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길에서 동흥길까지 눈 맞으며 걷는 길(글/백소애_편집기자)

막창골목에 눈이 날린다
눈이 날린다. ‘내린다’는 표현은 일직선으로 내리는 비에나 어울릴법하니, 눈은 제멋대로 날린다. 힘없는 폭죽처럼 봄날 꽃가루처럼 니트티의 보푸라기처럼 눈은 보송하게 날린다. 전선줄에 앉은 새가 잠시 쉬고 있다. 부유하던 눈은 거리를 점령하고 도로를 질주하고 사람들 어깨에서 건물 난간에서 전선줄 새처럼 앉아 쉬고 있다. 


번영길 골목에는 간밤의 영업을 끝낸 막창테이블이 눈을 맞고 있다. 숯이 들어갈 중앙에는 고무뚜껑이 덮여져 있다. 철사로 엮은 석쇠에 구워먹는 막창맛이 쫄깃했었던 기억이 난다. 일명 막창골목으로 불리고 있는 이곳에 서울막창, 안동막창, 대성막창, 내고향막창, 부산막창 등 막창집이 나란히 붙어있다. 구제역의 여파로 또 번화한 유흥거리 옥동으로 사람들이 몰리니 장사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막창하면 안동초등학교 샛길 이곳 번영길의 ‘막창골목’을 쳐준다. 택시를 타고 막창골목에 가자고 하면 타 지역 출신의 기사가 아닌 이상 두 번 묻지 않고 내려주는 곳이기도 하다. 구시장에 들어서는 곳이니 골목에는 ‘번영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행정구역상에는 남문동으로 불리는 곳이다.


안동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중간지점에는 삼영장여관이 자리해 있다. 미용실도 함께 붙어 있는 삼영장 여관에는 1층 여탕, 2층 남탕, 3층은 여관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19개 객실이 있는 삼영장 여관 맞은편 중앙슈퍼는 그 옛날 ‘안동국민학교 옹기전’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32년 전 이곳에 옹기전을 연 우병두(79)씨가 옹기장사가 신통치 않자 1993년부터 슈퍼를 같이 하다가 이제는 슈퍼가 주된 수입이 되었다.




눈이 온지도 모를 주택가 사람들
막창집 사이에는 좁다란 골목길이 나 있다. 맞은편에 사람이라도 올라치면 비스듬히 서야할 만큼 좁은 골목에는 철학원 간판이 걸려있다. 골목기행을 하면서 각 골목마다 항상 있었던 업종은 철학원이었다. 목에 구애받지 않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살림집과 붙어 있어 그러할 것이다. 일반 주택가 어느 동네 어느 골목길을 가도 그들은 사람들의 신수와 사주, 택일, 작명을 알려주고자 곳곳에 포진해 있다. 하지만 어찌된 것인지 철학원은 많지만 철학 없이 사는 사람이 많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골목 안 사람들은 아직 밖으로 나와 보지 않았는지 이제 갓 쌓이기 시작한 눈길에는 발자국이 없다. 커다란 베란다 창이 보이는 아파트가 아니고서야 마당으로 나와야 바깥 날씨가 가늠되는 주택이니 소리 없이 날리는 눈은 뒤늦게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막창집이 시작되는 대안당 안경보석점부터 안동초등학교 버스정류장이 나오는 천리떡방앗간까지의 골목에는 각종 한약재와 환약을 판매하는 삼원상회, 장춘상회, 신장춘상회, 백초상회 등의 가게가 있다. 한약재 달이는 냄새와 가끔씩 흑염소 고는 냄새가 골목을 가득 채울 때도 있다. 카트에 고무대야를 싣고 구시장쪽으로 향하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철거 된 운흥동 버스터미널 자리에는 대형할인마트인 홈플러스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들의 입성을 반대하는 상인들에게 올해 봄이 어찌 따뜻하기만 할까. ‘통큰’대형할인매장의 등장에 상인들은 서럽다.




도심 속 잊혀진 풍경, 주황색 포장마차
도심의 거리엔 어지러이 전선이 뒤엉켜 있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전의 날씨는 해질무렵처럼 어둑했다. 서부동, 삼산동, 동부동을 지나쳐 동흥길을 걷는다. 기차역 앞이라 역시 숙박업소와 음식점이 대부분이다.
공터에는 전기매트가 버려져 있다. 겉보기엔 멀쩡해보이나 고장이 난건지 필요가 없어진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이 매트는 눈을 맞고 서 있다.


