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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는 이웃을 바라봐야 했던 의촌리 번남댁(글/사진/정연상_안동대 건축공학과 교수)

도산서원 앞들에서 의촌리 주변과 번남댁을 보다 안동은 산에서 발원한 실개천이 모여 큰 내를, 이들 내가 모여 만들어 낸 큰물 낙동강이 동측에서 서측으로 흐르고 있다. 이들 물은 안동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는 반면에 많은 즐거움과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 물은 많은 사연을 남기고 도도히 흐르고, 사람들의 푸념과 넋두리를 들어주면서 기쁜 일과 즐거운 일, 슬픈 일을 같이 했다. 이 큰물은 1970년대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안동댐과 임하댐 건설로 인한 것이다. 댐은 지역 주민들에게 큰 손실을 안기기도 했지만 많은 이로움도 주기도 했다.

댐 건설로 살던 곳이 물속에 잠기면서 주민들은 안동을 벗어나 새로운 터전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거나 물을 피해 높은 곳이나 안동의 다른 곳에 터를 마련했다. 살던 땅만을 남기고 모든 것을 짊어지고 떠난 사람들도 있지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생활에 필요한 것만 싸서 떠난 사람들도 있고, 또는 나라의 도움을 받아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살던 집까지 모든 것을 새로운 곳으로 옮긴 사람들도 있다. 이때 넓은 새 터전을 만들어 마을 전체가 이주한 경우도 있었다. 이외에 살림살이만 챙기고 살림집을 다른 사람에게 매각한 후 이주한 사람들도 있다. 지난번에 방문한 치암고택과 향산고택도 옮겨 중건한 가옥이다. 그러나 대부분 많은 가옥들은 물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나는 도산서원에 갈 때마다 서원 앞마당 벤치에 앉아 시사단을 바라보면서 ‘물이 차기 전 시사단 주변 상황이 어떠했을까?, 한참 지난 지금의 물속은 어떨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현재 시사단이 있는 자리는 1792년 3월에 정조가 이조판서 이만수(李晩秀)에게 명하여 퇴계?이황(李滉)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는 뜻에서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신설했던 곳이다. 시사단은 원래 나직하고 널찍한 2단의 자연석의 단만이 있었으며 이후 1796년에 석비를 세웠다. 지금의 비는 1824년에 비각(碑閣)을 개축하면서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이 비문을 지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시사단은 송백림(松栢林)이 무성한 강변에 세워졌는데, 안동댐 건설로 분천강 물의 수위가 상승하자 현 위치에 10m 높이의 석축을 쌓은 후 개건하였다. 시사단은 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시사단 주변은 가뭄이 들어 댐의 물이 줄면 옛날 마을과 집터가 드러나곤 하는데, 이때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농작물을 심어 밭으로 사용하곤 한다. 그리고 물속에 잠겼던 도산서원과 의촌리를 연결하는 자그마한 다리가 드러난다. 여름 장마철 이 다리는 물속에 잠겨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와룡에서 예안쪽으로 한참을 돌아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시사단과 주변의 과거와 오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고택이 있는데, 바로 도산면 의촌리에 터를 잡은 번남댁이다.

번남댁앞 들녘과 마을, 가옥들의 옛 모습
번남댁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108번지에 있다. 이 고택은 조선 고종 년간 대원군 집정 시 좌산(左山) 이만윤(李晩胤) 공이 세운 것으로 서울의 창덕궁을 모방하여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고택의 규모는 간수가 99간이라 할 정도로 큰 집이었다고 하며, 이후 한국전쟁으로 일부 훼손되고 철거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번남댁 주변에는 크고 작은 산과 안동댐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하천, 밭으로 사용하고 있는 농경지가 있고, 인근에 중요 문화유산들이 있다.

번남댁 앞의 넓은 들녘은 의인과 섬마을 가옥이 있었던 자리였는데, 안동댐 건립과 동시에 철거된 이후 현재 그 자리는 농경지로 사용하고 있다. 밭 끝자락에는 안동댐으로 유입되는 강물이 흐르고 있다. 이 강물은 상류 봉화와 청량산, 그리고 도산 원천리를 거쳐 의촌리와 도산서원 사이를 지나 안동댐으로 흐르고 있다. 안동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나룻배를 이용하여 도산서원에서 시사단으로, 의촌리로 건너다녔다고 한다.

