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매질의 추억(글/박인수_본지 운영위원, 경희한의원 원장)내가 초등학교 졸업반이던 1974년에 시골에서 전학 온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이름이 문창훈이어서 문짝의 창호지를 연상하게 했는데 인상이 참 특이했다. 전학 오기 직전에 민 듯한 까까머리에다 새까맣게 탄 피부, 두툼한 입술과 왕방울만한 큰 눈을 가졌는데 코가 납작하고 작다보니 아프리카 토인이 아닌가하고 의심될 정도였다. 더구나 멋쩍은 듯 실실 웃을 때는 괴상망측하게도 두툼한 입술을 비집고 하얀 덧니가 툭하니 삐져나왔고 논일을 하다가 왔는지 핫바지를 걷어 올리긴 했는데 한쪽이 흘러내려 바지 길이가 달랐다. 게다가 신발은 깜장 고무신에다 책가방 대신 책보를 끼고 있었으니 촌놈도 이만저만한 촌놈이 아닌 듯 했다. 창훈이는 문제아였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 수업시간에 조는 것은 예사고, 선생님의 질문에는 동문서답, 수학문제는 풀 줄 아는 게 아예 없었다. 시골에서 전학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도 없고 아이들이 촌놈이라고 놀리며 같이 놀아주지 않으니 늘 혼자서 지내야 했다. 실실 잘 웃던 아이는 점차 웃음을 잃어갔고, 교실 구석자리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져 갔다. 나는 창훈이에게 다가서서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눈치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시간에 비가 내려 야외수업을 하지 못하고 교실에서 장기자랑을 하게 되었다. 다들 선생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고 심심해하다 아이들을 웃기는데 재주 있는 친구들이 나가서 장기자랑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그때 창훈이가 자기도 보여줄 게 있다며 번쩍 손을 들고는 교단 앞으로 나갔다. 다들 촌놈이 왜 저러나 싶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창훈이는 멋쩍은 표정으로 짝다리를 짚더니 아이들 귀에 익은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돼지 멱따는 소리로 ‘군밤타령’을 하며 농사꾼들 춤사위를 흉내 내며 교단을 왔다갔다 하는데 그 모습이 하도 웃겨서 아이들 모두가 배꼽을 잡았다. 그때 이후로 반애들은 창훈이를 다시 보게 되었고 얼마 후에 있었던 운동회 때는 우리 반 응원단장을 맡게 되었다. 운동회를 하는 날 응원단장을 맡은 창훈이의 역할은 눈부셨다. 특이한 외모와 언행 때문에 학교전체에 금방 소문이 났고 그 후로 아이들은 창훈이와 얼굴이 마주치기만 해도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런 창훈이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생겼다. 전학 후 치러진 첫 시험에서 두 과목 빵점을 받은 것이다. 주관식 시험이라면 몰라도 4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에서 빵점이 나오기는 어렵다. 백점을 받을 수 있는 실력 있는 학생이 장난삼아 하나하나 정답을 피해간다면 모를까, 보통 수준의 학생들이 정상적인 답안을 작성해서는 도저히 빵점이 나올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창훈이는 답안을 다 작성한 시험에서 한 과목도 아닌 두 과목에서 빵점을 받았다. 선생님은 기겁을 했고 아이들은 다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신나했다. 창훈이는 정답을 피해가는 도사에 맞먹는 신통력을 지녔다며 그때 이후로 ‘빵점도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이들은 창훈이를 볼 때마다 “문빵점” “빵점도사” 하면서 큰 소리로 부르며 놀렸다. 아이들이 바보촌놈이라고 욕하고 놀려도 창훈이는 하얀 덧니들 드러내며 씨익 웃고 넘어갈 뿐 화내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들은 다들 창훈이를 바보라고 생각했고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창훈이네 집은 우리 집으로 가는 중간에서 갈라지는 곳에 있었는데 하교 시에 같이 가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는 내가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집으로 갈 때 창훈이가 뒤따라와서 함께 가곤 했는데 동네 친구들이 창훈이를 잘 모르고 또 무시하다보니 창훈이가 우리들 틈에 끼지를 못했다. 나 역시 동네친구들이 우선이다 보니 그냥 우리끼리 떠들고 웃고 장난치며 집으로 갔었고 창훈이의 존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도 창훈이는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며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그냥 듣기만 했는데, 동네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에 정신 팔린 날은 창훈이가 작별 인사를 해도 대꾸조차 하지 않고서 헤어지는 때도 있었다.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받아주지 않으면 무척이나 화가 날텐데도 창훈이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땐 창훈이가 바보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나 동네 친구들은 그런 창훈이에 대해 무관심했다. 창훈이는 우리의 그런 행동에 대해 불만이 없는 듯 했기에 그런 일들이 하나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창훈이와 나와의 그런 이상한 동행은 창훈이에 의해 끝나게 되었다.
