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소리를 사진 찍고 싶은 유월의 낙동강(글/이동백_시인)
어느 추운 겨울 날, 나는 이 병산서원 입교당에서 문화 해설사인 내 친구 강명구를 만났다. 그날, 차가운 바닥에 꿇어앉아 병산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는 매료당했다.
“우선 저 배롱나무를 좀 보게나. 서애 선생이 이 서원을 지을 때 심은 거라니, 족히 사백 년이 넘었네 그려. 지금은 겨울이어서 꽃은 볼 수 없지만, 수세(樹勢)도 좋거니와 저 나무 특유의 표피가 선비다운 멋이 느껴져.”
“작은 연못도 있네.”
“광영지 말인가? 도가 사상이 성리 철학의 중심에 연못으로 좌정한 격일세. 연못도 의미 있고, 이 집의 주춧돌을 살펴 봐. 주역의 팔괘가 각(刻)이 되어 있네.”
“팔괘가 왜?”
"팔괘가 자연을 상징하잖는가? 아마 서원 집을 자연과 조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거겠지.”
“내경(內景)도 내경이지만 외경(外景)도 범상치 않으이.”
“여기 입교당에서 병산을 바라보면 일곱 폭의 병풍으로 보이지. 그래 병(屛山) 아닌가? 만대루 기둥이 여덟 개여서 그 사이를 화폭으로 보면 일곱이잖아. 그러나 내 눈에는 저 병산이 책을 겹겹이 쌓아 놓은 산으로 보이네, 바위가 곧 책일세.”
“선비 눈으로 보면 그럴 만도 하네.”
“병산은 아침엔 어두워. 오후 늦은 시간에 병산으로 비춰드는 햇발이 좋아. 낙강(洛江)에 반사된 햇살이 비춰서 병산에 일렁이는 물빛도 참 일품인데, 이것도 늦은 오후 만대루에 앉아 보아야 제 멋을 느낄 수 있다네.”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만하다[翠屛宜晩對]’는 뜻을 짐작할 것도 같네.”
“산영(山影)이 물에 드리우는 풍광도 예사롭지 않네. 낙강에 비쳐드는 산 빛이, 마치 산은 높아도 자신을 낮추어 물속에 깊이 잠기듯이 선비 역시 그 학문이나 지위가 비록 높아도 스스로 겸손하라는 뜻을 일러주는 것 같아서 말일세.”
“탁견일세.”
그날, 병산서원을 나서려는데, ‘나가다가 뒷간 구경을 하고 가.’라는 그의 말이 아직 귀에 남아서 오늘, 다시 그 뒷간을 보러 갔다. 내가 어릴 때, 토란잎을 덮어 쓰고 볼일 보던 뒷간처럼 그 뒷간에는 지붕이 없다. 뒷간을 에워싼 담장이 마치 서원 내경의 쉼표 같아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낙동강으로 나갔다.
6 ․ 2 지방 선거일, 병산서원 가는 길섶에 핀 여름 꽃들은 곱고 화사했다. 첫눈에 든 꽃은 구슬봉이였다. 옅은 도라지꽃 빛깔의 작은 꽃잎을 지닌 구슬봉이는 물에 젖은 바위 틈서리에 생명을 의지하였는데, 무슨 귀한 왕자나 되듯이 물이끼들이 그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 꽃은 밤중에 지상으로 내려 왔다가 포근한 이끼가 좋아 하늘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별 같았다. 어쨌든 이 작은 꽃은 길섶 모퉁이 바위틈에 붙어 호젓이 초여름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구슬봉이에서 저만치 떨어진 산기슭에 자주색 엉겅퀴가 몸을 가시로 치장하고 도발적인 자세로 섰다. 그 옆에는 소담스러운 자태로 피어난 연분홍 찔레가 엉겅퀴의 그 도발성을 제압하고 있었다. 그 찔레꽃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희귀성 때문에 그에 대한 인상은 마음에 깊게 깔려 들었다. 특히 꽃봉오리의 선명한 분홍색은 사람의 마음을 달뜨게 하는 마력을 지닌 듯했다. 나는 그 꽃을 가져 보고 싶었다. 결국 인간의 가증스러운 탐욕은 그 분홍 찔레꽃 가지를 꺾어 들게 하고 말았다.
