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살 할머니와 76살 따님의 동고동락(글/이미홍_객원기자)

1908년 3월생인 김오석 할머니
오후 두 시가 조금 지난 시간, 딸인 권옥순 씨와 전화 통화로 길을 물어물어 풍산 기산리에 있는 집에 도착했을 때는, 흐리던 날씨가 그예 봄비로 변해 가는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할 때였다. 인기척에 안방에서 문을 열고 나온 옥순 씨는 우리를 안채 왼쪽에 붙어있는 아랫방으로 안내한다. 일찍이 홀로 된 노모를 모시고 사는 옥순 씨도 사실은 벌써 자식 치송 마친 올해 일흔 여섯의 할머니다. 따님이 방문을 열고 손님 오셨다고 소리를 치자, 점심 후의 오수에 빠지신 듯 주무시다 깨신 김오석 할머니가 자리에 누워 계시다가 일어나 앉으신다. 우리가 들어서자 머리부터 매만지시고 옷깃을 바로 잡으시더니 어디에서 오셨느냐고 정중히 인사를 건네신다.


“이 누추한 데까지 무슨 일로 찾아 오셨니껴? 제가 늙고 잘 안 들려서 죄송하니더. 다리가 아파서 이래 자주 누워 지내야 하고요. 우리 딸이 고생일시더.”
하시며 궁금한 게 많으신 데 잘 들리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신다. 작년부터 귀가 잘 안 들리신다고 들은 지라 큰 소리로 안부를 드리고 할머니 뵈러 왔다고 하자 연신 고개를 끄덕이신다. 옆에서 따님이,
“2~3년 전만 해도 듣는 것도 잘 들으시고 동네 노인정에도 잘 다니셨는데, 조금씩 약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작년 이 맘 때쯤부터 부쩍 잘 못 듣기 시작해서 이제는 고함을 치다시피 소리를 질러야 듣지. 저래 잘 못 들으시니 본인은 답답해하시지. 그래도 어째? 이제 연세가 있으신데 하는 수 없지 뭐.”
하시다가 우리를 보고 우리 엄마 보시니까 어떠시냐고, 곱지 않으시냐고 묻는다.
“요즘도 아침이면 세수를 하시는 데 삼십 분씩 씻으시는데, 어찌나 꼼꼼히 씻으시는지, 그리고는 거울보고 머리까지 말끔히 빗으시고 계시고. 사실 보건소에서 약 갖다 주는 거 빼고 따로 돌봐주는 건 필요 없지 뭐. 애써 다른 도우미 같은 걸 신청할 필요가 없는 게 못 들으시는 거 빼고는 저 연세에도 당신 혼자 대소변도 가리고, 당신이 씻고 입고 다 하시는 데 뭐. 교회 목사님하고 사모님이 가끔 오셔서 봐 주시는 데 어제는 오셔서 머리를 새로 잘라주시고 가셨어. 나야 밥 해주고 같이 지내는 거 밖에 없지 뭐.” 
하시는 그 말끝에 묻어나오는 은근한 자랑이 정겹다.




열다섯에 시집와 마흔하나에 혼자 된 소산할매
1908년 3월 23일 풍산 소산리에서 태어난 김오석 할머니는 올해로 103세로 -주민등록상으로는 1910년생으로 공식적인 나이는 101세다 - 한 세기를 넘어 다음 세기를 살고 있다. 한일합방 무렵 태어났으니 우리 민족의 현대사 100년을 온 몸으로 살아낸 셈이다.


풍산읍 소산리가 친정인 할머니는 평범한 집안의 무남독녀 외딸로 친정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크게 풍족한 편은 아니었지만 배를 골을 정도는 아니어서 금지옥엽 귀염 받고 지낸 어린 시절이었다. 식민지 치하였지만 시골 촌구석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로서는 사는 게 별다르지 않았다. 나랏일이야 그야말로 나라님이나 먹물 든 잘난 이들 이야기였고 민초들이야 삼 시 세끼 밥 먹고 새끼들 배 안 골고 사는 게 제일이었다. 그래도 시절이 시절인지라 다들 몸조심 입 조심을 하며 살았다.


