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차별에 대한 착각과 여성 우위의 전통(글/임재해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교수)
1. 남녀 차별의 선입견과 명절증후군의 오해
오늘이 보름이니 설을 쇤 지 한참 되었다. 설이나 한가위처럼 가족들이 모여서 차례를 올리는 명절 때마다 문제되는 것이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이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은 명절에 하는 일 대부분을 여성들이 도맡아놓고 해야 하는 남성주의적 전통에서 비롯된 여성들의 질병적 불편함을 일컫는 말이다. 여성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차례음식을 만들고 차려내느라 부산하기 짝이 없는데, 남성들은 빈둥거리며 놀다가 차례상 앞에서 절만 하는 까닭에 실제로 여성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따라서 설이나 한가위 등 차례를 올리는 명절이 닥칠 때마다 언론에서 이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가부장적 전통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잘못이고 민속문화의 바람직하지 못한 유산으로 간주하는 것도 착각이다. 왜냐하면 제사나 차례 준비를 오직 여성들이 맡아서 하는 것이 전통인 줄 알고 있는데, 이런 관행은 요즘에 생겨난 현대 도시사회의 새로운 풍속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는 남성과 여성, 남편과 주부가 일정한 역할을 하며 명절의 차례 준비와 제사 준비를 적절히 나누어서 조화롭게 담당해 왔다. 남녀 성역할이 대등하게 나뉘어져 있어서 제사상 차리는 일이 어느 한 편에 기울어져 있거나 차별화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제삿장은 전통적으로 가장인 남성의 몫이다. 같은 어물이라 하더라도 주부가 사는 반찬용 어물과 가장이 사는 제수용 어물은 서로 다르다. 방어나 상어, 가오리, 문어 등 모두 두부모처럼 잘라놓은 돔배기를 제수용으로 구입하기 때문이다. 제삿장은 제삿날을 앞둔 며칠 전의 장날을 이용한다. 장은 대체로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한나절 걸어갔다가 장을 봐서 걸어오면 해가 저물기 일쑤이다. 현금을 주로 사용하지 않는 시절에는 곡물이나 달걀, 장작 등을 지고 가서 제물을 구입해야 한다. 남성들의 제사장보기는 하루 종일 일거리이다. 여성들이 더러 장에 가긴 해도 장보기 제물은 언제든지 남성들의 몫이다. 특히 반촌에서는 여성들이 먼 길을 걸어서 장에 가는 일은 금기나 다름없다. 마을 바깥 외출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따라서 주부는 장에 가지 않고 집안에서 제수를 준비한다. 부엌에서 시루떡을 찌고 부침개를 부치며 나물을 장만하는 일은 여성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장에서 사온 제수용 어물을 씻어서 잘게 썰어 꽂이에 꿰고 숯불에 굽는 일은 남성들이 한다. 닭을 잡아 털을 뽑고 구워서 제물로 장만하는 일도 남성들 몫이다. 저녁에 여성들이 밥을 짓는 동안 남성들은 과일을 깎고 밤을 치며 제상을 차리는 일을 한다. 먹을 갈아 한지에 지방을 쓰는 일도 가장의 일이다. 제사를 다 마치고 나면, 여성들은 부엌에서 상차림을 하고 남성들은 제사 음식을 모아서 고기류와 과일, 떡을 분리해서 담고, 모두 잘게 썰어서 접시에 몫몫이 담아 음복 상에 반찬접시와 과일을 포함한 떡쟁반을 차려 올리는 일을 담당한다.
2. 남녀 성역할에 따라 대등했던 제사상 차림
손님들에게 음식을 차려내는 일을 제사나 차례 때만 남성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잔치를 크게 할 때도 역시 남성들이 담당한다. 여성들이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는 일을 하는 반면에, 남성들은 과방에서 고기와 과일, 떡, 과자 등을 술안주나 밥상의 반찬으로 차려낸다. 손님들에게 밥상을 올리고 물려내는 일도 모두 남성들의 몫이다. 이처럼 전통 민속에서는 남녀 역할이 공정하게 나누어져서 제각기 자기 일을 분담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성들에게만 한정해서 명절증후군 또는 잔치후유증이 난타난다고 할 수 없다.