어느 날, 방과 후에 교무실에 볼 일이 있어 들렀다가 좀 늦게 혼자서 집으로 가게 되었다. 집까지 가는 먼 길을 심심해하며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것이다. 창훈이였다. 창훈이가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나를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다른 애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간 이 시간까지 창훈이가 왜 학교에 남아 있었는지 이상했지만 그다지 궁금한 일도 아니어서 물어보진 않았다. 그날은 창훈이와 나 단 둘이서 같이 집으로 가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창훈이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내게 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재미있어하며 듣기만 했는데 갈림길에 다다르자 창훈이가 내 손을 끌며 자기 집으로 놀러가자고 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은 다들 사는 형편들이 고만고만하여 어려웠다. 같은 반 친구라 해도 어려운 가정형편이 알려지는 걸 서로 꺼려하여 정말 친한 친구사이가 아니면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 거의 없을 때였고 반장과 부반장이 담임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이라도 하는 날에는 아이들이 창피함을 피해 멀찌감치 도망을 가고 없던 그런 때였다. 그런데도 창훈이는 굳이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 했다. 마침 그날은 해야 할 숙제도 없었고, 집에 빨리 가야 할 이유도 없었던 날이었다. 비록 친한 사이는 아니어도 같은 반이고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조금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마지못해 창훈이네 집으로 따라갔다. 창훈이네 집으로 가면서 창훈이가 시골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다른 애들보다 더 가정형편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내 예상과는 달리 창훈이는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끔씩 지나치며 ‘저런 집에는 누가 살까?'하던 그 양옥집들, 창훈이가 그 집들 중 한 곳으로 가더니 주저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당시는 초인종이라는 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애들에게는 엄청 재미있는 물건이었고, 초인종을 누르고 집안에서 인기척이 나면 주인아저씨에게 붙들리지 않게 도망치는 장난을 많이 할 때였다. 창훈이가 뜬금없이 부잣집 초인종을 누르자 나는 달아날 준비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창훈이는 도망갈 생각은 않고 그 집의 문이 열리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 같았다. “쩡”하는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림과 동시에 내 심장은 “쿵”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며 쪼그라들었다. 잔뜩 겁먹고 뒷걸음치려는 듯한 나에게 창훈이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집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서 있다가 마지못해 주뼛거리며 따라 들어갔다.
