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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名山)문화와 청량산(글/임노직_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장)

지역문화와 글로벌화
지식산업과 문화산업이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전략사업으로 떠오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화와 정보화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사회는 종래의 패러다임으로서는 그 변화와 환경을 설명할 수 없다. 지식과 정보는 인간 삶의 양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문명사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국가 간에 협력을 필요로 하는 글로벌화는 지구를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는 세계관에 기초한다. 이는 인간의 삶의 과정에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의사소통을 용이하게 하고 경제 분야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지만 정신문화적 관점에서는 부정적인 측면도 많이 노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사회에서는 전통문화의 위상이 새롭게 자리매김 되고,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담론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특히 지역문화에 대한 담론은 지역의 정체성, 지역의 문화창조력과 관련되어 논의되고 있다. 문화는 그 지역의 고유한 정서와 가치, 행동양식을 바탕으로 할 때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문화는 개성이 생명이므로 개성이 없는 문화는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주체성이 없는 타율적 문화는 외래문화에 흡수되거나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문화의 정체성 확립은 글로벌 시대에 절실히 요청되는 과제이다. 지역문화의 글로벌화는 지역문화를 산업화하여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나아가 지역문화를 통하여 세계문화의 중심국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이의 성취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은 지역 고유의 정신문화를 발굴하여 이를 정보화하고 관광자원화하며, 문화교류를 확대하는 것이다. 지역문화의 글로벌 전략의 대상과 범위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실로 다양하다. 그 중 사상과 역사적 맥락에서 지역주민들의 생활양식과 사고체계를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명산(名山)문화를 거론할 수 있다.

명산 문화와 유산록
산은 인간과의 오랜 상호관계를 통해 외경의 대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향으로써 생활의 터전이자 문학 창작의 공간으로 기능을 해왔다. 일반적으로 자연 풍경이 수려한 산을 일컫는 명산은 자연경관과 인문경관이 어울러져 독특한 산수문화를 형성한 자연유산이자 문화유산이다. 오늘날 고도의 산업사회에서도 산은 주요한 문화자원으로써 장소, 지역, 공간을 바탕으로 보존, 발굴, 활용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남긴 명산 문화 가운데에서도 산수 체험 기록인 ‘유산록’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유산록은 전통시대의 중요하고도 정통적인 한문 산문 양식으로 산수에 대한 지식을 체계화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문화자원의 활용 측면에서 유무형의 엄청난 가치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대체로 이들 유산 기록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표현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심미적 감수성을 펼쳐 보이고 있다. 직접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문학 장르보다 당대 사람들의 일상적 관계나 정감, 태도, 사유양상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또한 유산록은 지역문화의 글로벌화 관점에서도 문화집단의 정체성 확보와 관련된 유용한 정보를 지닌 문화요소의 집적체로써 상징성을 지닌다. 산수 유람의 문학적 기록인 유산록에는 산천뿐만 아니라 신화, 사찰, 루대, 전설, 경관 등에 대해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포괄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역사, 문화, 사상, 문학, 종교, 사회, 경제 등 모든 측면에서 체현되어 왔던 산에 대한 심미적 이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써 지역문화 연구의 실체적 대상이다. 산수 유람의 기록에는 조화와 통일의 논리를 강조하고 평등과 정의와 휴머니즘 사상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글로벌 시대에 사상적 길잡이로써도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이는 문사철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지리, 생태학, 환경보전 등의 측면에서 지역사회의 산업화, 관광자원과 밀착되어 있는 것이다. 명산에 대한 학술사 정리와 자료집의 출간은 시급한 일로 향후 명산 문화 연구를 이끌 학문적 기반이 된다. 유산록의 내용 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다면 유산기의 시공간적 분포와 의미를 밝힐 수 있어 인문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청량산과 퇴계
‘도산구곡’의 하나로 설정되어 있는 청량산은 규모는 작지만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수산(水山)이라는 옛 이름이 말해주듯 중국의 무산을 닮아서 환희심에 사로잡힐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축융봉 정상에 올라 굽어보면 연꽃 같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고, 원근 수 백리의 크고 작은 산맥과 하천이 눈앞에 펼쳐져서 예부터 선인들의 아낌을 받아 왔다. 열두 봉우리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예전에는 연대사를 비롯한 20여개의 대소 암자가 존재했다.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와 김생이 글씨 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김생굴, 최치원이 공부하던 고운굴,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서 쌓았다는 산성 등이 현존한다. 최근에는 문화적 보존가치를 고려하여 문화재청에서 내외 청량산 일대를 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하였다.

