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골 가게집 신순남씨(글/사진/김복영_본지 발행인)
동네에서는 그냥‘가게집’이라 부르고‘가게집’이라면 으레 그이를 지칭하는 줄 안다.
신순남, 올해 예순 한 살인 그는 친정이 예천 청복동이다. 그러니 여느 댁 부르듯이 택호를 부르자면 예천댁이라고 하던지 청복동댁이라고 불러야 옳다. 아니면 순남씨 라고 정겹게 이름을 부르던지.
그런데 그이는 어른한테서나 아이한테서나 택호도 이름도 제쳐두고 한결같이 가게집으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스물여덟에 붙잡은 이 일이 어느덧 삼십년을 넘다보니 운골에서 신순남은 그야말로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풍천면 도양2리 운골을 들어서면 마을 어귀에 조그만 가게가 하나 있다.
이 가게가 신순남씨의 애환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일터이자 쉼터이다.
이 집은 순남씨의 시어른이 살림집으로 지은 방 두간 정지 한간의 초가였다. 근년에 와서 지붕도 고치고 유리문도 달아서 겉으로 보면 제법 반듯한 집이 되었다.
그러나 남의 땅 위에 앉아 있으니 재산으로 보면 빛 좋은 개살구다.
가게방은 순남씨가 가작을 달아 꾸민 것이다. 서너평 될 듯한 가게에는 얼기설기 짜인 진열대 위에 진열대만큼 엉성하게 몇 가지 생필품과 과자 봉지들이 놓여있고 비닐장판이 깔린 방바닥은 따뜻한 온기가 돈다.
노인정이 없는 운골에서 이 가게방이 경로당 역할을 하고 있으니 때 맞춰 연탄불을 가는 것도 순남씨의 몫이다.
경북도청이 들어오면 순남씨도 예외 없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 여기저기서 보상 이야기를 하는데 땅 한평 없는 순남씨에게는 이 낡은 집이 유일한 보상 물건이다.
60평생 살아온 과정을 생각하면 대책 없이 삶의 터전을 버려야 하는 노년의 신세가 처량하다. 내 갈 곳은 고사하고 조상의 묘조차 옮길 데 없는 처지가 서글프다.
지금 남편 유택조차 마련할 수 없으니 나중에 순남씨가 갈 곳은 아예 없다. 그래서 지나온 세월이 더 서럽다.
7남매 중 막내딸로 자라서 열여덟 꽃띠에 열 살 맏이 동래정씨 총각에게 시집을 왔다. 딸 둘 아들 둘을 낳고 서른여덟 한창 때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은 몸 고생 마음고생 다 시키다가 쉰여덟에 세상을 떴다. 지독한 가난만 남겨놓고.
뜬내 나는 통일벼 배급 쌀로 어린 4남매를 키우면서 남편 병수발 들던 20년 세월이 눈가에 이슬로 맺힌다. 연신 맨손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자식들 이야기에 다시 목이 메는 그이가 안쓰럽다.
도청이전.
웅도경북의 새 역사를 여는 일이라 한다.
그 역사의 시발점에서 낙담하고 있는 순남씨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가게 앞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잡는 그이의 손길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훗날, 그를 알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게집이 아닌 신순남으로 남기를 빌어본다.
2010. 10. 10. -彷杖-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