원래 남녀가 대등하게 누렸던 상생적 성역할이 시대상황에 따라 여성주의 또는 남성주의 문화로 변화된 사실을 제대로 포착해야 전통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다. 지금처럼 여성들이 전적으로 제수 준비를 맡아서 하게 된 것은 도시에서 비롯된 현대 풍속이다. 남성들이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는 까닭에 사실상 장보기를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부엌에서 제수 준비를 할 겨를조차 없다. 따라서 집에 있는 전업주부들이 과거에 남성들이 하던 일까지 모두 맡아서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 요즘의 제사 관행이다. 이러한 풍속이 차례를 올릴 때에도 고스란히 되풀이 된 까닭에 여성들의 불만이 적지 않게 된 것이다. 전업주부의 경우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데, 특히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상황에서는 여성의 처지에서 볼 때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전통사회에는 남성들이 담당하는 역할이 여성에 견주어 적지 않았다. 인절미를 만들 때에 안반에다 찹쌀밥을 이겨서 떡매로 쳐야 하는데, 이 일은 부엌에서 하더라도 남정네들이 거들었다. 시루떡을 찌는 것까지는 여성들의 몫이지만 시루떡을 반듯하게 잘라 편틀에 보기 좋게 차리는 일은 남성들의 몫이다. 따라서 여성들이 전적으로 주관하는 지금의 제사나 차례를 근거로 과거 민속의 유산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남녀가 대등하게 담당하던 전통 제사와 달리 여성에게 전적으로 짐 지어 놓은 것이 요즘의 문제이다. 달리 말하면 제사문화가 현대에 와서 여성의 일방 노동으로 크게 퇴행되었다는 말이다.
요즘 택호가 사라지고 남성의 지위나 직위를 근거로 그 아내를 동장댁, 과장댁, 시장댁, 대령댁이라고 일컫는 것이 남성주의로 퇴행한 것과 같다. 택호는 여성 친정 지명이므로 가치중립적이라면, 남편의 직장 직위로 호칭을 하는 것은 여성의 지위를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남편의 직위에 따라 차등하게 종속되도록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전통사회의 풍속처럼 택호를 부르는 것이 여성주의적일 뿐 아니라, 가족을 가장의 직위에 의해 호칭을 차별하는 문제까지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이른바 민주사회에서 형성된 문화가 오히려 민속문화의 전통보다 더 남성주의적이라는 자각이 긴요하다.
따라서 인간해방의 관심에서 비롯된 온전한 여성주의 시각이 필요할 뿐 아니라, 민속문화의 전통 자체에 대한 정확한 지식도 있어야 최근에 형성된 새로운 풍속을 두고 공연히 민속을 탓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민속은 무엇이든 전통적이고 전근대적이며 남성 중심주의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현실적인 남녀차별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다.
3. 남녀 호칭 문제로 본 서구사회와 성차별 비교
남녀차별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은 서구사회에 견주어 우리사회가 성차별이 심하다는 편견이다. 전통사회가 성차별이 심했다고 여기는 것처럼, 서구사회보다 우리사회가 더 성차별이 심하다는 것 또한 근거 없는 선입견이다. 남녀를 일컫는 호칭 문제를 중심으로, 남녀의 위상을 영어권과 대조적으로 살펴보면, 남존여비사상에 쩔어 있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여성주의문화가 포착된다.
미혼남녀를 일컫는 호칭을 보면 우리말은 ‘아들’과 ‘딸’인데, 영어에서는 ‘son’과 ‘daughter’라 한다. 어느 것을 중심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말 아들과 딸에서 어원적인 준거 구실을 하는 것은 아들이 아니라 딸이다. 김용옥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딸이 아닌 존재가 아들이다. 아들은 딸이 아닌 안딸에서 아?, 아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자녀의 성별을 가릴때, 아들이 아니라 딸이 준거라는 말이다. 아들은 안딸에서 비롯된 딸의 부정적 존재로 일컬어진 이름이다. 딸이 성 정체성을 분별하는 기본적 가치이자 준거였다는 사실을 지나쳐 보지 말아야 여성주의 문화의 뿌리가 포착된다.
