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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묵계서원에서 묵다(글/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1.
홑이불을 새로 시친 정갈한 침구가 놓인 온돌방에 몸을 눕힐 수 있다면 어떤 손님인들 이 잠자리를 마다할까. 식어가는 온돌에 새벽 군불 지피는 소리가 부시럭거리거나 장작 타는 냄새가 창호지를 넘어 코에 닿으면 흠흠거리지 않을 수 없으리니. 아침 햇살 따라 짹짹짹, 참새소리에 귀 맑아지지 않을 수 없으리니. 여기에 묵묵한 묵계의 소리를 더 보태는 묵계서원에서의 하룻밤.

묵계서원에서 보낸 하룻밤의 감동은 어땠을까를 고민하다가 언젠가 가일마을에서 하루 묵었던 경험을 떠올려 느낌을 풀었다. 물론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선생의 감동은 어땠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간담회가 시작되는 가운데 묵계에서 하룻밤이 ‘참 좋았다’는 어감을 추측하여 아마도 오랜 구들장의 따신 감촉이 그랬을 것 같고, 세수하고 얼굴 닦은 수건이 고향집 같았을 것 같고, 군불 지핀 자리의 소리나 냄새에 황홀했을 것 같고, 서원 앞으로 흐르는 묵계의 소리를 떠올렸을 것 같아서 적어보았다. 묵계서원의 1박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가는 나중에 직접 선생께 확인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실제로 한옥에서 잠을 자고 나면 몸이 가뿐해진다. 새소리로 잠을 깰 때 그 놀라움, 하루가 얼마나 맑게 시작되는가를 느껴보는 일을 누구나 바쁘게 누려봤으면 좋겠다.

길안, 묵계서원으로 갔다.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가 그곳에서 한옥체험사업이란 주제를 두고 경북미래문화재단(http://www.gbculture.org)과 간담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소셜 디자이너가 전국을 돌며 지역인들과 더불어 대화하는 일정이 올라와 있어서 알게 되었다. 묵계서원 마루의 결이 맑다 못해 투명하다. 당연히 있을법한 먼지도 아니 보인다. 세월을 받아서 생긴 흠집조차 깨끗하다. 봄바람이 불어서 날려갔을까. 그러기엔 바람이 너무 가볍고 부드럽게 불어온다. 묵계서원을 관리하는 분들의 고운 손이 일일이 골골이 마루를 쓰다듬고 다닌 모양이다. 나뭇결을 자꾸 손으로 만지다보니 생기가 오르는지 윤기가 나기 시작한다. 아직 물오르지 않은 겨울나무 몸같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서원 앞으로 홍매화는 환한 얼굴을 내밀고 봄맞이를 하고 꿀벌들도 잉잉거리며 꽃을 찾아 날개를 쉬지 않는다. 읍청루에서 바라본 묵계는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개울물 소리를 경쾌하게 내며 흘러간다.

간담회 공간인 서원 강당, 입교당 마루에는 앉은뱅이 책상과 방석이 가지런히 놓였고 일찌감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미 진지하게 앉아계신 사이에 살짝 끼인다고 앉은 것이 앞자리여서 좀 불편했으나 참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어디에서나 늦게 자리를 잡으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어색한 일이 종종 생기는 것 같다.
박원순 선생의 말문은 안동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것으로 열렸다. 지역 토착기업인과 특산물을 열거한다.

디지털안동문화대전(http://andong.grandculture.net)에도 간단하게나마 등장하는 안동산업을 꿰뚫고 계신다. 선생의 발품 파는 글을 모르는 바 아니나 현장의 생생한 체험지식 앞에 할 말을 잃었다. 탁상에 놓인 그 흔한 공론 하나 없어서 그랬을까. 그래서 생각한다. 디자인은 현장의 언어라고. 안동소주나 간고등어처럼 전국구가 된 상품 이외도 관심이 쏠리는 농산품을 많이 꼽는다. 안동에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를 내용을 훑고 있으니 놀랍다. 이미 선생은 지역의 삶을 인터뷰해서 책으로 엮은 것만 해도 여러 권이다. 어디 이것뿐이랴. 이미 오래 전에 미국, 독일의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은 또 얼마나 값진 일이었던가.