열다섯 나던 해 이웃마을 가일로 시집을 갔다. 시절이 수상하기도 했거니와 딸 가진 부모들은 다들 마음을 졸이며 살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이런저런 걱정으로 지새우다 차라리 일찍 시집을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걱정은 현실이 되어 할머니가 시집을 가고 얼마 안 있어 시집가지 않은 처녀들은 물론이고 열 살을 겨우 넘긴 여자아이까지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부모님이 일찍 시집을 보낸 덕에 그 화를 면할 수 있었던 셈이다.


남편은 외아들이었다. 한학을 배워 매사에 경우가 바르고 조용한 성품에 한 살 어린 아내를 많이 아껴주었다고 한다. 열다섯에 시집을 가 스물여섯에 딸 옥순 씨를 낳았다.
시조모와 시어머니는 안에서 길쌈을 했다. 시집가던 그날로부터 할머니도 길쌈을 배웠다. 목화 농사를 지어 가을에 추수를 해서 솜을 타서 팔기도 하고 식구들 옷을 손수 지어 입혔다. 그런 일보다 중요하고 힘을 써야 하는 일은 베를 짜는 일이다. 베를 짜서 내다 파는 일은 식구들의 생계와도 관련된 일이었지만, 농촌에서 돈을 만질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집 온 어린 새댁에게 시어머니가 가장 신경 써서 가르친 일 역시 베 짜는 일이었다. 일 년이면 하루나 이틀, 정월 날이나 섣달그믐날이 되어야 삼을 삼고 베틀에 앉느라 구부리고 오그라졌던 무릎을 펼 수 있었다. 도투마리 넘겨 가며 메고 짜고 메고 짜고, 일 년 열두 달을 밤이고 낮이고 베틀 앞에 앉아 보내다 섣달그믐이 되어서야 베틀에서 놓여나 허리 한 번 펼 수 있었던 세월이었다.


귀한 독자한테 시집와서 아들을 못 낳은 죄로 젊은 시절 할머니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할아버지야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한 눈 한 번 파는 일 없이 늘 한결 같았지만 아이는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시어른들이 드러내 놓고 구박을 한다거나 소박을 놓지는 않으셨지만 시어른들 앞에서 늘 고개 숙이고 살아야했다. 그런 와중에 해방이 되었고 누구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좋아들 하고, 누구는 좌익이네 우익이네 밥그릇 싸움이 한창인데, 어느 날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보다 한 살이 많은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허무하게 가버렸다. 그래서 할머니는 마흔 하나에 열다섯 된 딸 하나를 둔 청상이 되었다. 6 ․ 25가 발발하던 해였다.


아직도 문고리에 숟갈 꽂고 문단속 하는 할머니
마흔 하나, 아직은 늙었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청상이 된 할머니는 구설에 오르지 않기 위해 몸가짐을 조심해야 했고 문단속을 하지 않고는 잠을 자지 않았다. 남편을 묻고 돌아서던 그날부터 평생을 문고리에 숟가락을 꽂고 이중삼중으로 문단속을 하고야 잠자리에 들던 습관 덕에 백 살이 넘은 지금도 할머니는 문고리에 끈을 달아 단단히 닫아걸고 주무신다고 한다. 한밤중이나 아침 일찍 할머니를 깨워야 할 때면 문 열어 달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제야 문을 열어주신다 한다. 젊은 시절 남편 없이 청상으로 살아온 그 세월이 어쨌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 시절 얼마나 많은 김오석 할머니가 있었을 지를 미루어 생각해 보면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혼자 된 몸에 전쟁으로 피난길에 나섰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어수선한 와중에 인심까지 흉흉해지자 살아갈 걱정에 딸에 대한 걱정까지 한 몫을 더해 깊은 잠을 자지 못하던 할머니는 딸에게 짝을 지어 시집을 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으니까 딸인 옥순이가 열일곱 나던 해의 일이었다.


