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이 안동의 미래다(글/이효걸_안동대 교수)
문화를 통해 다시 깨어날 수 있는 안동
최근 경상북도의 새 도청을 안동·예천에 이전하기로 확정한 것은 침체의 길을 걸어왔던 안동이 이제 정말로 발전할 수 있겠구나 하는 큰 기대감을 지역민에게 심어주었다. 또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시도한 3대문화권 생태·문화 관광 기반조성사업이 경상북도의 새로운 성장 동력산업으로 인정받고 그 중 안동지역사업이 선도적 국책사업으로 채택되어 곧 시행단계로 접어들면서 이 지역의 문화산업 발전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지자체 혹은 중앙정부의 이러한 정책과 관계없이 근래 안동문화에 대한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가운데 10여 년 전에 발굴한 정상동 고성이씨 분묘에서 출토된 소위 ‘원이엄마 편지글’은 그동안 공영방송의 뉴스나 특별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후 소설, 연극, 전시, 음악제, 조형 등 여러 가지 장르를 통해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 올해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최고급 고고학 학술지인 ‘앤티쿼티(ANTIQUITY)’에 ‘응태의 무덤; 조선시대의 한 인물과 그를 사랑한 사람들의 편지들’이란 제목으로 실리고 커버스토리로 표시된 것을 보면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적 문화자산으로 주목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흡입력 있는 소재를 가진 이 지역이 그것을 과연 우리의 미래자산으로 활용할 줄 아는가 하는 데 있다.
21세기는 모두가 삶의 질을 찾아 곳곳을 떠도는 신유목사회다
원이엄마 편지글은 가장 대중성 있는 이 지역 문화자산의 한 사례이지만 안동은 이러한 잠재력이 있는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볼 줄 아는 우리의 안목과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부가시킬 줄 아는 우리의 능력이 없으면 그 유산은 관리하고 보존하는 무거운 짐만 떠 안게 해주는 성가신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 경제개발시대를 거치는 동안 이 지역의 풍부한 전통문화를 우리 스스로도 무거운 짐으로 여겼고 바깥에서는 산업화의 거추장스러운 유무형적 걸림돌로 여겼지 않았는가? 1990년대의 정보·통신시대가 2000년대의 콘텐츠중심의 문화산업시대로 접어들게 된 지금도 전통문화를 보는 우리의 태도가 앞을 내다보며 현재를 창조해가는 안목이 없이 여전히 그것을 통해 자부심만 챙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우리는 시대를 읽고 앞을 내다봐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유산이 비로소 제대로 보일 것이며 이 시대의 우리를 가꾸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오늘의 시대를 누구도 조리 있게 가늠해낼 수 있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시대를 읽어내는 전문가가 가장 많이 지적하는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지식기반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신유목사회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 지역 문화산업과 관련해서 말할 때, 이 시대의 중요한 특징이 신유목사회라는 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인류사를 거시적으로 볼 때, 인간 삶의 양식은 긴 수렵채취시대를 지나 정착적 농업사회나 유목사회를 거친 적이 있다. 물론 일부분이지만 아직까지도 유목사회의 삶을 사는 곳이 있다. 그런데 대다수가 도시사회에 사는 오늘의 시대를 왜 느닷없이 유목사회라고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 답은 현재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면 명백해진다. 자신의 하루 이동거리가 얼마인가? 일년 동안 국내외를 막론하고 우리는 얼마나 움직이고 있는가? 쉽게 토지를 떠나지 못하는 농촌에서도 마을단위로 혹은 친목단위로 적지 않게 단체여행을 간다. 이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모든 사람이 들떠 이곳저곳으로 떠나는가? 한 마디로 삶의 질을 위해서다. 과거의 유목사회가 생존을 위해 움직인 것이라면, 이 시대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관광·회합·건강·교육·미용·스포츠·휴식·즐김을 위해 떠난다. 정보·통신망이 발달한 오늘날은 어느 한 곳에 있어도 지구 곳곳에 일어난 사건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필요한 물건을 얼마든지 배달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필요한 정보와 물건을 위해서라면 구태여 이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제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 한다.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 떠나야 한다는 욕구가 폭발한 것이다. 삶의 질을 위해 이렇게 증폭된 욕구는 앞으로도 상승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삶의 질, 즉 문화적 욕구충족을 위한 전지구적 인구이동을 간파하고 그것을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한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스페인 빌바오라는 도시다. 철광이 많이 생산되는 빌바오는 산업시대에 매우 번성한 스페인의 대표적 산업도시였으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강원도 사북처럼 급격하게 쇠락한 도시가 되었다. 빌바오 시민들은 도시재생을 위해 전혀 엉뚱한 발상을 했다. 입증할 수 있고 가능성이 있는 일반적 경제개발 방식을 버리고, 선행사례도 없는 문화산업에 엄청난 재정을 투자하여 구겐하임미술관을 만들었다. 그들은 미래를 읽고 자신들의 희망을 행동으로 옮겼다. 지금의 빌바오는 세계적인 미술관이 있는 문화의 도시로서 연간 수 백 만 명이 이 도시를 다녀간다. 도시가 재생되었을 뿐 아니라, 생존의 수단을 위한 산업도시에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문화도시로 탈바꿈했다. 빌바오의 도시 재생 사례는 다양한 변종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세계 곳곳에 번져나갔다. 이처럼 신유목시대의 지역 문화산업은 산업시대의 패러다임인 집적적인 생산기지를 건설하여 인구를 정착시키는 전략을 고집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일정한 장소에 매어 있지 않고 빈번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주소지는 옛날과 같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지역발전은 고착적인 장소관념에서 벗어나 이동하는 인구를 끌어들이는 집객전략으로 바꾸어야 한다.