2.
묵계서원을 두고 봐도 오랜 세월이 건물 어디엔가 스며 있을 거다. 서원 지붕에 앉은 기와는 여러 번 갈았어도 처음 지붕을 올린 시절의 흔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흘린 기와 부스러기와 흙과 땀방울은 끄떡없이 지붕을 받히고 있을 거다. 또 마루바닥을 깔고 있는 나무도 좀 얇아지고 그날의 윤기를 제대로 간직하지는 못하더라도 결을 잃지 않고 건재한다. 돌계단에 앉은 이끼까지 운치를 보태며 역사를 간직한다. 마당 가장자리에서나 혹은 계단 가까이 입석으로 서서 숨 쉬는 돌도 어마어마한 시간을 담고 있는 중이다. 전통한옥 체험 프로그램은 안동의 종가가 마음을 내고 경북미래문화재단의 기획력이 빛나는 작품이 되었다.

우리 온돌의 따뜻한 체험을 꺼내 놓고, 선생은 이 위에 일본의 료칸문화를 가져온다. 일본의 여관문화를 벤치마킹 하되 한국적이거나 안동의 풍경에 어울려야 한다는 거다. 숙박시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청결과 편안함이다. 이 두 가지를 일본의 여관문화를 통해 배우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다만, 비 오는 날 대문 밖에서 한 사람의 손님을 위해 우산을 준비하고 서 있는 료칸과는 다른 우리의 친절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서울 북촌의 한옥마을과 차별화된 안동의 전통한옥의 우수함을 살려야 한다. 안동의 전통가옥은 부정할 수 없는 품위가 있다. 반상이 나뉘던 시절의 반가문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니 북촌 한옥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도시 사람들이 우아한 안동의 한옥에 취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한옥체험 사업을 두고 선생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고령의 개실마을 이야기를 참고하면 좋겠다. 개실마을은 찾아온 사람을 위해 옛날 양반 풍속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종갓집에 인사하고 사당도 참배한다. 마음 수양도 절차에 포함되어 있다. 새해에는 농촌 체험프로그램에 개실마을의 미풍양속을 넣어 12월 31일 그믐부터 마을 집을 다 돌며 인사를 한다. 묵은 세배, 새해 세배도 나눠서 한다. 전통놀이 체험으로 엿 만들기도 있다. 그 외 전통놀이 자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그네뛰기, 널뛰기, 굴렁쇠, 짱치기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전통 차 시음, 7첩 반상 받기, 전통혼례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이런 프로그램 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다. 외부인이 마을에 들어와 가게를 열겠다고 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했다. 마을 내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하면 너도나도 장사를 하려하기 때문에 마을 갈등도 생기기 쉽다는 판단에서이다. 개실마을의 성공적 운영에는 마을 부녀회가 큰 힘이 되고 있다. 일흔 다섯을 넘어야 탈퇴자격이 주어지는 부녀회다보니 마을 일을 손수 어른들이 다 알고 직접 참여한다.
그리고 한옥체험 프로그램은 성수기, 비성수기에 따라 너무 치우치는 문제점이 있다. 여름에는 방이 없어 사람을 받을 수 없고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도 끊어진다. 이런 비성수기를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 중요하다. 계절별 이벤트, 특히 봄과 가을에 집중적으로 배치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서원마다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남겼다. 현실적으로 후원회를 만들거나 자매결연을 맺거나 지속적인 운영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 솔직하게 느낀 점을 쓴다면! 후원회를 위한 멋진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이 좋겠다.

김용택 시인의 시 ｢아름다운 집, 그 집｣에 보이는 집을 우리는 꿈꿀 수 없을까. 강변에 주운 주춧돌, 상량과 서까래가 올라가자 동네사람들이 함께 지붕을 엮고 논흙을 올리는 일은 역사 속에 묻어둬야 할까. 동네 사람들이 함께 지은 집에는 짐승, 벌레 할 것 없이 깃들어 사는 공동의 공간이 된다. 이 아름다운 집들은 언제나 시 안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지나간 옛사랑처럼 희미하게 묻어둬야 할까. 경북미래문화재단은 콘크리트 숲에 갇혀 사는 도시사람들이 ‘숨쉬는집’에서 잠을 자면서 피로를 풀고 전통의 아름다움에 취하기를 기획하였다. 작년에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은 재단은 안동의 문화재를 통해 사회적인 경제성을 추구하고 있다.