6 ․ 25 전쟁이 끝나가던 무렵이었지만 휴전이니 뭐니 이후로도 한참동안 혼란의 와중이었고 남자들은 여전히 징집되어 군대를 가야했고,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늙은 부모들은 가기 전에 장가들여 핏줄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신붓감을 물색해 혼례를 치르고 신방을 차려주었다. 행여나 잘못될 경우 대를 잇는다는 것도 중요했지만 새 신부를 생각해서 함부로 나서지 말고 몸조심해서 꼭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도 컸으리라.  




외동딸 옥순 씨, 홀로되신 어머니와 산 45년
할머니의 하나 뿐인 외동딸 권옥순 씨는 1935년생이다. 식민지 한복판에서 태어난 그는 열일곱에 옆 동네인 기산 마을에 사는 총각 박기락 씨에게 시집을 갔다. 천지도 모르고 가기 싫어도 엄마가 가라 하니 시집이라는 걸 갔다. 신랑이 군대에 가기 한 달 전이었다.


4월에 결혼을 하고 보름 있다가 5월에 신랑이 입대를 했다.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신행도 1년 뒤 신랑이 집에 왔을 때 갔다. 그런데 남편은 집에 둔 색시를 못 잊어 중간에 못 참고 몇 번이나 군대를 이탈해 도합 7년을 군 생활을 했다. 군대에서 도망쳐 농사를 짓다가 다시 잡혀가 군 생활을 하고 그랬다. 어찌 보며 어수룩하고 어찌 보면 사람 냄새가 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옥순 씨는 시집 온 지 여섯 해가 지나 스물 둘에 첫 아들을 낳았다. 남편 나이 서른이었다. 슬하에 내리 오남매를 두었는데, 부부 금슬이 좋아 동네에 소문이 났다.
시집이라고 가보니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고 남편은 9남매 중 둘째였다. 시동생 시누이들에 조카 질녀까지 줄줄이였는데, 시어머니 대신이라고, 동서 시집살이가 대단했다. 식구가 많다 보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해도 해도 일은 끝이 없었다.
식구가 많아 밥을 풀 때 마다 밥 그릇 수를 몇 번씩 다시 확인해야 했고, 먹을 거며 입을 거며 식구 수대로 장만하는 일은 없는 살림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은 못 먹고 매일 나물 넣고 죽을 끓여 먹었다. 거기에다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쳤는데, 누에를 치는 일은 밤잠을 설쳐야 하는 고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누에 농사를 지었지만 많은 식구에 살림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던 지라, 신랑이 제대를 하고 따로 살림을 날 때는 거의 빈손이다 시피 했지만 부지런한 영감 덕에 살림 일구고 밥 굶지 않고 살았다.
“우리 영감이 똑 부러지고 부지런했어.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아서 땅도 많이 사고 집도 사고, 자수성가했지. 그랬으니 친정 엄마도 모시고 살게 된 거지. 형편이 안 좋으면 같이 살자고 할 엄두도 못 냈지. 그래서 영감한테 고맙지.”


분가를 하고나서 어느 정도 살만해지자 혼자 사는 친정엄마 걱정에 잠 못 이루던 아내를 본 착한 사위가 장모님하고 합치자고 선뜻 나섰다. 서른을 갓 넘은 젊은 부부라 아직 환갑도 지나지 않은 장모를 모시고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텐데도 살면서 한번도 그 일로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한번 결정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성격답게 까다로운 장모님과 별 탈 없이 잘 지냈다고 하니, 소산 할매의 오늘이 있기까지 돌아가신 사위의 공이 반은 넘는다는 걸 옥순 씨도 알고 있다.
“결혼하고 분가해서 살다가 그때부터 같이 살게 된 거지. 그때만 해도 촌에는 다들 나무해서 밥 해 먹고 물 길어 먹고 했는데, 엄마가 나이 들어서 여자 혼자 산에 가서 나무해서 밥 해 먹고 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우리가 모시고 살기로 한 거지. 우리 영감이 두말 않고 먼저 그러자고 하더니 장모를 모시고 오데. 장모 혼자 그러고 있는 게 맘에 걸린다고. 어머니 모시고 산 지 45년이 다 됐다. 결혼하고 십 년 조금 넘게 떨어져 있었던 기간 빼고는 참 오래도 같이 살았네.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곱게 늙으신 것도 우리가 모시고 살아서 그런 것도 있지 않으실까 싶어. 혼자 사시면 아무래도 험한 일도 겪으시고 고생을 해도 더 하고 그랬을 텐데. 덕분에 우리 애들은 외할머니 손에 다 컸지. 나는 영감하고 밭에 나가 농사짓고.”


