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그 사라져가는 불꽃, 대장쟁이 최상길씨(글/계화순)때는 바야흐로 김장철이라 의성의 특산물인 마늘장을 취재하려던 당초의 의도는 빗나가 버렸다. 그건 새벽시장으로 끝난다고 했다. 장터에 도착한 시각은 9시 40분. 장날이라 모여든 장꾼들의 80% 정도는 전을 펼쳐놓았고 나처럼 늦게 나온 장꾼들이 전을 펼치느라 부산을 떨고 있고, 빠질 수 없는 먹거리 파는 장꾼들의 포장마차에서는 조금씩 김이 오르고 있었다. 겨울이고 일요일인 장날이라 보통의 사람들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붐비지는 않았지만 추운 날씨 탓에 오가는 걸음들이 빠르고, 연세든 할머니는 털목도리까지 완전무장을 하였다. 취재대상을 찾기 위해서, 처음 와 본 곳이라 구경도 할 겸, 천천히 둘러보았다.
안동보다, 영주보다 훨씬 장터의 규모가 크고 활기차다. 안동이나 영주는 상설시장 의존도가 높고 이곳은 아직은 5일장에서 생필품을 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려니 나름대로 생각을 한다. 규모가 큰 만큼 점포의 종류도 다양하고 같은 종류의 물품을 파는 점포들의 수도 많을 수 밖에. 2·7장이 서는 곳은 예로부터 그 지역의 중심지임을 알게 되었다. 관심갖는 만큼 알아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망원렌즈까지 장착한 사진사들이 꽤 여러 명 눈에 띤다. 그들이 아마추어인지, 프로인지 내 식견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규모면에서도 5일장이 점차 쇠퇴하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을 안타까와하면서 나름대로 기록으로라도 남겨놓으려는 시도가 아닐는지. 천천히 장터를 오르내리는 동안 빈 곳 없이 물건들이 진열되고 필요한 물건을 살려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다.
"장에 오셨니껴?" "자아- 왔나"하는 소리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장의 중간쯤에 옹기전이 있고 바로 옆에는 차일을 친 뻥튀기 가게가 있는데 그 곳엔 튀겨놓은 강냉이도 있고, 고만고만한 그릇들에 담겨 순서를 기다리는 강냉이도, 누룽지도 있다.
"날 찍지 마세이. 늙었고 인물도 없는거 찍으먼 뭐 하니껴. 젊고 예쁜 사람 찍지"
김이 오르는 떡시루를 쳐다보며 떡가게 아주머니는 카메라렌즈를 만지고 있는 일행에게 손사레를 친다.
생선전이 연이어 있는 샛길로 들어서니 과일전이 펼쳐진다. 농사짓는 사람이 직접 가져온 것인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큼직한 사과보다는 땟깔도 곱지 않고 그리 크지도 않은 사과들이 나무상자나 판지상자가 아니라 노란 플라스틱 상자안에 수북수북 담겨 있다. 집에서 먹기는 그런 것들이 실속이 낫다. 갯수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농약도 훨씬 덜 친 것이다. 무쇠로 만든 톱밥난로도, 나무를 모아 화톳불을 피운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정말 시골장터의 모습이다.
두 사람이나 사진을 찍고 있는 가게 앞에서 우리도 걸음을 멈추었다. 난생 처음 보는 대장간이다. 그 속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요량으로 가게안을 기웃거리는데 비켜요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니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내가 방해가 되었나보다. 무안해서 가게 밖으로 나왔다. 가게 앞에는 석유난로가 학교로 보급되기 직전까지 교실에 있던 나무나 조개탄을 때는 난로가 있고, 그 주위엔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 십여분 자리를 잡았다.
"방송국에서 왔나" "사진도 한 장 안 보내주면서 맨날 사진만 찍어가만 머하노." "그냥 왔나? 막걸리라도 한 병 사오지…."
저마다 한 마디씩 하신다. 우리를 보는 시선들이 영 곱지가 않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나보다. 뻥튀기 아저씨를 취재하려던 좀 전의 계획을 바꾼 다음 그 할아버지들에게 내 신분을 밝히고 {안동}지를 보여드렸다.