병산서원 가는 길은 풍산들을 벗어나면서부터 산협에 걸리는 벼룻길이다. 그 벼룻길이 돌아나가는 산발치에서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땅을 크게 휘저으며 사행하는 낙동강이 활달한 모습으로 눈 속에 들어와 박혔다. 강은 이처럼 넓거니와 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한 줄기 가는 선으로 강에 기대어 있을 뿐이다. 작은 도시는 그 형체만이 아스라이 먼데, 산은 높아 하늘에 닿아 있다. 그러나 자리를 높은 곳으로 옮겨 바라본 세상은 좀 전의 것이 아니었다. 들은 일망무제로 넓고, 강은 들 사이에 끼여 그 행색이 무척이나 옹색했다. 거기다가 선뜻 눈에 들지 않던 습지가 강의 영역을 밀고 들어와 강의 처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어버렸다. 사람의 눈은 사람을 희롱하는 법을 터득한 모양이다.
서미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소산 마을에 이르러, 남으로 방향을 틀어잡은 신역천이 힘겹게 습지를 뚫고 낙동강에다 몸을 섞는다. 습지는 개울의 침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을 찢고, 가르고, 가두면서 자신의 몸피를 불려 나갔다. 부양할 것들이 많아서이리라. 습지가 부양한 것들은 시각과 청각으로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시각은 구름떼처럼 운짐달고, 청각은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처럼 감미롭다. 시각은 버들 숲에 의지하고, 청각은 새 울음에 의탁하였다. 그러므로 시각과 청각은 강한 생명력으로 사람에게 다가들었다. 그 생명력은 여름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으름덩굴처럼 암팡졌다.
잠시 멈추었던 발길을 재촉하여 병산에 이르니, 자주색 감자꽃이 시절을 한창 넘기고 있었다. 지금이 감자꽃 필 무렵인가 보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길 위에서 병산을 바라보았다. 바위는 풀에 덮여 몸을 감추고, 풀은 폭죽처럼 터져 산의 키를 키웠다. 강섶의 풀숲은 자신의 몸뚱이를 물 낯바닥에 들이대고 있었다. 그 바람에 흘러가는 강물은 땅바닥에 바싹 붙어버린 듯하다. 강은 이따금씩 몸을 뒤척여 숨을 가늘게 쉴 뿐이다.
얼굴에 끼쳐드는 모래톱의 뜨거운 기운을 피해 물가로 나가니, 고라니의 깊은 발자국과 댓잎 모양의 왜가리 발자국이 모래톱에 가지런히 찍혔다. 고라니와 왜가리가 즐거운 동행의 기회를 가졌던 모양이다. 그 동행이 남긴 흔적이 무척 앙증맞다. 어지럽게 발자국을 찍어가며 물을 머금은 모래톱을 밟고나가자, 싱그러운 물 냄새가 코끝에 와서 감겼다. 강물이 일으킨 한 무리의 바람이 낯바닥을 상쾌하게 핥고 지나가는 감촉에 마음이 떨렸다.
물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내가 기대고 앉은 물은 거대하면서도 미약했다. 강심을 이루는 물은 괴력의 자성(磁性)을 지녀서 흐름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반면에 그 가장자리에 서성이는 물은 약한 바람에 흔들리고 작은 풀에 생채기를 입고 있었다. 강은 물의 섭리에 따라 자신을 엄격하게 다스렸다. 그 엄격함이 하나의 수평선을 이루었다. 병산의 강은, 수평이 이루는 긴장감 그대로 은밀하면서도 단호한 자세로 움직이고 있었다.
강 안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 햇덩이가 물에 잠겨 출렁이고, 모자 창에 햇살의 무늬가 일렁거렸다. 햇덩이에 머물던 눈길을 병산으로 옮겼다. 뭉게뭉게 부풀어 오른 풀숲 속에서 여름새들 짓는 소리가 낭자했다. 어떤 소리는 직접 날아와 귀에 박히는데, 어떤 소리는 물 낯바닥에 부딪혀서 귓바퀴를 울렸다. 특히 물에 부딪혀 들리는 소리는 물빛을 닮아 유월의 아침처럼 맑고 청아했다. 새들은 탄금(彈琴)의 비법을 아는지, 그 짓는 소리를 온통 물 쪽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사진에 새소리도 찍히나?”
사진을 찍다 말고 새소리가 물과 잘 어울린다면서, 방장이 한 말이다. 방장의 말이 새소리 같이 아름다워서, 나는 그 소리를 진짜 사진 찍고 싶었다.