"애들 다섯 시집 장가보내고 좋은 건 아니어도 집도 다 마련해  줬고. 우리 영감이 매사에 꼼꼼하고 똑 부러지다 보니 살면서 영감하는 대로 맞춰주고 사느라 힘도 들었지만, 알뜰한 영감 덕에 크게 돈 걱정 안하고 바깥일은 모르고 살림만 하고 살았지. 허튼 데 눈길 한 번 안 주고 식구들 위하고 살다가 가셨는데, 지금도 저녁때쯤 되면 바깥에서 들리던 영감 발자국 소리가 생각이 나.”
영감이 돌아가실 때까지 옥순 씨는 은행이나 관공서 근처에도 갈 일이 없어 영감은 돌아가시면서까지 당신 죽고 난 후에는 아내가 어찌 살아갈까하는 걱정을 제일 먼저 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손수 세금도 내고 통장 관리도 해야 한다고 몇 번을 일러주고도 마음이 안 놓여 일일이 메모를 해 주고, 큰 아들한테도 단단히 당부를 해 놓고 가셨다고 한다.
“살아생전 영감 덕에 나는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하고 살았어. 돈 한 번 꾸러 간 적 없고, 애들 공납금이고 뭐고 돈 주는 날짜가 되면 준비해 뒀다가 틀림없이 그 날 아침에 손에 쥐어 주고 그랬어. 그래 영감 죽고 처음에는 내가 아주 식겁을 했어.”


여덟 살 차이 나는 옥순 씨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 취급을 하며 집안에만 곱게 모셔두었던 남편은 자신이 간 뒤 마누라가 어찌 살까 걱정하다 3년 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병원에서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후 영천에 있는 보훈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고향으로 가자는 할머니 말에 아이들이 오며가며 들리기 좋은 여기가 좋다며 끝내 고집을 부려 결국 영천에 있는 공원묘지에 묻혔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자식들이 성묘하러 와서 만나기 좋도록 하려는 배려 때문이었다. 그것마저 꼼꼼한 성격답게 생전에 본인 손으로 일일이 다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었다. 장례비가 든 통장까지 마련해 아들에게 건네셨다고 하니 다른 일이야 말해 무엇 하랴 싶다.




무슨 이야기를 저래 하노? 내 흉을 보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사이 할머니와 우리는 대화를 시도해 보곤 했지만 할머니의 귀는 이제 세상의 소리를 잘 잡아내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잘 안 들린다고 되레 소리를 치신다. 그러다가 따님을 보시며, “무슨 이야기를 저래 하노? 내 흉을 보나?”
이러다가 또 옥순 씨를 한 번 더 보고는,
“내 때문에 우리 딸이 고생이 많니더!”
라고 우리에게 딸 자랑을 하신다. 그러니까 옥순 씨가
“당신 흉보지 말라고 저러신다. 내가 누구랑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당신 흉보는 거 아닌 가 싶어 야단을 해서 당신 앞에서 남하고 길게 이야기도 못해요. 처음에는 그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해명도 하고 했는데 이제는 오죽 답답하니 저러실까 그냥 가만 있어요. 근데 가만있으면 또 상대 안 해준다고 삐져서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그래요.”
하며 웃는다. 그 웃음 속에 친정 엄마에 대한 애증어린 딸의 마음이 묻어난다. 그런 따님과 우리를 보시며 연신 궁금증을 못 이겨 하시던 할머니도 그 사이 지쳤는지 무릎이 아프다고 그만 누울란다고 양해를 구하시고는 누워 잠을 청한다. 그렇다고 정말로 자려는 건 아닌 듯 연신 반짝거리는 두 눈으로 우리의 표정을 살핀다. 자신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하는 지, 할머니 자신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는 않았는지 부지런히 살피는 것이다. 그걸 보고 옥순 씨가 저래 궁금한 게 많으시니까 먹고 싶은 것도 많으시고, 총기를 흘려버리지 않으시는 거라고 그 눈에 대고 응수를 해준다. 그래서 우리도 중간 중간 할머니와 눈 맞춤을 해 드리며 옥순 씨 이야기를 들었다.   


