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선사를 오가며 보는 북이태리의 도시와 자연(글/사진/임세권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교수)

미로 속의 호텔 모차르트
호텔 모차르트, 이렇게 부르니까 무슨 영화 제목 같은데 시 중심에서 가까우면서 값이 싼 호텔을 찾고 찾아 예약을 해놓은 밀라노의 호텔 이름이다. 이태리에도 유명한 음악가가 천지인데 하필이면 왜 독일 사람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 모차르트는 국적을 초월한 인물이라 그런가? 아무튼 이 작은 호텔을 찾느라 고생께나 했다. 네비게이터가 가르켜주는 곳 근처에 적당히 차를 대놓고 물어물어 겨우 호텔을 찾았다. 체크인을 하고 차를 가지고 오니 주차장 위치가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다시 호텔로 올라오는 것도 마치 미로를 헤멘 기분이다. 어쨌든 방에 짐을 놓고 나니 벌써 두시가 다 되었다.


피렌체에서 밀라노까지는 대충 310 킬로미터 정도. 피렌체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몇 번 쉬고 네 시간 쯤 걸렸다. 이태리는 고속도로 휴게소 환경이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처럼 대형 식당이 있는 것은 아니고 편의점과 식당을 겸한 상점에서 간단한 패스트 푸드와 음료 등을 사서 밖에 나가서 먹도록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주차장은 숲과 잔디밭이 잘 조성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작은 주차공간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나무밑이나 잔디밭에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테이블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이와 비교해보면 우리의 고속도로 주차장은 너무 살벌한 풍경이다. 다만 화장실은 우리가 훨씬 좋은데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화장실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용자들을 위한 다른 편의시설도 많을텐데. 화장실은 그냥 깨끗한 정도로만 하고 주차장 안에 있는 잡화상들이나 좀 정리해주고 하루종일 주차장을 울려대는 스피커의 음악소리, 제발 그것 좀 안들을 수 있게 해주는데 신경써 주면, 그러면 안될까? 숲 속 잔디밭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해본 생각이다.


피렌체에서 밀라노는 다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올 때 지나쳐 온 제노아에서 동북으로 올라가면 얼마 안가 밀라노에 다다를 수 있다. 피렌체까지 내려갔다가 로마로 가지 않고 다시 북으로 올라와 밀라노로 온 것은 우리가 베네치아를 거쳐 알프스를 넘어야 하는 까닭도 있지만 밀라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카모니카 계곡의 선사 암각화 유적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밀라노는 오늘 오후 두오모 즉 대성당 만 휙 둘러보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밀라노의 숨통, 스포르체스코 성
호텔 로비에서 지도를 하나 얻어 나와서 무턱대고 시 중심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서 큰 공원을 만났다. 지도를 보면 서북에서 동남으로 축구장 모양의 평면형을 한 거대한 타원형 지역이 있고 양쪽 끝의 반원형 지역에는 커다란 건물들이, 그리고 중심부의 네모난 곳은 녹지대로 되어 있다. 녹지 공간의 서북쪽 끝에는 규모가 큰 문이 있는데 ‘아르코 델라 파체’ 곧 평화의 문이란 뜻이다. 문의 모양새는 루부르 박물관 앞에 있는 카루셀 개선문과 비슷한데 나폴레옹이 밀라노를 정복하고 밀라노 입구의 랜드마크로 세운 기념물이라고 한다. 평화는 전쟁의 결과인가? 나폴레옹의 말발굽에 파괴된 도시에 세운 평화의 문이라니. 문은 보수공사로 인해서 얼기설기 세워진 알미늄 비계로 가려져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평화의 문을 지나면서 전개되는 셈피오네 공원의 숲과 풀밭은 밀라노 시의 숨통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젊은이들이 햇볕아래 누워 책을 읽고 있다. 공원의 끝에는 밀라노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스포르체스코 성이 평화의 문과 마주 서 있다. 성은 1368년 당시 영주인 비스콘티에 의해 첫 공사가 시작되었다가 시민들의 저항을 받아 중단된 후 1466년에 프란체스코 스포르체스코에 의해 완공되었다고 하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브라망테도 건축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현재 성의 이름은 완공자인 스포르체스코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성은 오랜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여러차례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였고 현재의 성벽 앞에 허물어진 옛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어 긴 세월의 영욕을 보여주는 듯 하다.




