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로 바쁜, 가수 이수나의 꿈과 삶(글/김영희_객원기자, 사진/박영대_동아일보 사진기자)
어떤 지역적인 영향이 있는지는 몰라도 안동출신 연예인은 드문 실정이다. 일본에서 한류스타의 선두주자였던 탤런트 류시원 씨가 알려진 인물로는 거의 유일한 연예인이 아닐까 싶다. 음반을 발표하고 활동을 시작한 가수 이수나 씨를 취재한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오! 내가 연예인을 만나!!’였다. 불광동에 있는 연습실까지 가는 동안 지하철 안에서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갖가지 생각들을 했다. 먼저 통화를 한 사람은 매니저를 맡고 있다는 김학민 실장이었다. 전담 매니저까지 두고 있다니 대단한 유망주인가본데 왜 이제까지 내가 몰랐는지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하철역으로 마중 나온 김학민 실장은 한눈에도 예술가로 보이는 포스를 풍겨 깔끔하고 앳된 매니저를 기대한 나는 약간 당황했다. 지하에 있는 스튜디오는 TV에서 보던 가수 연습실과 비슷했다. 전면이 거울인 방에 스탠드 마이크와 악기들이 놓여있고 옆에 작은 방에는 녹음실이 갖춰져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해서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김학민 실장은 단순한 매니저라기보다는 이수나 씨 음반의 작곡가 겸 프로듀서이고 보이스 트레이닝 전문가였다. 물론 이수나 씨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TV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주던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대형기획사들만 대충 알고 있던 터라 오해를 하고 편하게 대했던 것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마침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는 ‘어머나’하고 또 놀랐다. 이수나 씨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젊은 남자분이 오시는 줄 알았어요.” 여자인데다 그것도 나이가 한참 많은 아줌마가 왔으니 좀 실망이 되었나보다. 그래도 ‘오히려 여자분이라서 편하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놀란 건 음반 사진에 나온 모습과 너무 다른 앳된 모습 때문이었다. 음반에는 일반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여자 성인가요 가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여러 컷 있다. 대뜸 사진이 왜 이렇게 나왔냐고, 속상하지 않냐고 물었다.
“타이틀곡이 ‘사랑은 거짓말’인데 이 곡의 분위기가 좀 슬퍼요. 사진 찍을 때 이 노래 틀어놓고 슬픈 분위기를 내면서 찍었더니 그렇네요. 사람들이 모두 실물이 더 낫다고 해요. 그걸로 위안삼고 있어요 하하하. 그래서 음반을 다시 만들고 있어요. 곧 새로운 모습이 나올 거예요.”
여리고 앳된 모습과는 달리 시원시원하고 화통한 말투에 연예인을 만난다는 긴장감은 풀어지고 안동 처자를 만나고 있는 느낌으로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기타를 갖게 되다
예안면에서 태어나 삼계초등학교 인계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대구로 갔다. 언니가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안동보다는 대구로 진출하게 되었다. 학교가 여상이라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친구들은 모두 진로를 결정하고 취업준비를 하거나 대학 입시준비를 했다. 그때 이수나 씨는 언니를 졸라 기타를 샀다.
“일단 공부를 못했으니까요. 하하하. 기타가 좋잖아요. 피아노는 배우기도 어렵고 들고 다니지도 못하는데 기타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가서 노래할 수 있고... 노래를 너무 좋아했어요. 노래를 하면 가슴이 울리고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좋았어요. 그때 경대 후문 쪽에 서울악기사라고 있었어요. 레슨비가 3만원인가 했는데 돈이 없어서 청소하고 가게를 봐주면서 기타를 배웠어요.”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불렀는데 거기다가 기타까지 칠 줄 알게 되자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는 학교 주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게 되었다. 공식적인 첫 무대라고 할 만한 것은 학교 축제 때 전교생과 선생님 앞에서 노래한 것이었는데 ‘여고시절’을 멋지게 불러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친구들이 자기를 추천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실력을 인정하지 않아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 앞에서 오디션을 봐야 했었다고. 당시에 유행하던 진시몬의 ‘낯선 그리움’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 ‘겨울 애상’ 등을 불렀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본격적으로 경북대학교 주변 카페와 음악다방에서 노래를 하며 대구 지역의 가수들과 함께 활동을 하다가 우연찮게 서울악기사의 사장이 되었다. 당시 서울악기사 사장이 대구에서 유명한 통기타 가수였는데 다른 일을 시작하면서 평소 열심히 가게를 쓸고 닦으며 기타를 배우는 이수나 씨를 믿고 가게를 물려준 것이었다. 이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가씨가 어떻게 그걸 운영할 생각을 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요? 대단해요? 뭐 별 생각 없었어요. 그냥 평소에 하듯이 하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도 악기사 운영은 제 딴에는 열심히 했어요. 악기 판매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수리도 하고. 여러 가지를 다 해야 하는데 재미있기도 했어요. 한 1년 했나 봐요. 가게를 정리하면서 악기를 처분해 사장님께 70만원을 드렸어요. 그게 제 계약금이었던 거죠.”
