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길목에서(글/박인수_본지 운영위원, 경희한의원 원장)출근길, 낙동강을 건너며 바라본 계절의 시계언덕에 가을의 끝자락이 붙들려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만추의 경치를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올해도 차일피일 하다가 붉고 선명한 단풍이 다 지고 나면 그 마음을 접어야할 것 같다.
매일 점심을 같이 하는 친구가 오늘은 다른 선약이 있다한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이런 날은 어쩔 수 없이 한의원에서 점심을 시켜 먹고 쉬는데 아침에 보았던 가을풍경이 너무나 좋았기에 혼자서라도 밖에서 먹기로 했다. 오전진료를 서둘러 끝내고 조금 일찍 나섰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면 잠시 바깥바람을 쐬고 돌아오기에는 충분하리라. 간만에 야외로 나가는 것이고 좋은 경치를 만나게 될 것이기에 신이 났다. 점심은 안동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식당들이 여럿 있으니 그중에 마음 내키는 곳에서 해결하면 될 것이다. 그런 곳에서 홀로 점심을 먹는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랴.
안동댐의 호반 도로를 돌아 산야로 빠져서 시내로 되돌아오는 길, 보조댐의 초입에서 맞이하는 앙상한 벚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 월영교에 눈길을 한 번 건네고는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도로변을 황금색으로 뒤덮은 은행나무가 도열한 길을 빠르게 지난다. 간단하게라도 점심을 먹고 오후 진료를 보려면 서둘러야겠기에 오가는 차들이 없는 한적한 시골길에서 속도를 높였다. 오늘은 탁월한 선택을 한 날, 점심 약속을 바람맞힌 친구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겠다. 커브 길에서 잠시 속도를 줄여 미끄러지듯 돌고 직선주로에서 가속도를 붙인다. 차가 총알처럼 튀어나가려는데 갑자기 도로 한 가운데에 무언가 있는 게 보였다. ‘이런, 제기랄!’
끼이익!, 몸이 앞으로 쏠릴 정도로 급제동을 하여 차를 세웠다. 사람이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도로 한 가운데를 막고서 턱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하마터면 노인을 치일 뻔 했다. ‘저 노인이 실성했나?’ 싶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서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걸음걸이가 허우적거리는 것이 무척 위태로워 보였다. 힘들게 차로 다가온 노인은 차문을 꼭 붙잡고서 잠시 숨을 고르고는 내게 말을 건넸다.
“지금 어디 가는 길인기요?”
“그냥 가는데, 왜요?”
퉁명스럽게 노인의 말을 받았다. 그런데도 노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시내로 가는 거면, 북문까지 나 좀 태워주소.”
어이가 없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안동시내로 가는 쪽과는 반대 방향이다. 그런데 이런 차를 잡고서 태워달라고 하는 건 되돌려서 다시 나가달라는 것과 같다. 상황판단이 제대로 안 되는 노인이니 그렇다손 쳐도 지금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시 나온 것이기에 우선 밥부터 먹어야 한다. 매몰차게 ‘아닌데요.’하는 말을 하려는데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도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기력이 없는 상태에서 차를 힘겹게 붙들고 서 있는 노인의 모습이 안쓰러웠고, 무엇보다 노인의 퀭한 두 눈이 간절하게 내게 애원하는 듯 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나는 시내방면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반대방향으로 우회해서 돌아가는 중이다. 중간에 점심도 먹어야 하는데 여기서 시내로 곧장 들어가 버리면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 한낮이고 차가 많이 다니는 시간이라 설령 내가 태워주지 않고 가버리더라도 저 노인은 얼마든지 다른 차를 잡아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내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노인은 내 표정을 다 읽고는 내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짜증나는 일이지만 나는 그 눈빛을 거역할 수 없었다. 나는 결국 노인을 북문까지 태워주기로 했다.
“뭐, 바로는 아니지만 시내로 가려던 참이었으니까……. 그냥 타세요.”
“아이고, 고맙소! 젊은 양반.”
