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리의 본동댁(글/김복영_본지 발행인)
경북도청 신도시 예정지인
예천군 호명면 금릉리에 사는
일흔 살 최순금 씨의 택호는 본동댁이다.
제 동네 혼인을 해서 본동댁이 아니라,
안동 오미2동과 도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친정동네 이름이 본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이는 이름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최필분. 호적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공식적으로 그이를 증명하는,
이를테면 행정명칭인 셈이다.
두 이름으로 살아서일까?
그이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고 힘들었다.
네 살 때 천두라는 병을 앓다가 부정을 타서 오금이 붙었는데 모친의 지극 정성으로 겨우 떨어졌다.
그래서 오른쪽 다리가 짧은 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시집갈 무렵에는“워예면 저는 것고 워예면 안저는 것고….”
그래서 스물한 살에 금릉에 살던 칠년 맏이 경주이씨 총각한테 시집을 왔다.
그러나 얼굴도 안보고 시집을 와보니 신랑은 남의 집 살이 하고 시댁은 끼니 잇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첨에는 남의 집 사는 거 몰랬지요 뭐, 식량 떨어질 만하면 친정 보내고. 일할 때면 오라 카고”
그렇게 살던 시집살이 3년 만에 잠실에 딸린 방을 얻어 살림을 났다. 작은 아들 세간내면서 부모님이 나눠준 것은
고구마 한 가마니와 서숙 한 가마니가 전부였다. 말이 분가지, 석유 한 방울 살 돈이 없어 호롱불조차 켜기 어려웠다.
그러다 만 일 년 만에 지금 살고 있는 토담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시집 올 때 남의 집 살이 하던 남편은 죽을 때 까지 남의 집 살이 못 면하고 순금 씨가 마흔 살 되던 해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뒷산에 나무하러 가이 옛날에 낭기 여기 어디 있었니껴. 청소깝을 해가주고 아를 업고 이리 오이께네
걸음이 안띠가주고 산꼭두배기 에서 니리 구부이께네 소깝이 다 둘러빠져뿌래요. 그키 그리 살았니더.”
“죽으나 사나 남의품 안파면 안돼. 이래 사다보이 만날 신일만 내한테 돌아오네”
오직 생존을 위해 내던졌던 몸은 나중에 전신이 뒤틀리고 일어설 수가 없어 기어 다니기까지 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키도 줄어들고 한쪽 다리는 더 짧아졌다. 열 손가락은 마디마디 틀어지고 문밖 출입은 네발 오토바이에 의존 한다.
“참 사는 게 말도 못했어요. 이야기 다 할라그면 한이 없어요. 어디가 신수 개리러 가면
점바치가 날 보다 더 미리 우드라 그이. 고생 많이 했다꼬.”
그러나 오늘 그이에게서는
낮선 이에 대한 경계심도
이지러진 신체에 대한 부끄러움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궁핍했지만 떳떳하게
자신의 삶을 지켜온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스스럼없이 길손을 대하는 그이가 아름답다.
삶은 모질게 살았어도 심성은 여리고 정갈했음을
집안을 둘러보면 알 수 있다.
가지런히 자리 잡은 생활용품들이 정겹다.
일흔이 넘어
새로운 환경과 맞닥뜨릴 그이의 삶이
담 밑에 활짝 핀 목단꽃처럼
밝았으면 좋겠다.
2010.5.9. -彷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