건성 건성 성을 훑어보면서 성의 정문인 필라레테 탑을 빠져나오니 힘차게 내뿜는 원형의 분수대 뒤로 고색창연한 밀라노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성앞으로 길게 뻗은 단테의 거리 끝에는 빗토리오 엠마누엘레 갤러리아라는 긴 이름의 명품상점이 늘어선 거리가 있다. 이 상가는 길 위에 지붕을 덮어 길 위에서는 피아노를 놓고 길거리 연주를 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저런 볼거리들이 있는데 상점거리의 끝에 보이는 광장 한쪽으로 흰 대리석에 반사된 오후의 햇살이 눈부신 밀라노 두오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백오십개의 뾰족탑을 이고 있는 밀라노 두오모
이미 어마어마한 성당들을 질리도록 보아왔으나 성당건물들은 매번 새로운 자태로 우리 앞에 버티고 서서 보는 이를 유혹한다. 밀라노 두오모의 앞에는 이전까지의 어떤 성당에서도 보지 못한 넓은 광장이 있다. 광장은 동서로 길게 놓여 있는데 동쪽으로 광장과 거의 비슷한 넓이를 차지하고 두오모가 앉아 있다. 백지처럼 강렬한 흰 빛의 대리석이 오후의 순광에 빛나고 있었다. 회색의 광장과 백색의 거대한 대리석 건축물 그리고 그 뒤로 짓푸른 하늘이 무대배경처럼 드리워져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빨려 들어가듯이 성당의 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면을 가로막은 엄청난 스테인드 글라스와 그 앞으로 도열한 수많은 거대한 돌기둥들이었다. 기둥은 갖가지 장식들이 되어 있고 위에는 다양한 인물상 조각들이 있는데 남쪽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으로 걸러진 햇빛이 기둥 한쪽을 빨강, 노랑 또는 보랏빛의 물을 들이고 있었다. 어두운 성당 안에 색색의 빛깔들이 어울려 성스러운 분위기를 돋아 주었다. 여행 초입에 들렀던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 안에서 보았던 오색영롱한 빛줄기가 생각났다. 맞은 편의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는 성경의 이야기를 송두리째 담은 것 같은 수없이 많은 유리조각들을 화려한 빛깔로 우리 앞에 펼쳐 놓았다.




밀라노 대성당의 또 다른 볼거리는 성당 밖에도 있었는데 그것은 지붕 위로 올라가면서 볼 수 있는 고딕 건축의 구조물들과 지붕위에 서 있는 백 오십 개나 된다는 첨탑들이다.
성당의 지붕위로 올라가면서 볼 수 있는 고딕 건축의 아치형 천장을 바치고 있는 구조물들과 그 각각의 구조물들에 새겨져 있는 수많은 조각상들도 볼거리지만 지붕 위에 설치된 연주용 무대와 관객석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대성당의 지붕 위에 올라 밀라노를 조망하는 것도 감동적이지만 그 공간에서 멋진 음악을 감상하는 기분은 어떨지를 생각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지붕 위에는 뾰족한 첨탑들이 숲처럼 도열해 있고 높은 첨탑 위에는 하나도 빠짐 없이 성인의 조각상들이 올라서서 밀라노 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피렌체 두오모 지붕에서 보는 웅장하고 근엄한 맛과 달리 이곳 지붕은 희고 밝은 대리석과 가늘고 높은 첨탑들로 인해 경쾌한 느낌이 들었다.


대성당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대성당 광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빗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라고 부르는 명품거리로 들어갔다. 품위있는 오랜 석조건물로 둘러쌓인 거리는 지붕을 씌워 비가와도 지장없이 쇼핑이나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했는데 네거리 복판에 피아노를 놓고 한 남자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것이 아닐까? 마침 둘째의 결혼이 얼마 남지 않아 아내와 나는 가방 가게 한 곳을 들어갔다. 값은 서울이나 여기나 큰 차이가 없었는데 사든 안사든 제품에 대한 정보를 친절하게 말해주고 손님에게 음료 등을 제공한다든가 하는 서비스가 매우 극진한 것으로 보였다. 물건을 사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서비스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지피에스를 잘못 읽어 옆길로 돌아왔는데 지치고 다리도 아파 옆에 따라오는 아내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길을 잘못들어 고생한 대신 밀라노 시내의 공동묘지를 볼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공동묘지의 정문과 담벽만 보았지만 이처럼 큰 공동묘지가 시내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묘지의 거대하면서도 화려한 정문은 마치 큰 교회의 입구처럼 보였다.




