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지는 핵무기, 전쟁의 불길을 당장 끄자(글/이은경)얼마전에 부엌에서 일하다 설핏 들으니 열 살 배기 작은애가 무슨 말끝에 "핵무기로 날려뿌래!" 하니 곧이어 큰애가 다급하게 "야아! 핵무기는 안돼!!" 한다. 둘은 아마도 미국의 아프칸 공격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니 큰애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큰애가 {핵전쟁 뒤의 최후의 아이들}을 읽고 얼마 안 있어서 뉴욕 쌍둥이 빌딩 폭파 사건이 일어났다. 뉴스로 폭파 장면을 보던 큰애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날 일기장에 아이는 이렇게 썼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있을까… 건물이 붕괴되기 직전에 하얀 수건을 흔들며 살려달라고 하던 사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책은 작가가 핵폭발에 의한 인류의 파멸을 가정해서 그려 보인 것으로써 핵무기에 의한 대학살로부터 인류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롤란트 소년의 가족은 여름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가는 도중 차안에서 핵폭탄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게 된다. 무서운 섬광이 번쩍하고 귀청을 찢을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렸으며 무시무시한 폭풍이 몇 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 무서울 정도의 정적이 찾아왔다.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방사능에 오염된 물,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서서히 죽어간다.
또한 숲의 나무들도 서서히 죽어간다. 교양이라든가 이웃사랑이라든가 하는 윤리 도덕도 사라지고 사람들은 먹을 것만 보면 싸우는 동물이나 다름 없이 서로 물고 뜯는다. 방사능에 노출되었던 롤란트의 어머니는 눈도 없고 두 팔도 없는 아기를 낳고 아기와 어머니 모두 죽는다.
그리고 핵폭발 뒤 4년 동안 추위와 굶주림, 전염병과 병충해의 무서움, 그리고 죽음의 공포가 찾아온다. 그 날 이후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된 여인들도 있었고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은 대부분 이상이 있었다.
7년 후까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아이들은 롤란트의 아버지에게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나요?"하고 묻는다. 핵폭발 전에 롤란트의 아버지는 언제나 "그런 이야기를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하고 무관심해 했으며, 핵무기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평화의 균형이 유지되는 거라고 계속 주장했다. 지금 대부분의 우리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롤란트의 입을 빌어 작가는 "아이들에게는 읽고 쓰기와 수학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폭력이나 도둑질, 싸움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어려울 때는 서로 도우며, 무슨 문제가 일어나면 서로 협력해서 해결하고, 그리고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것.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설령 이 세상이 별로 길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왜냐 하면, 우리들은 셰벤보른에 있는 최후의 아이들이니까."하고 진정으로 인간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를 힘주어 말하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연일 계속되는 전쟁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큰애를 위해 이 책을 큰애 친구들에게 읽히고 함께 토론할 계획을 세웠다. 6학년 남자 아이들 셋과 나는 백과 사전을 옆에 놓고 핵무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는 한편,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아이들은 진지했다. 「어린이와 평화」라는 단체에서 서명 받고 있는 종이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리고 전쟁터 어린이들에게 먹을거리와 약을 보내자는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핵폭탄의 무서움을 알고 동생이 함부로 말하는 것을 말리는 큰애의 얼굴에서 희망과 동시에 절망을 느낀다. 이 아이 가슴에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 희망이며, 혹시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절망이다. 절망을 딛고 나는 지금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바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절박하다.
『녹색 평론』 2001년 11·12월 호(통권 제 61호)에서 작가 권정생은 [제발 그만 죽이십시오]라는 글을 통해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하여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뉴욕 맨하탄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번에 겪은 참상이 가슴 아픈 일인지 알았다면, 지난날 미국인과 영국인이 저질러온 수 백년간의 폭력으로 지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죽어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또 슬프게 고통스럽게 살아왔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또 다른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있는 것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옮겨 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은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제발 그만 죽이십시오."하고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다.
이에 이어 나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언제 어떤 불씨가 핵무기에 닿아 핵폭발로 인류가 언제 멸망할 지 모르니 지금 당장 전쟁을 중지하라고.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야만스런 행동을 그만두지 않는 한 증오의 불길은 점점 더 거세어 질 것이며 그 불길은 앞으로 지구를 잿더미로 만들 핵폭발을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 생살을 찢어 새 생명을 세상에 내놓은 어미 치고 새파란 자식들의 앞날에 무시무시한 핵폭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고통 없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인가. 동서고금의 지혜를 모두 모아 야만의 시대를 무사히 건넜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할 뿐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