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무예의 대를 잇는다, 현대판 무사 전영식(글/이희수_프리랜서 작가)
무사 백동수의 얼을 닮은 현대판 무사 전영식
저마다의 인생이 흥미로운 것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 이면에 여러 가지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은 수학 과목을 맡고 있었다. 풍채가 좋은 선생님이었고 표정은 늘 무뚝뚝했다. 그 시절 선생님 지우개 시리즈가 있었는데 수학선생님, 국어선생님, 가사선생님, 체육선생님. 어쩜 현실에서의 선생님 모습을 그리도 빼다 박았는지 잘 지워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림이 재미나 너도 나도 하나씩 가지고 있던 네모난 선생님 지우개는 유행이었다. 담임선생님의 모습도 영락없는 그 ‘지우개 속의 선생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느 더운 여름날 우리는 선생님의 새로운 이력을 알게 되었다. 여고생들의 수업 안하기, 간식 조르기, 선생님의 과거 캐묻기 삼단공격에 하루 수업을 제끼기로 마음먹은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풋풋했던 20대 시절을 들려주었다. 당시 선생님의 이야기는 다소 의아스럽기도 했다. 명문대 수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공부만 했을 것 같은 선생님은 사실 학창시절 국가 대표 보디빌더로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고백(?) 이후로 우리는 선생님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하긴 지금 생각해보니 늘 팔이 겨드랑이에 붙지 않아 터미네이터 자세로 걸어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사람에 대한 매력은 이런 반전에 있는 것 같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 상상할 수 없는 범주에서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란 직업은 으레 더 그런 것 같다. 보디빌더와 수학교사라는 아이러니처럼 검도사범과 지리교사도 그런 축에 들지 않을까. 궁금증에 설렘까지 얹어 선생님이자 총재로도 불리는 ‘이달의 인물’을 만나기 위해 법흥교 쪽으로 걸어갔다. 전수관을 겸한 사무실이 법흥동 큰 길가에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는 전영식 선생님으로 전수관에서는 전영식 총재님으로 불리는 그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마도 단체를 설립한 총재라는 위치 때문에 대중적이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의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덕분에 아내의 잔소리는 줄고 칭찬은 늘었다고 하니 비로소 아내에게 인정받고 나서야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낀다는 영락없는 애처가이기도 하다.
전영식 총재가 설립한 동국검도의 뿌리는 무사 백동수가 기록한 우리나라 군사훈련교육 및 종합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의 육기검법에 있다. TV에서도 한창 무사 백동수의 생을 담은 드라마가 방영중이기에 호기심이 앞섰다가 흔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이상한 고정관념 탓에 슬며시 긴장이 되었다.
가정에서는 세 아이의 아빠이고 학교에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외치는 선생님이자 밤에는 전수관의 검술 사범으로 변신(?)하는 현대판 무사, 전영식 동국검도 총재와 비오는 이른 오후 뜨거운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전통무예고증은 안동에서, 동국검도의 역사성
동국검도는 1995년 전영식 총재가 특허를 낸 명칭이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는 종합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의 육기검법, 즉 여섯 가지의 검술만을 발췌한 것에 새로운 수련법을 재창조해 만들어낸 검도가 동국검도이다. 동국이라는 뜻은 예로부터 중국이 우리나라를 칭할 때 쓰던 것인데 이후로 우리나라 스스로도 동국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진 우리 고유의 전통검술에 붙이기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한 전영식 총재는 직접 육기검법에서 증(增)한 동국검도를 창안해 낸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의 배경을 잠깐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무예도보통지는 어정 무예도보통지라고도 물리는 데 정조의 어명으로 책이 쓰여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실학자인 이덕무, 박제가와 무신이었던 백동수에게 정조는 우리나라 종합무예서에 대한 편찬을 명했다. 전술과 전략에 대한 병법서는 있었으나 실제로 훈련을 할 수 있는 도감과 무예의 실전에 대한 스물 네 가지의 우리나라만의 무예서는 기록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정조의 이러한 명은 파격적이었다. 문무신의 관료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라긴 했으나 백동수는 서얼출신이었기 때문에 당시 출세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정조의 실학 정신에 바탕을 둔 개혁적인 등용이 오늘날 무예도보통지와 같은 무예서를 남길 수 있는 근원이 되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전술이 아닌 실제 훈련기술과 종합무예의 모든 도감이 담겨있다. 백동수가 무예도보통지의 무술을 검증하고 실제 훈련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론서가 아닌 실제의 훈련도감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덕무의 처남이기도 한 백동수는 드라마에서 그려지고 있는 모습과는 달리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능력을 인정받고 평안도 박천군수와 지휘관으로서 종4품인 파총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전영식 총재가 무예도보통지의 여섯 개 검법인 육기검법을 중심으로 동국검도를 창립했지만 특히 안동에서 동국검도의 시작에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서애 류성룡 선생 때문이다. 무예도보통지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예서인 무예제보는 임진왜란 때 서애 류성룡 선생의 청에 의해 편찬된 것이다. 단 무예제보는 명나라 장사들에게서 배운 무예 중 여섯 가지를 정리하여 엮었기 때문에 스물네 가지의 종합 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와는 차이가 있겠다.