내비게이터가 스스로 찾아낸 암각화 유적
7월 10일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간단한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여 출발한 것이 10시가 넘은 것 같다.  밀라노 외곽에서 동쪽으로 베네치아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 약 80킬로미터를 가서 다시 지방도로로 내려와 북으로 방향을 틀었다. 얼마 가지 않아 남북으로 벋은 골짜기를 따라 길게 누운 호수가 나타났다. 지도를 보니 이세오 호수라 표기되어 있다. 호숫가에는 중세풍의 마을들이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고 호수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도 중세풍의 성채가 보였다. 양 옆의 높은 산 그림자가 물에 드리워 물과 산과 마을들이 어느 하나도 뺄 수 없도록 완벽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호수를 벗어나서 네비게이터에 의존하여 차를 몰다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낯선 곳에서 네비게이터는 때때로 안 믿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난처한 국면을 만들곤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믿을 것이라곤 이것 밖에 없으니. 네비게이터를 따라 그대로 길을 가다가 큰 건물 앞에 섰는데 건물 앞에 ARCHEO PARK 곧 고고학 공원이라고 써 있었다. 네비게이터가 내 의중을 스스로 알아 길을 찾아 주었는지 신통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려서 잠깐 안내를 보니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 학습장 같은 곳이었다.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공원 옆으로 자동차 도로가 보였다. 아무래도 그리 올라가야 할 것 같아 차를 도로 옆으로 계속 몰아갔다. 몇 백미터나 왔을까, 왼쪽으로 범상치 않게 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마치 누가 번쩍 들어 땅 위에 내려 놓은 듯 서 있고 그 옆에 세로로 길게 써 붙인 안내판이 보였다. 차를 한쪽에 붙이고 내려 안내판에 있는 사진을 보니 이게 웬 일인가? 사진에는 카모니카 계곡의 암각화 책에서 본 낯익은 바위가 서 있고 거기 새겨진 암각화 그림도 붙어 있었다. 신통하게도 네비게이터가 스스로 우리를 암각화 유적으로 안내한 것이다.


그것은 코르니 프레스키 암각화 유적이었다. 바위는 가로 약 12미터 높이 약 6미터 정도의 집 채 만한 크기로 남쪽으로 면한 바위면은 마치 일부러 다듬은 듯 편형한 수직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중심부에 마치 중국의 청동제 과(戈)처럼 날을 창대에 비스듬히 세워 붙인 창 아홉 자루가 질서 정연하게 아래 위로 포개져 새겨져 있었다. 암각화의 바로 밑 땅을 발굴했는데 여기서도 같은 형태의 창이 새겨진 암각화가 조사되었다고 한다. 암각화에 나온 창은 기원전 3000년에서 4000년 사이의 동기시대로 알려져 있는데 그 것은 같은 시기에 발굴된 실제 창 유물이 있기 때문이다. 동기시대란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청동을 사용하기 이전, 순수한 구리만 사용하던 시기를 말한다.




알프스 산록의 선사 화랑, 카모니카 계곡
이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차를 유적과 인접해 있는 도로 위로 올려 다시 네비게이터를 믿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차가 어느 마을 뒤의 산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으나 바로 얼마 전의 공훈을 생각해서 그냥 믿기로 했다. 그런데 길은 점점 좁아지고 경사도 급해 도저히 더 앞으로 가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서 겨우 마을 사람을 만나 숙소가 있는 보르노 마을을 물으니 큰 길로 다시 나가서 찾으라고 했다. 엉뚱한 길로 들어온 것이다. 역시 기계는 항상 신뢰할 만 하지는 않다는 걸 알았다. 카모니카 계곡에서 서북쪽으로 올라간 언덕 위에 있는 보르노는 표고 900미터 정도의 남향한 산 경사면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었는데 작고 아담한 호텔과 꽃으로 장식된 농가풍의 주택들, 예쁘게 장식된 가게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그림같은 동네였다.