그러나 별 관심은 표현하지 않는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진정되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스불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괭이, 호미, 낫 등의 연장들과 쇠막대기, 물이 가득 담긴 뚜껑이 없는 드럼통, 브렌다, 용접기 등의 기계들이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놓여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을 내며 타고 있는 화덕(?)의 왼쪽구석에는 풀무가 자리잡고 있고 그건 뚝눈에 보기에도 사용하지 않는 듯 했다. 오른쪽 바닥에는 공깃돌 크기의 석탄들이 담겨져 있다.
대장간에서 연료로 쓰고 있는 석탄인데 월남에서 수입해 온다고 한다. 몹시 시끄럽기는 하지만 불 가까이 다가서니 추위에 얼었던 몸이 녹는다. 상체가 훨씬 발달한 다부진 체격의 아저씨가 벌겋게 단 괭이날을 망치로 한참 두드리고는 끝부분을 작두 비슷한 모양의 칼로 잘라낸 다음 다시 몇 번 두드린 후 끝부분만 물 속에 담궜다가 얇게 진흙이 깔려있는 나무통에 가지런히 세워 놓는다. 작업에 방해를 해서는 안되겠기에 한 켠에 얌전히 서서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타오르는 불길과 망치질을 하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건만, 도대체 알은 체를 않는다. 하는 수없이 밖에 계신 노인장들에게 했던 말을 다시 건네며 이야기를 들려주십사 요청하였다.
불 피안나?
"뭐 별 할말이 있니껴? 사는 모습이 맹 그렇지. 어릴 때 입 살라꼬 갔는데가 안동 대석동에 있는 대장간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제. 배울라 캤는 기 아이고 어예다 보이 여태까지 하고 있제. 원래 내 고향은 안동 서후 명동이시더. 여~ 왔는지는 한 40년 되고, 여 와서도 조~ 밑에서 한 10년 있다가 이 자리로 왔는지 30년이시더. 옛날에사 두·세사람 데리고 하루에 한 2·30개씩 만들어냈제. 그때는 함마질도 하고, 요새는 마카 공장에서 맹근 거 사 쓰지. 오늘도 불 안피울라카이 안해 줄 수 있니껴? 이우제 있는 사람 같으마 다음에 온나 카지만 먼데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아 해 주마 되나? 전에처럼 일거리가 없으이 용접도 해 주고 자~서 새거 사가 여~갖고 오는기라.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거는 강도도 안 맞고 휘는 거도 안 마즈이 여 와가 새로 마차가지. 공장에서 만든 거는 한 사천원, 여서 내가 만든 거는 칠천원 새로 손질하는 거는 삼천원 받니더."
그 가격의 저렴함에 적잖이 놀랐다. 힘 든 일을 하는 사람 같지 않게 그의 행동은 조신하고 말소리도 조용하고 차분하다.
"불 피안나?"
부산을 떨며 굵은 테의 안경을 쓴 아저씨가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이거 새로 좀 해도. 이래 쫌~ 더 휘아 가"
꽤 오래 사용한 듯한 낫을 내민다. 군데군데 이가 빠지고 끝부분 2-3㎝ 정도는 잘려 나갔다. 아무 소리없이 손잡이를 뽑고 가스불의 강도를 높이더니 그 속에 집어 넣는다. 소리가 요란해지고 금방 불길이 새빨개진다. 불길 속에서 끄집어 낸 낫은 붉은 색이 너무 선명하고 고와서 순간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어디서 왔니껴"
안동에서 취재 차 왔다는 우리 말을 들은 그 아저씨는 정작 오늘 취재의 주인공보다 더 희색이 만연해지면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친구 고향도 맨 안동이래요. 내 고향도 길안 묵계고 나는 하마 온 지 오래되고 우리 할배 고향이 거래요. 여~ 역사가 한 40년 되누마. 이 친구가 의성바닥에 와가 스다뜨로 알았는 사람이 내래요. 생전 아푸지도 안하고. 배운 도적질이 이래가 직업을 바까낼시껴? 젊을 때 말이지. 아들마 넷이래요. 노후대책이 머 따로 있니껴? 자식들 공부시켰으이 그기 노후대책이지. 막내이는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지금 젤 잘 됐어. 보험회사 소장이께네."
오늘의 취재인물 최상길씨. 그의 나이는 69세라고 했다. 그러나 내 일을 하면서, 친구의 말대로 강한 체질을 타고 난 탓인지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니 인제 내 보고 형님이라 캐라."
대장간의 주인과는 전혀 반대 성격의 소유자이다. 말소리도 크고 빠르고 뼈대도 주인아저씨보다 억세 보이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게 느껴진다.
