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기 자존심을 지킨 안동사람들을 찾아서(글/사진/정연상_안동대 건축공학과 교수)
우리는 조선시대 이전 문화유산만을 문화유산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최근까지 나는 전통건축 관련 문화유산을 전공한다고 하면서 조선시대 이전의 건축문화유산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안동에서 살면서 나는 안동에 또 다른 문화유산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에 우연한 기회에 나는 새로운 문화유산을 만났다. 그것이 근대기 독립운동 관련 안동의 문화유산이다. 안동의 독립운동 관련 유형 또는 무형의 문화유산은 안동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이들 문화유산은 아주 가까운 시기 안동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며 흔적이다. 이들을 정리하고 기념하고, 그들에 대한 선양을 표현 한 곳이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다. 독립운동 관련 기념관은 천안의 독립기념관과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독립기념관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있으며,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경북 안동시 임하면에 있다. 독립운동관련 안동의 주요 유적지는 많지만 천안의 독립기념관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고 그 중심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 권기일선생출생지(權奇鎰先生出生地)
○ 임청각(臨淸閣)
○ 안동3·1운동기념비(安東三一運動紀念碑)
○ 안동광복지사기념비(安東光復志士紀念碑)
○ 이만도의병장종가(李晩燾義兵長宗家)
○ 이만도선생유허비(李晩燾先生遺墟碑)
○ 안동농고항일기념비(安東農高抗日紀念碑)
○ 니산정(泥山亭)
○ 협동학교기념비(協東學校紀念碑)
○ 일송김동삼선생생가(一松金東三先生生家)
○ 추강김지섭선생기념비(秋岡金祉燮先生紀念碑)
○ 이원록「육사」생가(李元錄「陸史」生家) 등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한 시대를 살았던 선열들 삶의 질곡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가치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한민족의 슬픈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과 존재의 고귀함을 일깨워 주는 곳이기도 하다. 안동독립기념관에는 독립운동 관련 ‘자료 수집ㆍ보존ㆍ관리 및 전시, 기념관 자료 전시와 지역 주민을 위한 교육 실시ㆍ자료 홍보와 각종 간행물의 제작 및 배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즉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민족혼과 지역 정신의 산실로서 지역 주민들의 정신문화 회복 및 고취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있는 주변에는 의성김씨 관련된 문화유산이 많이 있는 지역으로 안동시 문화유산이 많은 권역 중 한 곳이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는 ‘나라위해 살다간 안동 독립운동가 1000人’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조형물 벽면에는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적어도 안동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아로새겨진 그분들의 이름을 쓰다듬어 먼지가 앉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나라를 위해 살다간 안동사람들을 안동사람들이 기억해주지 못한다면 어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알아주겠는가?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전통적인 건축기법과 현대적인 건축기법을 절충하여 조영하였다. 내부공간은 현대적 전시공간과 사무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재해석하여 축조한 독립운동기념관 현관을 보면, 기둥과 수평부재는 원목을 사용하였지만 기둥 상부의 보는 집성목재를 사용하였다. 다시 가구재 위 서까래는 원목을 사용하여 마감하였고, 지붕의 기와는 흙을 빚어 만든 기와가 아닌 동판으로 만든 기와를 올려 마감하였다. 따라서 전통기법으로 사용한 부분도 전통적인 재료와 현대적인 재료로 구성한 것으로 나뉜다. 이런 모습은 전통에 대한 해석과 응용방법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안동지역의 전통건물은 보편적으로 소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목재의 수급이 어려워 수입목재를 사용하고 있는데, 목재의 성질과 색상 등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수입목재를 사용한 건물을 보면, 건물은 붉은 기운이 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현관의 목구조재는 색감이 붉은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는 국내산 소나무가 아닌 수입산 소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들보는 원목이 아니라 작은 나무를 모아 만든 휜집성목을 사용하여 천정이 한결 가벼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런 모습은 과거 휜나무를 사용한 경우와 같다. 그리고 기둥 상부는 전통목조건축물의 포작을 현대화 및 약식화하여 표현하였다. 이런 모습은 과거 전통문화를 존중하던 안동지역의 현대적 표현이며, 더 나아가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의 무형적 문화유산과 유형적 문화유산이 과거 안동과 현대의 안동을 연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많은 관계자들의 노력에 불구하고 많은 가치를 지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적다는 점이고, 안동 사람들의 사랑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 독립운동 흔적과 우연한 만남
안동지역은 현재도 유교문화의 정통성을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하여 지역사회의 정신문화를 확립하고 있다. 안동지역 사람들은 어려운 국난이 발생할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안동의 수많은 사람들이 국난극복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안동지역은 타 지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독립유공자 및 자결순국자를 배출하였다. 후손들은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을 통해서 이들의 깊은 뜻과 희생정신을 배우고 있는데, 국내 독립운동기념관외 국외에도 사례가 있다.