서울로 무대를 넓히다
대구에서 악기사를 운영하며 저녁에는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영역을 쌓아가고 있을 무렵 우연히 신문광고를 보게 되었다. 서울의 모 작곡가 사무실에서 가수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그 광고를 보는 순간 자신이 속해 있는 대구가, 자신의 터전인 악기사가 너무 좁게 느껴지면서 서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어났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1등이 되었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는데... 근데 작곡가 사무실에서 돈을 요구하더라고요. 돈이 어디 있나요? 그리고 같이 뽑힌 서너 명이 있었는데 중점적으로 저한테 이상한 것을 요구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저는 단지 제 노래를 검증받고 서울에서 활동하길 바랐는데 서울이라는 곳이 제 순수한 마음하고는 너무나 다른 거예요. 촌년에게는 너무 벅찬 현실이었죠.”
그렇다고 대구로 다시 내려갈 수는 없고 서울에 있을 곳을 알아보았다. 다행이 고향 친구 유신이네가 모두 서울로 이사 와서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서 사남매를 건사하는 친구 집도 사정이 어렵기는 매 한가지여서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한 달여 만에 고종사촌이 자취하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영등포 목화예식장 근처였는데 방은 두 명이 누우면 딱 맞을 정도이고, 비키니 옷장이 하나 있었죠. 언니는 출판사에 다녔는데 저녁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살아가는데 무척 열심이었죠. 저는 언니 집에 있으면서 낮에는 기타 연습을 하고 밤에는 취직 할 곳이 없는지 카페를 알아보고 다녔어요. 그런데 언니는 저의 그런 생활이 용납이 안 되었나봐요. 언니 보기에는 제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또 한 달 쯤 있다가 나와야 했죠. 무턱대고 나올 수 없어서 궁리하고 있는데 목화예식장에서 직원을 구한다고 해 취직을 했어요. 마침 그곳에 있는 언니가 저를 예쁘게 봐줘서 제 사정을 듣고는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어요. 거기서도 한 달 정도 있었어요. 그 남편이 심하게 도박을 하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형편을 제가 견디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다 그만두고 기타 하나 메고 보따리 하나 들고 구로공단 주변으로 왔죠. 지하철 역 앞에 토스트 팔고 어묵 파는 가게들이 많았는데 새벽부터 장사를 하다보니 일찍 나와서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하대요. 부부가 함께 일을 하는 가게였는데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하길래 일을 시작했어요. 건물 3층에 사장집이 있는데 공동화장실을 쓰는 작고 낡은 집이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너무 얕잡아 보니까 대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오히려 그게 화근이었어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팔에 온통 문신을 한 아들이 와서 대학생이라고 저를 괴롭히는 거예요. 도저히 안되겠어서 그만두려고 그동안 일한 돈을 달라고 하니 주인은 오히려 저한테 뒤집어씌우데요. 그래서 돈도 못 받고 쫒겨났죠.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그게 수법이었나봐요. 돈을 안주려고.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요.”
간간이 목이 잠기긴 했지만 이수나 씨는 어렵고 힘들었던 서울생활을 비교적 담담이 말해주었다. 그래도 생활이 어려운 것 보다 가장 힘든 것은 노래를 할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싶어서 서울로 왔는데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생활에 서울로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래도 자신이 기댈 것은 기타와 노래뿐이라고 결심하고 라이브카페를 찾아다니며 일거리를 찾았다. 기타 하나 들고 서울 거리를 며칠을 헤매다가 비가 세차게 오는 날 종로에 있는 레벤호프라는 곳을 찾았다. 비에 젖은 생쥐꼴을 하고 오디션을 봤는데 정말 불쌍해 보였던지 같이 해보자고 했다. 갖은 고생 끝에 노래를 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드디어 찾은 것이다.
구로공단 역 근처에 필리핀 사람들이 많이 사는 3층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 3층에 방도 하나 마련했다. 정말 아무 것도 없이 합판으로 된 방만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노래를 할 수 있고 잠잘 곳이 있다는 안도감에 고생스러움을 다 잊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집 옆에 자그마한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늘 지나치다가 문득 한 번 들어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회에 갔다. 사모님은 소아마비 장애인이었고 목사님은 찬양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었는데 두 분 다 너무 잘 해 주었다. 집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면 이웃들의 원성이 높았는데 맘놓고 노래를 부를 공간이 생긴 것이다. 하루 종일 교회에서 유행가를 연습해도 좋아해 주고 밥도 챙겨 주었다. 또 교회 사람들은 이불이며 숟가락이며 버너 같은 것을 가져다주며 보살펴 주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한 곳에서 받는 돈이 30만원 정도였는데 차차 이름이 알려져서 서너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6개월을 꼬박 모아 그 건물 1층으로 방을 옮겼다. 1층은 연탄불을 땔 수 있고 물도 나오는 방이었다. 살림살이도 제법 그럴듯하게 갖춰졌다. 대구를 떠나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지 꼭 1년 만이었다.