남녀를 일컫는 호칭의 차이는 사람 일반을 일컬을 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는 ‘남성과 여성’ 또는 ‘남자와 여자’로 일컫는데, 영어권에서는 ‘man과 woman’으로 일컫는다. 흥미로운 것은 man은 남성이자 곧 인간인데, woman은 여성일 뿐 결코 인간이 아니다. 성서에서 여성을 남성의 갈비뼈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성이라는 말조차 man이라는 남성에다가 wo를 덧붙여서 woman을 만들어냈다. 영어에는 사람이라는 말이 별도로 없다고 하거나 남성이라는 말이 별도로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남성이 사람이고 사람이 남성이다. 오직 사람 외에 여성만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처럼 우리말 ‘사내’와 ‘아낙’은 대등한 말이다. 어느 것도 인간을 대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이란 말이 별도로 있다. 한자말로 나타낼 때도 오히려 인간으로 표현 가능한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여인(女人)이라는 말은 여성 못지않게 널리 쓰인 말이지만 남인(男人)이라는 말은 아예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남성만을 인간으로 여기는 영어와 달리, 한국사회에서 남성은 인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셈이다.
이러한 관계를 정리하면, 영어권에서는 남성만이 인간이고 여성은 여성일 뿐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남녀가 대등하게 반쪽이어서 사람이란 말이 별도로 있거나, 아니면 여성만 인간으로 일컬어진다. 따라서 자녀의 성별을 나타내는 준거처럼, 인간 일반의 준거도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게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로 “홀아비 3년에 는 이가 서 말인데 과부 3년에는 금이 서 말”이라는 옛말이 이러한 상황을 잘 나타내 준다. 남자들은 혼자 살면 인간 꼬라지가 안 된다는 것이다.
4. 여성에게만 유부녀의 정조대를 강요한 Mrs
미혼남녀를 일컬을 때도 이와 같은 차별이 나타난다. 우리말에는 미혼남녀를 ‘처녀’와 ‘총각’ 또는 ‘아가씨’와 ‘도령’으로 일컫는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Miss’와 ‘Mr’로 일컫는다. Mr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아무개 ‘씨’나 ‘선생’으로서 존칭어의 성격을 첫째 뜻으로 가진다. 아내가 자기 남편을 ‘Mr 아무개’라고 일컬으면 ‘우리 바깥양반’ 또는 ‘우리 집 주인’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Miss는 단독으로 쓰일 때, 그 본바닥인 영국에서는 미혼여성을 낮추어 부르는 호칭이다. 일반적으로 여점원이나 웨이트리스에게도 Miss라고 한다. 한국사회에서도 Miss라는 말이 이러한 맥락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더 문제는 Miss라는 말의 두 번째 뜻이다. 빗나가다, 못 맞히다, 놓치다, 결석하다, 빠지다, 빼먹다, 어기다, 게으르다, 실수하다 등의 동사와, 이러한 뜻을 지닌 명사로 함께 쓰인다. 출산과 관련될 때에는 Miss가 유산(流産)을 뜻한다. Mr가 사람을 높이는 존칭어인데 비하여 Miss는 경멸적 호칭이거나, 아니면 이차적으로 부정적 의미를 지닌 뜻과 두루 만난다. 우리는 마치 딸을 기대하다가 딸이 아니라고 해서 아들을 ‘안딸’이라고 하였듯이, 영어권에서는 Mr가 아닌 존재로서, 빗나가거나 실수한 존재인 것처럼 Miss를 일컫는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는 오히려 미혼여성을 나타내는 처녀라는 말이 총각이라는 말보다 의미가치가 더 우위에 있다. 처녀는 성별을 나타내는 말 외에 처녀작, 처녀출품, 처녀림 등으로 최초의 작품 창작이나 출품을 나타내면서, 처녀는 ‘최초’ 곧 first라고하는 의미와 더불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신성한 숲을 뜻한다. 아무도 접근하지 않고 손대지 않은 태초의 신성함 그대로를 뜻하는 말이 곧 ‘처녀00’이다. 하지만 총각은 총각김치라 말 외에 다른 뜻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총각김치가 김치 가운데 특히 주목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처녀 > 총각’의 의미 구조는 여성 중심적인데 비하여, ‘Mr > Miss’의 의미 구조는 남성 중심적이다.