현재 번남댁은 동측 야산을 등지고 있으면서 서측과 북측 농경지를 바라고 있어 정면이 트여 멀리 시사단과 도산서원이 보인다. 번남댁 대문 앞 진입로와 북측 고목 너머에는 넓은 밭이 펼쳐져 있는데, 원래 이곳은 의인마을 가옥들이 있었던 자리다. 이 마을에는 크고 작은 가옥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번남댁이 있는 의촌리 진입은 남쪽 언덕에서 북쪽으로 난 콘크리트 포장 마을길을 이용하는데, 고택의 출입은 동북쪽으로 난 마을길에서 남쪽 밭 사이로 난 샛길을 이용한다. 이와 같은 가로와 경관은 안동댐이 건립된 이후 형성된 것이다.

안동댐이 건립되기 전 1971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강변의 넓은 들녘에 의인마을과 섬마을의 가옥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옥은 의인과 섬마을사이 샛터마을 가옥들이다.

안동댐을 건립하기 전 1976년 마을 및 가옥 조사 도면을 보면, 고택 근거리에도 여러 채의 가옥들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섬마을, 샛터, 의인마을과 주변지역은 동서로 난 마을길이 연결하고 있었으며, 마을 내 가옥들은 남북으로 난 마을 안길이 연결하고 있었다. 번남댁은 의인마을 남쪽 산자락에 있는데, 남북으로 난 마을 안길이 번남댁과 의인마을의 다른 가옥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따라서 과거 번남댁은 북측의 마을에서 진입을 하였고, 고택에 이르러 행랑채 외벽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난 안길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과거 고택의 서측 정면은 현재와 같이 밭과 논이 있었는데, 밭과 논 사이에 있는 향나무가 서쪽 정면을 감싸고 있었으며, 향나무의 북쪽 끝과 고목나무는 측백나무 숲이 연결하고 있었다. 현재 이들 향나무와 측백나무는 사라지고 고목나무만 남아 있다.

섬마을과 의인마을의 가옥은 이미 철거된 상태이고, 기존의 마을길도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고택을 향한 동서방향 마을길 주변에는 이주한 가옥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런 변화의 모습은 도산서원과 시사단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번남댁과 샛터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주변지역은 가옥을 철거한 후 농경지로 정비했고, 마을의 남쪽 진입로도 현재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따라서 의촌리와 번남댁 주변은 안동댐의 건립으로 많은 가옥들이 살라졌고, 기존의 마을길과 구조도 바뀌었다. 즉, 안동댐 건립은 마을의 가로 구성과 고택의 진입방법, 주변 경관을 바꿔 놓았다.

의촌리 번남댁의 연혁 및 주변 경관
의촌리는 예안현에 속해 있던 마을로 구한말 예안군 의동면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의인리와 섬촌을 병합하여 의촌동, 의촌리라 하고 도산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안동댐 건설로 수몰 지구에 포함되었으며, 1995년 안동시에 편입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의 예안현(禮安縣) 고적조(古跡條)를보면, 이 마을은 고려 초 안덕현(安德縣)의 지도부곡(知道部曲)이었다고 한다. 1361년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을 피하여 복주(福州:안동)로 피난 왔을 때 예안현으로 승격하여 안동에 복속케 했다고 한다. 섬촌·섬마는 의인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고려 공민왕 때 의인현(宜仁縣)에 속했으며, 섬마·섬마을 등으로 불렸다. 낙동강 물이 두 갈래로 흘러 마을이 섬 같아 보인다고 하여 섬촌이라고도 불렀다. 의인은 어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 의촌리는 안동댐으로 마을이 호수로 바뀌었지만 옛날에 큰 반촌(班村)이었다. 번남댁은 이 지역에 남아 있는 고택 중 규모가 가장 크면서 공간 구성도 짜임새가 있다.

마을의 진입로 주변에는 대부분 밭인데, 남측에는 번남골 물을 이용한 텃논이 있다. 고택의 동측 배면은 담장이 감싸고 있는데, 이 담장은 산자락과 맞닿았다. 배면 담장 너머에는 큰 소나무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현재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의 몇 그루 소나무가 옛 소나무 숲의 명맥을 잇고 있다. 그리고 고택의 북측에도 담장이 있는데, 담장 너머에는 마을과 고택을 지켜온 고목들이 있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 행사를 하거나 단옷날 그네를 타던 공공장소의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고목 아래의 마을 사람들 소리는 사라지고 낙엽만 쌓이고 있다. 여름날 밭일을 하던 노인들에게 그늘만을 제공할 뿐이다.