전당포와 붙어 있는 여관 건물에는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나무를 쌓아둔 대창건구사 앞에는 라면, 우동, 간천엽, 삼겹살, 육회, 목살, 주물럭, 닭똥집.. 온갖 메뉴가 가능한 뽀식이 포장마차가 눈을 맞고 서있다. 푸른 덮개에 주황색 천막이 정겹다. 이젠 안동시내에서도 포장마차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드물다. 없는 메뉴가 없는 만능 술집. 연탄 냄새 매캐했던 그 옛날 포장마차는 이젠 잊혀져가는 도시풍경 중 하나이다. 건구사를 지나 안동파크호텔쪽 큰길가로 나가면 쇠창살이 달린 2층 양옥집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이곳은 청소년통행금지구역, 일명 레드존(Red Zone)이다. 언젠가 버스 창밖으로 보이던 담배를 피워물고 있던 여인이 떠오른다. 그 옛날 청량리 588거리엔 지나가는 이등병의 모자를 낚아채가는 여자들이 있었다는데, 순진함을 가장해 배회하는 청춘들이 혐오스러웠던 시절도 있었다.


주택을 개조한 식당집 창문에는 고등어정식 등의 메뉴가 적혀있다. 일반 주택에 간판 하나만 붙여놓으니 제법 그럴 듯이 운치 있는 식당으로 보였다. 언젠가 한옥집 내부를 다 드러내고 삼겹살집으로 변신한 곳에 가본 적이 있었다. 바닥에는 자갈을 깔고 사람들은 뜯어낸 한옥 안과 마당에서 삼삼오오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모텔들이 마주선 길을 가로지르며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가 지나간다. 미끄러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으나 거침없이 질주한다. 그니의 빨간 모자가 따뜻해 보인다. 저 멀리 만두로 유명한 대흥원 간판과 안동파크호텔 간판이 보인다.


큰길가 버스정류장에 위치한 B급 한국영화 제목 같은 성인용품 판매점의 간판 이름은 진지한 세상에 던지는 코믹한 메시지 같아서 어쩐지 웃음이 나온다. 주성치 영화 같기도 하고 만화 ‘괴짜가족’같기도 하다.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저질문화는 아주 가끔은 통쾌해지기도 하니까. 언젠가 한갓진 국도변에서 낚시의자에 앉은 채 무료한 표정으로 성인용품을 팔던 아저씨가 생각난다. 딱히 팔 마음도 없어보이던 그의 표정에 더 삶이 곤해 보였다.




욕망의 토요일, 로또복권
다시 발걸음을 옮겨 시내 중심부로 이동한다. 가게집 벽면에 ‘도인’이라 적혀 있어 의아했는데 몇발자국 옮기니 ‘도장 인쇄’가 세로로 적혀 있다. 도장집은 인쇄와 열쇠복제를 겸업하는 경우가 많다. 행운의 집 로또판매점에는 1등 당첨의 경력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토요일 오후면 당첨의 욕망이 집결되는 곳, 어느 통계에 의하면 복권에 당첨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불행하다고 한다. 그럴 수 있을 거라 공감하는 한편, 행복한 사람들은 그따위 설문에는 응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예전에 본 시트콤에서의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꿈에서 15, 23, 34, 40, 45 따위의 숫자를 본 아버지가 그 번호로 로또를 샀지만 실은 아들의 시험점수였다나 뭐라나.



가벼운 옷차림에 경쾌한 발걸음의 청춘
큰길로 서동문로가 지나는 웅부공원은 궂은 날과 이른 시간 탓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근린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이곳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윷놀이를 즐기고 젊은 주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나오기도 하고 학생들이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수다를 떠는 곳,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연인들이 앉아 있는 곳이다. 웅부공원을 찾는 사람이 늘수록 대동루 난간은 삐걱대지만 시원스레 쭉 뻗은 기와는 오늘따라 의연해 보인다.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곳에는 어김없이 구제역 소독조가 놓여져 있다. 은행, 전시회장, 행사장 할 것 없이 구제역의 된서리를 맞은 안동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손등 위 밥물처럼 찰랑이는 소독조를 밟고 출입을 한 것이 벌써 몇 달째다.
늦겨울과 초봄의 경계에 섰다. 앞서 눈을 맞으며 걷는 학생의 뒷모습이 보인다. 가죽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가벼운 옷차림이다. 눈발은 날려도 봄은 멀지 않았다. 그의 경쾌하고 가벼운 발걸음 또한 그렇게 말을 한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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