김오석 할머니는 권옥순 씨의 친정 엄마다. 모든 딸들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아군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만만한 상대가 친정엄마가 아닐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면서 친정엄마의 삶을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게 되고, 그리고 때로는 친구처럼 의지하게 되고, 또 때로는 원망도 하고 시집살이에서 겪는 온갖 서러움과 스트레스를 엄마에게 풀기도 하는, 옥순 씨에게 소산 할매는 그런 존재인 친정엄마다. 그래서일까? 옥순 씨는 어느새 100세 넘은 노인을 모시고 살면서 때로는 곱게 늙은 친정 엄마가 애잔하기도 하고, 때로는 딸 마음도 모르고 어깃장 놓는 소리만 해대는 엄마가 밉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도 쉬는 딸이 되어 어머니 흉을 보고 있었다.


“옛날부터 성격이 대단하셔서 작은 일 하나라도 일일이 알고 넘어가야 하고, 무슨 일이든 당신 뜻대로 되어야 속이 시원하고, 이제는 나이가 드신데다가 귀까지 잘 안 들리시니까 남들한테는 안 그런데 내한테는 더 그래요. 그래 참다가 나도 한 번씩 뭐라고 대꾸를 하면 싸우기도 하고 그래요. 근데 이제는 싸움이 안 되니까 그냥 있어요. 소리치며 싸우는 것도 힘들고요. 어제 저녁에도 손국수를 해 드렸더니 잘 잡수시고는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날보고 자꾸 이야기를 하자고 하시는데 내가 별소리를 안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고 당신이 싫어서 돌아앉았다고 괜히 시비를 거시는 거라. 그래 아니라고 해도 자꾸 그러시기에 한두 마디 싸우다가 고마 관둬버렸지 뭐. 별 수 있나. 소리쳐 봐야 나만 기운 빠지는 데. 그러이 고만 당신도 삐치셨는지 아래채로 내려와 버리시더라고.”
하며 웃는데 어째 어제 저녁은 어머니의 판정승이었던 것 같다.


판이한 성격의 모녀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고 했지만 옥순 씨는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 엄마 하고 나 하고는 같은 여자라도 살아온 세월이 달라요. 성정도 많이 다르고요. 엄마도 외동딸로 자라 일찍 시집갔고 나도 외동딸로 자라 비슷한 나이에 시집을 갔지만, 나는 시집도 9남매 형제라 속 많이 썩었고, 내 자식도 다섯이나 되니, 자식 키우면서 부모 속 끓이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겪을 만큼 겪고 삭힐 줄도 알고 구불 줄도 알고 웬만한 일에는 입을 띠지 않는 편이지요.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달랑 나 하나 낳아 일찍 시집보내고 당신 스스로 본인만 지키며 살아오신 양반이라 나하고는 많이 다르지요. 젊어 시집살이야 하셨겠지만 그 시절에는 다들 그 정도 시집살이는 하고 사셨지 뭐. 그 후에는 사시면서 큰 고생도 별로 안하셨고, 혼자 되셔서 오래 사신 게 마음 아프지만, 성정이 깔끔하셔서 재혼도 마다하시고, 늘 단정하게 가꾸시고 가고 싶은 데 가시고 하고 싶은 거 하시면서 큰 걱정 없이 속 안 끓이고 곱게 사신 편이지요. 그렇게 맘 편히 사셔서 이래 백수를 넘겨 사시지 싶어요. 친정 어매를 보고 자라니까 딸이라면 당연히 친정 엄마 영향을 받기야 하겠지만 놓인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른데 엄마하고 딸이라고 해도 사람 따라 사는 방식이 다 다르지, 같을 수가 있나요? 자식 낳고 영감하고 살아온 세월 보면 내가 더 다복하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지금까지 딸내미 수발 받으면서 저래 맑고 곱게 백수를 누리는 거 보면 당신 복도 보통은 넘는 거 같고.”