현재 번남댁은 시제 또는 기타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만 사용하고 있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번남댁은 경상북도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ㅁ’자형 집의 격식을 벗어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또한 하회마을의 양진당이나 충효당과도 다른 복합적 구성방식으로 짜인 고택이다. 부엌의 수가 행랑채 부엌까지 모두 합하여 6개소나 될 정도로 고택은 동거세대의 독립된 생활이 가능했었을 것이다. 고택의 배치와 평면 구성을 보면, 번남댁은 19세기 안동의 독특한 전통건축의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그래서 번남댁은 시도지정 민속자료에서 2011년 9월 중요민속자료로 승격되어 중점 관리 대상이 되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행정당국이나 소유주는 지금껏 유지 관리에 소홀했는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유지 관리할 수 있게 되어 후손들에게 그 가치를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번남댁은 진성이씨(眞城李氏) 의인파(宜仁派)의 종가로 퇴계 이황(李滉)의 큰 아들 이준(李寯)의 둘째 이순도(李純道, 1554~1584, 자 醇甫)로부터 분화되었다. 이순도는 선산 김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이율(李?)을 두었으며, 이순도 계열이 의인에 터를 잡은 것은 이율의 아들 이영철(李英哲)의 넷째 이집(李集) 때부터다. 이집은 네 아들을 두어 그 중 셋째 아들 이수증(李守曾)으로 가문 재건의 후사를 잇게 함으로써 이순도 계열 종계의 가계를 잇도록 했다. 번남댁은 이수증에서 아들 이세학(李世學)으로, 이구천(李龜天)으로, 다시 이구천의 장자는 이동순(李同淳, 호 樊南, 1779~1860)으로 연결되었는데, 이동순이 의인파 계열의 중흥을 이끌었다. 이들이 살았던 고택은 크게 안채 영역과 사랑채 영역, 행랑채 영역으로 나뉘는데, 안채는 안채와 안행랑채로, 사랑채는 북쪽사랑채와 현존하지 않는 남쪽사랑채로 세분된다. 이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는 각 채와 건물에 딸린 마당이 하나씩 있어 다른 고택과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번남댁의 배치 및 외부 공간 구성
번남댁은 현재 안채 영역과 사랑채 영역, 행랑채 영역, 별당채 영역 등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채 영역은 안채와 안행랑채로 나뉜다. 이외 번남댁에는 현재 헐려 없어진 여러 채 건물들이 있었는데, 별당채 영역의 건물, 남쪽사랑채 영역의 건물, 방앗간 영역의 건물, 그리고 각 영역에 귀속된 화장실과 굴뚝 등이 있었다. 각 영역에는 마당이 있는데, 고택의 마당과 건물은 담장과 행랑채로 감싸여 각 채의독립된 외부공간을 갖고 있다.

남북으로 긴 행랑채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난 고택 마을길과 직교하고 있는데, 이 마을길은 행랑채 남쪽 화방벽과 남쪽 외곽담장을 따라 지나가고 있다. 따라서 행랑채의 실들은 대문간을 중심으로 길에 면하고 있으며, 북쪽 실은 텃밭을 면하고 있다. 그리고 행랑채의 좌·우 끝은 고택을 감싸고 있는 담장과 연결되어 있다. 북쪽의 외곽 담장 일부는 끊어진 상태인데, 원래 이 부분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들 담장으로 감싸인 대지는 안채 영역이 제일 높으며, 북쪽 사랑채, 행랑채 순으로 낮다. 안채 영역과 사랑채 영역은 행랑마당 위에 4~5벌대 자연석 단 위에 자리하여 높이 차이가 크다.

고택의 안채와 사랑채는 산자락 끝에서 서향을 하고 있고, 안채 영역은 안채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안행랑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북쪽사랑채 영역은 안채의 북쪽에 있는데, 큰사랑과 작은사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사랑은 남향을 하고 있으며, 작은사랑은 큰사랑과 직교하면서 서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안채는 작은사랑의 사랑방과 면하여 있다.

