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때문에 길었던 하루(글/박인수_본지 운영위원, 경희한의원 원장)
그날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미리 출발을 해서 귀갓길에 오르고 싶었지만 초등학교 1학년인 조카에게 스키를 가르쳐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눈발이 조금씩 날리는대도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스키강습을 한 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조카는 잡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넘어지지 않고 초급자 슬로프를 끝까지 타고 내려가는 정도가 되었다. 좀 더 가르쳐서 제대로 폼 나게 탈 수 있게 해주면 좋았겠지만 조금씩 내리던 눈발이 오후 3시가 넘어서부터는 함박눈으로 변해 펑펑 쏟아지는 바람에 중단해야했다. 상급자 슬로프에 올라가 있는 두 아들을 급히 불러 내리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처제네 식구들은 조카들의 스키 장비를 반납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이대로 더 눈이 내린다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지 못하고 그냥 통과해야 할 수도 있으니 핫도그를 인원수대로 사서 먹기로 하고 스키복도 차안에서 갈아입기로 했다.
눈길 운전, 빙판길에 장사 없다
서둘러 출발했는데도 30분을 허비했다. 함박눈이라 삽시간에 도로에 쌓이는 바람에 스키장에서 나가는 도로부터 차들이 슬슬 기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사정이 좀 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예상도 틀리고 말았다. 톨게이트를 통과하여 영동고속도로에 올라선 순간 하얗게 질릴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다. 다행히 염화칼슘으로 제설작업을 해놓은 상태라 눈이 굳지 않고 퍼석퍼석했다. 대부분의 차들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시속 60-80km로 서행하는데 그런 와중에 추월하겠다고 깜박이를 켜고서 끼어들고 갓길로 달려가는 차들이 있었다. 스노타이어를 장착했건 체인을 매었건 빙판길에는 장사가 없는데. ‘니들이 빙판에 안 미끄러져서봐서 그렇지.’ 하고 혀를 끌끌 찼지만 그 차들을 일일이 세워 오지랖 넓게 참견할 수도 없는 일. 두려운 것은 내가 아무리 눈길에서 안전하게 운전한다 해도 저렇게 무모하게 운전하는 차들이 눈길에 미끄러져서 도로 한복판에서 뒹굴어버리면 피할 방법이 없어 같이 사고를 당한다는 것이다. 빙판길은 그래서 무조건 감속이 최선이고 차간 거리를 충분히 유지하고 언제든지 안전하게 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를 줄여서 운전해야 하는데 그걸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위험하기에 눈길 운전이 무서운 것이다.
빙판길의 갓길 얌체족들
잔뜩 긴장하여 운전하다보니 핸들을 꽉 쥔 손에 쥐가 날 지경이고 목과 어깨도 뻑뻑하게 굳어져가고 있었다. 평탄한 곳은 시속 80km로 달리고 커브길이나 내리막은 시속 60km 이하로 해서 오르막은 빌빌거리고 내리막은 발발거리며 갔다. 그런데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차들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더니 새말 톨게이트 부근에서 차들이 차례대로 멈춰 서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앞을 살피는데 저 멀리 앞쪽에서 빨강파랑 경광등이 깜빡거리는 게 보이고 레커차들이 갓길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고가 난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다소 먼 거리여서 잘 몰랐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사고현장을 지나치면서 보니 하행선 강릉방면의 좌측으로 휘어지는 내리막길 도로에서 차들이 연쇄적으로 눈길에 미끄러지는 사고였다. 사고 현장은 다소 처참했다. 차 한 대는 앞부분이 크게 부서진 채 진행방향과 정반대로 서있었고 타이어가 빠져나간 상태로 주저앉은 차들도 있었다. 유리창이 깨지면서 심하게 찌그러진 차의 유리에는 부상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가벼운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통화를 하고 있었지만, 심하게 다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어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나마 도로위에 부서진 채로 나뒹굴고 있는 차들은 괜찮지만 도로 바깥으로 멀리 튕겨져 나가 밭에 처박힌 차도 있었다. 다친 사람들 모두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멍하니 넋이 나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개중에는 겁에 질려 우는 여자들도 몇몇이 있었다. 