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불씨를 꺼뜨린 산삼동자(글/편집실)옛날에는 성냥이 없었기 때문에 집집마다 불씨를 사용했습니다. 저녁에 불씨를 화로에 담아 보관을 했다가 아침에 다시 살려서 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불씨는 소중히 보관해야 꺼지지 않고 다음날 사용하 수 있기 때문에 며느리들은 불씨에 특별히 관심을 쏟아야 했습니다.
어느 대갓집에 한 처녀가 시집을 왔습니다. 처음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시부모님들은 며느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얘, 아가야. 우리 집은 불씨를 화로에 묻어서 3대를 안 꺼뜨리고 내려오고 있단다. 네가 맏며느리인데 불을 꺼뜨려선 안 된다. 부디 조심해서 잘 다루거라.”
며느리는 시부모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불씨를 안 꺼뜨리려고 특별히 더 신경을 쓰고 애를 썼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며느리가 자고 일어나 불을 피우려고 화로를 보니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화로에 물이 흥건히 차 있었던 겁니다.
‘아! 이 일을 어쩌누. 아버님이 그렇게 신신당부 하였는데!’
며느리는 어쩔 줄을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이때 남편이 부모님 몰래 아내를 도와주었습니다. 아내가 쫓겨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얼른 산으로 가서, 불이 잘 붙는 수리취 검불을 끌어와 부싯돌로 불을 지폈습니다. 불은 금방 살아났습니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고마워하며 ‘이제 다시는 불을 꺼뜨리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이제 한번만 더 꺼뜨리는 날에는 정말 당장이라도 쫓겨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며느리는 불씨 걱정에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자마자 화로로 달려간 며느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불씨가 또 꺼져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화로에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젠 며느리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중한 불씨를 두 번이나 꺼뜨리다니 시부모님과 남편을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는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여보, 며느리를 쫓아냅시다. 삼대 째 안 꺼뜨리고 내려온 불씨를 이제 와서 꺼뜨리다니요. 그냥 두었다가는 우리 집이 망하고 말 겁니다.”
며느리는 시부모님께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한번만 용서해주신다면 다시는 안 꺼뜨리겠습니다.”
며느리가 울면서 용서를 빌자 시아버지는 한번 용서해주기로 했습니다.
“얘야, 이번 한번만 용서를 해줄테니 다시는 불씨를 꺼뜨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네가 다시 꺼뜨리는 날에는 우리 대가 끊어지느니라. 명심 하거라.”
며느리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화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방에 둔 화로에 물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시 어떤 놈이 화로에다 물을 붓고 가는 것이 틀림없어. 어느 놈인지 내가 꼭 잡고야 말테다.‘
며느리는 그날 밤 바늘에 명주실을 꿰어 들고 누워서 잠을 자는 척 했습니다. 밤이 깊어서 사방이 조용한데 누가 가만히 방문을 열었습니다. 며느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누런 도포를 입은 동자가 들어오더니 화로에 가서 입에 물고 온 물을 내뿜었습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다시 나가려는 것이었습니다. 며느리는 놀라서 손이 떨렸지만 방을 나가는 동자의 등에다 살짝 바늘을 꽂았습니다. 동자는 그것을 모른 채 집을 나갔습니다. 며느리는 급히 실꾸리를 풀었습니다. 커다란 명주 실꾸리가 술술 풀려 나갔습니다. 날이 훤하게 밝아서야 실이 멈추었는데 남겨진 실이 조금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소행이었습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날이 새자 며느리에게 물었습니다.
“아가, 오늘은 불을 꺼뜨리지 않았느냐?”
며느리는 망설이다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아버님, 저를 내쫓아 주십시오. 어젯밤에 어떤 남자가 가만히 들어와서는 화로에 물을 뿜어 불씨를 꺼뜨리고 갔습니다.”
“무엇이라고! 남자가 왔었다고? 이게 무슨 일이냐. 네가 우리 집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을 했구나. 옛날에 남자가 있었다니. 이제 내 집안은 자손도 끊어지고 망한 집안이 되었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을꼬?”
시아버지는 크게 한탄하며 집안을 잘못 다스린 자신을 책망했습니다. 집안은 난리가 났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께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버님, 잠시 노여움을 푸시고 제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어젯밤에 온 남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사람이 나갈 때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이 실을 따라가 보면 그 사람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식구들은 며느리의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모두 그 실을 따라 갔습니다. 실은 마을을 벗어나서 산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뒷산을 넘어서도 자꾸만 들어갔습니다. 첩첩산중으로 들어가 평평한 당에 이르렀는데 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실을 찾으니 매우 오래된 듯한 산삼 한 포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실이 바로 거기서 땅 속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리로 들어갔는가 보다. 어서 여기를 파보자.”
온 식구가 산삼 주위를 팠습니다. 한참만에 산삼 뿌리가 나타났는데 크기가 어린아이 몸집만 했습니다. 천년은 되었을 듯 싶은 게 꼭 사람같이 생겼습니다. 며느리가 꽂았던 바늘은 산삼 등에 꽂혀 있었습니다. 산삼이 동자로 변하여 며느리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며느리 덕에 천년 묵은 산삼을 얻게 된 대갓집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복 많은 며느리라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는 더 이상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산삼은 영물이어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주 착하고 순수한 사람에게만 보여지는 것입니다. 천년 묵은 산삼은 자신을 나타날 때가 되어 스스로 사람에게 보이도록 했다고 합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