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구름처럼, 학가산 지킴이 장두강(글/이희수_프리랜서 작가)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에는 경상북도에 있거나 경상북도와 인근 지역에 걸쳐있는 산이 열일곱 곳이나 올라 있다. 열일곱 군데의 산 중에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산이 많다. 그중 소백산맥의 어깨격인 소백산은 영주분지를 품고 있는 모습이 마치 병풍 같아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능선길이다. 봉화의 청량산 또한 소백의 능선을 잇는 연봉은 물론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물줄기까지 바라볼 수 있기에 악산이라고들 하지만 빼어난 경관에 비할 것이 못 된다. 힘들여 오르는 이유가 있다고나 할까.
문경새재가 있는 문경 또한 빼놓을 수 없겠다. 경상북도에서도 북부지역인 이곳은 그야 말로 산이 천지에 깔려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산들은 매일 보는 이웃처럼 다정하고 당연한 일상이 되어있다. 부러 오르려고 가방을 싸거나 등산화를 신지 않는다. 물론 그래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산 구경을 위해 멀리서 버스를 서너 시간 씩이나 타고 오는 사람들처럼 힘들게 공을 들이지 않아도 맑은 공기를 맡고, 푸르고 아늑한 능선을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점이다. 하지만 산 아래 논밭두렁의 해충을 죽이겠다고 불을 놓아 산까지 홀라당 불길을 올리거나 정상에 오르기보다 산 중턱에서 봇짐을 배불려 오는 일 혹은 하도 봐서 산인지 벽인지 감흥이 없는 것은 나쁜 점이다. (사실 논밭두렁에 불을 놓아 죽는 것은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라고 산림청에서 공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다만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산은 단지 지독한 터전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산의 가치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밭농사에 거치적거리는 굵다란 돌멩이 하나쯤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산이 삶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난가대에서 안동을 보다, 학가산 지킴이 장두강
초반부터 너무 거창하게 풀어 산촌 생활의 다큐멘터리 서문같이 되어버렸다. 안동토박이 장두강(63) 씨는 지역에서는 얼마 전 퇴직한 교장 출신이다. 또한 수필가로도 활동해 지역에서는 그 이름을 익히 들어봄직 하다. 때문에 ‘학가산 지킴이’라는, 그를 따르는 수식어가 낯설었다. 더욱이 삼십년 가까이 산에 대한 연구와 산을 지키고자 하는 열정으로 일관했다니 그 계기가 매우 궁금했다. 속으론 부모님이나 가족에 얽힌 사연이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학가산에 대한 연구와 보호를 마음먹게 된 그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바로 산 사람들의 얘기였기 때문이다. 산을 등지고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산에서 산다는 것이 자연과 벗하여 사는 삶이라는 그림 같은 생각 밖에 못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벽같은 산은 자식들 공부도 제대로 못시키고 먹고 살기도 벅차게 하는 장애 아닌 장애가 되는 시절도 있었다. 요즘이야 집마다 차가 있고 교통도 발달했다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기가 안 들어가는 집도 있었다. 삶을 더욱 치열하게 만드는 산에게 산 사람들은 원망하고 치를 떨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마도 산이 미웠나 보다.
장두강 씨가 학가산을 오르던 삼십년 전, 그에게 문득 든 소명이었다. 그렇게 고생만 하고 산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산이 보상이 될 수 있도록, 산이 있기에 잘 먹고 잘산다는 고마움이 들도록, 산 덕에 먹고 살 수 있도록, 이제 산을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바람.
가까이 있기에 그 소중함을 몰랐던 안동 사람들에게 학가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장두강 씨는 삼십년 내리 학가산을 오르고 있다. 산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학가산의 심부름꾼이 되고자 마음먹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상당한 진심으로 다가왔다.
1983년, 매서운 바람이 겨울을 알리기 시작 하던 때, 학가산을 처음으로 올랐다. 그에게 학가산의 겨울은 어떠했을까. 등산로도 없는 산을 오르던 그 해, 학가산은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감사합니다. 신세동 쌍백숩니다."
원래 그의 연배쯤 되면 흰머리가 대중대중 있어줘야 기품이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하지만 장두강 씨의 얼굴에 흰머리는 아직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젊어 보인다. 오랜 시간 산을 가까이 했던 것도 있겠지만 아날로그와 노동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정신과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있기에 젊지만 편한 것만 바라고 사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 인간성을 되돌리는 길이라는 그는 젊은 사람들의 요즘 세태에 녹아든 게으름에 일침을 놓기도 했다. 집에 화목보일러를 설치해 겨울마다 나무를 하러다닌다고 했다. 본인의 고집대로, 성품대로, 마음먹은 대로 하고야 마니 삼십년 학가산을 오른 것도 그에게는 당연한 것이었을 런지도 모른다.