예약된 벤투렐리 호텔은 작은 3층 건물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짐을 옮기는 것이 불편할 뿐 객실은 깨끗하고 예쁘게 정돈되어 있었다. 짐을 두고 바쁘게 호텔을 나섰다. 오늘 오후와 내일 오전에 부지런히 카모니카 계곡의 암각화를 둘러보아야겠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여행이 암각화 조사 여행이 아니므로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고 유적이 위치한 환경과 찾을 수 있는 몇 몇 유적들의 사진이나 약간씩 찍으면 된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쉽게 되지는 못할 것이란 추측이 지금까지 암각화 유적 조사에서 얻은 경험이므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카모니카 계곡의 암각화들은 수십군데로 나뉘어져 분포되어 있었는데 우선 박물관부터 가보기로 했다. 박물관은 몇 번이나 길을 묻고 또 물어 겨우 찾을 수 있었는데 암각화가 분포된 산 밑의 아주 작은 건물이었고 전시된 유물도 암각화의 탁본이 벽에 몇 점 걸려있는 정도였다. 우리가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체험학습을 하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 활비비를 돌려 불을 피우는 것이라든가, 돌이나 나무에 구멍을 뚫는 방법 등을 박물관 학예사의 지도를 받으며 직접 해보는 것이다. 한 떼의 아이들이 몰려나간 뒤 학예사에게 암각화 유적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안내받고 가는 길을 묻고 또 알프스 암각화에 대한 책도 한 권 샀다. 트렁크 안에 내가 쓴 한국암각화라는 작은 책자가 있었으나 가지고 오지 못해서 내일 문을 열면 갖다 주겠다고 하니 토요일이라 휴무라고 하며 무척 아쉬워 했다.


박물관 뒤편 길을 따라 올라가니 세라디나-베돌리나 유적으로 통했다. 산돌을 깔아 포장된 길 위로 잡초가 보기좋게 나 있었고 유적으로 들어가는 곳에는 돌담을 쌓거나 돌담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유적 번호와 화살표로 안내를 하고 있었으며 그림이 새겨진 바위 앞에는 실측도면을 세워놓아 보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전체적으로 깨끗한 공원처럼 정돈되어 있었고 주변의 아름다운 알프스 풍광이 유적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이나 몰지각한 사람들이 훼손할 경우 방지책이 전혀 없어 불안한 점도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본 이곳 암각화의 훼손 실태가 떠올라 뭔가 훼손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암각화가 있는 산비탈에서 보는 카모니카 계곡과 산 밑을 따라 맑게 흘러가는 강물이 자리를 뜨지 못하게 했다.


암각화 답사는 다음날인 7월 11일 오전까지 계속하였으나 유적을 찾는 것은 여기도 역시 그리 쉽지 않아서 바로 옆에 두고도 한참씩 찾는 일이 예사로 일어났다. 대표적인 유적들의 상당수를 찾지 못해 그냥 떠날 수 밖에 없어 아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내가 지금까지 다녀본 북방 아시아지역이나 미국 등지처럼 인적 없는 산간 오지나 사막 한 복판이 아닌 사람들이 많이 어울려 사는 오래된 마을들 사이에 유적들이 있었다. 이곳 사람들의 오랜 사랑을 받으며 암각화들이 수천년의 시간을 보내 온 것을 생각하면 이곳 암각화야 말로 인간의 역사의 일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줄리엣의 고향 베로나에서 본 세빌리아의 이발사
카모니카 계곡을 벗어나 왔던 길을 타고 브레시아의 알프스 풍광을 뒤로 72킬로미터 내려와야 베네치아로 가는 고속도로에 다시 오를 수 있다. 풍경은 다시 롬바르디아 평야이다. 베로나는 고속도로를 90킬로미터 정도 달려야 한다. 예약해둔 홀리데이 인 호텔은 고속도로에서 내려 바로 왼쪽으로 있었는데 하루 63유로 치고는 괜찮은 듯 했다. 짐을 풀고는 바로 시내구경을 나섰다.