Mr와 Miss의 의미 차별보다 더 심각한 차별이 기혼남녀의 호칭에서 나타난다. 한국어는 처녀와 총각, 아가씨와 도령이 혼인을 하면 아주머니와 아저씨로 남녀가 대등하게 바뀌는데, 영어는 상당히 차별적이다. 혼인을 해도 남성은 Mr 그대로이고 여성만 Mrs로 바뀌는 까닭이다. 남성은 총각과 아저씨 구분이 없는데, 여성만 처녀와 아주머니 구분을 엄격하게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낱말조차 여성은 남성(Mr)의 소유격처럼 Mrs로 표기될 뿐 아니라, 실제로 Mrs 다음에는 여성의 성이 증발되고 남편의 성이 온다. 여성은 혼인과 동시에 남성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남성은 혼인을 해도 총각 때와 같은 호칭으로 일컬어져서 마치 미혼남성인 것처럼 인식되고 행세하는데, 여성은 혼인하자마자 남편 아무개씨의 부인으로 일컬어지면서 남성 종속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보면 굉장히 모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남성들은 여성들을 혼인과 함께 유부녀로 만들 수 있는데, 어떤 여성도 혼인한 자기 남편을 결코 유부남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심각한 성차별일 뿐 아니라, 부부관계에서 남성들의 탈선을 조장하는 것이다. 남성에게는 유부남이라는 호칭의 정조대가 없는 반면에 오직 여성에게만 혼인과 동시에 유부녀란 성차별의 정조대를 차도록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구사회의 성차별을 고려하면, 한국의 남녀 호칭에 따른 문화는 상당히 평등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5. 자기 성을 잃어버리는 서구의 기혼여성들
서구에서는 호칭만 아무개씨의 부인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법적인 성명 자체가 달라진다. 타고난 성을 버리고 혼인과 동시에 남편의 성으로 바꾸어버리는 까닭이다. 케네디 대통령 부인이었던 재클린은 원래 재클린 ‘부비에’였지만, 케네디에게 시집을 가면서 재클린 ‘케네디’가 되었다. 그리고 케네디가 불행하게 사망한 뒤에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혼인하여 다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라는 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재클린 여사가 혼인과 함께 아버지 성을 버리고 남편인 케네디 성을 따랐을 뿐 아니라, 케네디 사망 뒤에 오나시스와 재혼을 하자 첫남편인 케네디의 성과 함께 오나시스라는 성을 새로 더 보태게 된 것이다. 오나시스 사망 이후에 다른 남성들과 두루 염문을 뿌렸지만 혼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식 이름은 오나시스에서 멈추었지만 만일 재혼을 거듭했다면 남편의 성이 차례로 길게 더 보태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영어권에서는 여성이 혼인을 하면 남편의 소유물처럼 Mrs로 일컬어질 뿐 아니라, 혼인할 때마다 남편의 성이 계속 자기 이름 뒤에 붙여진다는 사실은, 전통적으로 서구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중심주의 사회에 철저하게 종속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여성은 혼인과 더불어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호칭을 전혀 쓰지 않고 오직 남편의 성을 따라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혼인을 해도 자기 성을 바꾸지 않는다. 따라서 부부가 성이 같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성씨는 자신의 혈연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그러므로 여성들도 사임당 신씨, 정부인 장씨처럼 자기 성으로 자기 작품과 저술에 이름을 남긴다. 이래도 남편 성을 따르며 사는 서구사회가 더 여성중심적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문화의 여성주의 전통에 대한 재인식이 긴요하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8호>