안타까운 광경이었지만 반대 차선에서 일어난 일이라 다들 그걸 보면서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뉴스를 통해 정확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거기서 14중 추돌사고가 나는 바람에 스무 명에 가까운 사람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어찌되었거나 우리 차선에서 사고가 난 게 아니라서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눈길 사고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엄습하고 긴장의 정도는 높아가고 있었는데 슬금슬금 기던 차들이 사고 현장을 지나면서부터는 조금씩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들 겁먹어서 시속 60km를 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비상깜빡이를 켜고서는 갓길을 쌩하니 달려가는 차들이 있었다. 방금 전에 사고현장을 봤을 텐데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인지 대체 무얼 믿고 저러는 것인지. 자신의 운전 잘못으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조차 없이 저런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재수 없으면 나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이니, 제발 오늘 안동까지 가는 길에 저런 친구들을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설상가상, 마의 구간 중앙고속도로
그렇게 빙판길을 조심조심 운전해서 영동고속도로를 빠져나왔는데 그때부터가 더 문제였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원주에서 안동으로 가는 중앙고속도로는 내게는 마(魔)의 구간이다. 차량통행이 많은 영동고속도로에 비해 중앙고속도로는 한산한 편이어서 눈이 오면 차량통행에 의해 녹지 않고 도로에 쌓이는데다가 험준한 산을 깎고 터널을 뚫어 만든 도로여서 중간에 교량이 많고 오르막 내리막 커브 길 또한 많아 아주 위험하고 빙판길 사고가 많이 나는 구간이다. 나 역시도 여기서 차를 천천히 몰아 엉금엉금 기었는데도 불구하고 눈길에 미끄러져 빙글빙글 돌았던 기억이 몇 차례 있는 곳이라 눈 올 때 중앙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이었다.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 차량 온도계를 보니 영하 2도다. 함박눈이 진눈깨비로 바뀌어 날리고 있어 혹시나 하고 쳐다보았는데 실망이다. 차에서 내려 도로의 상태를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서는 얼었는지 어떤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리 위는 무조건 얼었다고 봐야 한다. 그곳에서 만에 하나 까딱 잘못 핸들을 꺾었다간 높이가 100m 가까이 되는 다리 위에서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는 끔찍한 곳이기에 남원주에서 치악휴게소까지의 1차 관문을 통과하는데 30분이나 걸렸다. 식은땀이 났지만 일단 그 마의 구간을 무사히 지나오자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배가 고팠다. 치악휴게소에 잠시 들러 저녁을 먹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다가 밤이 되면 기온이 더 떨어져 고속도로가 빙판이 되어버리면 안될 것 같아 참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2차 관문. 지나온 길보다는 조금 수월하지만 그래도 치악 휴게소에서 제천을 지나 북단양 톨게이트까지 가는 길도 결코 만만치 않은 길이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중이다보니 온도가 조금 올라 영하 1.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진눈깨비가 내리지만 도로는 아직 얼어붙지 않은 것 같았다. 제천 톨게이트를 11km를 앞둔 지점에서 차들이 갑자기 멈춰서기 시작했다. 또 다시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멈춰서 꼼짝하지 않는 걸 보니 우리 차선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반대차선으로 레커차들이 달려가고 있고 그 뒤를 앰뷸런스와 경찰차들도 줄줄이 달려가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퍼뜩 드는 생각이 제천IC에서 가까운 곳이니 제천에서 출발하여 위쪽인 신림 톨게이트로 가서 거기서 다시 하행선으로 내려와서 사고처리를 하고 견인해 갈 모양인가보다 했다. 예상대로 10여분쯤 지나자 방금 전 우리 반대방향으로 지나쳤던 레커차들과 경찰차들이 우리차선으로 건너와 갓길을 지나쳐서 내려가고 있었다. 사고가 얼른 수습되어 다시 갈 수 있기를 기다렸다. 걱정되어 차량 온도계를 확인하니 바깥 기온이 조금 내려 영하 2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눈이 아닌 진눈깨비 상태라는 것.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에서 내려 도로 바닥을 신발로 긁어보니 얼음 알갱이가 섞인 슬러시(slush) 상태다. 난감하다. 여기서 더 지체하다가는 금방 눈으로 바뀔게 뻔한데……. 답답한 시간이 흐르고 시간은 이미 오후5시 20분을 지나고 있었다.