청량산은 위대한 퇴계를 만나서 명산의 반열에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퇴계가 ‘우리의 산’이라 부르기 전까지는 청량산은 세인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다. 퇴계로 인해 청량산은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났다. 퇴계는 소싯적에 이곳에서 수학을 했고 도산에 머물면서도 사무칠 정도로 그리워하였다. 독서는 유산과 같다고 노래한 퇴계는 산수유람 때 쓴 시문을 주위 사람에게 주어 절차탁마의 자료로 삼도록 하였다. 그는 유산 기록의 문학 양태를 매우 중시했는데 “산을 유람하는 사람에게는 기록이 없을 수 없으며, 기록은 산행할 때 유익한 것이다.”고 언명하였다. 다만 산행에서의 감흥을 너무 많이 시로 풀어내어 거칠고 잡스런 데로 흘러 뜻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경계하였다. 퇴계에게 있어서 청량산은 주희에게 있어서의 무이산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는 ‘청량산인’으로 자처하면서 세밀하고도 서정적인 묘사로 주옥같은 시문을 남겼다. 이후 후학들에 의해 이를 모델로 삼아 청량산행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시문이 창작되는데 그들은 자연경물에 대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청량산에서 어떠한 이치를 찾고자 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청량산에 대한 체계적 기록으로 ‘오가산지(吾家山誌)’가 전한다. 퇴계의 시문을 중심으로 청량산 관련 시문을 모은 것인데 중국의 무이지(武夷誌)를 모방하여 이만여(1861~1904)가 편찬하였다. ‘청량산지’라 하지 않고 ‘오가산지’라 한 것은 퇴계의 글에 나오는 표현을 따서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오가산지’에는 운암곡 부터 월천곡, 오담곡, 분천곡, 탁영곡, 천사곡, 단사곡, 고산곡, 청량곡까지 구곡을 설정하여 각각에 대한 시문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주세붕의 유산록과 허목의 유산기를 부록으로 붙여 참고로 삼게 하였고, 오산당의 창건기와 중건기를 덧붙였다.

청량산과 유산록
유산은 조선조 사대부들의 여가활동의 하나로 이를 통해 심신을 수양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유산의 과정과 결과는 문학작품으로 전하는데 조선 지식인들은 금강산, 지리산, 청량산, 소백산, 묘향산, 가야산, 북한산, 주왕산, 금산, 속리산 등 이른바 명산에 대해 집중적으로 상당수의 작품을 남겼다. 그 중 ‘작은 금강산이라 일컬어지는 청량산은 영남 사림에게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퇴계학파의 학자에게 더욱 숭고한 산으로 존숭되어, 영남 유학자의 정신적 본산이 되었다. 청량산은 퇴계의 정신세계가 구체적 형상물로 표상화된 곳으로 인식되었다. 중국에서 태산과 무이산이 그러하듯이 청량산 또한 위대한 인물에 의해 유학적 성지로써 새롭게 해석된 것이다. 한마디로 청량산 기행은 퇴계가 남긴 자취를 더듬어 그 숨결을 가까이서 느끼려는 유학적 구도(求道) 순례의 여정이었다.

청량산 유산 기록은 시기적으로 조선 후기에 창작된 것이 대부분이며, 작자는 영남출신으로 사상적으로나 문학적 전통으로나 퇴계학파의 범주에 속하는 인물이다. 작품의 형식과 수준은 작가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대부분의 유산기와 마찬가지로 그 구성은 유람의 동기나 목적, 동행인을 기술하고 날짜별로 유람을 하면서 견문한 것을 기록하였으며, 유람에 대한 총평으로 끝맺고 있다.
다만 청량산 산행 기록에는 다른 지역의 유산 기록과는 달리 성리학적인 이상세계를 구현하려는 조선 사대부의 의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들은 산을 오르는 것을 독서에 비유하면서 학문에 대한 뜻을 돈독히 하는 한편, 이단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특히 오랫동안 뿌리박혀 내려오던 불교의 초월적인 사유방식을 노골적으로 배척하고 있다. 최초의 청량산 유산록은 남긴 주세붕은 승려들의 말을 불신하였다. 불교적인 설화가 대부분 신이(神異)하고 초월적이며, 초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유학자의 입장에서는 황당무계하게 들린 때문이었다. 때로는 토속적 신앙으로 가득 차 있는 산을 그들의 이념적 체계 속으로 끌어들여 재해석하고 있다. 성리학에 투철한 사림들이 불교적 색채의 이름을 바꾸거나 이름을 새로 짓는 행위는 바로 이를 말해 준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합리적 정신이다. 도의를 기뻐하고 마음을 기르는 방편으로 자연을 애상하였을 뿐, 도가처럼 자연에 몰입하여 무아(無我)의 경지까지 나아가는 것은 경계하였던 것이다.

