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가사와 안동의 여성문학(글/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1.안동의 여성문학을 찾아서 여성문학은 기존의 문학사에서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따로 뽑아보는 일에 그칠 정도가 아니다. 우리의 문학사는 남성 작가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이 틈새에서 여성작가들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역문학을 잣대로 문학사를 살펴본다면 아마도 어떤 여성작가를 구체적으로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굳이 안동의 여성작가라고 명명해본다면 이 말은 매우 현실적으로 변한다. 여기에 진짜 큰 문제는 근대 이전 사회에서 여성작가 자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하거나 드문 존재이니, 어떤 길을 통해 전통사회의 여성작가를 발견해서 여성문학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매우 보수적인 남성 문화 온상지 안동에서 여성들 스스로 말한 역사가 가장 강력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문자의 영역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던 여성들이 내방가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였다. 문자가 휘두르는 권력의 그늘에서 배제된 여성들이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때 이 시기가 언제였든 그 순간은 근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문학양식으로서의 의미와 함께 여성의 목소리가 문자를 통해 자신을 찾아낸 의미를 갖는다. 하위주체로서 여성들이 자신의 역사 안에서 말할 수 있었고 남성들의 틈새에서 존재의미를 스스로 구체화했다.
특별한 소수자에 불과할지 모르나 세계를 향해 열린 아버지를 둔 정부인 장씨와 신분과 가문에서 지킬 것이 없었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설죽 시인, 조선의 여성 가운데 가장 솔직하게 사랑을 표현했던 원이엄마 등은 새로운 안동문화를 쓰도록 종용한다. 안동과 여성을 나란히 비교하자면 왠지 낯설어 불편한 감도 들지만 여성들의 역사쓰기에서 절대 지나칠 수 없는 대상임을 직감할 수 있다. 정부인 장씨와 설죽 시인은 놀랍게도 남성의 전용어 한문으로 한시를 창작했다. 이들의 문학작품은 여성역사의 단편을 차지하더라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성들의 이야기는 여성 이외에는 관심 두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문화 안에서 여성 스스로 창작하고 독서하는 작가와 독자의 이중역할의 결과이다. 남성 문화가 소외시킨 여성문화는 여성들 안에서 소통되는 특별한 문화였고 그것이 현재 내방가사로 전해지는 것이다. 여성의 생활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내방가사의 작품세계는 여성문화의 내면을 헤아릴 수 있는 좋은 문화사적인 자료이기도 하다. 문학활동이라고 생각지도 않았을 가사창작자들의 문학성이 여성문학의 역사를 쓸 수 있는 바탕을 마련에 놓고 있는 것이다. 내방가사의 가장 놀라운 사실은 바로 여성 스스로 작가의식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들 삶을 나눴으며 그것의 기록을 자임했다는 것이다. 현재 전승, 창작되는 내방가사와 함께 한시와 편지글을 통해 안동의 여성문학을 찾아본다.
2.전승, 창작되는 내방가사의 작품들
내방가사보존전수회가 묶어낸 안동의 내방가사 작품은 그간의 많은 연구자들이 정리한대로 여성들의 가정생활에서 빚어진 서러운 사연과 답답한 심회를 풀어낸다. 이 묶음집은 필자가 제대로 소개되어 있고 최근작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탄식류 가사는 오래전 여성들의 안방에서 흉허물 없이 나눈 이야기에 근원이 닿는다. 가사창을 하거나 창작하는 여성들은 한결같이 어린시절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가사창작 풍경을 기억하고 모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성 자신을 묻는 이야기는 탄식류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편이다. 그러나 대체로 여성의 목소리는 가문을 유지하는 교훈 위주로 흐르거나 여성에게 필요한 덕목을 싣고 있다.
1)자탄류의 회한과 인고의 삶
근대 이전 여성은 인생의 대부분을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갔다. 여성으로 태어나서 어린나이에 혼인하고 친정부모와는 소식을 두절하고 시집살이를 하며 자식 낳고 늙어간 일생에는 서러움이 가득하다. 대체로 사대부가문의 여성일수록 가문의 이름으로 지켜야 했던 질서에 충실했고 당시 사회는 충, 효, 열의 권위와 명예로 여성들 개인의 삶을 희생제의로 삼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내방가사 작품 중에 자탄류는 소외되고 고통스러운 여성들의 눈물 섞인 토로가 중심을 이룬다.