그리고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몇 년은 더 거뜬할 것 같다는 말끝에, “나도 이제는 무릎 뼈도 시리고 허리도 아픈데 당신이 저렇게 아프다고 난리시니 말도 못하고, 어딜 나가도 잠시 잠깐도 안심을 못해서 아들네 집에 손자 보러 가고 싶어도 참고, 딸 네 집에 다니러 가도 가자마자 돌아서 오는데, 그것도 모르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싸우시려고 드니, 아직도 기력이 정정하다니까요. 지금도 잘 못 듣는 거 빼고는 총기도 좋으시고, 잘 먹고 잘 자고, 텔레비전도 눈을 못 떼시고 보시고. 내가 오히려 기력이 딸린다니까요. 원체 활달하셔서 어디 나가는 것도 좋아하시고, 사람들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아하세요. 90에 심심하다고 목사님 설교 들으시는 재미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시더니 세례까지 받으시고 재작년까지만 해도 열심히 다니셨어요. 100세가 되시고도 마을 노인정에도 잘 나가고 요 앞 농협 있는 데까지 나들이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나가도 다른 사람들 말이 잘 안 들리니까 재미가 없다고 잘 안 나가시더라고요.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고는 해도 아무래도 기력이 달리시기는 하지요. 여기저기 다니시다가 어디 가서 잃어버리셨는지, 틀니도 잃어버리시고, 나가시는 것도 이제는 힘이 들어 안 나가고 방에 계시는 시간이 늘었지요. 대신 위채인 안방하고 아래채를 왔다 갔다 하시고 집 앞 나무에 꽃이 피면 꽃구경 하시고 날 좋으면 마당에서 볕도 쬐시고 문 열어 놓고 비 구경 눈 구경도 하시고요. 저래 봬도 아직도 집안일 이것저것 다 아는 체 하세요. 대신 전보다 짬짬이 잠을 많이 주무시지요. 어디에서 들으니까 장수하시는 분들 특징이 많이들 주무신다고 하데요. 우리 어매는 아직 끄떡없으세요.”


 



내가 일찍 가야하는데, 그 말을 믿지 마소
소산 할매 방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두 가지는 비녀를 곱게 지르시고 옥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미리 찍어 놓으셨다는 액자에 모셔져 있는 영정용 사진과 줄에 매달린 수의가 담겨 있는 보따리였다. 할머니 손수 일찌감치 마련해 두고 좀이 슬까 볕 좋은 날이면 햇볕도 쏘이고 바람도 쏘이라고 매달아 놓았다는 수의와 여든 셋인가 넷인가 되던 해 어느 날에 곱게 차려 입고 말도 없이 시내에 나가 찍어온 영정으로 쓰라는 사진을 보며, 이제는 농사일도 손에서 놓고 옥신각신 살아가는 딸 옥순 씨는 말했다.
“수는 타고 나는 것인데, 누가 먼저 갈지 어찌 알겠노? 딸 눈치 안 보고 당당하신 우리 어매라 내보다 오래 사실 지도…….”
그런데 잠시 누웠다 일어나신 오석 할머니가 하는 말,
“내 때문에 니가 고생이다. 내가 일찍 가야하는데…….
그러자 옥순 씨 말,
“저 말 믿지 마소. 다 거짓말이니더!”


살펴 가시라는 할머니의 격식 차린 인사를 뒤로 하고, 따님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 나오는 길, 땅은 돋아나는 생명을 품고 봄비에 깊이 젖어들고 있었다. 백세 소산 할매네 모녀의 집 초입에도 움파가 새파랗게 돋아나고 있었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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