베로나의 인상은 이전에 프랑스에서 보았던 님과 비슷했다. 도시 한 복판을 아디제 강이 서북에서 동남으로 관통하고 있고 강의 남쪽으로 시청사와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 산타 아나스타샤 교회, 베키오 성과 스칼리게로 다리 등이 있고 북쪽으로는 로마시대 원형극장을 비롯해서 산 피에트로 성 등이 있다. 그리고 모든 여행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집이나 무덤도 있다. 여행하면서 늘 갈등을 빚는 것이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유적은 너무나 많고 짧은 시간에 무얼 골라 보아야 하나 하는 것이다. 베로나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잡고 있는 것은 밤에 볼 원형경기장에서의 오페라 관람이다. 그래서 오늘 오후는 마음의 여유도 좀 찾을 겸 원형경기장을 중심으로 강 남쪽에 있는 몇 군데를 어슬렁거리면서 저녁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주차를 하는 것은 언제나 우선순위 일번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원형경기장 주변을 돌면서 공용주차장 표지판을 찾고 골목안을 돌고 돌아 드디어 지하의 주차장에 차를 댔다.


먼저 줄리엣의 집을 찾았다. 경기장의 동쪽으로 좁은 골목안에 자리한 줄리엣의 집은 근처에만 가도 표지판 없이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간다. 줄리엣이 살았다는 집의 좁은 마당에는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사람들이 집의 한쪽을 올려다 보고 박수를 치길래 보니 이층 발코니에 두 남녀가 포옹을 한 채 키스를 한다. 이 발코니가 바로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고는 했던 그 유명한 발코니란다. 마당 한쪽에는 줄리엣의 동상이 있는데 오른 쪽 가슴은 하도 많은 사람들이 만진 덕에 하얗게 때가 벗겨져 있다.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소설 속 가상 인물의 집임에도 이렇게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과연 셰익스피어는 위대하다. 거기서 약간 떨어진 로미오의 집은 수리 중이었다.


줄리엣 집을 나서면 연분홍 벽체에 화려한 벽화들이 그려진 집들이 둘러선 에르베 광장이 있다. 광장에는 노점상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본래 이곳은 로마시대 토론 광장이었다고 한다. 광장의 동쪽으로 강변에 서 있는 산타 아나스타샤 교회, 그리고 이 곳에서 원형경기장의 건너편 쪽으로 있는 베키오 성과 베키오 다리를 둘러보니 시간이 여섯시를 넘고 있었다. 오페라 시작은 밤 9시 15분이지만 일단 매표소에서 인터넷에서 프린트한 인터넷 구매 영수증을 정식 티켓으로 바꿔야 한다. 경기장에는 벌써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매표소에 물으니 표를 교환하는 곳은 경기장 옆의 오페라 티켓 사무소란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몇 번을 물어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티켓은 한 장에 27유로 50센트, 여행당시 환율로 약 5만원이니 두 사람을 합하면 하룻밤 호텔비와 맞먹는다. 드디어 티켓을 바꾸고 저녁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두 덩어리 사서 한참을 줄을 선 후 경기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경기장 안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고 운동장 바닥에도 붉은 색 카펫이 깔려지고 멀리서 보기에도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들 카버가 벗겨지고 있었다. 그 좌석은 특석이겠지. 이처럼 야외의 대규모 공연장에서 음악 연주를 보는 것은 10년전 로스안젤레스에 체류할 때 헐리웃 볼을 갔을 때 이후 처음이다. 때로 여행은 나를 상당히 품위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더구나 이곳은 이천년도 넘은 로마시대의 경기장 아닌가? 그때는 피를 튀기는 검투사들의 싸움을 술잔을 기울이면서 보고 있었겠지. 그에 비하면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얼마나 고상한가? 어둠이 내리자 스탠드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촛불이 전해졌다. 촛불을 켜 들고 관람을 하라는 말인 듯 한데 캄캄한 밤, 반짝이는 촛불이 둥근 원형 스텐드를 가득 메운 가운데 오페라를 보는 것을 얼마나 환상적일까? 그런데 환상은 그냥 환상으로만 끝나버리고 말았다. 차가운 바람이 촛불을 모두 꺼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 서울에 와서 촛불시위만 한번 보았더라도 이런 시행착오는 없었을텐데. 일부 공연이 끝나고 인테르미숀 시간에 시계를 보니 이미 자정이 가까웠다. 날씨는 춥고 바람도 불고 피곤하기도 한데 이런 상태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오페라를 계속 감상한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우리뿐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고 우리도 따라서 늦은 귀가를 했다.
베로나의 밤하늘에 흰 구름장 사이로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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