윤래댁(조남이)의 <여자소회가>를 보면 어린나이에 혼인으로 부모와 이별하고 그리운 마음을 둘 데 없어 꿈에서 친정부모를 만난다. 매운 시집살이를 겪으며 얻은 아들, 딸 키우는 정으로 시집에 정을 붙인 옛 여성들의 삶살이를 잘 담고 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의 설움을 토로하면서도 이 작품은 매우 긍정적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부모와도 정이 싹트면서 집안 살림살이를 다독이며 함께 늙어가는 여성의 일생이 훤히 다 보인다. 분명 윤래댁의 가사 내용대로 장한 여성이지만 또한 매우 희생적인 슬픈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정위조의 <구여성의 자탄가>는 어린나이에 혼인하여 시부모 봉양하고 남편 뒷바라지며 자식 키우며 세월을 다 보낸 여성의 삶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특히 이 가사는 신여성의 등장 이후 신학문을 배우지 못한 구여성들의 애환을 절절하게 담고 있다.
개실댁(김성년)의 <시골여자 서룬가>는 혼례식만 올리고 서울로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시부모 봉양과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까지 양육하고 가정생활을 책임지고 살았으나 오랜 유학생활을 하던 남편은 고향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근대 초입의 구여성이 당했던 차별의 구체 사례를 가사로 쓴 것이다. 자존심이 위축되고 존재이유가 막막했을 구여성이 그 무례한 남편의 처사를 끝까지 참으면서 노년을 맞이한 것은 우리 구여성들이 겪은 체험이다. 근대가 되어서도 남녀차별의 가부장제 구조는 가정 안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한몸이 신학문을 배웠으면 당당하게 살것인데 수원수구 하오리까
철을따라 옷지을때 다듬질과 침자질로 등촉을 밝혀놓고 온밤을 지새울때
양안에 흐른눈물 옷깃을 적시난듯 고초당초 맵다한들 이보다 더할손가
슬프다 구여성들 행동거지 어렵더라 유월염천 더운날에 보선신발 못면하고
엄동설한 추운날에 목태한번 못해보고 음성높여 크게하며 이웃비평 하실세라
구고봉양 잘못하면 노하실까 근심이요 치산혹시 잘못하면 군자에게 덕제할까
봉제접빈 잘못하면 천명에 고이할까 친가유무 살림살이 조리없다 책망할까
호남완객 우리가군 주색에 호탕하야 불고가사 외출하야 수십일만 귀가해도
미안지심 간곳없고 큰소리 탕탕처도 한말대답 못해보고 식사대접 의복대령
어김없이 하였건만 따뜻한 말한마디 들어본일 없사오니 철천지 한이로다
-윤래댁(조남이) 「여자소회가中
어화세상 벗님내야 여자유행 들어보소 십오십육 좋은시절 덧없이도 가는구나
전생에 무슨일로 여자로 태어나서 부모동기 이별하고
여자유행 가소롭다 강보유아 크는정에 만가지를 잊어진다
조상님의 봉제사와 접빈객이 아녀자의 할 일이요 대소사의 흉길사도 아녀자의 할일이요
호박잎에 장떡찌고 된장찌고 이것저것 장만하여 시부모에 상올리면 시부모님 기뻐하니
애쓴것이 보람이요 노력한것 장하도다 이세상에 벗님네야 우리여자 장하도다
-정위조「구여성 자탄가」中
무정하다 우리낭군 거년여름 한번간후 운산천리 멀리막혀 편지조차 한장없네
오고가는 저구름아 서울천리 네가거든 구구한 나의심정 우리님께 전하여라
춘풍삼월 긴긴날에 꽃보고 오는나비 향내맡고 나는벌레 서로섞여 왕래함을 넋을잃고
구경하며 하루종일 뜯은나물 한광주리 못채우고 일력이 뜨지없어 돌아올길 바쁘도다
일보이보 맺힌눈물 방울방울 임이로다
이혼이란 무슨말고 시집온지 칠팔년에 오고가는 허다세월 누굴위해 기다렸노
원통하다 우리신세 아내되어 남편에게 사랑한번 못받고 살아서 무엇하노
-개실댁(김성년) 「시골여자 서룬가」中
2)여행과 소풍의 흥겨운 순간
소풍을 가거나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일은 여성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놀라운 세계경험이 된다. 먼 거리가 아니더라도 매일 연속되는 집안의 일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화전놀이는 당시 부녀자들에게 합법적인 나들이가 되었다. 화전가류의 가사들은 한결같이 따뜻한 봄날의 흥을 담고 있다. 일년에 한번 오는 소풍을 두고 설레는 마음은 밤잠을 설치게 한다. 선잠을 잔 아침에 얼굴과 옷단장을 곱게 하고 이웃 친구들과 들로 나서는 이야기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임하댁 권분성의 <화전가>는 유독 봄날 꽃 묘사가 놀랍도록 살아있다. 봄이 오자 강남에서 제비가 돌아오고 삼동에 죽었던 나무에는 푸른 잎이 돋아난 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화전가를 부르면서도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자로 태어난 사실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비친다.
