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발전의 흔적 남기고 떠난 김준식 전 문화원장(글/권오신_안동문화원 회원)
김준식 전문화원장님이 74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 하셨다. 평소에 병원 한 번 안 갈 정도로 건강하셨기에 그렇게 훌훌히 세상을 떠날 줄을 정말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더 오래 살아 우리 향토 안동과 광산김씨 문중을 위해서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실 분이기에 고인을 아시는 분들은 모두 애석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지난 봄 김 원장님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 또한 심상치 않다고 해도 그렇게 빨리 가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달포가 지난 후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소식을 듣고 문화원 식구들과 같이 군자리로 가서 뵈었을 때의 모습은 매우 초췌했다. 그러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밝은 모습은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수 없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몇 달 조리하면 완쾌하겠지 하는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자신의 병의 정도를 이미 예감한 원장님은 이미 생사의 길에서 어느 정도 초연해서 있었던 것이다. 평소 맺고 끊는 것이 분명했던 원장님이기에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되찾아 밝은 모습으로 찾아오는 지인을 맞아서 평소처럼 담담히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지난 8월 16일 김 원장의 서거 소식을 듣고 다음날 이재춘 현문화원장님을 비롯한 문화원 식구들은 빈소를 찾았다. 나는 고인의 영정을 보자 눈물이 쏟아져 도저히 상주를 마주 볼 수 없었다. 무언가 한 마디 위로의 말을 해야 하는데 목이 메어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었다. 특히 둘째 상주인 재중군은 내 맏아이와 동창으로 절친하여 어려서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었고, 더구나 중학교 다닐 때 내가 3년간이나 가르친 제자여서 무언가 한 마디 위로의 말을 해야 도리인데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 뒤에 보니 여직원들은 돌아서서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충혈 되어 있었다.
아! 돌아보면 내가 김준식 원장님과 알고 지낸 지도 어언 30년이 넘는다. 나보다 여덟 살 연장이고 또 중학교 선배이다. 같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나이를 초월하여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서로 지루한 줄을 몰랐다. 그리고 내가 향토사를 공부하는데 도움도 많이 주었다.
1980년 초에 김 원장님을 비롯한 일행 몇 사람이 예안 지방의 문화재를 답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녹전에 있는 충렬공 김방경 장군의 묘소를 찾았는데 원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마 안동 사람치고 충렬공 후손 아닌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모두 참배합시다.”
나는 향토사를 공부해가면서 이 말뜻을 정말 실감했다. 우리 족보가 부계로만 기록되어 그렇지 만약 모계로도 거슬러 올라가면 얼마 안 가서 안동 지방의 오래된 무덤은 모두 자기 조상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길을 가다가도 오래된 무덤을 보면 찾아가 비문을 살펴보고 참배하는 습관을 가졌다.
‘부모님의 부모님, 그 부모님의 부모님, 또 그 부모님의 부모님…….’ 이렇게 몇 대만 거슬러 올라가 보라. 안동의 모든 성씨를 만나게 되리라.
삼십 년 세월이 그리도 길었던가. 돌이켜 보면 그때 같이 갔던 분이 채 십 명이 안 되는데 이미 권오식(향토사학자), 권삼석(초대 안동군시의회 의장) 두 분이 먼저 가셨고 이제 김 원장님마저 타계하시니 이미 세 분이나 유명을 달리한 셈이다.
이제 십 년도 지난 일이지만 권오식 선생님의 발의로 몇 사람이 뜻을 모아 안동 영호루의 기문(記文), 시편, 얽힌 이야기 등을 모은 적이 있었다. 그때 원고 정리를 내가 맡았었다. 자료가 한 권의 책으로 만들 분량이 되었는데 출판비를 구하지 못해 내 서재에서 원고가 해를 넘기며 잠자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김 원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청에 들어가 시장과 담당자를 만나 출판비 문제를 해결했으니 출판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영호루 원고는 빛을 보게 되었다.
김 원장님은 광산김씨 예안파 종손이고 또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래서 문화에 대해 안목도 높고 관심도 많았다. 내가 향토사 조사 중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조언도 많이 해 주었고 또 문중 자료가 필요할 때는 필요한 인물을 소개해 주고 또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주선도 많이 해 주었다.
특히 김 원장님은 안동문화원에서 오랫동안 많은 일을 하였다. 1994년부터 문화원 부원장직을 맡으셨고, 2002년부터 8년간은 원장으로 계시면서 안동문화원이 전국의 어느 문화원에 못지않은 정말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문화원으로서의 위상을 고양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몸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30여년 곁에서 지켜보았지만 정말 이렇게 열성적으로 일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돌아가신 분에게 죄송스러운 말씀일지 모르나 평소에 사업을 하실 때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 이렇게 열심이었다면 큰 사업가로 대성하셨으리라.
그 결과 시립도서관에서 더부살이 하던 안동문화원이 47년 만에 독립 청사를 갖는 오랜 숙원을 이루었다. 또 수십여 명에 불과하던 문화원 회원도 300여 명으로 늘었고 <여성민속한마당>, <내방가사 경창대회> 등 새로운 문화 행사도 많이 늘었다. 그리고 닫혀있는 문화원이 아닌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원을 만들기 위해 <안동문화회보 발간>, <전통문화강좌>, <문화공원 음악회>, <퇴계선생 활인심방 배우기> 등 많은 시민 참여 행사가 새로 시작되었다. 김 원장님은 저 세상으로 가셔도 이런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시민들 가슴 속에 그 이름은 늘 함께 할 것이다.
오천 군자리를 가 본 사람들은 알리라. 안동댐으로 수몰된 문화재를 한 자리로 옮겨 오늘의 군자리를 탄생시킨 그 혜안에 다시 한 번 찬탄을 금치 못하리라. 그리고 그곳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고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란 말이 있듯이 누가 영원히 살 수 있으랴.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값지게 사는가가 중요하지 않으랴.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마지막 가는 길 짧은 시 한 편으로 보내드린다.
일흔네 살 단명이 아니고
문화원장 낮은 자리가 아니지만
평소의 건강에 비해 너무 짧고
공의 기국에 비해 높지 않네.
덕을 닦으면 어디 간들 외로우리오.
저승에도 반가운 지음(知音) 있으리라.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