무예제보는 프랑스에서 발견되었으나 무예제보를 보완한 무예제보번역속집이 있는데 이것은 서명조차도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계명대학교 도서관에서 송형석 교수가 발견하여 보물로 지정되었다. 언해본과 함께 그림과 몇 가지 무예가 추가되어있다. 무예제보는 이후 무예신보를 거쳐 무예도보통지가 탄생하게 된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에 그 역사성이 매우 중시되고 있다.
동국검도는 무예도보통지의 여섯 가지 검법이 담겨 있다. 거기에 오랫동안 육기검법 수련으로 다져진 전영식 총재가 검술로서 균형과 조화를 위해 보완된 내용을 집어넣었다. 이로써 동국검도는 육기검법을 복원하고 그 완성도를 높인 보다 현대화 된 육기검법으로 재탄생 되었다.
무예도보통지 박사의 전통무예 재창조
성희여고에는 동국검도 동아리가 있다. 여고생들이 검도를, 그것도 그 학교 선생님이 직접 창립한 무예를 배우고 있기 때문에 전영식 총재에게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 특별한 제자인 것 같다.
전영식 총재는 총재이기 이전에 학교의 선생님이다. 때문에 교사의 직업상 사업자등록을 내어 체육관을 운영할 수 없다. 그가 동국검도에 몸을 담게 된 이후로 전수관을 운영하지만 단 한 번도 운영을 위해 교육비를 받을 수 없었다. 때문에 아직은 알음알음 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취미와 수련으로 매일 저녁 시간을 기꺼이 내주고 있다.
검도라는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은 일찍이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섭렵하면서 부터였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 전통무예에 대해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무예도보통지의 육기검법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것이 그를 동국검도의 총재로, 무예도보통지로 논문을 쓴 체육학 박사로 만들게 되었다.
1990년, 처음에는 전영식 총재 개인의 취미로 시작해서 학문으로까지 이어진 연구였지만 그 후 5년이 지나면서 무료로 동국검도 사범지도를 시작했다. 처음 무료로 전수를 할 때에는 성희여고 체육관에서 시작했다. 이후 전영식 총재가 대학원 진학 등 많은 어려움이 있을 때 학교에서 이런 저런 배려를 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동료교사와 교장, 교감 선생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2000년도에 들어서는 성희여고에 동국검도 1기 동아리를 결성하면서 안동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지도를 했고 바로 이 시기에는 전영식 총재가 큰마음을 먹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때이기도 하다. 2002년 특허를 출원하고 2006년 비로소 세계육기검법(동국검도)라는 이름으로 창립하게 되었다. 전영식 총재가 오랜 시간 무료로 보급을 해오고 있었지만 절차를 밟아 본격적인 창립을 한 것은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지인들의 많은 도움도 있었다. 학교측의 배려는 물론, 전수관 겸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법흥동 건물은 권영만 도의원이 좋을 일을 하는 데 써달라며 배려를 해줬다.
사실 요즘 전영식 총재는 정말 바쁘다. 2008년 추진된 전통무예진흥법지정에 따라 전국에서 약 700여개의 단체가 전통무예지정에 뛰어들었는데 동국검도도 그 중의 하나다. 서울대학교와 용인대학교에서 검증과 조사에 나서 종주성과 역사성, 술기 체계성, 대중성을 기준으로 현재 약 40 여개의 단체가 심사에 올라있다. 계속해서 자료를 제출하고 요구하는 문건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로 전영식 총재는, 직함은 총재이지만 실무적인 일을 혼자서 처리해야하기 때문에 힘든 기색도 있었다. 물론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어쩐지 설레 보였다. 전통무예지정에 따라 동국검도를 보다 세계화하고 싶은 그의 꿈에 한 발 다가서는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 동국검도는 승단시험과 보급에 대한 재정적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전통무예로 지정되는 것이 곧 동국검도의 대중성에 힘을 싣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그가 전통무예지정에 힘을 쏟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 동안 배출한 사범들과 대한육기검법 협회의 김용철 회장 등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동국검도가 예전에 비하면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인터뷰차 찾아간 날 그의 일정이 적혀있는 보드에는 전국 태권도 관장들의 7월 동국검도 수련관 입회가 잡혀 있었고 계명대 세미나 등 여러 가지 업무가 병행되어야 할 것 같았다.
성희여고에서 시작한 1기 동아리 활동은 얼마 전 교육청에서 동아리 특화사업으로 선정되어 지원금도 받게 되었는데 10월에 있을 성희여고 학생들의 승단시험에도 쓸 수 있고 도복도 마련하는 등 요긴하게 쓰일 수 있게 되었다.