남쪽사랑채는 안행랑채의 대문간열 남쪽 끝에 있었는데, 현재는 없는 상태다. 남쪽사랑채는 남향을 하면서 별도로 구획된 남쪽마당을 갖고 남쪽 담장을 향하고 있었다. 즉 번남댁의 남쪽사랑채의 마당은 안채와 행랑채 남쪽의 넓은 공간에 두 열의 담장을 쌓아 외부공간을 구획했었다. 따라서 안채와 행랑채 남쪽의 넓은 공간은 담장에 의하여 3구역 마당으로 나뉘어, 안채의 남쪽 마당 공간, 남쪽사랑채의 남쪽 마당 공간, 남쪽행랑채의 남쪽 마당 공간으로 구획된 독특한 외부공간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모습은 1976년 수몰지역을 조사할 때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현재 안채와 남쪽사랑채 마당 사이의 담장은 제거된 상태다. 별당채는 북쪽사랑채 북측의 빈터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평면은 ‘ㅁ’자형이었다고 한다.

안주인의 삶이 묻어나는 안채 영역의 외부공간과 실 구성 엿보기
안채를 감싸고 있는 외부공간은 대청 앞의 안마당과 안채의 남쪽 마당, 안채의 동쪽 뒤뜰, 안채의 안방과 북쪽사랑채의 작은사랑방에 면한 뒷마당이있다. 안채의 남쪽 마당 끝자락에는 3칸 규모의 방앗간이 있었는데, 외곽을 감싸고 있는 담장을 따라 북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앗간 남쪽에 목욕간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 방앗간과 목욕간은 사라진 상태다.

안채의 배면은 자그마한 마당, 자연석 배수로와 축대, 완경사면, 그리고 외곽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남동쪽 경사면에는 굴뚝이 있었다. 이 굴뚝은 기와와 흙을 이겨 쌓은 후, 암기와와 수키와를 올려 지붕을 마감하였고, 몸체부분은 각 사면에 연기구멍이 하나씩 있었다. 안채와 사랑채의 연기는 이 굴뚝으로만 연기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현재 안채와 사랑채의 온돌방은 개별 굴뚝을 만들어 연기를 배출하고 있다. 안채의 배면 북쪽 우주 모서리에는 북쪽방향으로 쌓은 담장이 있는데, 이 담장의 북쪽 끝에는 2칸 규모의 화장실이 남향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 화장실은 사라진 상태다. 그리고 이 마당에는 현재 없는 장독대가 있었다고 한다.

안채 영역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 안채와 ㄴ자형 안행랑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안채의 남쪽 부엌의 북측 문과 안행랑채사이는 동서방향의 담장이 있는데, 이 담장은 안마당을 감싸면서 문과 안행랑채를 연결하고 있다. 따라서 두 건물 사이의 안채 안마당은 ㄴ자 모양을 하고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북쪽에 안방과 찬방이 있고, 남쪽에 벽장이 달린 방과 마루간 등이 있다. 대청의 북쪽에는 한 간 규모의 찬방이 있는데, 이 찬방 옆에는 안방에 딸린 또 다른 찬방 1간이 나란히 있다. 찬방 두 곳은 바닥이 우물마루 구조를 하고 있다. 안방은 2.5간 규모로 고택의 안주인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안방의 아랫목 간은 북쪽 처마쪽으로 확장하여 공간을 넓게 사용하였다. 안방의 부엌은 안채와 안행랑채가 만나는 간에 꾸며 놓았다. 부엌 북쪽에는 북쪽사랑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안채 부엌 옆의 북쪽사랑채의 작은사랑방 부엌간이 있다. 이들 부엌은 하나의 공간으로 열려 있다.

대청쪽 찬방은 안방 배면의 찬방처럼 바닥이 마루인데, 벽체는 토벽이 아닌 판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이 면한 찬방의 판벽은 하부에 머름을 꾸민 후 판벽을 구성하였으며, 배면의 판벽은 머름을 구성하지 않고 판벽을 꾸몄으며, 안방의 찬방 사이 공유 벽은 토벽으로 마감했다.

대청 남쪽에는 방 2개가 마루간을 중심으로 동서방향으로 있는데, 동쪽 끝 1.5간 규모의 방은 갓 결혼한 부부나 혼인하기 전 자녀들이 사용하던 곳으로 서쪽 기단 위에 벽장을 덧달아 수장공간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마루간은 남측에 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출입하거나 남쪽 마당을 조망하도록 하였다. 마루간 서측 2간 규모의 온돌방은 젊은 안주인이 사용한 곳으로 남쪽 마당 쪽에 툇마루를 구며 놓았고, 안마당쪽 기단 위에는 쪽마루를 달아 외부에서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이 방은 남쪽과 북쪽에 마루를 꾸며 출입 및 기타 공간 이용의 효율성을 높였다.