문화산업의 기초는
자기 삶의 질을 높이고 공유하는 일이다
잘 알다시피 안동은 전통문화자산이 가장 풍부한 곳이다. 거기다 산업화시대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자연이 가장 덜 훼손된 지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산업화의 낙후지역이 생태·환경의 보존지구로 남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미래가치의 잠재력이 가장 큰 곳이 되었다. 청정한 자연환경과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이야말로 미래가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이 아무리 청정하고 역사문화유산이 풍부하다 해도, 그것을 새로운 가치로 창조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원이엄마의 편지글 한 장이 세계를 감동시키는 문화자산이라 하더라도, 외부 사람이 그 편지글을 소재로 오페라로 재창조하거나 영화나 드라마로 큰 성공을 거둔다면 그 작품의 원생산지가 안동이라는 사실만으로 그저 속으로 가슴 뿌듯해 하기만 할 것인가?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원이엄마의 편지글을 소재로 한 문화상품은 다양하게 개발되고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지만 그것 때문에 그 이야기의 생산지인 안동에 와서 그 이야기의 실제상황을 더 깊숙하게 체험하려온 사람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는 그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내용으로 깊이 빠지게 하는 어떤 준비나 장치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설사 있다 하더라도 피상적 대응에 불과했다. 관광객 유치가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문화자산을 지키고 재창조하는 일의 본질은 남에게 보이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 스스로 그 뜻을 되새기고 자신의 삶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일이다. 원이엄마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조형물을 만들고 편지글을 복사하고 볼거리가 되는 이벤트를 만드는 것보다 안동에 사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그 진한 감동이 새롭게 다가오도록 하는 문화적 장치를 마련하여 감동을 공유하는 일이다. 우리 스스로 감동하고 그 감동을 공유할 때, 외부 사람들도 그것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감동을 어떻게 남에게 감동하라고 하겠는가? 언뜻 생각하면 문화산업은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중심인 것 같지만, 사실은 문화적 재창조를 통해 자기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 또 긴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많은 경제적 가치를 가져오게 한다.
지역 문화산업은
공간에 삶의 질을 입히는 일이다
스페인 빌바오의 성공적인 도시재생 전략은 신유목사회의 왕성한 인구이동을 그 지역으로 끌어들여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동시에 지역주민의 삶의 질도 고양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구겐하임미술관을 세우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주민 지도자들의 능력과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한 주민들의 신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철광도시로부터 문화도시로 탈바꿈하는 전략의 핵심은 지역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다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있다. 앞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이 지역으로 오도록 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오던 사람들이 왜 더 이상 오지 않을까? 경제적 이익을 주는 철광생산 도시였을 때도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그곳에 살지 싶지 않았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경제적 동기가 없으면 미련 없이 떠날 외부 정착자가 많았던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드는 것이 문제해결의 돌파구였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공간이 자기 삶의 뿌리이며 삶을 지탱하는 무대이자 후손들의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지역의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삶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산업시대의 공간은 경제적 이익을 낳는 삶의 수단적 공간이었지만, 환경·생태적 관점에서 공간을 재해석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삶의 질을 담보해주는 문화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이 사는 지역의 공간을 문화적 공간으로 전환하고 그 속에서 삶을 질적으로 고양시키려면 공간에 삶의 내용을 연결시켜야 한다. 삶의 의미와 내용을 공간에 투영하고 공간과 사람이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요즘 말로 공간에 삶의 이야기를 입히는 공간스토리텔링이 그것이다. 더구나 디지털 미디어발달로 공간이 인간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된 지금 시대에는 과거의 서사적 스토리텔링이 소위 ‘인터랙티브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역의 공간에 삶의 따뜻한 이야기를 입히고 스스로 몰입하여 삶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역 문화산업을 튼튼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일일 것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