안동에서 영주까지, 로맨스 타운
사실 사진으로 미리 접하고 갔던 그의 모습은 사진보다 온화했고 말투는 그 보다 더 온화(?)했다. 여고에서 근무하는 탓인지 상상했던 박력보다 그가 가진 특유의 말투가 상당히 친근감 있었다. 인터뷰 내내 재미있는 역사수업을 받는 느낌이었으니 그의 말투가 쉬이 상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안동 토박이인 전영식 총재는 워낙에 운동을 좋아했던 탓에 대학 진학 때 체육과를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가 있었고 안정된 교직생활을 권유했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지리과에 가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교사생활 10년차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서야 비로소 본인의 뜻에 따라 체육학과를 택해 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때 큰 후회가 들었다는 그의 말에 가정생활과 직장생활 거기다 학생으로서의 생활까지 모두 해나가야 했던 고충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짧은 나의 생각과 달리 이렇게 얘기했다. 그 때 가장 고생을 많이 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아내라고. 두 아이를 키우며 초등학교 교직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가 있었기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공부도 뒤 늦게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아내를 극구 꼬셔서 결혼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결혼은 두 사람의 연애가 성사되고 뜻을 이뤄 결정되었지만 그 연애가 성사되기 까지는 쉽지가 않았다.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영주에 있는 누나 집에 놀러가게 된 그는 우연히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영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었던 그녀를 마음에 점찍었다. 몇 번 만남을 가졌지만 그를 마음에 내켜하지 않았던 아내는 전영식 총재와의 만남을 거절 했다. 전영식 총재가 우스게소리로 ‘운동하는 사람이 좀 무식합니다’ 라고 운을 뗐는데 그를 거절한 아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벌인 일(?)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안동에서 차를 몰고 아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를 찾아간 그는 자신을 만나줄 때까지 아내의 학교 운동장에서 계속 차를 몰고 빙글빙글 돌았다고 한다. 그 당시 그런 획기적이고 적극적인 대시를 했으니 아내가 안 넘어올 수가 없었겠다 싶다.
아내가 절대로 안 낳겠다던 막둥이가 올 해 다섯 살이다. 큰 누나와는 열두 살 차이가 난다. 마음먹은 대로 진행하고야 만다는 그의 호탕함이 유머러스한 말투와 묘하게 매력을 더했다. 아마도 아내가 이런 모습을 보고 반하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큰 딸은 성희여고에 다니고 있다. 당연히 동국검도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아빠를 따라 배웠기 때문에 곧 잘 한단다.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 딸내미도 동국검도를 배우고 있다. 다섯 살 막둥이 아들은 저녁이면 전수관에 와서 꼭 수련을 하고 간다.
당연히 아내도 같이 하겠거니 물었더니 아내는 절대로 안한다며 요 앞에 있는 헬스클럽은 잘 다니더라며 핀잔을 놓았다. 섭섭했던 마음이 있지 싶었다. 그렇다고 싫은 운동을 억지로 시킬 수는 없지만 어쨌든 아내가 아니더라고 목요일 저녁이면 꾸준히 동국검도를 배우러 찾아오는 미시족들이 있다니, 안하는 것은 운동에 대한 기호일 뿐이지 싶었다.
학생들도 가르치고 일반인들에게도 전수할 수 있는 시간을 내고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가진 것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석사를 마치고 살림도 하고 아이도 키워내야 하는데 굳이 박사까지 진학해야하느냐는 아내의 반대를 무릎 쓰고 박사학위에 도전했던 그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한번 무너져야만 했다. 대학원 생활에만 몰두해도 논문을 쓸까 말까하는 차에 여러 가지 생활을 병행하고 있었으니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교수와의 마찰로 한 동안 학교도 나가지 않고 설움이 복 받쳐 울기까지 했다. 시간이 흘러 담당교수의 도움으로 논문을 마치고 박사학위는 취득할 수 있었지만 사실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동국검도의 매서운 칼끝, 전통무예 부흥 위한것
그러다 보니 이렇게 일궈 온 그의 동국검도에 대한 지난 시간과 결과들이 또 한명의 자식과도 같다. 하지만 요새 가끔 섭섭한 소리가 귀에 들린다. 그의 나이 올해, 마흔 여덟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누구한테 물려 줄 겁니까’ 하는 소리를 곧 잘 듣는다. 살짝이 서운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 만큼 동국검도가 서 있는 자리가 얼마만큼의 대중성도 갖게 되었다는 기분 좋은 칭찬으로 들어도 될 법하다.
여전히 그는 이 더운 여름을 동국검도가 전통무예로 지정되기 위해 갖춰 나가야할 것들을 채우기 위해 힘쓰고 있을 것이다. 한번 자세를 취해 달라는 부탁에 검을 든 그를 보니, 안동에서의 역사성을 가진 동국검도가 전통무예로 지정될 날이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