사실 장두강 씨는 지난해 9월1일 자로, 백수가 되었다. 안동의 길주초등학교에서 교장생활을 끝으로 퇴직한 것이다. 안동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던 그의 부인인 김복희 씨 역시 사이좋게 지난해 7월 무렵 백수가 되었다. 한 평생 즐겁고 치열하게 살아온 부부에게 2010년은 아마도 안식년과 같은 해였나 보다. 농으로 요즘은 집에서 전화를 받으면 “감사합니다. 신세동 쌍백숩니다.” 라고 한단다. 두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같이 백수가 되었으니 함께 학가산에 오르며 알콩달콩 새롭게 연애도 할 법한데 사실 김복희 씨는 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산을 잘 못 탄다는 말이 맞겠다. 어쩌다 한번 오르려면 그 날 저녁 내내 허리며 다리며 주물러줘야 한다니 장두강 씨는 사십 평생을 함께 한 아내를 아껴주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 한다.
부부가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우연히 김복희 씨가 안동의 고모 집에 놀러온 것이 계기였다. 막 교직 생활 1년차에 접어든 장두강 씨는 아버지의 회갑연을 치르기 위해 결혼이 절실했다. 지금이야 잘 이해가 안 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부모님의 회갑연에 결혼 못한 자식, 손자 없는 회갑연은 눈물바다로 그것은 불효로 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고 한다. 연애를 슬쩍 해보려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 살 처녀의 대구 아가씨는 그렇게 안동에서 살림을 차리게 됐다. 그리고 이듬해 더욱이 정말 아이를, 그것도 아들을 떡하니 낳아서 갓 한 달된 갓난쟁이를 안고 아버지의 회갑연을 치렀다.
지금은 그 아래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더 낳아 막내를 제외한 자식들이 모두 장성해 출가하여 손자도 봤다. 마음먹은 대로 결혼도 자식도 술술이니 그의 말마따나 ‘마음먹은 대로 하고야 만다’ 라는 말이 맞다. 3대독자인 그는 위로 누나 셋에 여동생 셋이 있고 고향인 일직면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는 학교며 직장까지 한 시도 안동을 떠난 적이 없다. 그야말로 토박이다. 그래서 그에게 학가산의 의미는 더 크지 않을까 싶었다.
학가산 사랑 30년, 학가산 문화환경연구소
학가산을 오르며 만났던 많은 산 사람들은 그를 가족만큼이나 반겨준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 마다 발품 팔아 학가산 이곳저곳을 돌며 관리하던 그에게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비라도 피할 수 있는 처소가 필요했다.
마침 학가산에 제일 먼저 올라온 기관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군통시부대가 있었고 그가 처소를 하나 찾던 때 군부대가 마침 철수하여 여러 부속 건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통사정하여 겨우 문도 다 떨어져 나가고 벽만 고스란히 남은 건물 하나를 받아 지금의 ‘학가산 문화환경연구소’ 를 만들었다. 처음에야 비도 피하고 필요하면 잠도 자는 그런 곳이었는데 지금은 삼십년 간의 학가산을 담고 있는 연구소이자 학가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쉼터도 된다. 지금은 방도 갖추고 주방도 있고 연구실도 있다. 하지만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불편이 산 생활의 재미란다. 물도 없다. 빗물을 정화하여 모아 놓았다가 사용한다. 이것도 그가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학가산 문화환경연구소의 가장 으뜸은 단연 연구실에서 내다본 소나무의 절경이 아닐까 싶다. 한 폭에 담을 수 있다면 집에 걸어 놓고 싶은 욕심나는 액자다.
그에게는 산림청장이 수여한 명예산림보호지도원증이 있다. 당연할 법하다. 그가 학가산을 위해서 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산행 안내는 물론이고 그가 코스를 만들어 낸 산림환경 생태체험과 방문자를 위해 무료 사진 촬영 등 물론 계도와 불법 사례 고발 까지.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학가산 안내이다. 지금이야 퇴직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바쁜 교직생활로 시간 낼 틈이 있었을까 싶은데, 그의 말에 따르면 쉬는 날 중에서 학가산 안내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면 다른 어떤 약속보다도 먼저 우선하여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학가산을 새롭게 알게 되고 방문하고 있는 통로로 학가산에 대해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장두강의 학가산 사랑(http://cafe.daum.net/hakga)이 있다. 학가산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때문에 사이트를 통해서건 입소문을 통해서건 그에게 학가산 안내를 부탁하는 일이 많다. 학가산을 위해 계도적 차원의 보호도 많이 해왔지만 사실 그가 해 놓은 일 중에 으뜸은 학가산에 정체성을 찾아준 것이 아닐까 싶다. 이름도 없이 아까시 나무에 둘러싸여 다 죽어가던 김삿갓 소나무며 천주마을 입구며 신전리 입구에 학가산 등산로 안내판을 세워 학가산이 등산하기 좋은 산이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던 것 또한 그의 공이다. 특히 조선 후기 방랑시인인 김삿갓의 이름을 붙인 김삿갓 소나무는 영주에서 내성천을 건너 석탑사를 구경한 후 소나무 아래서 잠시 쉬어간 후 소나무가 삿갓처럼 휘게 되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그 이름을 붙이게 된 것에는 전설 덕도 있지만 장두강 씨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 사실 보호수로 지정된 연유가 큰 듯싶다. 시와 면을 내 집 드나들듯 찾아다니며 학가산 곳곳의 안내판을 만들기 위한 예산을 건의하고 김삿갓 나무를 발견하여 보호수로 지정하고자 많은 공을 들였던 사연인들 말해 무엇 하겠는가.