해가 빠져서 기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죽령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한숨이 나왔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기가 엄습해오는 것 같아 답답한 차안으로 도망치듯 쫓겨 들어왔다. 아이들은 잠시 눈을 떴다가 피곤을 못 이겨 다시 자고 아내는 걱정스러운 듯 바깥을 살피며 연방 괜찮을 거라며 걱정하는 날 위로했다. 차가 멈추어 섰는지 30분이 지나도록 꼼짝을 하지 않는다. 일각이 여삼추 같은 초조한 시간이 지나고 날도 점점 저물고 있었다. 주변이 어둑어둑 해지는 5시 40분경에야 사고 수습이 끝나고 도로가 뚫렸다. 미끄러지듯 출발하여 조금씩 속도를 내어 사고현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우리가 멈춰서야 했던 곳에서 불과 1km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다행히 사고 차량들이 그다지 심하게 부서지지는 않았고 사람들도 크게 다치지는 않아 다들 멀쩡해 보였다. ‘조금만 더 빨리 이곳을 지나갔다면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하마터면 운 나쁘게 저 사고차량 대열에 끼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오늘 안에는 도착하겠지”
사고 때문에 시간이 더 지체되어 해지기 전에 죽령을 지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남제천 톨게이트를 지날 무렵에는 주변이 칠흑같이 어두워져버렸다. 분명히 남쪽으로 내려가는데도 온도계는 영하2도에서 꿈쩍하지를 않는다. 아마도 차를 타고 남으로 내려가는 것을 밤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는 것이 상쇄시키기 때문인 듯했다. 진눈깨비는 어느덧 굵은 눈발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죽령터널만 지나면 사정이 나아질 것 같은 기대감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기온이 조금이라도 올라가 지금 내리고 있는 눈이 다시 비로 바뀔 수도 있을지 모를 희망이 있으니까. 속도를 내어 달리고 싶었지만 오히려 시속 40km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제천구간에서 사고만 나지 않았다면 벌써 죽령터널을 지나 영주쯤은 가있어야 할 시간에 단양휴게소를 향해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지만 그래도 차가 갈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진눈깨비가 눈으로 바뀌자 시속 40km/h이하로 가는 차들이 늘었다. 앞차들이 거북이걸음처럼 느린 속도로 가서 답답한 차들은 겁 없이 60km/h이상의 속도로 추월해나가기도 했다. 주로 대형트럭이나 버스기사들이 그런 대열에 서 있었는데 운전이 직업인 사람들이라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보다 했다. 버스와 대형트럭들이 연이어 추월차선으로 달려가면 나는 곧장 그 차의 바퀴가 눈을 쓸고나간 자국을 따라 차바퀴를 물면서 갔다. 계속 그런 식으로 운전을 하자니 속도를 내어 따라 잡아야 했고 겁도 나고 신경도 쓰여 뒷덜미가 무겁고 핸들을 쥔 팔도 뻣뻣해졌다. 게다가 긴장 때문에 허리도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는데 앉은 자세에서 엉덩이를 좌우로 움직여 허리의 긴장을 늦추어 보려했지만 아픈 것은 매한가지여서 대형차량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일을 얼마 안가서 포기하고 말았다. 빨리 가는 것은 포기하고 어떻게든 안전하게 가자는 생각만 했다. 그래도 오늘 안에는 도착하겠지 하고 마음을 먹으니 운전이 편안해졌다. 천천히 슬금슬금 가는데 저 멀리 오렌지색 불빛들이 사열하듯이 도열해있는 게 보였다. 단양 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죽령터널로 올라가는 교량의 불빛들이다. 그날따라 그 불빛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는데 거기서부터는 좀 마음을 놓아도 되는 구간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엉금엉금 중앙고속도로 위를 기어가던 차들이 속력을 내어 힘차고 안정감 있게 죽령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터널 안으로 진입하자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다들 신나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4,600m에 달하는 죽령터널이 100km/h이상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구간속도제한을 실시하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면 차들은 아우토반을 달리듯이 속도경쟁을 벌였을 법도 했다. 100km/h 가까운 속도로 달려도 미끄러질 걱정이 없으니 한결 기분이 편안해지며 날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터널을 신나게 달려 빠져나오기 전 다시 속도를 줄여야 했다. 차량 온도계를 확인하니 영하 1.5도였다.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풍기부터는 아직까지 도로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지 않고 진눈깨비가 계속 내리는 상황이었다. 혹시라도 도로표면이 얼어붙어 있어 미끄러질까봐 조심스러운 상황인데도 버스와 대형트럭들은 시속 80km 이상으로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일부 자가용 운전자들이 덩달아서 속도를 올리기도 했지만 나를 비롯한 소심한 운전자들은 그래도 자신이 없어 60km/h 이하로 주행선을 고수하며 천천히 갔다. 기온이 조금만 더 올라 영상만 되었어도 이렇게 마음 졸여가며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1-2도의 미세한 온도 차이가 사람들로 하여금 눈길에서 슬슬 기게 만든다.