안채의 안행랑채는 ㄴ자형으로 안채의 대문간을 중심으로 동서방향 열의 실과 남북방향 열의 실이 직교하고 있으며, 직교지점에 안채의 대문간이 자리하고 있다. 동서방향 열의 실은 부엌에 딸린 봉당, 사랑채 통로마루, 곡식 창고 2간, 대문간이 있고, 남북방향 열의 실은 대문간, 온돌방, 마루광, 헛간, 사당으로 사용하던 공간이 있다. 대문간 옆에는 안채의 허드렛일을 하던 여인들이 사용한 1간 규모 온돌방이 있는데, 이 방의 아궁이가 대문간 한쪽에 있다.

바깥세상과 대화를 나누던 사랑채 영역의 외부 공간 및 실 구성
현재 북쪽사랑채의 외부공간은 사랑채의 북쪽에 있는 넓은 마당 공간과 사랑채 안마당이 있다. 사랑채 북측의 넓은 마당 공간은 별당채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 넓은 빈터로 남아 있다. 사랑채에는 대원군이 쓴 ‘左山’의 편액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 처마 밑에는 ‘樊南’의 편액이 걸려 있다.

북쪽사랑채 안마당은 행랑마당 사이에 축대 위 담장을 쌓아 두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데, 행랑마당과 북쪽사랑채 북측 별당채 마당은 서로 열려 있다. 별당채 마당과 행랑채 마당사이에는 원래 담장을 쌓고 중간에 싸리문을 달아 두 마당을 구획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담장은 북쪽사랑채의 북쪽 면과 정면의 외곽 담장을 연결하고 있었는데, 현재 북쪽사랑채 북쪽 면에 일부 담장이 남아 있다.

북쪽사랑채의 안마당은 서쪽 정면에 담장을 꾸며 놓았는데, 북쪽사랑채의 서남쪽 모서리 판벽과 판문을 제외한 부분에 돌과 흙으로 이겨 쌓았다. 북쪽사랑마당으로의 출입은 안행랑채의 대문간과 정면 담장 모서리의 협문을 이용하고 있다. 원래 주출입은 정면 토석담장에 있었던 협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큰사랑방의 주간 열은 작은사랑방 주간 열과 직교하고 있는데, 동쪽부터 큰사랑방 부엌간, 사랑방 2간, 사랑마루 2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사랑방은 사랑 안마당과 별당 터 쪽에 툇간을 꾸며 실공간을 겹으로 감싼 공간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 안마당쪽 툇칸은 툇마루를 꾸며 놓았고, 북쪽 기단 위에는 쪽마루를 꾸며 놓았다. 큰사랑방은 정면 2칸 측면 1.5칸인데 아랫목 간의 북쪽 툇간에는 침구를 넣어 두는 골방을 꾸며 놓았다. 사랑방의 툇마루쪽에는 머름을 꾸민 후, 띠살의 두짝 여닫이문과 격자살의 두짝 미닫이문을 겹으로 달아 놓았다.

사랑마루의 판문 밖 서북쪽을 보면 시사단과 도산서원이고, 북측을 보면 담장너머 고목과 머리 청량산이 보인다. 가까운 경관요소인 처마, 담장, 나무, 들녘이 멀리 자연경관 요소 산 등과 상호작용하여 독특한 경관을 제공한다. 그래서일까 담장내부에는 특별한 조경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관을 보고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상, 그리고 그들의 이상을 꿈꾸지 않았을까?

작은사랑방은 2칸 규모로 집을 찾아온 손님들의 손님방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작은 사랑방은 툇마루 쪽에 머름을 꾸미고 띠살의 두짝 여닫이문을, 툇마루 끝에는 띠살의 네짝 여닫이문을 달아 놓았다. 작은사랑방 북쪽에는 한간 규모의 마루방이 있는데, 과방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작은사랑방과 마루방 사이에는 불발기 네짝 들문을 달아놓았으며, 과방의 동쪽 뒷마당쪽에는 띠살 네짝 여닫이문을 달아 놓았다.