강 한편에선 일군의 젊은이들이 물속으로 들어가 젊음을 소리로 한껏 폭발시키고 있었다. 그 소리는 병산 검은 바위에 부딪혀서 그 울림을 키웠으나, 어딘가 시끄럽고 잡되게 들렸다. 그 젊음을 발가벗겨 낙강의 물고기과 어울리게 했다면, 그들은 맑은 하동(河童)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은이들은 고함만 칠 줄 알았지 발가숭이가 될 줄은 몰랐다.
모래톱을 사이에 두고 강과 습지가 갈린다.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모래톱을 걸어 습지에 이르니, 버들 숲 그늘이 서늘한 손길을 내밀었다. 그늘이 내민 손길에 잡혀 나는 몸을 쉬었다. 주변은 온통 개미귀신의 집단 부락이었다. 지나가던 개미 한 마리가 엉거주춤 개미귀신 집을 방문했다가 몸을 가누기도 전에 개미귀신에게 낚아 채이고 만다. 나무 꼬챙이로 개미귀신을 찾으니, 녀석은 방문 사절이라면서 발길질을 해댔다. 그 발길질은 발칙하고 사나웠다. 그러나 그 발길질은 살아 있음을 방증(傍證)하는 절규였으며, 동시에 주거 침탈에 대한 강한 경고 메시지였다. 나는 나무 꼬챙이를 든 채로 개미귀신에게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저만치 병산서원의 지붕이 유월의 풀 위에 떠 있다.
낙동강은 병산에다가 서애의 손을 빌려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흔적 하나를 남겨 놓고 화산 밑을 지나 하회로 들어갔다. 하회를 휘돌아나가기 위해 낙동강은 한 번 자신을 꺾는다. 휘돌아 나가는 모습은 부드럽고 여유로우나, 꺾여 나가는 힘은 강하고 예리하다. 낙동강은 물돌이동에서 자신의 몸을 얼마나 굴신(屈身)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다. 굴신의 각도를 예리하게 유지하려고 강은 그 한 쪽은 깎아내고, 다른 쪽은 쌓는다. 강이 쌓은 곳에 터를 잡은 마을이 하회이다.
강의 역사(役事)는 마을의 지형을 형성하였고, 인간의 역사(役事)는 하회의 문화를 이룩하였다. 그 문화의 중심에 서애와 같은 선비가 있었고, 허 도령과 같은 민초가 존재했다. 물돌이동 사람들은 물의 이치를 알아, 그 물을 넌지시 다스릴 줄도 알았다. 사람들은 강과 화해로울 때는 배를 띄어 선유(船遊)하였다. 강의 여유를 낌새챈 사람은 물에 배를 띄워 강과 어울려 한량 짓을 했다. 그 참에 강도 흥에 겨워 너울너울, 흔들흔들 그 몸을 흔들어댔다.
한편 강이 긴장한다 싶으면, 사람들은 소깝단을 던져 그 긴장을 풀어줬다. 강은 자신이 이뤄 놓은 땅을 침범하여 헐어버리기도 한다. 하회도 이러한 강의 생리를 비켜갈 수는 없었을 터이다. 강은 더러 마을 깊숙이 들어와 사람의 터를 도륙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자연의 힘 앞에 사람이 무력해 질 때, 사람은 믿음에 의지했다. 줄불놀이는 하회 사람들의 이러한 믿음에서 빚어진 문화적 소산의 하나였다. 불로써 물을 달래고 다스리려는 인간의 염원이 줄불놀이로 형상화되었으리라.
하회는 음·양의 통일체를 이루는 태극의 형상을 이룸으로써 안정감을 주는 마을이다. 이러한 안정감은 마을을 비보하는 만송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또한 부용대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화천서원과 옥연정이 마을의 균형을 잡아주고도 있다. 때문에 하회 마을은 노아의 방주처럼 사십 일을 비가 내려 세상을 창일(漲溢)할지라도 지구 위에 둥둥 떠 있을 것이다.
하회에서 나그네와 어울리던 낙동강은 나그네를 버리고 다시 화산을 끼고 돌아 구담으로 흘러갔다. 느닷없이 물새 한 마리가 흰 깃을 펼쳐 부용대를 반으로 자르며 궁창(穹蒼)으로 날아갔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