한시간 남짓한 거리를 다섯시간만에
영주와 예천을 무사히 지나 저녁 8시 30분경에 서안동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한 시간 반이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를 무려 5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셈이다. 안동시내로 들어왔으면 모든 상황이 종료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심각한 도로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점이 흩날리던 눈발이 굵어지면서 도로위로 허옇게 흩날려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가면서 쌓여가고 있었다. 톨게이트에서 터미널 방면으로 들어오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 내린 눈이 반질반질한 빙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시속 40km의 속도로 조심조심 달리는데도 조마조마할정도였는데 그래도 안동에 들어왔다는 안도감 때문에 조금씩 긴장이 풀리고 있었고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길이 걱정되어 급히 나오느라 핫도그 하나 달랑 먹은 게 하루 식사의 전부였으니 배가 고픈 게 당연했다. 밖에서 먹고 들어가면 좋지만 눈이 점점 더 많이 내리고 있는 상황이라 집으로 빨리 들어가야 했다. 집에 들어가면 마땅히 먹을 게 없어 그것도 난감했는데 그때 마침 생각난 게 배달해주는 피자였다.
피자가게에 주문전화를 하니 지금은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배달이 곤란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집으로 가는 길인데 그곳에 들러 피자를 찾아갈 테니 그건 안 되느냐고 했더니 그건 가능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참 단순한 경우가 많다. 눈 때문에 빙판길을 엉금엉금 기어가듯 운전해 집으로 가고 있으면서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피자가 주문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우스웠다. 이전한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송현동 방면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왼편 농협주유소 앞에 빙판길에 미끄러진 차 두 대가 이마를 마주 댄 채로 도로 두 차선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직도 용상동 집까지 가야할 길이 먼데 그런 광경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아 한숨이 나왔다. 그곳을 지나 빙판길 오르막을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는데 오른 편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나와 자기 키 보다 큰 빗자루를 들고서 힘겹게 눈을 쓸고 있었다. ‘이런 고갯길은 제설차량이 미리 나와 염화칼슘이나 모래를 좀 뿌려주면 좋으련만…….’
법흥고가를 지나며 길고긴 하루 마무리
제설작업이 미처 안 된 탓에 오르막에서는 빌빌거리고 내리막에서는 발발거리며 그렇게 몇 킬로미터 되지 않는 곳을 기다시피 하여 안동초등학교 앞에 있는 피자가게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자마자 염치불구하고 직원들이 이용하는 화장실로 후다닥 쫒아 들어갔다. 5시간 넘게 긴장한 채로 운전하고 왔으니 오줌보가 터질 만도 했다. 얼른 집에 가고 싶었지만 피자를 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가게 안에서 눈 내리는 바깥 풍경을 10분 정도 바라보고 있었을까? 기다리던 피자가 나왔다.
오르막 관문인 법흥고가를 지나야 하지만 다행히 거기는 모래를 뿌려놓아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현대아파트까지는 다시 완만한 내리막 길 그 끝에서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은 심한 오르막이지만 도로 밑에 따뜻한 물이 흐르도록 해놓아서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얼어붙지 않아 안심이 되는 곳이다. 더구나 경비 아저씨들이 미리 모래를 뿌리고 제설작업을 해놓아서 미끄럽지도 않았다. 제설작업이 안된 도로를 힘겹게 오다가 제설작업이 되어있는 길로 들어서니 그런 수고가 참으로 고마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짐을 챙겨 집으로 들어오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역시 집이 좋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눈 쌓인 길을 힘들게 운전해 온 내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눕자 아찔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고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눈 때문에 무척이나 길었던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