최근 들어 학가산의 등산 코스가 외지인에게도 많이 알려져 주말에는 서후면 봉정사 부근이며 학가산 온천 등에서 북적한 관광버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등산 후 온천욕도 하고 관광도 하는 일명 그가 꾀어 놓은 관광 코스다.
아참, 그의 연구소는 학가산 정상 부근에서 가장 눈에 띄는 KT, SKT, MBC, KBS, TBC 의 송신소와 중계소가 밀집되어 있는 바로 아래 있다. 예전에 그 부근이 공군통신기지였다고 한다. 아무튼 그곳에 오르려면 북후면 신전리를 통해 차로 올라야 한다. 길도 좋고 표지판도 적절해 초행인 사람도 쉬이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단행본 학가산 펴내기도
학가산은 해발 880M 고지의 8개 산봉우리가 동서로 죽 늘어서 있다. 날아가는 학의 모습과 같다하여 학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 내려온다. 광흥사와 봉정사를 포함한 10개의 사찰이 있어 안동이 유교 이전의 불교문화의 근거지였음을 알 수 있고 지금은 콘크리트로 굳게 닫혀진 미림동굴과 적석탑 양식으로는 국내에 단 3기 중 하나인 석탑리방단형적석탑 등 학가산은 등산 외에도 역사적 근거로서도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학가산에 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는 지난해 안동문화원에서 발행한 「학가산」이라는 책을 보면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마치 학가산에 대한 모든 것을 집대성 해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치 학가산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가 다름 아닌 장두강 씨이다. 삼십년 학가산을 오르며 일군 연구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안에는 장두강 씨가 직접 개발한 등산 코스와 체험 프로그램 그리고 학가산에 대한 역사적인 사료와 전설까지 담고 있다. 무엇보다 학가산의 변화와 이야기들이 담긴 사진 또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소소한 재미거리이다.
많은 자료를 검증하고 정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직접 산행을 통해 채집한 이야기며 옛 절터의 흔적을 고증하는 것 또한 그의 연구였으므로 그 과정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렇게 그의 연구로 새롭게 발견된 옛 절터도 있지만 신선바위나 마당바위와 같이 그가 이름을 붙여 알려진 바위도 있다. 본래 신선바위는 동네 사람들이 배틀바위 라는 등 저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그것을 학가산 전설과 엮어 그가 신선바위라고 호명을 해준 셈이다. 별명은 여러 개 있었지만 정작 이름은 없었고 그 많은 별명 중에 하나 꼽았으니 작명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특히 옥산사의 절터를 찾을 때는 수 십 번 같은 길을 반복해 다니고 여름엔 수풀이 우겨져 힘드니 겨울 산행을 고집해 찾아야 했기 때문에 고생은 말로 못했다. 결국 절터를 찾았을 당시 그 기쁨에 무릎을 꿇고 눈물까지 흘렸단다. 안동의 향토지인 영가지에 남아있는 단 두 줄의 기록을 가지고 그나마 벽돌 몇 장과 화강암의 기단부로 남아있는 옥산사의 옛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백두대간 종주가 목표인 산사나이, 장두강
사실 그의 본명은 ‘장은주’ 다. 교직생활을 하며 이름 때문에 얽힌 여러 가지 애환으로 장두강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한자가 아닌 한글로만 이름을 보면 여선생인줄 알고 무용과 가사를 담당하기도 했다니 여러모로 난처했을 일이다. 필명은 그가 지었다. 막을 두(杜) 와 강 강(江) 자로 이름을 썼다. 이것을 그의 설명 따라 풀이해 보면 나무와 흙과 물과 사람이 된다. 자연을 품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이름이다. 그래서 그는 평생을 산과 함께 할 운명이었나 보다.
백두대간 종주가 목표이기도 한 그는 전국의 산을 오르내리며 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에세이로 남겨놓았다. 그 중에 그가 산과의 인연에 대해 담고 있는 글이 있어 몇 자 옮겨 본다. 산을 타는 그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지는데, 그것은 마치 꿈같다.
“나는 여유로운 털래걸음으로 숲과 바위 사이로 이어진 좁은 산길을 즐기고 있었다. (중략) 험난한 탄항산과 포암산 사이의 낮은 협곡, 하늘재. 내 마음의 하늘재도 보였다. 고통과 고난의 현세를 의미하는 문경 관음리와 행복한 미래 용화세계를 꿈꾼 미륵리를 잇는 이 오솔길, 거기 하늘재가 열려 있었다. 내 영혼의 하늘재도 함께 열린다.”
-장두강 수필집 『내 영혼의 하늘재를 찾아』 중.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