덕천댁(심외생)의 <하회경치가>는 여행이나 고향경치를 담은 글에서 뽑아낸 글로 하회의 풍경을 풍산류씨 가문의 역사와 연결시켜 풀어간다. 실제 하회의 부용대, 병산서원 등의 빼어난 경치를 담고 있으나 풍산류씨 종택의 전통을 풀어놓으며 그 역사를 크게 부각시켜놓았다. 여기서 놀라운 모순이 일어난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죄라고 말할 정도로 부담스런 가사노동이 작품에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종부라는 지위 앞에서 여성 개인의 존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여성 역시 가문에 편입될 때 사회적 의미를 묻는 일에 충실해지고 개인영역은 묻히기 마련임을 보여준다.
청천에 뜨는나비 때를맞아 춤을추고 담장위에 이화꽃은 범나비에 초단이라
이남촌에 말한앵물 골골마다 봄소리라 온갖짐승 생장하니 구심춘광 고래하다
붕월붕월 목단꽃은 꽃가운데 임금이요 아흥다흥 장미화는 주지주지 피어있고
당실당실 연화꽃은 급연당에 피어있고 넌들넌들 연달래는 이산저산 피어있고
늙고젊고 노고꽃은 남먼저로 피어있고 도리도리 당패리는 청산로에 피어있고
백설같은 이화꽃은 백수단장 피어있고 행화도화 고운태도 시셈하여 피어난듯
놀랍도다 설중매화 수만친구 마다하고동지섣달 설한풍에 백옥같이 피어나니
소식정막 국화꽃은 구월금일 기다리고 향기있는 자약꽃은 옥황상제 영을 받아
명산선약 만들어서 사생인간 살려주네 많고많은 저꽃가지 어찌하여 구경할고
전생에 무슨죄로 여자몸이 되었는고
-임하댁 권분성 「화전가」中
부용대 절벽상에 암석이 기이하고 그밑에 낙동강은 하회마을 돌아흘러 형제암을 스쳐가며 마을수호 하는구나
우리종부 거동보소 인품도 단아하다 선산김씨 고이자라 풍산류씨 대종가에 어진종부 되었어라 일거수 일투족이 현숙부인 완연하다 봉제사 접빈객을 훌륭히도 치러내고 번화일족 돈목하니 제반사가 원만터라
병산서원 구경하며 사면을 둘러보니 시상이 절로인다 산음이 더욱좋아 록수에 연어하니 무릉도원 여기로다 백사장 넓은들에 야월이 휘황하여 강천에 비춰주고 연어하여 잡은고기 안주에 별미되니 불로주가 향기롭다
-덕천댁(심외생)의 「하회경치가」中
3) 노동하는 여성들의 고통과 의지
여성의 가사노동은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별로 없다. 가정에서 필요한 물품을 모두 자급자족하던 시대의 여성은 만능 제조업자였다. 평범한 서민들은 음식, 의복, 밭일로 대변되는 육체노동까지 감당하면서 일상생활을 감당하며 살았다. 아직 이 관습이 많이 남아서 여성의 일은 영역구분이 애매할 정도로 광범위하며 특히 가정 안에서 여성의 노동과 역할은 절대적인 영향을 여전히 미치고 있다.