세 자매
이수나 씨가 서울로 올라와 그 고생을 하면서도 자리를 잡기 위해 몸부림 친 것은 바로 동생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서울에 가서 자리를 잡으면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했다. 1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달음에 대구로 내려갔는데 자신이 살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생 둘의 학비를 벌며 가장이 되어주던 언니가 가출을 했는데 동생마저 없어진 것이었다. 동생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동생이 사는 집으로 찾아갔다. 한눈에도 불량해 보이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는 것을 보자 앞뒤 잴 것도 없이 친구들을 쫒아내고 동생을 개 패듯이 팼다. 저를 데리고 오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것을 보니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동생도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동안 지냈고 함부로 산 것도 아니었다.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와서 헤어메이크업을 하고 싶다고 해 학원에 등록했다. 한 달 학원비가 70만원이나 했지만 감당할 능력이 있었다. 동생은 수나 씨가 가수 활동을 할 당시 직접 헤어메이크업을 해 주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동생에게 있어 언니 이수나 씨는 엄마와 같은 존재이다.
“저에게는 우리 언니가 엄마 같은 존재죠. 언니가 잠시 방황을 했지만, 그래도 언니가 없었으면 지금 우리가 있을 수 없죠.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언니에게 충성이에요. 그 어린 나이에 짊어져야 했을 삶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죽을 때까지 갚아도 모자라요.”
지금은 세 자매 모두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그것이 감사하고 고맙다.
아픈 이름 - 가족, 그리고 엄마
“제 얘기를 하면서 가족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죠. 우리집은 예안면 삼계리예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정말 좋으신 분이셨어요. 그분들의 정성 때문에 제가 이제까지 살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장애인이세요. 후천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릴 때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다가 산에 불을 냈대요. 할머니가 산속으로 피신시키고 밥을 날랐는데 옆 동네 경찰 관계자에게 들켜서 도망가다가 삽으로 머리를 맞았대요. 모두 죽는다고 했는데 다행이 살아났지만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고 난폭해지셨어요. 할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댈 정도였대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끝까지 아버지를 책임지겠다고 감싸셨어요. 엄마는 삼계보다 더 산골 마을에 사셨는데 할아버지 댁이 부자이고 인품도 좋으신 것을 알고 외할머니가 어머니 배 곯지 말라고 시집을 보내셨어요. 엄마는 한자도 잘 읽고 똑똑하고 노래도 잘 하는 분이셨어요. 다섯 살인 제게 책도 읽어주고 바느질도 가르쳐주었어요. 근데 아버지는 모든 화풀이를 엄마에게 했어요. 대문을 부수고 상을 엎고 때리고 숯불로 지지고 온갖 난폭한 행동을 하니 엄마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제가 다섯 살 때 저희 세 자매를 두고 대구 이모집으로 피신을 갔어요. 나중에 들으니 봉화 쪽으로 개가를 했다고 하더라구요. 엄마가 없어진 다음부터는 우리가 아버지의 폭력을 고스란히 당했는데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서 견딜 수 있었죠. 하지만 제가 5학년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저희들의 삶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죠.”
아랫동네에 큰아버지가 계셨지만 방패가 되어주진 못했다. 그때의 무섭고 힘들었던 삶을 돌이켜 생각하면 큰아버지와 동네 친척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크지만 이젠 다 잊어버릴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큰아버지는 아버지와 같은 장애인을 새엄마로 데려왔다. 새엄마는 병아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착한 사람이었는데 딸 둘을 낳았다. 둘 다 장애인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새엄마와는 잘 맞는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지낼 무렵 시골에서 연락이 왔다. 두 동생들을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일도 못하고 시골 생활에 별 도움이 못되니 그러는 것이었다. 두 동생들을 데려다 놓고 늘 노심초사였다. 옆에 붙어 있을 수만 없으니 집을 비우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교회에 가서 늘 눈물로 기도하니 교회 사람들이 딱한 사정을 전해 듣고 알아봐 주었다. 전국을 뒤지다시피 해서 시설을 찾아내었는데 한 집에서 둘 모두 시설에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 3년을 두고 보았더니 적응도 잘 하고 거기에서 공부도 하고 성경을 읽을 정도로 글도 깨치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도 모시고 오기로 했다. 시골에서 일만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주변에서는 왜 그런 짐을 지냐고 부모를 모른 척 하라고도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혀서 부모님을 모셔오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부모님과 두 동생들은 집과 시설을 번갈아 가면서 생활한다. 부모님이 시설로 가면 동생들이 집으로 오고.
