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리 춘자(글/김윤한)

배가 서서히 부두에 닿았다. 카프리 섬은 출렁이는 바다를 넘어 그렇게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따가운 날씨 탓에 부두에서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 지붕 위에는 하나 같이 대나무로 만든 발을 치고 있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섬에 발을 처음 디딘 인상은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흡사 울릉도나 우리나라 여느 섬에 처음으로 내린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다만 반바지를 입고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부둣가를 쏘다니는 서양사람들 무리만 아니라면…….



이곳에서 본격적인 도회가 있는 카프리 시가로 가려면 절벽 끝으로 아슬아슬하게 깎아 만든 산등성이 도로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우리 일행들은 15인승 정도나 될까한 작은 버스에 나누어 타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버스 한 대가 겨우 오를 수 있게 만들어진 도로를 노란 콧수염의 운전기사는 요령좋게도 익숙하게 운전을 했다.



곡예를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언덕길을 올라가는 탓에 버스가 코너를 돌 때마다 우리는 천 길 낭떠러지 아래 바다로 추락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연신 오금이 저려 왔다. 그 언덕길 천 길 아래 떠 있는 배들이 마치 작은 장난감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이윽고 한참을 지나서야 버스가 산등성이에 닿았다. 그렇게 가파른 산등성이 위에 이렇게 아담하고 예쁜 도시가 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주로 흰색의 약간은 낡은 빛깔의 석조 건물과 그 사이에 듬성듬성 보이는 총총한 집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곳은 땅이 귀한 탓에 도로는 어디를 가나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밖에 되지 않았다. 흡사 도시 전체가 잘 만들어진 커다란 미니어처 같이 느껴졌다.



로마를 떠나온 것은 오늘 아침 이른 시각이었다. 1번 국도를 타고 서너 시간을 달려 폼페이를 거쳐 이곳에 왔다. 넉넉잖은 시간 때문에 우리는 주마간산 격으로 그곳 정류장에서 리프트를 타고 그곳 정상에 오르기로 했다.



리프트는 두 사람씩 타게되어 있는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대합실에서 열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무료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하릴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수다스럽게 하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인 듯한 일행들을 힐끗힐끗 쳐다보거나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 일행은 분명히 아닌데 흡사 우리 한국사람인 듯한 스무 명은 될까 한 일행들이 매표소 쪽을 통해 대합실로 들어왔다. 하기는 이곳 유럽 여행에서 느낀 일이지만 참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동양사람들은 흔히 일본사람 아니면 한국사람이었다. 게다가 일본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의 유치원생들처럼 깃발을 앞세우고 다니는 바람에, 깃발을 들고 다니지 않는 부류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순간 반갑기도 하고 해서 일행중 대학생쯤 되는 여학생에게 한국말로 말을 건넸다.


"실례합니다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한국에서요."
서울이나 부산 어디쯤, 어느 대학교를 이야기할 줄 알았던 우리들로서는 대단히 당황했다. 하기사 유럽의 명승 고적을 다니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팀, 우리 한국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이고 보면 이국 땅에서이긴 하지만 한국사람끼리 만나서 인사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보니 귀찮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더 이상 질문은 하지 않았다.


카프리 정상을 내려온 우리는 이 섬의 가장 명물이라고 일컫는 '푸른동굴'로 향했다. 푸른동굴은 해수면 높이의 천연 동굴로 이 섬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다녀가야 하는 코스로 버스가 다니는 도로에서 내려서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을 걸어서 내려 가야 한다.


미니버스에서 내려 바위틈을 비집고 사이에 난 나뭇가지들을 붙잡으며 한참을 걸어내려 갔다. 동굴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아뿔싸 내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꺾이며 나는 순간 십여 미터나 아래쪽으로 주르르 미끄러지고 말았다. 무릎에서는 시뻘건 피가 연신 돋아났다.


어머 어쩌나, 어쩌나……"
춘자는 내 무릎에 솟아나는 피를 닦아내고는 피보다 더 붉은 머큐롬을 솜에다 잔뜩 묻혀서는 내 상처에다 정성스럽게 발랐다. 그리고는 어디선가에서 찢어진 런닝셔츠를 가져 와서는 길게 찢어 내 상처를 동여맸다. 내 무릎의 상처를 어루만지던 춘자의 여린 손길은 오래도록 내 무릎 언저리에 남아 있었다.



춘자네 집은 우리가 사는 동네보다 500여 미터는 족히 떨어진 외딴 곳에 있었다. 춘자네 집 바로 뒤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나 있었고 '움터'라고 불리는 들에서 우리 집으로 오려면 반드시 그 길을 거쳐야만 했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동네에서 아무리 작은 꼬마라도 그냥 놀고먹는 법이 없었다. 하다 못해 소를 몰고 풀을 뜯기거나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오거나 심지어는 땔나무를 해다 나르기도 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움터, 우리 밭둑 근처에서 소에게 먹일 풀을 가득 베어서는 내 지게에다 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춘자네 집 뒷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돌아오다가 돌부리에 차여 지게를 진 채로 그대로 춘자네 집 뒤란으로 처박히고 만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무릎에 난 상처도 상처지만 나하고는 같은 반인 춘자를 만나는 게 더 부끄러워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러나 춘자네 집 뒤란에서 다시 길로 올라오기에는 높이가 너무 높았고 앞으로 나가자니 춘자네 마당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 '쿵' 소리에 춘자도 놀란 모양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내가 넘어져 있는 뒤란으로 와서는 내 지게를 일으켜 세웠다. 지게에서 쏟아진 풀들이 마당에 흩어져 있었다.