3.
선생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한국관광 상품이 소개되도록 하는 조언을 시작으로 다양한 문화적 생산을 강조했다. 디자인은 생산을 결정짓는다. 천 개의 직업을 제안하는 분답게 경제성 있는 전통문화 활용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마침 선생이 앉은 자리에 기와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그 상품의 아쉬운 점을 지적해 내신다. 만약 300년 전 기와라면 어느 장소, 어느 고택 지붕에 얹힌 것이었는지 밝혀보기를 권하고, 그림과 시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그 그림을 증명하는 인준서를 그림 안에 함께 넣는 것까지 아우르기를 조언한다. 아주 순간적이었으나 사회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의 예민한 촉수는 날카롭되 부드럽게 기와그림을 우아한 작품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역을 디자인하기 위해서 많은 사회적 기업이 다양한 역할을 맡아야 하고 그 가운데 문화활동가들도 역량을 키우기 위한 내부적, 외부적으로 프로그램을 생산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기업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을 위한 아카데미와 문화활동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안동의 경우, 시내 중심가에 있던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대형마트가 들어설 상황이다. 기존 상권이 위축될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대형마트만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 쇼핑몰의 박리다매를 따라잡을 아이디어가 절실하다. 이때 청주 육거리 전통시장은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고정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부녀회가 나섰고, 기업체와 자매결연도 맺었다. 인터넷 쇼핑몰처럼 공동구매로 공략했으며 노점좌판까지 규격화했다. 상인들에게 친절교육도 특별히 주문했다. 재래시장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전통 5일장을 주목해야하며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해야 한다. 대형마트에서 팔지 않는 싱싱한 우리동네 농산품이 제 때, 제 가격에 나와야 한다. 청주의 육거리시장은 상품권을 발행해 대박이 났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의 통인시장 상인들은 시장경영진흥원(http://www.sijang.or.kr)이 주최하는 상인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친절한 상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손님의 입장에서 시장을 보고 물건을 팔 때 새로운 서비스가 생긴다. 또 시장신문을 발행해 사연 담긴 상품 전단지를 만들고, 상인극단도 꾸려서 창작극을 공연하고, 요리교실도 열어 젊은 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 친절한 상인과 믿고 살 수 있는 좋은 물건과 문화이벤트가 즐거운 시장이 있다면 그리로 가고 싶지 않는 손님들이 있을까. 안동의 신시장 구시장도 정부의 아케이드 사업 일환으로 지붕도 덮고 간판도 예쁘게 달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니 앞으로 사람들로 북적이는 풍경을 기대해볼만 하다. 재래시장 부흥의 소프트웨어는 시장 안에서 찾아내야 한다.

전통공예품을 만드는 장인과 그 분야의 미술학도들이 함께 캠프를 열고 일정기간 작품을 함께 만들 때 발생하는 효과는 상상을 넘어선다. 전통은 현대적인 가치 위에 고품격을 보태는 힘이 있다. 장인이 간직한 전통의 깊이를 이제 막 배우는 학생들이 무릎 밑에서 느끼는 것 자체가 예술교육이 된다. 또 예부터 전해오는 유기의 문제점을 풀어낸 일화를 보태신다. 너무 무겁고 녹이 잘 슬어 닦기가 힘들다는 약점을 다른 금속과 합금하여 녹을 제거하니 고가의 상품으로 재탄생했다는 이야기이다. 또 제주도 어떤 호텔은 제주토속문화의 외양과 세련되고 현대화된 내부시설을 갖추고 있다. 유럽의 100년이 넘은 집이나 호텔처럼 우리도 전통을 현대와 조화롭게 연결시켜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제 우리도 웬만큼 전통을 복원해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슬슬 일기도 한다.

안동의 간고등어도 빼놓지 않으신다.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고기가 아니라 문화상품이 된 간고등어의 기획력이 빛난다는 거다. 고등어가 내륙지방에서 소금을 통해 다시 상품화된 스토리는 전통의 재현에 속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안동사람들에게는 식생활의 일부여서 누구에게나 익숙한 반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안동을 넘어서면서 문화상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우리가 안동 안에 갇히지 않고 안동이 품은 전통을 깊이 음미하고 사색하게 되면 전통은 현재 우리가 필요한 메시지를 전해주지 않을 리가 없다. 고전의 향기처럼 전통의 존재 이유 역시 현재에 소중한 영향을 미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미래의 길은 과거를 통해 찾아가면 된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이므로. 그래서 전통이 소중하다고 하는 게 아닐까.

4.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안동을 다녀가면서 안동 역사를 왜 콘크리트로 지어야 했던가를 의아해하면서 기와지붕을 올리면 어떤가를 안동시민들에게 물었던 기억이 있다. 88올림픽에 굴렁쇠 소년을 기획한 분답게 첫 이미지 안동을 기와와 연결시켰던 것인데 이렇게 도시는 그 도시의 과거를 현재에 불러낼 때 전통있는 공간이 된다. 우아한 전통이 있는 공간이 있다면 찾아가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러니 경제효과는 그냥 덩달아 생기게 되어 있다.

