족보야 그 전에도 있었겠지만 민간에서 족보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476년 안동 권씨의 성화보가 인쇄 발표된 후라고 한다. 이후 16, 17세기를 거치면서 족보의 편찬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니 15세기 중반까지는 민간에서는 족보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서거정은 성화보 서문에서 “우리나라에는 원래 족보가 없어서 거가대족이라도 몇 세대가 지나가면 조상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성화보에는 12세에 이르기까지의 조상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오늘날 족보에 있는 조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족보로 전해져왔다기보다는 후에 사서의 기록에서 찾은 조상들 관련 내용을 보충해 넣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조선후기, 부계중심의 족보로 전환
조선 전기 사회는 아직 고려의 풍속이 남아있어 남자가 장가를 들어 처가살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재산 상속에서도 아들과 딸이 차별되지 않았으며 사위가 제사를 모시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고, 아들이 없다고 반드시 양자를 들이는 것도 아니었으며, 동성동본이라고 결혼을 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의 족보에는 이런 사회상이 반영되어 있는데 족보에 아들과 딸, 친손, 외손이 동일하게 수록되었다고 한다. 가령 성화보는 안동 권씨 족보인데 권씨는 총 수록 인원 9,120명 중 867명에 불과했고 외손의 외손으로 이어지는 가계가 6,7대에 이르기도 하였다. 오늘날 알려진 부계 중심의 족보는 조선시대 후기에 사회의 변화에 따라 족보의 기록 양식도 바뀐 것으로 봐야한다.
유명 집성촌에 가보면 조선 전기에 입향조가 들어온 경우가 많다.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상속제도 및 혼인 제도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처가에서 받은 상속이 많을 경우 아예 그 재산을 관리하면서 그 마을에 눌러앉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 어느 마을에 들어온 유력한 집안은 조선 후기에는 아들 특히 장남 위주로 상속하게 되면서 부계 상속이 고정되고 같은 성씨가 계속 같은 마을에 살게 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다른 이유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고려시대 말에 등장한 사대부라는 계층은 원래 귀족이 아닌 지방의 향리 가문에서 성장했다. 조선시대에는 점차 향리를 천시하게 됨에 따라 새로운 지역에 정착한 유력 집안은 향리였던 과거의 근거지와 단절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지역이 자신의 근거지임을 강조할 필요가 생겼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도 해본다.
백정(白丁)의 기원은 북방 이주민
유럽의 문학작품에는 집시가 자주 등장한다. 사회적 천대를 받으며 주로 예능에 종사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들의 기원은 인도의 어느 지역에 살던 부족이 이주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백정의 기원이 북방 이주민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백정(白丁)의 한자말 어의를 따져보면 백(白)은 희다, 무식하다, 없다 등의 의미고 정(丁)은 장정이란 의미다. 즉 백정이란 말은 가진 것이 없는 무식한 장정이란 뜻을 담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군인, 향리 등 세습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정호(丁戶), 일반 농민은 백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 초가 되면서 백정이라는 이름은 주로 도축업, 유기 제조업자에 쓰이게 된다. 세종 대에는 양인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재인(才人), 화척(禾尺)을 일반 백성을 뜻하는 백정으로 고쳐 불렀지만 평민들은 이들 천민들과 같이 백정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정은 재인, 화척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화척은 양수척(揚水尺)으로도 불렸는데 양수척은 후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걸쳐 떠돌아다니면서 천업에 종사하던 무리로 북방 유목민 혹은 귀화인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백정은 북방 민족의 후예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조선 초기 어느 학자의 상소문에는 “양수척은 한반도에 온 지 몇 백 년이 지났는데도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풍습과 짐승을 도살하는 일을 지금껏 고치지 못한다.”는 상소가 있었다고 한다. 유목민의 후예가 도축업에 종사했다는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허생전의 모델은 역관 변승업