산수 기행과 그 정신
산수는 일차적으로 유상과 풍류의 장소이긴 하나 동시에 세속에서 벗어나 산수의 덕목을 배우고 이치를 탐구하며 심성을 수양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적어도 조선 유학자의 눈에는 산수가 그저 유완의 대상으로 그친 것이 아니고 그 가치를 찾아내어야 할 진리체의 상징물로 현시되었다. 산수 자연에 대한 유가의 입장은 산과 인(仁), 물과 지(知)를 연관지어 설명함으로써 산수의 자연적 속성과 인지의 도덕적 가치를 상호 대비시키고 있다. 산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다분히 도덕적 양기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들은 산수의 내재적 속성과 도덕적 수양과정을 유비적으로 연상하여 통찰하고 있다. 청량산 유산 기록에는 자연의 질서를 통찰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도덕성을 자각하여, 조화와 질서의 세계를 유지하려는 관념이 다분히 내재되어 있는데 이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산수 기행문은 산수 자연 그 자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산수와 어우러진 그 지역의 역사 전통과 풍속, 설화, 생업 등 그 속에서 살아가는 지방민의 삶의 현장이 그려져 있다. 그 산이 속한 지방의 역사와 지방 민중의 생활양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지역문화발전과 지방자치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문화정책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각자가 공유할 수 있는 실천적인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유산은 예나 지금이나 놀이 문화로써 최소한의 공동체적 문화형성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산이 문화의 교류 장소로써 이해, 정보의 제공, 연결, 기호와 언어의 활용을 통한 사회적 통합의 기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장소성은 모두를 위한 열려있는 문화생태학적인 교육 체험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유산의 참여와 협력 정신은 일반 통행적 소통이 아닌 직접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다. 미래의 사회상이 기술공학적인 발전과 조화되는 통합적인 가치와 양식을 지시한다면 명산문화와 산행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공동생활에의 구현을 의미하는 문화촉매적인 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특히 세계화가 국가 간의 교류로부터 지방간의 교류시대로 들어서고 있음을 볼 때 명산과 그 문화는 국경을 넘어선 교류의 무대로써 크게 주목된다.

명산문화의 활용 방안
여가 시간이 많아지고 문화관광이 활발해지면서 산수를 찾아 휴양을 즐기는 추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인해 자연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어 자연경관의 체계적인 보전과 관리가 요청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에서는 경치가 좋은 명산으로서 문화자원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난 곳을 국립공원이나 명승으로 지정하여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관리하고 있다. 문화적 의미가 내포된 인문적 개념의 명산은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주체 혹은 집단, 시대와 사회적인 의미와 가치가 복합되어 있다. 명산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경관적 내용뿐만 아니라 그 문화집단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명산의 지속적인 유지 관리를 위해서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명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제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후대에까지 길이 보존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 단체나 중앙 정부에서 명산과 관련되어 지역 주민들에게 학술, 문화적 측면에서의 교육은 물론, 관리와 보존에 있어서도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퇴계의 체취가 지금까지도 살아 숨 쉬는 청량산은 곧잘 주자가 은거하던 중국의 무이산에 견주어졌다. 주자가 무이산에서 정사를 짓고 강학을 한 것 같이, 퇴계는 청량산 자락에 서당을 지어 자신의 학문과 사상을 집대성하였다. 조선 선비들이 정신적 고향으로 꿈꾸던 무이산은 지금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역사 문화적 콘텐츠 측면에서는 청량산을 무이산에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청량산은 최근 국가명승지로 지정되어 지역 주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제고함은 물론 국민 건강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한 자치단체에서도 매년 ‘옛선비들의 청량산 유람록’이라는 총서를 발간하여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명산에 대한 유산 기록은 이러한 점에서 우선적으로 정리 활용해야 할 기록유산으로서의 소중한 문화 자원이다. 산과 사람이 만들어낸 사상이나 문학, 신앙 등의 문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써 인류 공통의 화제이자, 고유한 가치를 지닌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적을 초월한 연구자간의 교류 및 정보 교환이 필요하며 이는 국제 학술의 교류 증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교류 확대는 지역과 지역 간은 물론 국가와 국가 간에도 적용되는데 이를 통하여 유대를 강화하고 상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문화창조력도 제고된다. 명산문화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관심은 글로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하는 동시에 시대적인 문제에 대하여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하는 하나의 합리적인 대응전략이 될 수 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