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리 소견(글/사진/ 김복영_본지 발행인)

하회리는 회색이다. 박물관 진열대 앞을 줄지어 지나가는 유치원 아이들처럼 하회리 골목을 삭풍이 스쳐간다. 스쳐가는 것은 비단 바람만이 아니다. 바람보다 더 빠르게 하회를 스쳐가는 것은 사람이다.

하회리 골목을 따라 사람들이 흐른다. 마치 개울물 위를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이 골목 저 골목 떼 지어 사람들이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회 안에 있으면서도 하회와는 겉돌고, 마을 곳곳에 사람들은 넘쳐도 정작 하회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어쩌다가 이루어지는 만남도 의례적이고 사무적일 뿐 마음으로 소통하는 그런 만남이 아니다

 




하회에는 건성건성 지나가는 다수의 외지인과
일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소수의 원주민이 있을 뿐,
낙동강 같이 넉넉하고 돌배나무결 같이 곱던
하회마을 본디의 삶은 점차 멀어지고
서로 비중이 다른 액체처럼 마을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겉돌며 만들어 내는
묘한 공생관계의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아간다.
  
하회에서는 탈놀이 구경도 하고 장승들도 만나고,
말끔하게 손질된 초가집과 기와집들을 기웃거리며 흙담을 따라 걷다가
종갓집 대청마루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도 볼 수 있지만
육백년 곰삭은 진짜 하회의 맛,
그 속에 배어있는 진한 사람 내음을 맡기는 어렵다.
그러니 하회는 사람 사는 마을임에도 사람이 겉돈다



세월이 딱지가 된 당나무 거친 피부에 나비처럼 매달린 소원지들도
이끼 낀 기왓골을 배경으로 스산하기 그지없다.
금줄 마디보다 더 많은 발길에 밟히면서도
꿋꿋이 하회의 전설을 지키고 있는 저 가녀린 뿌리의 소원은 무엇인가?



냉랭하게 갈앉은 대기 속에
하회 유씨 육백년 세월이 영광이 되고 꿈이 되어
빛바랜 용마루 위를 떠도는 오늘,
어디쯤에서 살아있는 하회를 만날 수 있을까?

만송정 솔기둥 사이로
겸암정이 외롭다.

-2010년 1월 彷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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