"사장, 하우스 할라 카는데 쇠작대 있나? 구녕 팔라꼬."
한복을 입고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은 할아버지가 들어서며 묻는다. 망치 자루에 물을 묻혀가며 -자루에 자주 물을 묻혔는데 그 이유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서임을 나중에 물어서 알게 되었다- 낫을 두들겨대던 그는 말없이 조용히 일어서더니 지름은 2㎝, 길이는 5자 정도 되어 보이는 쇠막대를 찾아 건네준다.
"이거 얼마로"
"값은 2만 5천원"
한마디만 하고는 두들기던 낫을 브렌다에 대고 갈기 시작한다. 윙- 쇠소리를 내면서 기계는 돌아가고 낫날이 하얗게 선다.
"이런 걸 간다고 카지요. 일본말로는 시야개라고 카고 쇠종류에 따라 담금질 하는 것도 달라져요. 괭이는 자동자 스프링하는 쇠 갖고 만드는데 그걸 전체 다 물에 담그면 너무 강해서 뿌러지거든요. 그~이 끝부분만 담그고 무른 쇠 같으만 달가가 금방 물에 다 담가야 단단해지고."
역시 동요됨이 없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작업내용을 설명해 준다. 이것저것 만지며 구경을 하던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께서 괭이를 한 자루 골라 들고
"이거는 얼매로?"
"7천원"
"왔-다. 디기 마이 올랐네. 6천원 해라. 다문 천원이라도 깍아야 막걸리라도 한빙 사먹고 가지."
"딱 받을 금만 이야기 했니더 하마 5. 6년전부터 7천원 했니더. 그 머 한 만원 불러가 8, 9천원 받지"
그 순간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소."
특유의 목소리와 동작으로 재미있게 부르던 이미 고인이 된 서영춘씨의 서울구경이라는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떠올라 혼자 웃음을 감춘다.
누가 이 일을 할니껴?
"몰래, 돈이나 많고 젊다 카머 딴 일을 해볼랑가?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니더. 전에도 그런 생각은 안해 봤고, 그저 몸 건강히, 담배 값이나 술 값, 용돈이나 벌어 쓰면 되지 머. 아~들 둘, 서이 대학 시킬때는 힘이 마이 들었지요. 그치만 막내이는 지 대학시험 떨어지고, 나도 힘이 없고, 저거도 이 일 할 생각없고 나도 지금 와 보이 골병만 남고, 앞으로 누가 이 일을 할니껴? 방송국에서 신문사에서 숱하게 사진을 찍어갔지만 작품이 제대로 안돼 그런 동 한 사람도 사진을 안 보내 주더라꼬. 요전 앞서도 무슨 방송국에서 나와 가 사진 찍어 갔는데……"
그제서야 뱌깥에 계시던 할아버지들이나 주인 아저씨의 냉담함이 이해되었다. 점차 사라져 가는, 그야말로 희소가치가 있는 대장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취재도 해 가고 사진도 찍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후에 쓰다 달다 말이 없었기에 그들은 속은 듯도 하고 무언가 꼬집어 말 할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은 박탈감도 느꼈으리라.
한번도 그들을 만난 적은 없지만 의성 안계에도 군위에도 대장간은 있다고 한다. 최상길씨의 가게도 큰 규모는 아니었는데 그곳은 여기보다 훨씬 작다고 한다. 기계도 보잘 것이 없고 이곳도 불은 피우는 장날보다 피우지 않는 장날이 더 많고, 이른 봄 농사철이 시작될 무렵이나 바쁜 일이 끝나면 농기구를 손질하러 온단다. 오늘은 여기에 머무른 시간이 결코 긴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연세 지긋한 남자들만 왔다. 오늘의 노령화된 농촌 현실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가게 앞 난로 주위에 모여있던 할아버지들은 장날이 아닌 무신날에도 모여와 겨울철엔 난로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다 때때로 막걸리로 목을 축이기도 한단다. 한 달 쯤 뒤 {안동』지가 나오면 막걸리 서·너병에, 뜨뜻한 어묵이나 한 냄비 사드려야지. 물론 책자도 갖다드려야겠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내 일이 있다는 건 적지 않은 행복이라는 걸 최상길씨를 보면서 절감한다. 자기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싶은 사람은 맘대로 일 할 기회가 주어지는 그런 사회는 언제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