넉넉했던 살림살이를 보이는 행랑채의 외부공간과 실 구성
행랑채는 역‘ㄴ’형으로 고택의 주출문인 대문간이 있는 남북방향의 긴 행랑채와 남쪽에 있는 동서방향의 행랑채열이 직교하고 있다. 남북의 긴 행랑채는 길에 면하면서 서향을 하고 있으며, 남쪽의 행랑채는 남향을 하고 있다. 남향을 한 행랑채는 정면에 남쪽 행랑마당이 있으며, 이 남쪽 행랑마당은 동쪽의 남쪽사랑마당 담장과 남쪽과 서쪽의 외곽담장으로 감싸여 있다. 남쪽 사랑채의 담장과 외곽 담장이 만나는 남쪽 행랑마당 구석에는 한 간 규모의 화장실이 사랑채 담장을 향하고 있었다. 이 화장실은 남쪽사랑채와 행랑채 이용자들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현재 이 화장실은 철거되어 빈터만 남아 있다. 행랑채에 딸린 화장실은 북쪽 끝 외곽담장에 면한 곳에도 있으며, 이 화장실은 원래 단간 규모로 행랑마당을 향하고 있었는데, 이후 중건을 하면서 2칸 규모의 화장실로 확장하였다.

번남댁의 행랑채는 대문이 있는 남북방향의 긴 주칸 열과 작은사랑채 출입을 위한 대문간이 있는 동서방향의 주칸 열이 직교하고 있다. 직교한 곳의 간은 외양간으로 사용하였다.
남북방향의 주간열은 대문간을 중심으로 북쪽에 바닥이 마루구조인 창고 3간이 있다. 북쪽의 창고 3곳은 행랑마당 쪽 벽을 판벽으로 꾸미고 2짝 또는 4짝 여닫이판문을 달아 놓았으며, 외벽은 자연석과 흙으로 이겨 쌓아 화방벽으로 마감한 후 화방벽 위를 판벽으로 마감했다. 대문은 솟을대문에 판문을 달았다. 대문간의 남쪽에는 반칸 규모의 행랑마루와 행랑방 1.5칸, 행랑방 부엌간 1칸이 있다. 대문 옆 행랑마루간은 대문간쪽 판벽에 문을 달아 놓았는데, 현재는 문틀만 남아 있다. 행랑방은 집안일을 하던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곳으로, 마루와 부엌에 면한 토벽에 한짝 여닫이문을, 행랑마당쪽 토벽에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였다. 남쪽의 창고는 2간과 1간 규모의 창고로 나뉘어 있으며, 바닥에 우물마루를 깔아 놓았고, 실은 판벽으로 구획되어 있다. 길에 면한 벽은 북쪽의 창고간처럼 화방벽을 쌓은 후 상부를 판벽으로 마감했다.

행랑채의 동서방향의 실은 동쪽부터 반 규모의 저장공간, 마굿간, 봉당의 출입통로, 대문간, 온돌방, 부엌, 외양간이 있다. 반 규모의 저장공간은 안채의 안행랑채 열과 면하면서 생긴 공간이다. 행랑채의 남쪽 온돌방은 집안일 하던 남자들이 사용하였고 한다. 온돌방은 행랑마당쪽 토벽에 띠살 외여닫이문을, 행랑 남쪽 마당 토벽에 두짝 여닫이문을 달아 놓았다. 현재 아궁이에는 솥이 걸려 있으며, 굴뚝은 남쪽 기단 위에 있다. 부엌과 외양간은 벽을 꾸미지 않고 하나로 통하도록 하였는데, 이들 사이에 구수를 놓아 경계를 삼도록 하였다.

이상으로 나는 나의 영원한 순례군과 함께 과거의 옛 모습을 간직하면서 어렵게 터전을 지켜왔던 의촌리 번남댁을 다녀 왔다. 번남댁은 각각의 채로 별도의 독립된 영역을 구성하고, 외부공간인 마당과 내부공간이 멀리 자연경관과 상호 유기적 관계를 구성하여 독특한 공간 구성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공간은 새로운 용도의 공간 및 기능 등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 특히 각 영역에 있는 부엌수를 고려하면, 번남댁은 유교생활문화 공간에 체류하면서 사대부가의 생활문화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이웃한 역사문화유산을 체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는 건축유산이다.

기존의 숙박 개념으로 국한된 오늘날 문화유산 활용의 한계를 넘어, 이웃에 있는 문화유산을 연계 활용할 수 있는 장소로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높다. 더 나아가 넓은 외부공간을 교육 및 기타 공간으로서 활용할 경우, 번남댁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번남댁은 지속적인 보존 및 유지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며, 차후 사라진 건물과 변형된 부분의 원형을 찾아 활용할 경우, 고택의 활용적 가치는 높아지고 안동지역 유교문화의 정수를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