닭아닭아 울지마라 네가울면 날이새면 해가뜬다
해가뜨면 삼이말라 앵두같은 내입술이 다베인다
칠월한달 삼은삼은 시아버지 도포감을 제케놓고
남은비는 낭군님 차지로다 솜씨좋은 이내길쌈
잠이오네 샛별같은 이내눈에 악마같은 잠이오네
베틀놓아 앞다리는 높게놓고 뒷다리는 낮게놓아
오른발에 헌실걸고 왼발에 힘을주어 온몸을 중심잡아
들고치고 놓고치니 장단맞춰 신이난다
-감호댁(박성서) 「길쌈가」中
감호댁(박성서)의 <길쌈가>는 밤을 새워서도 삼을 다 삼지 못한 여성이 아침이 되자 해가 뜨고 삼이 마르면 삼을 묶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표현한 내용이다. 노동의 어려움과 힘든 현실에 대한 위안 보다는 묵묵하게 힘든 노동을 감내하는 놀라운 책임감이 강하게 보인다. 길쌈가에는 시작한 일을 제대로 마치고자 하는 인내심 강한 여성성이 돋보인다. 특히 안동에는 둘게삼이라 해서 함께 모여 삼을 삼았는데 이렇게 더불어 노동을 하면서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입끝이 날카로니 촉바른 말할 것이요
몸둥이가 꼿꼿하니 마음조차 곧겠구나
귓구멍이 뚫렸으니 옳은말 듣겠구나
빽빽한걸 잘 뚫으니 실기조차 있을게요
바른길로 찾아가니 그른노릇 안할게요
꼬박꼬박 절을 하니 예절을 배왔는가
반들반들 빛이나니 행실을 닦았는가
떨어진걸 잘 기우니 인정편도 있을게요
부러지기 일수이니 결단성도 있을게요
실과 손과 함께가니 의논성도 있겠구나
오장육부 없다해도 소견지각 이상하네
- 「바늘 노래」中
옷을 직접 지어 입던 여성들에게는 바늘과 관련된 가사는 바느질을 하면서 불렀을 작품이다. <바늘노래>는 특별히 바늘의 특징을 잘 담아낸 가사를 통해 사물을 깊이 관찰한 여성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다. 바늘의 의인화는 인격을 제대로 갖춘 사람의 됨됨이를 설명하듯이 자세하고 친절하게 묘사하였다.
3.내방가사의 계승을 위한 창작집 출판
개인의 내방가사집 출판을 통해 가사의 창작현실을 진작시키고자 했던 작가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집을 살펴본다. 내방가사 창작자와 가창자들은 한결같이 가사경창을 어린시절부터 보고 들었고 그것을 모방하여 옮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약봉지 종이 위에 조애영의 어머니, 조모, 조씨 딸들이 가사를 썼다고 한다. 혹은 직접 보고 배웠다고 한다. 부녀자들의 정신생활이며 자아를 그릴 수 있는 소중한 것이었다고 술회하였다. 조애영은 독특한 문학의 소재인만큼 부녀자 외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문학의 장르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서 계승되기를 소원한다.
을사년에 보호조약 우리나라 망할판에
경술년은 한일합병 조인하니 속국이라
의병대장 여러분이 집단자살 한사실을
전국으로 번져가는 학생만세 사건이라
겨울방학 땡겨갖고 학생들을 가라하니
대구역두 개찰구에 삼엄하게 경계망은
삼사십명 학생중에 중앙고보 키다리가
감춰가던 삐라뭉치 경관에게 들킨지라
차고때려 피투성이 포승질러 가는모습
같이가던 학생들과 파출소에 끌려가니
반발심이 절로생겨 어이그냥 있을소냐
이때마침 근우회는 여학생을 선동했고
전국학생 만세사건 비밀결사 조직이며
비라미트 형식으로 일인담당 삼인이라
순식간에 연락망이 전교학생 움직였다
-조애영 「울분가」中
조애영은 광주학생 만세사건에 주동이 되어 배화여고보 삼학년 때 무기정학을 당한 적이 있다. <울분가>는 광주학생만세 사건 소식을 듣고 모교에서 만세사건을 알리고 주도해 간 내용이다. 휴교령이 내려 고향 주실로 돌아오는 와중에도 일경의 감시는 지속되었지만 용케 다시 서울 학교로 올라가 근우회가 이끄는 만세운동에 함께하기 위한 연락을 취했다. 한명이 세 명에게 연락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이 운동의 주동자가 감금되었지만 학생들은 만세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덕분으로 정학처분을 받고 고향으로 갔으나 부모님을 속이고 집을 나와 여행길에 오른 이야기이다.
<신혼가>는 배화여고보를 마치고 이화여전에 입학했으나 큰오빠가 어머니 상중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조애영을 시집보낸 내용이다. 물론 혼인 이후 일본유학을 할 거라고 속여가면서 혼인을 시켰고, 신여성 조애영은 구식 시집살이에 힘들었던 내용을 담고 있다. 혼인하고 곧 남편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혼자 남은 새댁의 서러움과 시집살이의 애환이 담겨있다.