도시경관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큰 도시일수록 차도가 넓다. 오늘날 도시규모는 차도로 보면 그렇게 빗나가지 않을 거다. 우리는 도시 한복판으로 차를 달릴 수 있어야한다고 도로를 만들어왔다. 그러다가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기 위해 외곽도로를 만들었다. 오늘 우리의 도시풍경은 그렇다.
박원순 선생의 생각은 정 반대이다. 차도가 좋아지면 도시가 망한다는 거다. 명품도시일수록 보행자 전용도로가 언제나 있다는 거다. 가만 생각해보면 도시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가 넓게 뚫려 있으면 풍수적으로도 좋은 기가 모여들 시간이 없을 것이고, 지방도시에 도로가 너무 좋으면 쉬어가지 않고 쌩쌩 지나칠 확률이 더 높다. 우리도 여행을 떠나보면 이미 정해둔 목적지를 향해 달릴 뿐이지 길 가는 사이사이 볼 것을 찾아 여유를 갖지는 못하는 것 같다. 대신에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도시가 있다면 아예 처음부터 걸어갈 마음을 먹는다. 일부러 걸으려고 한다. 제주 올레처럼 지역마다 도심이든 외곽이든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둔다면 외부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태도시로의 전환도 시급하다고 강조하신다.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석유는 앞으로 30년 정도 사용하면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50년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100년 단위로 좀 더 멀리 잡는 사람도 있으나 결국 우리들의 주 에너지 석유가 고갈된다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화석연료다보니 무제한일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에너지 개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일본의 해일로 드러난 원자력에너지의 위험성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대안에너지가 시급하다.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가장 안전하고 지속적일 것 같다. 태양, 바람, 물 이런 자연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유럽에는 태양열로 아파트를 건축하고 마을단위로 풍력을 발전시켜 그 에너지로 마을주민이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낸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다.

선생께 제일 궁금한 것은 천 개의 일자리에 있었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의 불안코드는 취업과 직결되어 있지 않은가. 간담회 자리가 끝났지만 제대로 여쭈지 못했다. 소셜 디자이너의 희망열차는 다음 역을 향해 출발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망할 것 없는 디지털 라이프! 신문기사를 통해 궁금했던 직종들을 찾아냈다. 선생은 작년에 경희대에서 20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한비야 씨와 함께 독특한 취업박람회를 열었다. <시사 IN>에는 이 내용을 30개 직업으로 묶어 소개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면 책으로 직업을 삼는다(북 헌터, 책 수색가, 책 대여시스템 사업가), 그리고 소믈리에(와인에서 막걸리, 된장, 김치 등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 블루오션 농촌사업(농촌일손뱅크, 유휴공간 임대사업, 쓰레기 투기감시업), 민간외교관 등 너무 많아서 옮겨오기 어렵다.

집과 관련한 일자리는 재미있다. 특히 집 바꿔살기에서는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가 떠올랐다. ‘홈 익스체인지 휴가’로 미국인은 영국으로, 영국인은 미국으로 집을 바꿔 여행하는 동안 지내는 대목이 나온다. 그 영화를 보면서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을 전문업종으로 삼는 사업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박원순 선생이 이렇게 다양한 직업 1천개를 기획한 의도에는 경쟁에서 이긴 후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일하는 것도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것에 있다고 한다. 남을 돕고 서로 협동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이 되겠는가. 개인의 이상과 가치실현을 위한 일자리가 너무나 귀한 세상에서 보람있는 일자리를 스스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디자이너는 ‘1인 CEO’가 되라고 주문한다. 결국 직업이란 주어진 일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일을 스스로 만들어서 할 때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5.
박원순 선생을 일러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이라고 하는 우스개 얘기가 있다. 사회를 디자인 하자니 그런 말이 보태졌나 보다. 사람 둘만 모이면 사회가 되고 온갖 규칙과 원칙, 그리고 많은 문제가 바로 이곳에서 생긴다. 그래서 소셜 디자이너는 여러 문제를 디자인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거다. 선생이 참여연대 일을 마무리하고 미국, 독일 등의 활동가를 만나고 많은 사회적기업을 방문한 까닭도 여러 문제의 해법을 디자인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의 변화는 깨어있는 1인의 고독한 행보에서 출발은 하나, 그 1인으로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랬다면 진작에 혁명이 성공하지 않은 나라란 없을 거다. 디자인이 사회를 아름답고 공정하게 그리고 착하게 바꿔 나눔을 실천하도록 한다면 디자이너가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제, 우리 안동을 디자인 하는 일이 구체 대상으로 남았다. 공식 집계로 경주보다 많은 문화재의 고장답게 경북미래문화재단의 한옥체험사업이 아름다운 빛을 발하기를 희망한다. (인터뷰를 하지 못해 박원순 선생의 책을 자료로 대신 사용하였습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