“딱 한 번 엄마에게서 연락이 온 적이 있었어요. 미안하다고 같이 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오지 말라고 했어요. 장애인 네 명을 건사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엄마는 멀쩡하니까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요. 그 뒤로는 연락이 없어요. 엄마를 잊을 수야 없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다섯 살 때 엄마가 나를 업고 노래를 불러주던 것이에요. 엄마의 심장 떨림이 등을 통해 제 가슴에도 울려왔죠. 그 울림은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부터 저도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제 존재를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가수의 길을 가다
가족들의 삶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하는 일도 잘 되어 평탄한 삶을 살게 된 듯 했는데 그에게 큰 위기가 닥쳐왔다. 바로 반주기라는 것이 보급된 것이다. 반주기가 나오고 부터는 통기타 가수들이 설 곳이 좁아졌다. 할 수 없이 반주기를 샀는데 노래를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통기타는 밀고 당기고 내 맘대로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지만 반주기는 그게 안되니 노래도 엉망이 되었다. 천직이라고 생각해온 노래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동안 이수나 씨를 봐온 챠트코리아 사장이 노래선생에게 노래를 배워보라고 권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 김학민 씨다. 나름 노래를 한다고 자부했지만 선생님의 평가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수강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노래 공부를 시작했다.
“너무 실력이 없었기 때문에 묵묵히 시키는대로 연습만 했어요. 하루 연습실 나오고 하루 쉬는데 쉬는 날은 혼자 산엘 갔어요. 바위에 혼자 앉아 연습을 했지요. 울기도 많이 울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연습에 매달렸죠. 저는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우고 사람들하고 어울려 풍류를 즐기지도 못해요. 먹고살기 급급해서 그럴 여유가 없었죠. 그동안은 먹고 살기위해 노래를 했다면 이젠 제게 가수의 꿈이 생긴 거잖아요. 그 생각으로 세월을 견뎠죠.”
5년 만에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좋은 노래가 있으니 한 번 불러 보라고. 첫 음반을 내고 6개월 정도 홍보를 했는데 라디오에도 노래가 나오고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당장 유명한 가수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사장님과 선생님께서 6개월 만에 활동을 접고 실력을 더 키우자고 결정을 내렸다. 청천벽력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고 피땀을 흘렸는데 달리는 사람 발목을 걷어차다니 이럴 수가 있나 기가 막혔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에서는 누가 뭐래도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야 되는데 무대를 휘어잡을 수 있는 실력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4년 전이었다.
“실패를 경험하고 많이 성장했습니다. 사람은 주위 사람들 때문에 바로 갈 수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우리집에 어른이 없잖아요. 선생님과 사장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죠. 넘어지려고 할 때마다 일으켜 주셨어요. 아무것도 없는 안동 촌년에게 누가 이렇게 신경을 써 주겠어요. 선생님은 제가 열심히 살아서 보상을 받는 거라고 말하지만 저는 선생님이 예수님이라고 해요. 저를 믿어준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죠. 사장님도 저 때문에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5월 달부터 새 음반 홍보에 들어갔다. 지난 음반을 다시 녹음해서 발매했다. 타이틀 곡은 ‘사랑은 거짓말’이지만 제일 인기 있는 곡은 ‘바빠서’이다. 신나고 멋진 곡이어서 태진아 씨 뒤에 무대에 오르더라도 꿇리지 않을 곡이라고 자부한단다. 가수가 된 뒤로 안동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또 안동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서 고맙다고 했다. 안동은 자신에게 상처만 준 곳이라 그동안 일부러 외면했지만 요즘은 점점 안동이 생각나고 안동을 대표하는 가수가 되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제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안동 사람들 하면 다 불쌍하거나 무섭거나 극단적이었는데 사람들을 만나보니 저 같은 환경에서도 잘되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더 잘 되고 싶어요. 그래서 안동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리고 이제까지 저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한 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또 궁극적으로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식구 네 명을 비롯해 제 주변에 장애인들이 많아요. 우리 사장님도 장애인이시구요.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지어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살고 다른 사람도 돕고 싶어요.”
음반을 내고 활발한 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요즘 또 하나 신경을 쓰는 것은 안동간고등어 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경쾌하고 흥겨운 노래라 안동 홍보도 되고 간고등어 홍보도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 자신은 한 번도 가족이 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단다. 오히려 어렵고 힘들 때 그들이 자신을 붙잡아준 버팀목이었다고 밝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의 4백여 명의 팬카페 회원들이 바라는 것처럼 언제나 맑고 순수하게 노래하는 이수나 씨가 되길 빌어본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