한국전쟁 때 주실마을의 오래된 고가는 불에 타고 다시 십여 년이 지나 집을 손보게 되었다. <귀향가>는 이런 경사에 집안 종손이 장가를 들고 이때를 맞춰 친정, 고향을 갔던 내용이다. 고향에 들어서자 가장 그리운 이는 결국 어머니였고 고생했던 시절의 어머니를 떠올려 본다. 주실마을은 개화를 일찍 받아들여서 마을 청년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했는데 그 안으로 부인들은 거의 과부처럼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특히 양반댁들은 노비문서를 없애면서 모든 농사일을 촌부처럼 했어야 했으니 노고가 막심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거행하는 신식결혼 예식장에 신랑쪽의 손님들이 대부분이 차지하고
결혼식이 끝난후에 피로연을 한답시고 명월관에 들어가서 시부모께 올린폐백
양과자에 큰절하니 너무개화 하였어라 첫날밤에 신랑신부 인사겸해 마조앉아
악수하고 바라보니 어이그리 어색할까 사흘만에 가는신행 인력거에 올랐어라
시댁문전 들어가니 이름났는 부잣집이 식모방을 도배해서 새며느리 들안치네
공부하러 일본간다 가방들고 나가면서 어머님을 잘받들고 몸조심을 하라하니
혼인전에 듣던말과 딴판으로 되었더라 이화여전 들어갈때 큰포부를 가졌는데
오라버니 속임수로 키다리와 결혼하고 친정모친 소대상에 처음으로 근친하니
잘생겼나 못생겼나 신언서판 차례차례 비교하는 이자리에 새신랑이 병이났네
- 조애영 「신혼가」中
날좀보래 날좀보래 동내사람 날좀보래 삼십구년 그동안에 친정한번 못온이유
자모슬하 일찍떠나 경성유학 하느라고 이내졸업 못보시고 돌아가신 우리어매
앞산에서 호랑이가 으릉으릉 울던옛날 뒷산마자 산울림에 동내사람 다놀라고
재산출신 혹불할매 물레질을 멈추던밤 어매품에 내가들어 치마폭에 싸였다네
먼산보고 새삼스리 그옛날을 돌아보니 나어릴때 우리형님 삼동서가 모여앉아
등잔불에 삼삼으며 둘레삼을 삼던옛날 길쌈으로 밤도새워 놀여가가 없었는데
변했고나 변했고나 가관이네 가관이네 무슨죄가 지중해서 아녀자로 태어났노
사대봉사 접빈객에 밤잠편히 못자보고 새벽같이 줄에달려 방아찧던 양반댁내
까끄라기 덮어쓰며 시계방아 찧던어매 한푼두푼 모은돈을 딸의학비 대느라고
몽땅털어 부치고도 야단한번 아니치신 우리어매 현숙했네 이름났는 종부였네
- 조애영 「귀향가」中
4.내방이라는 여성들의 공간을 기억하며
전근대 여성문학을 이야기할 때 내방가사는 여성이 주류인 문학장르이다. 그래서 내방가사를 제외하고 여성문학을 말하기는 매우 심심해진다. 그만큼 여성문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근대 사회의 문학작품은 사실과 거리를 둔 예술적 기교 보다는 충실한 정서의 표현이나 적절한 비유, 고사에서 그 문학성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내방가사에는 대체로 사실성이 풍부한 정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더욱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의도적인 설정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 역시 여성에 한정되어 있어서 동류항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성끼리의 소통을 이뤄냈다.
안동에서 창작된 내방가사는 이미 많은 연구결과물로 정리되어 있는 만큼 오늘날 안동에서 실제로 창작되거나 전승되는 작품 중심으로 내방가사를 고찰하였다. 여성들의 생활상을 진솔하게 담은 문학양식의 명칭은 ‘규방’이 아니라 ‘내방’으로 선택하였다. 안동의 여성문학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내방가사 가운데 특히 창작가사에 중심을 두고 살펴보았다. 다만 한시나 편지글은 기존에 발굴된 작품 가운데 선별해서 읽어 보았다. 여성한시의 작가들, 한글 편지 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들의 삶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었다. 내방가사의 “내방”이 이제는 여성공간의 특별한 영역으로 되살아나 여성들의 전통과 역사를 다시 쓰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 바란다. 현재 안동의 여성문학은 주부문학회, 샘문학, 물아낙 등의 동인단체가 문학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