허생전에서 허생이 돈을 빌리러 갔을 때 만금을 선뜻 빌려준 부자가 변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나온다. 연암 박지원이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 허생전을 썼다면 돈을 빌려준 변씨 성을 가진 사람의 모델이 있었을 것인데 이 책에서는 그 모델이 된 사람을 역관 변승업이라고 보고 있다. 변승업은 일본어 통역을 한 사람으로 9형제 중 6명이 역관이 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역관 가문이었다. 변승업 대에는 서울 제일의 부자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중국과의 조공무역, 임진왜란 후 왜관이 다시 열리면서 재개된 일본과의 무역에서 역관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런 역관무역은 17세기 말 청나라와 일본이 국교를 수립하고 직접 교역을 하게 되면서 쇠퇴하고 18세기에는 사무역을 하는 사상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한편 홍경래의 난 때 주모자들이 반란에 참가할 군사를 모집하는 방식이 광산에 일하러 갈 사람을 모집한다고 속이면서 모집했다고 한다. 이 말은 광산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 관의 주목을 받지 않을 정도로 일반화되었다는 의미다. 19세기에는 이미 민간의 광산 개발이 일반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 광산 분야에는 이미 자본-노동 관계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고위층의 뒷간 '매우틀'과 백성의 '낮밥'
조선시대 궁궐에는 뒷간이 화장실이 있었을까? 관광차 들렀던 궁궐에 임금님 뒷간이란 장소는 보지 못했다. 왕실의 고위층은 뒷간에 가지 않고 ‘매우틀’이라고 하는 이동식 변기를 썼다고 한다. 그러니 임금님이 쓰던 뒷간은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다. 사진에 나오는 ‘매우틀’은 좌변기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위층 외의 사람들은 모두 뒷간을 이용했는데 경복궁에는 모두 28곳의 뒷간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출입하는 궁궐을 지으려면 뒷간 만드는 일도 보통이 아이었을 듯하다. 그 많은 뒷간을 치는 일도 보통 일은 넘었겠다. 궁궐 마당에서 똥장군을 지고 나가는 낮은 신분의 사람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요즘 궁궐에는 원래의 뒷간이 거의 사라졌는데 뒷간만이 아니라 많은 건물들이 사라져 요즘 복원된 건물은 원래 건물의 1/5~1/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한말 외국인의 한국 여행기를 읽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사량에 놀라는 기사들이 눈에 띤다. 그 덕분인지 당시 한국인은 체격이 큰 편이라는 표현들이 많다. 체격을 키우기 위해 식사량이 많았을 리는 없고 당시 한국인들의 노동량이 많아서 식사량이 많았을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회충과 같은 기생충이 많아서 식사량이 많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분뇨를 직접 밭에 뿌리는 형태의 농사를 지었으므로 기생충이 많았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다른 나라보다 더 기생충이 많았는가 하는 문제는 분뇨를 퇴비로 쓰는 방식의 차이를 연구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니 그냥 나 개인의 추측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한 끼 먹는 밥의 양과는 별도로 하루 몇 끼의 식사가 일반적이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원래 점심은 간식이란 의미로 쓰였다. 오늘날의 낮에 먹는 식사는 낮밥(晝飯)이라고 해서 점심과는 구별했다고 한다. 일반 백성의 정식 식사 횟수는 2회가 일반적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일을 많이 해야 하는 농사철에는 참까지 먹으면서 할 수도 있었겠다. 세 끼를 먹는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낮이 길고 농사철인 2월에서 8월까지는 세 끼, 낮이 짧고 농사철이 아닌 9월에서 이듬해 정월까지는 두 끼를 먹었다고 한다.
학문, 그 쉼 없는 앎의 세계
국사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조선시대에 대해선 제법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 앎의 수준이라는 것이 고등학교 시절 입시를 위한 공부에서 몇 권의 대중서적을 보탰을 뿐이다. 한국사도 학문인 이상 끊임없이 발전한다. 몇 년 전에 정설이던 것이 뒤집히기도 한다. 이 책만 해도 초판이 나온 지 10년 가까지 지난 2005년에 필요에 의해 개정판을 낸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한국사를 공부하는 학자가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몇 년에 걸쳐 한 차례 정도는 신간 대중서적을 살펴보는 정도의 노력은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