잔디가 깔린 마당을 지나자 현관에는 도회지풍의 세련돼 보이는 젊은 여자가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었다. 창훈이가 그 여자분을 엄마라고 하며 나를 인사시켜주었다. 내가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하자 창훈이 엄마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거실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있는데 창훈이가 방석을 가져와서는 그걸 깔고 앉으라고 했다. 집이 장난 아니게 부자였다. 집안 분위기가 고급스럽고 하도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는 것이 내가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은 아닌 듯 했다. 숨소리조차도 조심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앉아있으려는데 창훈이가 이것저것 자꾸 귀찮게 말을 걸었다. 나는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얼마 후 창훈이 엄마가 예쁜 접시에 과자와 과일을 한가득 담아 내왔다. 과자는 그렇다 쳐도, 그 당시 과일은 너무 비싸 아무나 먹을 수 없던 귀한 것이었기에 적잖이 놀랬다. 창훈이 엄마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둘이서 사이좋게 재미있게 놀아”하며 안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창훈이 엄마가 들어가고서 창훈이랑 단 둘이 되고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어린나이인 내가 보기에도 그 젊은 여자가 창훈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세련되고 젊어 보이는 여인과 촌티가 줄줄 흘러넘치는 창훈이가 모자지간이라고 하기에는 생김부터 달랐고 친엄마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었기 때문이었다. 마음 한 구석에 ‘그 여자가 왜 네 엄마냐?’하는 궁금증을 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굳이 창훈이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집안에 신기한 물건들이 많아서 내 호기심은 이내 그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거실에는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고급스런 가죽 소파가 놓여있었다. 내가 거실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자 소파는 부드럽게 내 몸을 뒤에서 끌어안는 듯 했다. 나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서 거실의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둘러보았다. 창훈이 집에는 참으로 진귀한 물건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내가 생전 처음 보는 물건들로 세계 여러 곳에서 가져온 것들이라고 했다.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될 귀중한 물건들인 것 같아 손으로 만지지는 못하고 그냥 눈으로만 구경했는데 그저 ‘아, 정말 신기하다!’ 하는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현관 입구 건너편에 놓여있던 수족관으로 시선이 향하게 되었는데 다른 수족관들과는 달리 물이 조금밖에 차 있지 않아 물고기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니 새끼 악어 두 마리가 들어있었다. 길이가 1m가 채 안돼 보이는 것으로 당연히 박제품인 줄로 알고 아무생각 없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악어가 감았던 눈을 번쩍 뜨는 것이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마치 악어에게 콧잔등을 깨물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는데 창훈이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학교에서는 창훈이가 촌놈이었지만, 창훈이 집에서는 반대로 내가 촌놈이 되어 있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나고 창훈이 방에 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창훈이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창훈이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댁인 시골에서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외항선을 타는 바람에 시골에 오는 일은 거의 없고 기껏해야 일년에 한두 번 오시기는 해도 집에 계시는 날이 많지 않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없다고 했다.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공부는 하지 않고 하루 온종일 놀며 시간을 보냈는데 막상 중학교엘 갈 때가되니 할머니와 떨어져서 부산으로 전학을 와야 했다고 한다. 막상 와보니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수업시간에 잠만 오고, 아이들도 바보촌놈이라고 놀리며 같이 놀아주지 않으니 많이 외롭다고 했다. 시골에 있는 할머니와 친구들 이야기를 할 때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묻지 말아야 할 게 있고, 굳이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둘이서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는 게 낫다 싶었는지 창훈이가 장난감 상자를 꺼내 왔다. 방바닥에 쏟아 부으니 그 종류가 엄청났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모형자동차가 가장 마음에 들어 주로 그것만 가지고 놀았다. 과자도 먹고 과일도 먹고 놀다보니 저녁때가 다 되어 집에 가야했다. 창훈이는 내가 집을 나올 때 자기가 주는 선물이라며 내가 가지고 놀던 모형자동차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받았다가 조금 만지작거리고는 돌려주었다. 그건 너무 비싼 것이어서 그냥 모른척하고 받아가기에는 도저히 안 될 물건인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장난감이 눈에 걸려 많이 후회를 했다. ‘에이, 그냥 못 이기는 척 하고 받아 올걸…….’ 다음에 주겠다고 하면 두말없이 그냥 받으리라…….