나는 짜증으로 일그러졌을 내 표정을 노인에게 읽히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다려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확인해보니 뒷좌석 문이 잠겨있었다. 도어록을 풀었다. 그런데도 차 문은 열리지 않았다. 노인은 기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병으로 손놀림 또한 불편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을 몰랐던 내 자신이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급히 차에서 내려 노인을 부축했다. 한 손으로 문을 열고, 다른 손으로는 노인이 넘어지지 않게 붙들었다. 노인을 끌어안다시피 해서 뒷좌석에 걸터앉게 한 다음, 한쪽 다리를 먼저 넣고 다른 다리마저 차 안으로 들여놓았다. 반대쪽 문을 열고 노인의 몸을 당겨 차 안쪽으로 앉게 한 다음 문을 닫았다. 쌀쌀한 날씨인데도 이마에서 진땀이 났다. ‘미안해서 어떡하나!’하는 노인의 말은 내겐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했다. 차를 돌려 바로 시내로 되돌아가는데 속이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아니, 어르신! 이런 불편한 몸으로 어딜 다니십니까?” 비록 말은 공손한 투로 했지만 자신에게 화내는 말이란 걸 노인이 모를 리가 없다. 노인은 미안해하며 내게 변명을 했다. 이 동네에 아들의 사과밭이 있는데 거길 둘러보러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거다. 그럼 아들과 같이 가셔야지 왜 혼자 가시냐 했더니,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하셨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혼자 다니게 방치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의아해하자 노인의 변명이 이어졌다. 사과밭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나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다고 했다. 지팡이 짚고 쉬엄쉬엄 걸어가는데 그때 마침 차가 나타났고 그래서 방향이 같으면 좀 태워줬으면 했다는 것이다. 나는 노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앞뒤가 맞지 않았다. 조금 전에 지나쳤지만 버스정류장은 노인이 걸어가기에는 꽤나 먼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까지 갈 것 같으면 거기까지 태워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노인은 대뜸 시내 북문까지 태워달라고 했었다. 게다가 힘들어서 쉬고 있었다면 도로변에 앉아 계셨어야 한다. 그런데 노인은 내 차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도로 한복판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지 않은가. 노인은 자신의 몸을 덫으로 해서 지나가던 차를 붙잡으려 했다. 운이 없게도 그 덫에 내가 걸려들었고 지금 이렇게 맥없이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결론이 나자 더 화가 났다. 배는 고픈데 입맛이 쓰다. 맑고 깨끗한 공기는 노인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로 사라져버렸고 음악은 노인의 목소리 때문에 흩어져버렸다. 노인은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나는 노인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묻는 말에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다가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젊은 양반, 성씨가 어찌 되시는가?”
“박가 입니다.”
“그럼, 본관은 어디를 쓰시는가?”
“밀양입니다.”
“어른은 뭐하시나?”
“집에 계시죠.”
“그럼, 집은 어디신고?”
“안동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동에 사시는고?”
“용상입니다.”
화가 잔뜩 나있는데 계속해서 대답해야겠기에 더 이상 말하기 싫어 내 본색을 드러냈다.
“어르신, 저 안동출신 아니거든요.”
“아, 그런가? 그럼 고향이 어디신고?”
“부산입니다. 바닷가요.”
“아, 멀리서도 왔네.”
“........”
안동출신이 아니라고 말을 하니 노인은 더 이상 집안 내력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안동출신이라면 호구조사를 통해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만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갈 텐데, 고향이 안동이 아니라고 하니 굳이 나의 집안 내력에 대해 알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노인도 내가 말할 기분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채곤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차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침묵의 시간이 계속되자 이번에는 도리어 내가 노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든 서먹한 분위기를 깨보려고 이번에는 내가 말을 걸었다.
“어르신, 댁이 북문 쪽이십니까?”
“거기가 아니고, 북문에서 버스 타고 태화 오거리까지 가야하제.”
마음이 상했는지 아까와는 달리 노인의 말투가 하대로 바뀌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것이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노인이 버스를 타고 태화오거리까지 가야 한다고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하이고 세상에, 노인의 저런 몸 상태로 버스를 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턱이 낮은 승용차도 부축을 해서 겨우 타신 분이 턱이 높은 버스를 무슨 수로 타려고 하는지. 이제 나 혼자 잡는 것도 부족해서 여럿 잡으실 모양이다. 북문까지 모시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태화오거리까지 가게 생겼다. 노인을 북문에다 내려드리고 내빼는 것은 고려장을 치르고 돌아서는 것과 진배없는 것이니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못할 짓이다. 어쩔 수 없이 일정을 변경해야만 했다.
“어르신, 제가 집까지 태워드릴 테니 어디신지 위치를 정확하게 말씀해 보세요.”
“아, 그렇게 해주면 나야 좋지만. 어디 젊은 양반에게 그렇게까지 신세를 져서 되겠나?”