"괘않나? 아이구 이 피 봐라. 마루로 온나 내 약 발라 주꾸마."
춘자는 우리 어머니가 내게 그러던 것처럼 익숙하게 내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상처를 동여매기 위해 춘자의 손길이 내 살갗을 건드릴 때마다 흡사 누군가 내 살갗에다 버들강아지를 문지르는 것처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그 시각 춘자네 집에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맙다. 춘자야."
딱 한 마디만 하고는 나는 얼굴의 홍조를 손으로 가리며 다시 풀 지게를 새로 꾸려서는 금세 집으로 돌아왔다. 부끄러워서 집에서는 상처를 입었다는 말도, 어디서 상처를 치료했다는 말도 끝끝내 하지 않았다. 어쩌다 학교에서 만나면 춘자는 나를 보고 찡긋 웃었다. 나는 속으로 '인제 괜찮다.'며 찡긋 답으로 웃음을 보내곤 했다.


상처는 꽤 깊었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가 덧난 탓도 있지만 무릎의 상처가 아물자 거기에는 흡사 작은 배추벌레 만한 흉터가 세로로 나 있었다. 그리고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춘자를 떠올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춘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버스 안내양을 하러 떠났고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부산에 있는 삼촌 집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춘자를 만날 수 없었다. 부잣집에 시집을 갔느니, 소박을 맞았느니 하는 소문을 한겨울 문풍지를 스치며 지나는 바람소리처럼 들었을 뿐이었다.


 


다행히 무릎의 상처는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살갗이 벗겨져 매우 쓰렸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예전에 춘자가 그랬던 것처럼 무릎을 한 바퀴 돌려 매고는 동굴 입구로 향했다.
동굴 입구는 매우 좁아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면 파도가 낮아지는 틈을 타서 고개를 작은 보트 위로 바짝 붙인 다음 동굴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동굴 주위에는 보트로 승객들을 동굴 안까지 실어 나르는 이탈리아의 사공들이 줄지어 우리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윽고 내가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한 보트에 두 명씩 타고 들어가게 되었는데 배가 동굴 안으로 출렁이며 들어가는 순간 푸른 눈의 이탈리아 뱃사공이 벽력 같이 소리를 질렀다.


"대가리 치워"
우리 일행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나중 안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에 다녀가면서 '머리 조심하라'는 말을 이탈리아의 뱃사공에게 그렇게 일러준 것, 우리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동굴 안에는 바다 해수면 높이로 해안 절벽 속에 길이 50여 미터 폭 15미터 정도의 에메랄드 빛 바다가 전등불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동굴 안 경치에 넋을 잃고 말았다.
나폴리로 가는 배 시간이 임박했다. 우리는 급하게 좀더 큰배로 옮겨 타고는 카프리 마리나 그란데 항으로 향했다.


"빨리 타세요. 빨리."
인솔하는 여행사 직원이 소리를 질렀다. 나폴리로 가는 배가 부웅 고동을 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급하게 배에 올랐다. 바다에는 수많은 요트들이 떠 있었다. 반나의 사람들이 쌍쌍이 요트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이제부터 세계적 미항 나폴리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천천히 선실 안을 살폈다. 세계 각국의 인종들이 저마다 내가 모르는 말로 무슨 이야기인지를 지껄이고 있었다. 바로 앞쪽에는 신혼부부인 듯한 서양 사람 내외가 갓 돌이 지났을까한 아이를 안고 무언가 지껄이고 있었다.
배의 후미 쪽으로 눈을 돌리다가 갑자기 시선이 굳어 버렸다. 배 후미 오른 쪽 끝 구석에 선글라스를 끼고 앉은 여자, 그는 틀림없이 춘자였다. 갸름한 얼굴, 검은 머리칼, 목이 유달리도 긴, 중학교적 내 무릎의 상처를 치료해 주던 바로 춘자가 틀림이 없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춘자를 만나다니……


천천히 배의 후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 여자 1미터쯤 앞쪽에 서서 그녀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춘자를 닮기는 무척 닮았지만 춘자는 아니었다. 그 여자는 옆자리의 서양 남자와 무어라고 정신없이 지껄여대다가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지껄임을 계속했다. 가까이서 보니 우리 동양인과 닮기는 했지만 분명 동양인은 아니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풍기는 이미지가 내가 생각해 오던 춘자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갑자기 무릎의 상처가 아려왔다. 배가 나폴리 항구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었다. 부웅 길게 뱃고동이 울었다. 나폴리 항이 거대한 활 모양을 하고 우리가 탄 배 쪽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곳 이탈리아까지 와서 불현듯 지구 반대편에 있을 춘자가 생각나다니……
나폴리 하늘 위로 떠가는 구름 속에서 춘자의 얼굴이 커다랗게 웃고 있었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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