창훈이 집에 놀러갔다 온 다음날부터 창훈이와 나 사이에는 변화가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갈 때 서로 기다리다가 둘이서 같이 붙어가는 날도 있었고, 다른 친구들과 같이 가는 날에도 창훈이를 같이 끼이게 해서 같이 다녔다. 그리고 창훈이와 헤어지는 갈림길에서는 언제나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있는 일이긴 했지만, 어떤 날은 창훈이가 우리 동네로 놀러 와서 같이 놀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관계는 스스럼없이 잘 지낼 수 있었는데 그냥 아는 친구 수준 이상으로는 발전되지 못했다. 같은 반이었고 또 서로가 충분히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조건인데도 친한 친구사이가 되지는 못했다. 창훈이는 외모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을 정도로 특이한데다, 행동 또한 종잡을 수 없이 괴팍해서 친구들끼리 모여 놀 때는 자주 분위기를 깨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랑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은 내가 창훈이랑 같이 어울려 노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그러니 창훈이가 놀러오는 날에는 둘이서만 따로 놀아야 했다. 창훈이는 정말 별스럽게 놀았다. 창훈이의 놀이방식은 여자애들의 입장에서 보면 많이 짓궂었고, 어른들이 볼 때는 위험했으며, 내가 볼 때도 무조건 같이 따라하기에는 곤란한 것들이 많았다. 나는 그중에 내가 같이 따라할 수 있는 건 따라하면서 같이 놀고, 같이 할 수 없는 건 그냥 창훈이가 하는 것을 지켜보는 식으로 하면서 어울려 놀았다. 그런 나를 두고 아이들이 뭐라고 쑤군거리긴 했지만,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고가 터졌는데, 그때 일은 내가 평생을 두고서도 잊을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내가 살던 집 앞길 위쪽에는 양쪽이 담벼락으로 막힌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집을 짓지 않아 구석에 텃밭처럼 무 배추가 심어진 곳을 제외하고는 늘 비어 있었다. 양옆은 주택의 담으로 막혀있고 앞쪽은 도로에 접해있는데 뒤쪽은 언덕으로 막혀 있었다. 언덕은 절개지는 아니었지만 꽤나 경사가 있고 그 한가운데에 큰 바위가 거인의 배꼽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바위이긴 해도 걸터앉을 공간조차 없는 그 쓸모없는 바위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창훈이 눈에는 그 바위가 아주 특별하게 보였나보다. 도로에 접한 쪽에서 언덕의 바위 끝까지 제법 거리가 있어 30m 정도는 족히 되었던 것 같은데 창훈이는 그 바위를 뚫어져라 노려보더니 돌멩이를 집어 들고 냅다 던지는 것이었다. 창훈이의 손을 떠난 돌멩이는 큰 바위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서는 ‘따악’ 하는 큰 소리가 나며 산산조각으로 부셔져 버렸다. “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시간을 그 공터에서 놀며 보냈지만 아직까지 그 바위에다 돌멩이를 던져 깨트린다는 발상을 하고 노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공터는 주택과 언덕으로 삼면이 막혀서 돌멩이가 바위에 부딪쳐서 깨질 때는 소리가 공명이 되어 크게 울려 퍼졌다. 거인의 배꼽을 향한 돌팔매질이 시작되었다. 둘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주변의 돌멩이를 주워 와서 집어 던졌다. 바위에 돌이 맞을 때마다 ‘따악’ 하는 소리가 울렸다. 돌이 빗나가 흙벽에 맞추면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제대로 바위에 맞기만 하면 크게 소리가 났다. 약하게 던질 때보다는 강한 힘으로 던질 때가, 멀리서보다는 가까이서 던질 때가 돌멩이도 더 확실하게 깨졌고 소리도 더 크게 났다. 돌팔매질이 더 잦아지면서 누가 더 돌멩이를 확실하게 깨트리나 하는 경쟁이 붙었다. 창훈이는 나보다 팔 힘이 더 세어서 던질 때마다 크게 소리가 났다. 나도 팔 힘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 웬만큼은 멀리 던진다고 생각했는데도 시골에서 돌멩이질로 단련된 창훈이를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리를 썼다. 제자리에서 던지질 않고 뒤에서 도움닫기를 해서 던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돌멩이는 좀 더 힘차게 날아갔다. 정확도는 다소 떨어져서 빗맞는 게 많았지만 일단 제대로 던진 것은 확실하게 깨어졌다. 창훈이도 나를 따라했다. 창훈이는 내 오른쪽 편에 있었다. 둘은 도움닫기를 해서 돌팔매질을 하면서 앞쪽만 쳐다보았지 옆쪽이나 뒤쪽은 아예 주의를 두지 않았다. 서로 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하나씩 집어 들고서는 길 뒤쪽에서 달려 나와 힘차게 팔을 휘둘러 앞으로 던졌다.