나는 최근 중국에 있는 근대기 선열들의 흔적 몇 곳을 우연한 기회에 순례를 한 적이 있다. 중국 사천성 중경시 연화지에 있는 중경임시정부청사를 독립운동 관련 연구자들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이때 나는 중국 상해(上海)와 항주(杭州)를 거처 중경으로 갔었다. 사천성 중경시에는 현재 두 곳의 임시정부청사 유적과 대한민국임정 및 한국광복군과 관련된 유적들이 남아 있다. 중경시는 중국의 다른 도시처럼 도심개발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도심 중심부에 있는 중경임시정부청사는 중국정부와 한국의 독립운동기념관 관계자, 연구자 등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유지 관리되고 있다. 특히 재개발의 한복판에 있는 오사향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는 도심 내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전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천성 중경시는 장강(長江)과 가릉강(嘉陵江) 합류 지점의 도시로, 중일전쟁 때 장개석 국민당 정부의 임시수도였다. 중경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0년 9월 중경으로 옮겨온 뒤 입주했던 네 청사가 있었는데, 양류가(楊柳街) 청사와 석판가(石版街) 청사는 일본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세 번째 청사 오사야항(吳師爺巷) 1호는 현재 도심의 상업시설 건물로 감싸인 주거지 내에 있다. 마지막 연화지 중경임시정부청사는 1945년 1월부터 11월 김구선생 일행이 귀국할 때까지 사용하던 청사다. 중경임시정부청사는 1994년 6월 천안 독립기념관과 중경시 대외인민우호협회가 ‘중경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복원협정’을 체결하여 1995년 8월 11일 중건하여 ‘중경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 진열관’을 개관하였다. 중경시는 현재 청사를 ‘시급문물보호단위 65-38호’로 제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2001년에는 독립기념관 주관 하에 건물을 개수하고 전시내용을 수정 보완하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독립기념관과 중경 정부의 주도하에 훼손된 부분을 중수하고 있다.
중경임시정부청사는 현재 전시공간과 사무공간, 관리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는 1호실, 2호실, 3호실, 4호실, 5호실이 중앙 계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있다. 벽체는 현재 시맨트몰탈을 바른 후 벽돌모양으로 줄무늬를 그려 멀리서 보면 전벽돌 건물로 보인다. 내부 바닥은 장선을 걸고 플로링마루널를 깔아 마감하였다. 최근 수리를 하면서 이를 걷어내고 콘크리트를 바꾸려하는 것을 구조 보강하여 기존의 마루구조로 수리하도록 하였다. 마루구조를 하도록 한 근본적인 이유는 마루를 밟을 때마다 나는 나무마루 소리와 발자국소리 등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추정컨대, 1940년대 임시정부청사 모습은 현재 헐려 나가고 있는 중경시내의 목조건물과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경임시정부청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목재가 부식 또는 구조 안전상의 문제로 벽돌과 콘크리트로 보강을 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본다.
관리 및 운용은 제 모습을 찾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중국 현지 사정으로 문제가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때 문화유산은 지속가능한 관리 및 운용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중경에서 귀국하던 중 국내선 비행기가 연착하여 항주에 하루 묵었던 적이 있었다. 항주는 남송시대의 역사문화가 살아 있는 곳으로 유명하고, 절강성의 성도로 시 서쪽에 서호(西湖)가 있으며 소주(蘇州)와 함께 경치가 좋은 도시로 유명하다. 항주는 윤봉길 의거 직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를 떠나 3년 6개월 동안 머물렀던 장소로 임시정부청사와 한국독립당 사무소 등이 있다. 현재 많은 한국인들은 항주를 찾은 후 안휘성 황산과 주변 문화유산을 찾아 간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의 방문을 고려하여 항주의 전통공연장에서는 짧은 아리랑 공연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근대기 흔적을 알 수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항주구지기념관’이 서호 주변에 있다는 것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건강한 정신문화유산의 효율적 관리 필요
현재 중국에 있는 한국 관련 근대기 문화유산은 중국정부가 유지 관리하고 있고, 한국측에서는 다각도로 지원을 하고 있다. 항주의 기념관은 관계 종사자들의 노력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운영되고 있지만, 항주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그곳을 방문하여 그 가치를 아낄 때 존재 의미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는 안동독립운동기념관도 같다. 최근 안동에는 안동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다. 이후 안동과 하회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엄청난 수로 늘고 있는데, 이들에게 안동의 다른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할 시점이 되었고 하회로 집중되는 사람들을 분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한 곳에 편중하여 문화유산을 편식하는 것은 모두가 자멸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편식을 막고 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때, 그들의 가치는 지속가능할 것이다. 건강한 정신문화를 갖게 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는 천전리 일대 안동독립운동기념관과 의성김씨 관련 문화유산이 그 한 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