“어르신, 괜찮습니다. 집이 어디세요?”
내가 진심으로 말하자 노인은 잠시 주저하더니 태화오거리에서 가까운 도로변에 집이 있다고 했다. 도로변이라니 천만다행이다. 몸이 불편한 노인을 중간에서 내리게 하지 않고 집 앞까지 모셔드리겠다고 마음먹으니 모든 게 편안해졌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노인을 끝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일이 되었다. 진작 이렇게 마음먹었더라면 고민 하거나 화낼 이유도 없었을 것인데.
나를 비웠다.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이 채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마음을 비운 그 때부터 노인은 내 여정의 동반자가 되었다. 중년의 나는 화려한 가을이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그것을 조금이라도 붙들어보고 싶어 길을 떠났고 노인은 겨울의 길목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싶어 했다. 나는 이 노인이 누군지 궁금했다.
내가 자신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자 노인은 귀찮아하기보다 오히려 신이 나서 대답을 했다. 마치 대화에 굶주려 있었던 사람처럼 묻지 않은 것까지 소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자신이 살았던 동네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었는지를 자서전을 써나가듯 담담하게 말을 했다. 자신의 사과밭에 대해 묻자, 오래전에 자식에게 물려준 것이지만 그래도 힘닿는 대로 사과농사를 도왔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힘들어 가끔 한 번씩 사과밭을 둘러보기만 할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오늘 나와 보니 오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이제 더는 못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노인의 얼굴에 일순간 슬픈 빛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자 노인은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는지 증손자의 자랑을 했다. 공부를 잘했는데 지금 서울에 있는 직업연수원에 강사로 있다고 했다. 자식들은 물론이고 손자들까지 다들 제 밥벌이는 하고 살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운 것들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 아쉽다는 부분이 그럴만한 사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노인은 한동안 말없이 창밖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차가 시내로 접어들자 노인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효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젊어서 효를 행하면 나이 들어 그것을 돌려받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효를 행하지도 받으려 하지도 않기에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겐 “뉘 집 자제인지 모르나 근본이 잘 되었다.”며 나의 부모를 칭찬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나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고 있던 터라 무지 쑥스러웠다.
노인은 오래전부터 자신이 자식들에게 큰 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축을 받지 않고서는 거동이 힘든 데다 약을 먹지 않고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으니 “이렇게 힘들게 더 살아서 무엇 하나?” 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있었다. 내가 “어르신, 아직 한 참은 더 사셔야죠.” 했지만 내 눈에는 노인의 남은 생이 그다지 많이 남지는 않아보였다.
어느 듯 노인의 집 앞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운전기사처럼 먼저 내려서 차문을 열었다. 노인을 끌어안고 일으켜 세운 다음 손에 지팡이를 들려주고 온전히 중심을 잡을 때까지 붙잡고 있었다. 버틸 기력이 없는 두 다리를 든든한 지팡이로 대신하고서야 몸을 곧추세울 수 있었다. 노인은 이제 혼자서도 집까지 걸어갈 수 있게 되자 상당히 안도하는 듯 했다. 노인은 흐릿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이 어두워 조금이라도 잘 보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신세를 진 사람의 모습을 기억에 새겨 두기위해서 일수도 있다.
노인은 꼭 신세를 갚고 싶다며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조심해서 가세요, 어르신!”
내가 고개 숙여 작별인사를 하자 노인은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을 들어 옆으로 흔들었다.
노인과 헤어지며 언젠가는 나도 저 나이가 될 텐데, 그때의 내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했다. 그때는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짐이 될 터인데, 남에게 짐이 되는 삶을 어떻게 살아 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 그때쯤 ‘이렇게 힘들게 더 살아서 무엇 하나?’하는 소리를 내뱉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찾아봐야겠다. 출근길, 계절의 시계를 보며 내 인생의 가을이 떠나가는 것이 아쉬워 길을 떠났다. 그 길에서 자신이 평생 일구고 가꿨던 사과밭을 둘러보려고 지팡이에 육신을 의지한 채 고행하듯 길을 떠나온 노인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그 노인과의 동행에서 겨울의 모습을 보았다. 내 인생의 겨울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가을이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으러 갔다가 거기서 겨울을 만나고 돌아왔다. 인생의 가을과 겨울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곁에 붙어 있는데 우리들은 그걸 애써 외면하고 살고 있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