“따악” “딱” “따악” “퍽(?)”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기에 바위 쪽을 보았는데 날아간 돌멩이가 보이지 않았다. 바위에 맞아 파편이 흩어지는 모습도 없고 언덕 흙벽에 돌이 맞은 것도 아니고.
“봐라. 내가 얼마나 씨게 던졌는지 돌이 안 보인다, 그쟈?” 하며 창훈이를 보는데 창훈이가 대갈통을 감싸 쥐고 땅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있었다. 두툼한 입술을 비집고 나온 덧니 사이로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는데 손으로 감싸 쥔 머리에서 붉은 피가 펑펑 쏟아져 나와 손가락을 타고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경황이 없어 어쩔 줄 몰라 멍하니 서있었다. 창훈이가 소리를 지르며 울기시작하자 근처를 지나가던 어른 한 분이 달려와서는 창훈이를 일으켜 앉히고는 대충 지혈을 시켜주었다. 잠시 후 연락을 받은 어머니가 앞치마바람으로 황급히 달려오셨고 창훈이를 데리고서 병원으로 갔다. 창훈이가 병원으로 가자 잠깐 사이에 모였던 사람들도 다들 흩어졌다. “그러게 누가 위험하게 돌멩이 던지고 놀래?”하며 군밤을 때리시는 어른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평소에 창훈이와 놀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지 않은 나를 고소하게 생각했다. 나는 겁이 나서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상황은 알아야겠으니 집을 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으로 터벅터벅 걸어 기다시피 올라갔다. 그제서야 뭐가 어떻게 잘못 되어서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창훈이는 내가 돌을 던지는 오른쪽에 있었으니 나는 뒤에서 달려오며 도움닫기를 하다가 앞만 보고 돌을 던졌고, 내 앞쪽으로 조금 나가 있던 창훈이는 돌을 집어 들고 일어서다가 내가 날린 돌멩이에 맞았던 것이다. ‘바보같이 그런 것조차도 모르고서...’ 언덕에 퍼질러 앉아 손에 잡히는 대로 풀을 뜯었다. ‘왜 하필이면 그 오른쪽 앞에 있었냐고. 왜?' 나는 속으로 그런 창훈이에 대한 원망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고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멀리서 씩씩거리는 모습으로 집에 들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겁이 나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그 모습을 보자 간이 더 쪼그라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제는 집에 들어가기도 걸렀구나 싶어 풀밭에 드러누웠다. 저녁 해가 서산으로 완전히 다 빠지자 주위가 캄캄해졌다. 별이 하나 둘 검은 하늘을 빼곡히 메우는데 그것을 하나씩 헤아리며 한참을 언덕에 누워있었다. 땅에서 습기가 올라오고 바람이 점점 차가와져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저녁상은 다 치워지고 없고, 이부자리가 깔려있었다. 부모님의 이마에 호랑이 주름이 나 있었다. 그날 밤 차라리 내가 돌멩이에 맞아 머리가 깨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된통 혼났다.
다음날, 창훈이가 머리에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학교엘 왔다. 아이들은 그런 창훈이의 모습을 보고는 또 놀려대기 시작했다. 창훈이는 애들이 왜 그랬냐고 물으면 그냥 놀다가 다쳤다고 했다. 나는 애들에게 내가 그랬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창훈이랑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창훈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창훈이는 싱긋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괜히 덧붙이지 말아야 할 말을 덧붙였다. “니가 거기 있지만 않았어도 안 맞았을낀데” 그럴 때마다 창훈이는 몇 번이고 “괜찮으니까, 됐어” 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창훈이를 바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창훈이는 바보가 아니었다. 창훈이는 어른스럽고 나는 너무 유치하고 바보같이 처신하였다. 내가 돌팔매질을 잘못해서 그런 것인데, 더 세게 던져보려는 내 욕심이 무리수를 두었고 그게 화근이었다. 내가 돌팔매질을 잘못해서 다치게 했으면서도, 다친 친구 탓을 했다. 내 탓인데, 네 탓으로 돌리는 부끄러운 짓을 했다. 35년도 더 지난 그때 그 일은 지금도 까지도 부끄러운 추억으로 남아 있어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어느 것 하나 네 탓이 아니라 모두 다 내 탓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