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전리의 가을(글/사진/김복영_본지 발행인)
경북도청 신도시가 들어설 곳에 가면 사람보다 펼침막을 더 많이 만난다.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상실감에 들뜬 이들이 매달아놓은 갖가지 요구와 하소연들이다. 어느 마을 어느 길에서나 불쑥불쑥 나타나서 때로는 애절한 감성으로 때로는 격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도정 중심지가 될 풍천면 갈전리, 동네 어귀에 텅 빈 천막과 나무걸상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주민들의 농성장이었던 그 자리에서 내다보면 잔뜩 찌푸린 하늘과 잡초에 뒤덮인 횅한 들판을 배경으로 ‘투쟁’이란 구호가 차라리 애잔하게 느껴지는 낡은 깃발이 공허한 외침을 흩날리고 있다.
그들이 투쟁하고 농성하면서 가슴으로 받아들인 위안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농성장 양쪽으로 펼쳐진 논은 도청 기공식에 대비하여 선도지를 받고 모를 내지 않은 묵은 논이다.
그러나 질긴 생명의 순환은, 작년에 떨어졌던 볍씨가 싹을 틔어 무성한 잡초 속에서 열매를 맺었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낟알도 소중하게 갈무리해온 농심은 비록 씨 뿌려 가꾼 농사는 아닐지라도 정성들여 이삭을 거두어들인다.
이곳에서 13대를 이어온 조점례씨 부부의 농자천하지대본.
예순다섯 살, 황혼에 문전옥답을 놓아야하는 저들의 손길이 다시 다른 땅에 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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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새 도청이 들어설 원당마을에 철거작업이 시작됐다.
마을 입구에서 주택 잔해를 디디고 선 포크레인이 무언지 모를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도청의 진산이 될 검무산을 등지고 있는 이 마을은 안동권씨 일파의 집성촌이다.
원당(圓塘)이라 쓰고 ‘원대이(원댕이)’ 라 부르는 이 마을의 입향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화왕산전투에 참여했던 원당(元堂)권준(權準)이다.
그로부터 400여년 이어져 온 그들의 역사가 마무리 되가는 현장은 지붕보다 높게 둘러쳐진 가림막, 간혹 용달차에 이삿짐을 싣는 바쁜 손길이 있을 뿐 스산하기 그지없다.
11월 초. 도청기공식이 열린다고 한다.
이래저래 풍요로움보다 시름이 더 크게 느껴지는 갈전리의 가을이다.
2011.10.16. - 彷杖 -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